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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휴게소]-2015_01월_03주 
10gfl--2015-01월_댓글보전.txt
http://story007.tistory.com/1022



◈Mun Tokyun 2015/01/17/토/23:29


♥ 잡담 ♥안인수행론 

lab 님이 이상한 글로 도배 중인 것 같은데 
어제 오늘 본인이 안인을 수행한 내용을 보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글로 아무리 고통을 기술해도 
그 고통을 알 수 없다는 내용을 보고 
고통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피하기로 한다. 

각 경우마다 다 사정이 다르니, 
이것도 매우 어려운 부분이라고 본다. 

lab님이 언젠가 고통 가운데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분만의 고통도 
무통분만을 하는 방안이 있다고 하는데 
미리 훈련해 두지 않은 잘못이 크다고 할 수도 있다. 

본인은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한 대략 1 시간 정도 누워 있는 상태에서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고통을 주는 곳이 교도소나 지옥이라면,
그곳은 화장실이 아니라 지옥이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생명을 걸고 안인 수행을 한다는 기분으로 임하면 
화장실이 아니라 화장터 안에 
자신이 놓여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고 본다. 

본인은 누가 고통을 주는 지 모르지만, 
누군가 상대가 있어 고통을 준다고 전제하고 
그 상대가 가리왕인지 아니면 문수보살인지 
먼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알 방안도 없지만, 
일단 가리왕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 문수보살이고 
문수보살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가리왕이 행하는 것처럼 행하고 
그 최종 결과도 그렇게 마치고 끝나리라고 생각하였다. 

결국 발은 썩어 잘라지거나 
아니면 최종적으로 이 화장실안에서 
밤 중에 운명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시나리오를 구성하였다. 

밤중에 help me 를 외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이미 안인 수행의 본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일어나 보려고 노력했는데 
당시는 사정이 매우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 상대 가리왕과 가상 시나리오를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언젠가 lab님을 통해 들은 게송이 생각났다.

成就諸忍不可說,  無生法忍不可說,

具足寂靜不可說,  住寂靜地不可說,

성취제인불가설,  무생법인불가설,   

구족적정불가설,  주적정지불가설,   


이런 부분이다. 
당시 불가설의 해석을 놓고 잠깐 논의한 것도 생각난다. 

불가설은 말할 수 없다 이런 의미이기도 한데 
그러나 일정한 단계로 수를 헤아려 나갈 때 
상당히 큰 수의 단위를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한 것이다. 

상대는 오늘 1 번으로 안인수행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갖고 있는 매뉴얼에 의하면 108 개 정도를 갖고 있는데 
그것도 그것이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시 1200 제가 있고 
그것이 마쳐지면 12000 개의 안인 수행종목이 있고 
다시 22000 개의 안인 수행종목이 있고 
다시 33000 개의 안인 수행종목이 있고 
1 부의 최종 단계로 84000 개 정도의 수행종목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무수한 안인 수행종목을 다 마치고 
그 숫자까지 정확히 다 세고 
기록해 가져가신 분이 계신데 
그 분이 말씀하신 그 수가 불가설이라는 수의 단위라는 것이다. 

상당히 공포스러운 대목이다. 

그러나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종류가 108 개이던 84000 개이던 
구지이던 나유타이던 아승기이던 
불가설이던, 

그것을 돌파하는 것은 단 하나인 것이다. 

무엇인가,
하나는 참는 것이다. 

좀 간단하다고 보면 
다시 추가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공하고 스크린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관하는 것이다. 

다시 하나 추가한다면 
그런 가운데 
무언가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다시 하나 추가한다면, 
그러한 가운데 참고 평안히 지내는데 
어차피 그렇게 있는 가운데 
이왕 보내는 시간을 
가장 유용하게 최후의 순간까지 보내려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고 본다. 

스크린을 바탕으로 놓고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시나리오나 시로 
입히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본다. 

적당한 것이 생각나지 않아서 
다음을 생각했다. 


안인 수행 다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정진, 정려, 반야. 그런 것이 있지 않은가. 
예습을 하자. 

고통이 한편으로 사라지지 않고 
느껴진다. 
갑자기 몸도 추워 떨린다. 
등바닥은 왠지 물에 젖어 차가운 것 같다. 

상대가 동시다발의 고통을 받는 것이 
하나만 받는 것보다 좋은데 
어떠한가 묻는 것 같다. 

3개까지 가능한데 
그 이후에는 많고 많아도 
비슷하다고 하는 것도 같다. 

몸을 움직여 보려니 쥐가 일어난다. 


12 시까지는 일단 계속 참기로 하자. 

그러니까 상대가 이렇게 묻는 것 같다. 
그 이후에는 진통제나 항생제를 사용할 것인가. 

고민이 된다. 

안인수행의 원취지가 바로 이런 경우 때문에 
제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이가 집착하는 생명, 신체, 재산, 가족...등을 
함부로 훼손하고 침해하는 것이 
어설픈 수행자가 밟아 나가는 위험성이라고 
lab 님이 지적한 바 있는데 
염증을 일으키는 것은 세균이고 
세균과 몸 안의 면역세포와의 전투과정이 
이런 고통을 지금 주는 것으로 
상식적으로 이해하는데 
여하튼 
미생물이지만, 그런 바탕에서 고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옆에서 또 다른 고문관이 나타나 
빨리 답을 얻고 그만 그치자는 의견도 제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상대가 그 말을 듣더니, 
그 질문을 하는데
본인은 안인 수행중이라
모든 것을 순순히 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은 최종 답안으로 하고, 
그 전에 자신이 한 108 번 코스를 다 마치고 
그 답을 얻은 것으로 처리하겠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도 일을 빨리 끝내면, 
다른 일로 또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던지 말던지이다. 

여하튼 안인 수행의 과정에서 
안인 수행의 구체적 종목은 무한에 가깝고 
불가설인데, 

돌파 방안은 단순하다고 본다. 
참는 것이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으면 참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평안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므로 
참고 평안히 지내는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방안이라면 방안이다. 

나중에는 문턱 부분까지 기어 나온 상태에서 
나오지 못하고 
화장실 바닥에 있는 
인턴연구원의 만화책을 집어 들어 
읽었다. 

외국 역사 만화인데 
러시아의 1000 년간의 길고 긴 역사 이야기를 
대강 보게 되었다. 

우리가 몽고에 침입당할 즈음에 
러시아도 침입을 당하고 
우리가 벗어난 이후에도 
러시아는 한참동안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가지가지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용을 
살필 수 있었다. 

그 현장 속의 구체적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해보려니 
아득해진다. 

안인 수행이 종료된 것은 
오후 1시쯤 되어서 시간을 확인해볼 때즘 
고통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다. 

고통이 더 이상 없으니 안인 수행이라고 할 수 없고 
그저 평안히 있게 된 것이다. 

사실은 다른 사정도 있는데 
너무 신비주의적인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안인수행의 정도에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바닥에 누워 있을 때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부모님 모습도 본 것 같다. 
한복을 입은 아버님이 어머님을 엎고 계신 것 같았다.

침대에서 잠을 잘 때는 
가수 빅뱅의 멤버 하나가 비슷한 수행을 하는데 
동료나 보조 기사등등의 사람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언가 고통스런 일을 거꾸로 하나씩 당하고 
매 단계마다 스틸 사진을 하나씩 찍어가는 것을 보았다. 

고통이 아주 극심한 순간에는 
누군가 발 안을 수술하고 꿰매고 하는 그런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현실 일체가 모두 자신의 마음에 맺힌 내용임을 
이해하고 이들을 대하는 것이 유용한 것 같다. 

고통은 실답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답지 않게 고통은 있고 
그 고통은 마치 진짜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이 고통의 해결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잘못 접근하면 
자신의 고통을 무한한 다른 생명의 
고통으로 대체해나가려 하기 쉽다고 본다. 

그것은 다시 무한한 고통으로 
내게 돌아올 것이라고 본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더라도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보게 된다. 

무통분만방안은 왜 남자에게 안 알려주었는가. 
그런 것이 있기는 하는가. 

오늘 밤에 또 가리왕이 불시에 방문할 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옆에서 lab님이 가능하면 노래 붙이고 끝내라고 한다. 
읽는데 지겨움을 덜기 위해서라는데 
오히려 더 지겹게 되지 않을까 


Florent Pagny - Je Trace

>>>

http://www.youtube.com/watch?v=KQvl966HKKg

>>>






○ [pt op tr]  Florent Pagny - Je Trace 가사 





문서정보

 



◈Lab value 불기2559/01/17/토/20:23


♥ 잡담 ♥보시수행론-04

무재칠시를 마치고 이제는 유재보시로 넘어가기로 한다. 
유재보시란 표현은 없고 그냥 재보시라고 표현한다. 

이 글을 쓰려는데 
숙왕화님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런데 앞 얼굴 몇부분이 빨갛고 코도 그렇다. 

무슨 일인가 물으니, 
어제 밤 10 시경 노래방 계단에서 넘어져서 
그런 부상을 당한 것이라고 한다. 

mun님의 발 통증이 갑자기 시작한 시점과 비슷해 보인다. 

두 분에게 무슨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인가. 

그러나 원래 통증이나 상처는 아무리 기술해도 
직접 전달받아 느끼기 힘들다. 
다른 이의 고통에 무관심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래 무감각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무재칠시의 내용을 살피면서 
화안열색시까지 살폈는데 
어디까지나 이것은 일반적인 내용이다. 

이것을 하나 고집하고 어떤 경우던 
이것을 적용하여 임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다른 이가 심각하고 비극적인 상황에 있는데 
자신 혼자 화안열색시를 하고 다닌다면, 
조금은 다른 이의 심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상태로 
비난받게 마련이다. 


거리를 걸어다니거나, 가까운 시장을 걸어다닐 때도 
비슷하다. 
대부분 사람들이 경기가 안 좋다거나 등등의 이유로 
근심스런 표정인데 
무언가 신나는 일도 없으면서 
그러나 혼자서만 신나는 것처럼 표정을 만들어 다니면서
화안열색시를 한다고 다니면  

그것도 조금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러나 그 기본정신의 취지는 충분하다고 본다. 
그리고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그런 자세로 임하는 것이 이후 상태를 좋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어렵지만 그래서 원칙적인 내용과 근본 취지를 잘 이해하고 
일상생활에 항시 실천하려는 마음을 갖고 임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little 님과 함께 거리를 거닐면서 
좋음을 이웃에게 나눠 줄 방안에 대해서 논의하고 
실천해보려고 했는데 
little 님만 겨우 성공하고 
본인은 실패한 내용은 이전 글에 쓴 바 있다. 

거기에는 약간의 사정이 있다. 

그것은 상대의 소원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물하는 경우의 
어려움과 사정이 비슷하다. 

상대가 배가 고픈데
상대를 앉혀 놓고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찬미하고 
꽃만 잔뜩 선물한다고 하자. 

그 상대가 그것을 좋아하겠는가. 

이런 사정과 비슷하다. 

짜장면이 먹고 싶은데 짬뽕을 강제로 단체로 먹자하며 먹이고 
오늘 따라 짬뽕이 먹고 싶은데 볶음밥을 강제로 단체로 먹자고 하고 
매사가 이런 식이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무언가 좋음을 주는데에는 
상대가 절실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부터 
기본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 


그런데 거리나 시장의 상황은 어떠한가. 
거리나 시장을 거닐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100 명 가운데 한 90 명은 
싸고 질 좋은 원하는 상품을 찾고 있거나, 
또는 자신의 물건을 사주고 돈을 줄 그런 것을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추측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공연히 다가가서 물건도 사지 않고 
물건 파는 상대에게 공허한 화안열색시를 열심히 해보고자 해도 
무의미한 것이다. 

물건을 사려는 의사가 없으면
공연히 말 걸지 말고
귀찮게라도 하지 않아주는 것이 
최선이다. 

이런 가운데 조금은 문제가 복잡해지는 사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재보시를 생각하는 가운데 
자신의 재산이나 화폐를 모두 길에 뿌려 
필요한 이가 가져가게 하였다면, 
그 1회성 보시로 인해 그 이후의 재보시는 
조금 곤란해진 사정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소원의 내용을 살피고 
또 한편 늘 이런 소원을 의미있게 만족시켜 주고 
그런 가운데 조금은 실질적인 좋음을 주려고 한다면, 
조금은 더 깊게 연구를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는 좀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 최극단에 가서 생각하면 
이미 무한화폐와 무한신용카드를 만들어 
널리 세상에 공개하고 
제시하였으며, 
본인도 그 무한화폐와 무한신용카드를 늘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그에 관한 글에서 밝혔듯이 
이 무한화폐 신용카드 소지자는 
무한한 재원을 모두 투자에 사용하였고 
또 이 무한화폐나 신용카드는 
생계문제 해결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조금 이상하지만, 그것이 현실과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내용에 만족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즉 거리에서 동네 시장에서 마트에서 
이런 식으로 좋음을 줄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시 추가의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일단 숙왕화님이 긴급 호출을 하므로 글을 중단하고 
나중에 이어서 쓰기로 한다. 

돈과 
질좋고 싼 상품을 원하는 경우에 
그 좋음을 무한히 만들어 
이웃에게 무한히 나누어 주자.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일단 논의 주제를 이렇게 잡고 
논의를 시작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가능해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직접 그렇게 하고 있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음도 함께 보게 된다. 
그러니 너무 결론에 비관적일 필요도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최근 mun 님 등이 
제기하는 각종 경제 case 문제를 놓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 알다시피 현실 경제는 
이해가 늘 대립되고 또 상호 경쟁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중국의 샤오미가 잘 하면 삼성 핸드폰이 약간 울상이 된다. 
삼성 핸드폰이 잘 하면 애플사가 약간 짜증이 난다. 
이런 식이다. 

그리고 각 경제 주체들 간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그런 가운데 몇몇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문제를 가지고 
논의를 전개하면 역시 여기에서도 같은 성격의 문제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번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한 어머니가 아들이 둘 있는데 
하나는 우산을 팔고 하나는 짚신을 팔며 생계를 유지해갔다는 그런 이야기다. 
그래서 이 어머니는 매일 날씨가 어떻던지 늘 걱정하고 우울해 했다고 한다. 
그런데 거북도사가 이 어머니를 방문하고 
조금 더 심각한 상태를 만들고 원상회복시켜준 다음 
다음 처방을 내렸다고 한다. 
그 반대로 생각하고 매일 날씨가 어떻던지 늘 밝고 즐겁게 사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러나 그 어머니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조금 의문이다. 
왜냐하면 자식 가운데 어느 한쪽은 분명 늘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어느 구석에서는 걱정되고 안타까운 사랑스런 자신의 
자식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각 경제 문제의 case 에서도 이런 문제가 늘 들어 있다. 

특히 무한화폐와 신용카드로 무한한 투자를 실행해버린 상태에서는 
결국 이 문제가 앞의 상황과 다시 같아지는 것이다. 

이쪽 입장에서 보면 가족 전체의 생계가 달린 절실한 문제임이 분명하고 
또 심지어 생명이 오가는 문제인데, 

그러나 상대편 입장도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다. 
앞의 사정이 다 관여하는 것이다. 

서로 다 남의 고통에 무감각한 것이 본래 그렇고 
또 한편 각기 자신이 집착하는 것이 가장 절실한 사정도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보통 생계문제가 다 절실한데 이 문제는 
가장 친한 가족 누구를 놓고 생각해도 그 해결이 난망하다. 

그리고 세계 인구 60 억명마다 다 제각기 다른 
생계 해결방편을 살피다보면 
그 상황이 다 지극히 힘들고 어려움을 보게 되는 것이다. 

지하 깜깜한 곳에 들어가 광물을 캐는 이는 
정말 그것이 그렇게 유쾌하고 즐거운 일이어서 
매일 쉬지 않고 그 일을 찾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생계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누군가는 수천억원의 재산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그 입장도 사정이 비슷하다. 
어느 순간 그 수많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되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일 매순간 이 문제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외관상 돈이 많아 보인다고 
어떤 한 개인의 생계문제를
한 3~40 년 전적으로 책임지고 
안정되게 생활하게 만들라고 요구하기도 힘들다. 

그렇게 쉬운 문제면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 형제를 붙들고 그런 요구를 한 번 해보시오. 
그런 답변을 듣기 쉽다. 

이런 상황이니, 이 문제가 쉽지 않음을 
기본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모 TV 프로에서는 극한직업이라는 프로가 있는데 
다양한 직업 가운데에서도 좀 더 힘들어 보이는 
직업을 찾아 소개해주는 프로다. 

하나같이 어려운 내용인데 왜 그 당사자들은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는가. 
쉽게 생각하면 이렇게 질문하기 쉽다. 

곡식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지 않는가 라고 
말했다는 어느 나라 황후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여하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남에게는 지극히 어려워보이지만, 각기 자신이 잘 하는 일은 
쉬운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는 또 60 억인구가 각기 그 상황에서 
찾아낸 생계 해결의 방편 60 억 가지에 대응한 
레시피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그 다양한 레시피 가운데 
좋고 좋고 좋은 레시피를 찾는 것이 과제라면 과제다. 

어떤 기업이 대단한 수익을 거두는 사업을 하고 있다면, 
왜 그 레시피를 혼자 그렇게 독점하여 
혼자 이익을 거두는가. 

누군가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면 
무엇이라고 답해야 하는가. 

그 기업경영인이나 회장은 그것 하나 찾아내기 위해 
주야를 쉬지 않고 골프장을 헤메 돌아다녔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남 눈에는 놀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경영인과 회장의 사업 사무실이 그곳인 것이다. 

경영인과 회장은 골프를 정말 좋아해서 
그런 것이라고 오해만 안 하면 
이 문제를 조금 지극히 어려운 극한직업의 하나에 
포함시켜 줄 수 있다. 

안정적이라고 세상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직업의 속성이 
세상에서 말하는 3D 산업의 성격을 그 안에 
다 갖고 있다. 

반대로 그 반대의 ESC 산업은 
대부분 수익이 최저 생계비 수준에 있는 것도 
공평한 일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이런 어려움을 인식하고 
재보시 방법론에 대해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왜 수익의 극대화가 논의 주제가 아니고 
힘들게 번 재화나 재산을 보시하는 것을 주제로 
이런 논의가 필요한가. 

앞에서 이미 사정을 밝혔다. 
기본적으로 1 회의 재보시로 재산을 다 소진하였는데
그 이후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다른 이가 원하고 찾는 소원의 내용을 살펴서 
베풀고자 하는데
끊임없이 그런 재화와 화폐에 대한 소원을
나열하기 때문이다.

가끔 건강 문제도 제기되는데
건강만 좋아지면
다시 같은 소원 상태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이의 소원에 맞춰
좋음을 주어야 진정한 좋음을 줄 수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
그 기초를 만들고
이것이 쉼없이 이어지고 이어질 수 있게 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물론 여기서 어떤 아주 특별한 레시피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레시피의 사정은
각 기업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본 원리는
일단 연구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일단 현실경제에서 여전히 투자 재원이 부족하면, 
대부업계의 최강자인 France Gall 의 다음 노래를 
들으면서 무언가 좋은 레시피를 얻어낼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일단 쉬면서 음악을 

>>>

https://www.youtube.com/watch?v=SOPJn5AlETA

>>>

France Gall - Il Jouait Du Piano Debout.

>>>







○ [pt op tr]  France Gall - Il Jouait Du Piano Debout. 가사 


대부와 관련하여 생각하면, 
문제는 지금 당장 좋은 것이 
나중에도 계속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문제를 풀지 못하면, 
점점 더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래도 당장 급한 문제는 
일단 해결하고 보자는 심리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당장 급한 경우가 
현실에 많다. 

little 님에게 기대해보아도 소원을 성취하기 힘들고 
광고대로 온갖 방안을 다 써도 안 되는데 
그러나 누군가 보시는 아니지만, 
일단 빌려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 아닌가. 

문제는 그 이후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글을 쓰려다, 
과거 글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내용을 잘못하면 
반복하기 쉽다는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링크만 걸고 
넘어가기로 한다. 
물론 과거글이고 검토는 하지 않았다. 
그 동안 생각이 달라질 수 있는 법이지만, 

● "가장_좋고_좋은_가치와_복사_복제.htm" [빈문서] 07fl--740-ECON/가장_좋고_좋은_가치와_복사_복제.htm

▽ http://essay007.tistory.com/797#comment11559159

□http://essay007.tistory.com/798#comment11559164


"가치와_수의_문제.htm" [가치퀴즈1] 07fl--740-ECON/가치와_수의_문제.htm

▽ http://essay007.tistory.com/797#comment11559159

□http://essay007.tistory.com/798#comment11559164


가치퀴즈2-가치의_상속자 [가치퀴즈2] 07fl--740-ECON/가치퀴즈2-가치의_상속자.htm

▽ http://essay007.tistory.com/797#comment11560181

□http://essay007.tistory.com/798#comment11560050


"가치퀴즈3-가치의_복사와_가치_상속자.htm" [ ● 가치 문제의 퀴즈- 연구- 3] 07fl--740-ECON/가치퀴즈3-가치의_복사와_가치_상속자.htm

▽ http://essay007.tistory.com/798#comment11560620

□http://essay007.tistory.com/797#comment11560638


"가치의_복제_대상.htm" [ ● 가치의 퀴즈에서 주의할 점 -연구주제 4] 07fl--740-ECON/가치의_복제_대상.htm

□http://essay007.tistory.com/798#comment11560079


"부의_획득의_유형과_방식.htm" [빈문서] 07fl--740-ECON/부의_획득의_유형과_방식.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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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_변환법.htm" [빈문서] 07fl--740-ECON/가치_변환법.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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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_분해와_결합의_문제.htm" [빈문서] 07fl--740-ECON/가치의_분해와_결합의_문제.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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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화폐의_문제-서언.htm" [빈문서] 07fl--740-ECON/무한화폐의_문제-서언.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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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_사용_가능_화폐,_신용카드_확보의_문제.htm" [천장산-산책로와-무한화폐-무한신용카드-확보의문제 ] 07fl--740-ECON/무한_사용_가능_화폐,_신용카드_확보의_문제.htm

[사진본] 04fl--433-ECON\무한신용카드.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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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산-II-삼태기건강마을-건설현장photos.htm" [무한 화폐 무한신용카드 사용방안 [본문]] 07fl--740-ECON/천장산-II-삼태기건강마을-건설현장photo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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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_화폐_무한신용카드_사용의_효용.htm" [댓글] 07fl--740-ECON/무한_화폐_무한신용카드_사용의_효용.htm

http://story007.tistory.com/749#comment11489193


"기본_의식주의_해결_방안.htm" [빈문서] 07fl--740-ECON/기본_의식주의_해결_방안.htm

http://essay007.tistory.com/777#comment11488433


"원을_만들어_추구하는_과정의_trick.htm" [빈문서] 07fl--740-ECON/원을_만들어_추구하는_과정의_trick.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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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화폐_무한신용카드의_사용방법.htm" [나와 나의 것의 관념, 집착 문제 + 비록 난해시이더라도 앞으로 짧게 아름다운 시를 써보자.] 07fl--740-ECON/무한화폐_무한신용카드의_사용방법.htm

http://essay007.tistory.com/778#comment11493692


"무한화폐_사용을_통한_현실적_부와_최상의_가치_실현방안.htm" [빈문서] 07fl--740-ECON/무한화폐_사용을_통한_현실적_부와_최상의_가치_실현방안.htm

http://essay007.tistory.com/778#comment11493922


"생산요소결여시_생산방법.htm" [생산 요소에서 다른 것은 갖추어져 있는데 어느 한 요소가 없을 때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내기] 07fl--740-ECON/생산요소결여시_생산방법.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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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는_것을_잘_얻어내는_방안.htm" [물소님 글] 07fl--740-ECON/얻는_것을_잘_얻어내는_방안.htm

□http://essay007.tistory.com/774#comment11478259




● 무한화폐와 무한 카드의 발급 소지 사용방안도 위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기본 가치와 회계 계산방법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회계장부를 볼 때 늘 생각해야 하는 문제는 
그 회계장부의 숫자를 보면서 
정작 그 숫자를 보는 눈은 얼마의 가치를 갖는 것인가 하는 기본문제를 
빠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또 남의 눈도 그렇게 헤아려야 한다. 

그런 가운데 가치 회계 계산을 잘 해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 

산수를 잘 하지만, 총계적으로
종합적으로 최종적으로는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잦은 것은 
가치 회계의 기본 원칙을 잘 파악하지 않고 
무조건 산수만 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바둑을 둘 때
매 바둑 자체는 잘 두어 이기는데, 
그렇게 이기고 나서 
꼭 바둑판으로 얼굴을 맞고 돌아오는 것과 사정이 같다. 

그러나 그 반대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회계 장부 계산을 잘 하기 전에 
먼저 가치저울에 놓고 각 가치를 잴 때 
가치 회계 항목에서 빠진 것은 없는가. 
그리고 회계장부의 모든 화폐와 재화는 모두 가치회계에서 
얼마의 가치를 갖는가부터 정확히 파악하고 
회계장부 파악에 들어가야 한다. 

여하튼 
일단 무한화폐나 카드 소지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 
발급받아 소지하고, 
그런 바탕에서 기본적으로 자신이 확보한 
재산의 양을 확인하자. 

관념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결국 공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소지하고 사용하고 효용을 얻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기본적 차이가 크다. 

보시항목을 다루는데 이것이 수행의 기본이기에 중요하다. 

그러나 보시에서 가장 가치있는 보시는 
재보시가 아니고 
다른 항목의 보시가 많다. 
그리고 그것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경전에서 부처님은 가르치신다. 

예를 들어 
이것들의 가치 차이나 비례관계를 표현해 보면 
다음과 같다고 제시하신다. 


세상에 가득 칠보를 채워서 
무한한 기간에 보시하면 공덕이 어떠한가. 
당연히 크다. 

지금 백만원 길에 뿌려 보시하는 것도 힘든데 
사정이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1 로 놓고 
이러이러하면 그 공덕은 다시 무량한 것과 같다. 

대강 이런 식의 가치 계산 결과를 제시하신다. 

왜 그런가 그 이유를 아는 것도 
또 가치회계 계산과 가치저울 사용법과 밀접하다. 


따라서 가치저울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표준 가치 저울추로 
자신의 눈이나 심장 이런 것을 한 쪽에 올려 놓고 
문제되는 항목을 다른 쪽에 올려 놓고 재는 방식이 
일단 표준적이다. 


표준적인 문제로 위 상태에서 
세상의 화폐를 한 쪽에 쌓아 올려 놓으면 
어느 정도에서 균형이 이뤄지는가. 
그런 문제이기도 하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가치를 재고 또 비교하고 해서 
가치의 우열을 따지고 
또 어떤 것을 보시한 것이 갖는 가치를 비교할 때 
그 행위에 따른 그 이후의 인과관계를 살피고 
그 결과나 수확물들을 다시 나열해 
이것을 모두 가치저울에 올려 놓고 
그 가치를 비교하며 재나가다보면 
그 이유를 자신이 헤아려 알게 된다. 

이런 계산 과정에 나유타....아승기...불가설 등의 수의 단위나
갠지스강 모래알수(항하사수) 등등의 표현이 사용된다.  


딱지를 어떻게 얻는가 하고 우는 아이가 있을 때
그 아이의 아버지인 재벌 회장은 그것은 그만 두고 
좀 더 중요한 의문을 아들에게 제시하기 쉽다. 

당장의 생계문제 해결방안을 고민하는 이가 
불 보살님에게 해결방안을 요청하면 
그것을 포함하여 모든 소원을 성취한 다음 
어떻게 하여 이 우주를 경영하여 나갈 것인가의 
고민까지 해결해 주려고 나서기 쉽다. 

그리고 가치회계에서 의미있는 것을 놓고 비교해볼 때 
티끌에 붙어 있는 티끌에 불과한 것이 
원래 처음 상대가 고민한 문제임을 보게 한다. 

그런데 그것이 해결되면 
그것은 사실 자연히 해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불보살님이 제공해주는 대백우차 안에는
원래 상대가 요구한 각종 장난감도
다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거짓말이나 허언이 아닌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대로 딱지만 원하는 대로 산처럼 쌓아 모은 경우는 
그 반대처럼 되지는 않는 것이다. 

여하튼 이런 입장에서 
다음 노래를 감상해보기로 한다. 


>>>

Christophe Maé - Je Me Lâche [Clip Officiel]

>>>

https://www.youtube.com/watch?v=BvIvwHoG5fs

>>>






○ [pt op tr]  Christophe Maé - Je Me Lâche 가사 



여하튼 그러거나 저러거나 
자신이 이미 확보한 무한화폐와 무한카드를 통해 
소유하게 된 것들을 향유하고 
맛을 보는 것도 기본적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이런 소유가 관념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맛을 느끼기 힘들고 느끼려 해도 
그리 좋은 맛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만 맛을 느끼고 
그 외의 순간이 되면 커피맛이라고 말해도
무감각해지는 현상이나, 

다른 이가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말해도 
난 그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현상이나 
조금은 비슷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이 사실이고
또 그렇기에 그런 관념 정도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은 자신이 가장 집착하고
문제로 삼는 것들도 사실은 
사정이 비슷한 것이다. 

수많은 각 곳에 마트를 설치하고 운영하지만, 
정작 그 가운데 한 곳도 방문해 
그것을 맛보지 못하는 회장님의 경우와도 
사정이 비슷하다. 

조금 상황을 개선하려면 
약간의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글이 길다. 생략하기로 한다. 

사진기를 들고 우주로 나가서 찍고 돌아 와보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가능하지는 않은데 요즘은 줌 배율이 좋아서 
달 정도는 잘 찍어 보는 것이 가능하다. 
평범하지만, 
100 년전에는 누구도 못해본 일일 수 있다. 

일단 노래 감상이 중요하다. 

C'est ma terre - Cristophe Maé 
http://www.youtube.com/watch?v=Dkfd87qCfQI



○ [pt op tr]  C'est ma terre - Cristophe Maé  가사 






문서정보

 


◎001,

◈Lab value 불기2559/01/17/토/18:28


♥ 잡담 ♥보시수행론-03

무재칠시를 살피는데, 
이는 아무 재산이 없는 상태를 바탕으로
엄청난 복과 가치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안시(眼施 또는 자안시(慈眼施))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 

언사시(言辭施) 

신시(身施) 

심시(心施 또는 심려시(心慮施)) 

상좌시(床座施) 

방사시(房舍施) 

또는 찰시(察施) 


이 내용을 놓고 조금 더 연구를 해보기로 하자. 

어떤 노래를 듣다가 어떤 것이 부끄러운 눈빛인가. 
이런 의문을 표시하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를 바라볼 때 
상대가 자신의 눈만 보고 자신이 상대의 어느 부분을
어떤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인가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간단히 실험해보면 알 수 있다. 

누군가를 앞에 세워 놓고 실험해보면 
상대의 눈만 보고도 상대가 자신의 어느 내용을 
어떤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지 쉽게 알게 된다. 

상대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위아래로 훑어 보기도 한다. 
자신이 신고 있는 신발을 뚫어지게 보기도 한다. 
자신이 들고 있는 가방의 라벨을 찾아 보기도 한다. 
등등이다. 

그리고 대반전은 특히 이런 경우다. 
그후 무시나 흠모의 눈빛으로 상대가 바뀌는 경우다. 

이제 이런 내용을 놓고 
자신은 어떤 상대가 가장 자신에게 좋음을 주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가의 답을 찾아낼 수 있다. 

세상에서는 서로 길을 가다가 
상대에게 눈을 깔라고 말하는 이를 보기도 하고, 
상대의 그런 말에 대해 내가 눈을 깔 필요가 없고 
네가 눈을 치켜뜨고 다니라고 말하면서 
서로 시비를 일으키고 
결국 각기 병원과 교도소를 향해 바삐 나아가는 경우도 많다. 

어떤 눈빛으로 어떻게 상대를 보는가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상당히 중요한 문제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여하튼 복잡한 내용은 다 빼고 
간단히 자신은 상대가 자신을 어떤 관심의 내용으로 
어떤 형태로 바라보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가를 
찾아 보자. 

자신의 마음이므로 일단 이 문제는 쉽게 
얻어낼 수 있다고 본다. 

표준적인 내용을 말한다면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을 좋아하는 호감을 바탕으로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바라보는 것을 
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우따라 조금 다를 수도 있는데 
상대가 자신을 바라보아
이를 의식하고 자신이 불편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므로
어디 문제가 있는지 자기가 자신을 바삐
살피는 자기 검정을 늘 해야 한다면 불편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어떤 경우는 
자신이 어디에 나타났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바라보지 않아서 
오히려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런 내용들을 세심하게 살펴서 
그 내용을 일단 확보해보자. 


이제 두번째 단계로 생각할 일이 있다.

위 내용을 기초로 다른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 보고,
특정한 상황에 상대에게 좋음을 줄만한 형태로
자신이 매순간 행하면

자신이 다른 이에게 좋음을 주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것이 어긋나면 어긋난 결과를 얻는다.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데 외면한다던지,
관심을 갖지 않아주기를 바라는데 
자꾸 면밀히 살핀다던지
이런 경우가 다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그래서 
쉽지 않다.  

결국 누가 눈을 깔아야 하는가.
아니면 누가 눈을 치켜 떠야 할 것인가 
이런 문제로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기일을 맞춰 법정에 출석해 법관에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나타나는 것은 이런 문제의 하나인 것이다. 


시간이 없으니 비슷한 문제는 빨리 처리하고 
좀 더 복잡한 주제로 넘어가기로 한다. 

복잡한 주제란 무한한 화폐의 보시 즉 유재보시의 논의가 
사실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화안열색시는 간단히 말하면 표정을 밝게 자비롭고 온화하게 
미소띈 표정으로 상대를 대하자는 취지라고 할 수 있다. 

남이 자신을 볼 때 
웃는 모습이 되게 하는 것은 
쉬어 보이지만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는 더더욱 그런 문화가 적다고 
알려져 있다. 
무언가 진지하고 경직되고 시시비비를 따지고 논의하는 
진지하고 강박감에 쫒기고 고통을 느끼고
이것을 밖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려고 억지로 참고 견디는 듯한 
그런 표정이 오히려 표준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가운데 환하고 밝고 웃는 표정의 가치는 
더더욱 가치가 높다. 

그런데 대부분 자신의 얼굴을 자신이 직접 보지 못하는 가운데 
표정 관리를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거울을 보고 연습하지만, 
거울이 없어지면 다시 표정이 바뀌게 된다. 

심신상응의 관계를 살피다보면, 
표정을 바꾸면 마음의 내용이 바뀌고 
마음의 내용이 바뀌면 표정이 바뀐다고 한다. 

그래서 이 원리를 잘 이용하면 된다고 본다. 

어느 경우에 사진을 찍을 때 웃는 모습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어떤 주문을 외치게 하는 경우가 있다. 

김치~ 위스키, 스카이, 등등이다.

최근에 어린이집 김치 사건이 문제가 된 것도 이와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김치는 이런 데에서도 사용되는 중요한 것인데 
이 김치를 거부하거나 흘려 버리거나 무시하면 
삶에 지장이 많다고 본다. 

그런데 이것을 통해 표정관리를 하기 위해 
늘 김치 위스키 스카이 하고 다닐 수는 없다. 

이렇게 표정관리를 배우면 
대단히 이상한 인조인간을 상대가 대하는 경험을 받게 된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매일 김치 위스키만 외치고 다니는 이를 
만나 그 표정의 상대를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것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스카이는 조금 낫다고 본다. 하늘과 같은 마음을 
그 단어로 일으켜서 늘 념두에 두고 다닌다면 
조금은 낫다고 보지만, 
그래도 이를 늘 보는 상대는 이상하게 여기게 마련이다. 

누구나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하는데 
그것은 여자나 남자나 사정이 같다. 

그런데 거기에도 조금 사정이 있다. 
매번 같은 표정으로 나타나는 어떤 사람이 있으면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연구를 더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어려움은 
자신이 억어지로 남에게 보이는 표정을 
위장해 만들어 내야 한다는 의식에서 비롯된다.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본다. 

본인은 가끔 주변사람에게서 
무언가 화나는 일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상대에게 화내야 할 일도 없고 
또 화나는 일도 없는데 
상대의 눈에는 그런 표정으로 자꾸 비추이는 것이다. 

그 이유를 혼자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런 결론을 얻는다. 

본인은 주로 어떤 문제를 놓고 
혼자 마음 속에서 시시비비의 논의를 자주 행한다. 

어떤 생각을 할 때 
그와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입장도 하나 생각해보고 
마음 속에서 온갖 내용을 놓고 
시시비비를 늘 따지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어떤 주제를 놓고 연구한다는 
연구과정이란 사실은 이렇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에도 
중요한 일이 아니면 
마음 속에서는 그런 주제를 놓고 
혼자 골몰히 생각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커피를 원하는가 아니면 두유를 원하는가 물어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므로 건성으로 답하고 
좀 더 중요하다고 보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놓고 
혼자 시시비비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은 화가 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지금 마음 속에서는
누가 옳고 어떤 견해가 옳은가를 놓고 늘
싸우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남에게 보여서 
자주 그런 질문을 받는 것이라고 미루어 생각한다. 

때로는 조금 진지한 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늘 사주경계와 함께 시시시비를 가리면서 
심각한 007 요원의 표정으로 늘 남에게 보인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상대와의 관계에서 상대가 그럴만한 원인을 찾아보아도 
찾아지지 않으므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자신에게 무슨 화나는 일이 있는가 하고 
자주 질문을 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면, 
사실은 이렇게 하면 된다. 

상대와 만날 때는 
그것이 비록 당장 자신에게는 어떤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그래서 마음에서 떠나지 않더라도 
그렇게 혼자 문제의식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무언가 걱정되는 일이 마음에 있을 때 
억어지로 표정관리를 하여 그것을 숨기기가 쉽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때문이라고 본다. 

여하튼 좋은 표정으로 상대을 대하려면 
이런 모든 현실 내용이
사실은 근본적으로 시의 성격을 갖는 것임을 깨닫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래서 시인의 감성이 되어 
일체의 말이나 사물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단지 그것들이 모두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갖는 좋음을 주는 것이라고 
마음을 풀어 놓고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비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상대에게 역시 앞과 같이 
상대를 좋아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상대가 말하는 내용을 모두 아름다운 시로 여기고 
그것을 긍정하고
주의 깊게 들어주고자 하는 마음자세로 
전환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보통 말하는 이는 
상대가 자신의 말에 경청하는 자세로 
들어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각 경우따라 다 다르다. 
그러니 이런 일반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구체적 상황에서 어떤 것이 좋음인가를 
잘 적절하게 헤아릴 필요가 있다. 


시시비비를 따지는 마음 자세와 
모든 주장이나 견해를 일종의 옳고 그름의 정답이 본래 없는
시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하는 마음 자세는 
다음을 의미한다. 


본래 시나 예술에는
어떤 시나 어떤 그림이 무엇에 대해 
가장 옳은 표현인가 그런 
옳고 그름의 판정기준이 
없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것이고 
둘 다 좋을 수는 도저히 없다해도 
그래도 둘다 좋다. 
이렇게 임해야 한다고 본다. 

그 반대도 가능하기는 하다. 
이것도 별로고 저것도 안 좋고 
둘 다 다 나쁠 수는 없다고 해도 
둘 다 나쁘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차피 시인데 어떤 마음자세가 
서로의 관계를 좋게 만들 것인가. 

당연한 것이다. 

삶을 피곤한 형태로 만들어 살아가는 경우는 
분명 나름 이유가 있다. 

본래 정답도 없는 문제를 놓고 
늘 수학문제처럼 생각하고 시시비비를 따져 대거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어차피 모든 관념이나 견해는 망상분별인 것이므로, 
그래서 일체의 말과 주장과 견해는
다 시와 같은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나 그 모든 시를 대하면서 
그것들이 하나같이 
혐오스럽고 추악하고 더러운 시라고 생각하며 대한다면,

이 경우는 비교적 문제가 많아진다고 본다.

자신도 나쁨을 얻고
다른 주변 이웃에게도 늘 나쁨을 베푸는 형태가 된다.
그러니 그 결과가 좋을 특별한 다른 원인이나 이유가 달리 또 없다면,
나쁜 결과를 받게 되지 않을까 한다.  

이런 문제는 
황희 정승이  
여종간의 시비 논란사태에 처해 취한 
시감상 태도와도 관련된다. 

두 여종이 서로 말다툼을 벌이다 
누구 주장이 옳은가의 재판을 황희정승에게 청했다고 한다. 

A 여종이 질문을 하니, 황희정승이
A 여종의 주장이 옳다고 한다.

B 여종이 이에 다시 물으니 황희정승은 이에 대해 
B 여종의 주장도 옳다고 한다. 

이 말을 옆에서 들은 부인이 
지금 장난하십니까 둘다 어떻게 옳을 수 있습니까. 물으니 
부인말도 옳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런 상태로 이 시시비비 판정 문제가 잘 해결이 되었을까
의문이 생기지만, 
보다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고 본다. 

당대의 최고가 그렇게 여종간의 시시비비 문제에 
임한 것은 그것이 최고의 방안이기 때문은 혹시 아닐까. 

이후 두 여종이나 부인이나 가족의 관계가 
서로 화목하게 되고 원만하게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 중요한 것이다. 

사실 당시 사회는 신분관계가 엄격하여 
종은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매를 맞고 일을 하고 
가족이라도 따로 따로 다른 집에 팔리우기도 하는 
준 축생의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 노예의 생활을 그린 소설 톰아저씨의 상황이 당시 종의 사정인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당시에 
황희정승댁을 방문한 다른 양반 사대부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는 했다는 것이다. 

이 황희정승댁 종들은 하나같이 버릇이 없고 
예의도 없어서 
종년들이 황희정승이 있는 마루에 누워 있기도 하고 
완전 엉망인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서로의 시각의 차이가 아니었던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황희정승의 태도는 
일찍이 한 농부로부터 그 비밀을 
전해 들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황소가 더 일을 잘 하는가 
검은 소가 더 일을 잘 하는가가 궁금해 
농부에게 황희 정승이 질문을 던지자, 

이 사소한 질문에 
농부가 대단히 기밀첩보사항을 전하는 형태로 
귀에 대고 속사정을 말했다는 이야기다. 

왜 그렇게 하는가가 궁금해 물으니, 
시시비비를 따지는 문제에서는 
소들마저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농부가 말해 준 것이다. 

그것이 소에게도 안 좋은 결과를 미치고 
농부 자신에게도 대단히 안 좋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처음부터 따지지 말고 
시감상 태도로 모두가 다 좋고 좋고 좋다고 
시감상을 하던지 
굳이 따지자면 
이로 인해 어떤 소도 상처받지 않게 
내밀하고 비밀스럽게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상대가 황희정승이니 
그 농부로서는 답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해도 그렇게
신중한 형태로 답을 한 것이다. 

이것은 농부의 경험을 통한 지혜이고 
하나의 레시피인데 
이것이 황희정승에게 전달되고 
이후 황희정승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오래전의 일이 
그 후로 몇백년이 지난 이 시점에
내가 알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여하튼 중요한 점은 
표정을 좋게 만드려면 

그 좋다는 의미에 해당하는 내용이 무언가를 파악하고 
그런 내용을 마음에 가득차게 한 다음 
그 상대를 대하면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예측이 정말 맞는가 
검사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늘 스카이란 단어를 마음 속에 외치고 다니는 것보다는
하늘의 밝고 맑고 깨끗한 마음내용을 
마음에 늘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표정관리에는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이 다른 이로부터 
좋아하는 호감을 받고 싶고 
존중을 받고 싶고 

또 자신이 무언가를 
상대로부터 인정받고도 싶고 
또 어떤 점은 칭찬을 받고도 싶고 
또 자신이 무언가를 말할 때 
상대가 자신의 내용을 잘 경청하며 듣기를 원하는 경우는 많다. 

문제는 자신이 그것을 다른 이에게 행하기는
힘들어 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은 것이다.  

힘들지만, 이것을 잘 하면 
좋음을 그만큼 이웃에게 준 것이기도 한 것이다. 

나머지는 다 생략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은 모두 중요하다. 

아무런 재물도 없는 상태에서 
무량한 가치를 얻고 만들어 내는 기본 내용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시시비비 연구는
가능하면 조용한 곳에서 혼자 깊게
진행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후 논의할
유재보시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일단 자신이 베풀 재물이 여유있게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에 기술한 내용과 달리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려면
주변의 다른 이가 보기에는 조금 심각한 표정이 다시 되겠지만, 
일단 또 노래를 듣고 잠시 쉬기로 한다. 


>>>

Calogero - Grand Corps Malade - L'ombre Et La Lumière

>>>

https://www.youtube.com/watch?v=Rl-OfZj58k4

>>>





검색을 해보니 또 다른 버전이 보인다. 
화안열색시와 관련해서는 이 버전이 좀 더 그럴듯 해 보인다. 
>>>
https://www.youtube.com/watch?v=LocpGdw4m8w




○ [pt op tr]  Calogero - Grand Corps Malade - L'ombre Et La Lumière  가사 






문서정보

 



◈Lab value 불기2559/01/17/토/17:08


♥ 잡담 ♥보시수행론-02 

무재7시를 통해 베풀 물건이나 돈이 없는 상태에서도 
남에게 좋음을 베풀 수 있는 것을 보았다. 

다시 한번 그 내용을 간단히 나열하면 다음이다. 

안시(眼施 또는 자안시(慈眼施))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대하는 것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 자비롭고 기쁜 표정 미소 띤 얼굴로 대하는 것 

언사시(言辭施)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대하는 것, 

신시(身施) 바른 몸가짐으로 대하는 것 또는 행동으로 돕는 것  

심시(心施 또는 심려시(心慮施)) 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배려하고 대하는 것 

상좌시(床座施)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

방사시(房舍施)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 

또는 찰시(察施) 남의 세세한 것도 살펴 헤아림



이는 돈이 없는 어떤 이가 
자신을 어떻게 대할 때 자신이 그에게 돈이나 물건을 하나도 
받지 않고도 상대로 부터 좋음을 무한히 받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로 인해 상대가 좋게 생각되는가 하는 문제와 
같은 문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잘 모른다 해도 
자신의 마음은 자신이 잘 알 수 있으므로 
그에 해당하는 내용을 잘 찾아 나열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 현실에서 그것을 자신이 상대에게 베풀고자 할 때 
조금은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도 또 앞의 경우와 같다. 
비록 그런 성격의 것이지만,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어떻게 하면 
오히려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음을 자신이 
아는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 현실에서 그렇게 돈이나 물건을 상대에게 주지 않고도 
좋음을 무한히 만들어 이웃에게 무한히 늘 베풀어 주는 
구체적 방안은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그런 내용을 
막 주고 다니면 될 것 같지만,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고 
또 그렇게 해도 자신이 단순하게 생각한 대로 
그렇게 좋음을 상대가 얻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목표를 마음에 담아 두고 
꾸준히 연구에 연구를 정진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조금 그것이 가능하게 됨을 
자신이 스스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아주 그것을 잘 하는 이가 있다. 
재물이나 귀한 물건을 하나도 주지 않는데도 
늘 그렇게 무한한 좋음을 늘 주변에 마구 주면서 
다닌다고 보이는 경우가 가끔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언가 특수한 비법이 숨겨 있는 것 같다. 

이것을 연구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일단 기본적으로 본다. 

그런데 이런 것은 
일종의 기술이나 방편적 지혜가 된다. 

물론 그 기본원리나 재료는 이미 무재7시의 내용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어떻게 어떻게 하면 
상대도 부담없고 자신도 그것을 행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이 
늘 항시 그렇게 행하면서 
좋음을 무한히 이웃과 주변에 나누어주면서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사업가로 비유하면 매일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재벌 기업가의 상태와 같다. 

그러나 그것이 안 되면 
비유하면 가게는 열었는데 
하루 종일 천원의 물건도 팔지 못하는 경영가와 
비슷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이 기본재료를 놓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떻게에 해당하는 내용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이 문제를 이렇게 생각해 보자. 

세상에 음식의 맛을 최종적으로 만들어 내는 
기본 요소는 단순하다. 
단맛, 짠맛, 쓴맛, 신맛, 매운 맛 이정도를 생각해낼 수 있다. 
음식재료도 이에 따라 조금은 단순하게 분류할 수 있다. 
물론 자세히보면 많다. 

기타 
소리라면 도레미파솔라시도 등으로 나열하고 
색깔이라면 빨강, 파랑, 노랑, 흰색, 검은색 정도로 나열할 수 있다. 
글자라면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정도로 나열할 수 있다. 
산수라면 1234567890 정도로 나열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원 구성재료는 단순하게 살필 수 있는데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더하고 빼고 나누고 곱하고 ...배열하는가에 따라 
무수한 음악과 무수한 예술작폼과 문학작품...등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달리 살피면 이것을 잘못 하면 
같은 재료로도 무수한 독, 추함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나의 좋은 음악, 미술작품, 문학작품은 
현실 시장에서 수천억원의 가치를 갖기도 한다. 

소프트웨어의 부분으로 들어가면 
그 차이를 쉽게 볼 수 있다. 

소프트웨어란 간단히 말하면 논리식의 배열이고 
수식이나 기호 숫자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몇백억달라의 값을 갖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기본 재료라고 할 것은 
크게 돈이 드는 내용이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거기에는 자신이 좋아하고 희망하는 내용과 
또 이와 비슷한 정도로 다른 생명들이 좋아하고 희망하는 내용이 
전제가 된다. 

이것을 전제로 그런 희망을 실현시켜주고자 하는 마음과 
그런 희망을 향한 노력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그런 어떤 좋은 내용을 
만들어 내는 방안을 
일정한 재료를 가지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는 방안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이가 어떻게 어떤 순서로 재료를 섞고 
어떤 형태로 배치하여 어떤 순서로 
식탁에 어떤 방식으로 내어 놓으면 
그것이 가장 좋은 맛을 종합적으로 주게 되는가. 

이에 관한 구체적인 기술이나 지식에 관한 내용을 
노우하우(know how), 또는 recipe 라고 표현할 수 있다. 

어떤 일류호텔에서는 음식 하나에 수십만원을 받는데, 
그러나 같은 재료를 가지고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다 음식을 만들지만 
단 하나 무언가를 하나 잘못하면 
손님으로부터 수십만원을 받기는 커녕 
소송을 당하는 수도 있다. 

그러한 사례가 있다. 
이런 것이 종합적인 recipe 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곳에서 장사를 하는데 
어떤 이가 경영가가 되어 경영을 하니 
몇 달 후 손님이 거의 한 두 명 밖에는 오지 않는데 

그러나 거의 같은 재료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데 
어떤 이가 경영가가 되어 경영을 하니 
사람이 발을 디디기 힘든 상태로 북적대기도 하는 
것을 현실에서 보게 된다. 

손님들은 왜 이 두 경우에 각기 그런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되는지를 잘 아는데 
정작 경영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내용을 모두 종합적인 recipe 라고 표현할 수 있다. 
recipe 는 요리조리법, 비결, 약처방전, 방법, 수단으로 번역되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각 부분에 있다고 할 때 
이것을 널리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를 
일단 살필 필요가 있다. 

세상에 60 억명이 살아간다고 할 때 
60 억명이 하루의 생계를 해결하는 방안은 
거의 60 억개의 형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널리 생명을 살피면 지구상에 수천억조...에 해당하는 생명이 있다고 할 것인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개미의 형태를 하나 살폈다고
그 내용이 그대로 거미의 삶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지만 이것을 잘 살펴야 한다.

만일 이것을 모두 레시피의 내용으로 본다면 
각 생명이 갖고 있는 수천억조의 레시피를 살펴야 하고
또 그 가운데 좋고 좋고 좋은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여하튼 오늘 현재 살아 있는 한
오늘까지 그런 방편을 통해 
살고 있는 것인데  
거기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고 우열이 분명 있는 것이다. 

어떤 음식점에는 줄이 분명 길 밖으로 10 m가 있는데 
그 옆 음식점은 같은 품목을 만들어 파는데에도 
안을 보면 한가하다. 
이것이 그런 의미다. 

그런데 이 경우 그 차이를 보고 
가장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곳에 가서 
그 사장님에게 그런 특별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recipe 를 물어본다면 
그 사장님은 잘 안 알려준다. 


그런데 방송국 기자나 수사기관이 동원되어 
그것을 알아낸다고 하고 

그렇게 알아낸 recipe 를 인터넷을 통해 
널리 공개한다고 하면 
이것은 바람직한 일인가. 

이것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우선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차이를 무엇이 
만들어내는지 알아내지 못해 
답답해 하던 입장에서는 대 환영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런데 그 이후가 조금 이상해진다. 

그것이 바로 레시피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라면 
문제점이다. 


쉽게 생각하면 매주 복권당첨번호를 미리 알아내는 재주를 
가진 이가 여러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복권 추첨 하루 전에 인터넷에 당첨번호를 널리 공개해주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반신반의했지만, 
죽 그간의 통계를 보니 거의 예외가 없이 맞는다. 

그것이 빠른 소문에 의해 
널리 알려져서 이제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런 의문을 이 단계에서 던져보아야 한다. 

이상하지만, 처음의 뜻과는 달리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본인이 사실은 깊은 연구를 통해 
매주 복권 당첨 번호를 알아내는 레시피를 취득하였는데 
그것을 널리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_^

사실 가끔씩 확인해보는데 
정확하다. ^_^

그러나 본인은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목적으로 
복권을 사지 않기에 
당첨이 매번 됨을 확인하지만, 
잘 구입하지 않고 
구입해서 당첨되어도 당첨금을 찾아가지 않는다. 
또 그것을 알기에 조금씩 번호를 틀리게 기재한다. ^_^

물론 믿기지 않는 일이겠지만, 
복권 당국에서 당첨되었는데도 
찾아가지 않는 금액이 상당히 많이 쌓이는 것은 
바로 본인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물론 오직 본인 때문이라고 하면 지나치지만, 
본인과 같은 취지를 갖고 이에 동참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당첨번호를 미리 알아낼 수 있는
레시피는 공개할 수 없는 것이다. ^_^
조금 완화해서 표현한다면 그런 것을 안다해도 
공개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당첨금을 찾아도 곧바로 그 금액전부를
기부해 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최근에도 2 등 당첨한 분이 그랬다는 것을 
기사로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 복권 기관이 이미 그런 일을 
자동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당첨되었음에도 
안 찾고 두면 그 금액은 그렇게 사용되는 것이다. 

복권 기관과 특별히 다른 특수한 공익 봉사사업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가끔 참여 한 다음 돈만 안 찾아가면 
자동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말이 역시 곁가지로 빠져 나갔지만, 
레시피는 결국 각기 기본 원리 정도를 놓고 
혼자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이 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가끔 TV 기자가 찾아와 레시피를 물으면 
상대와 모든 생명을 위해서 
그것은 비밀로 해야 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리고 개별적으로 기자가 조용히 부탁하면 
자신은 서울에서 가게를 열고 있는데 
기자가 제주도 정도에서 가게를 하나 여는 조건으로 
알려주는 것 정도는 무방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도 기본 원리는 필요하다. 
그런데 이미 그 기본원리는 다 밝혔다고 본다 .

거울 하나를 놓고 
자신이 다른 상대로부터 무언가를 원할 때 
먼저 거울을 보고 다른 상대가 해주었으면 하는 그 무언가를 
자신이 거울 쪽의 상대에게 한 번 해보는 것이다. 

조금 특수한 문제가 있다. 

거울과 거울면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거울면에서 손과 손이 부딪히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조금 응용을 해야 한다. 
그렇게 안되도록 방향을 뒤로 해서 그것을 해야 한다. 

구체적 예를 들어 보자. 

난 장발쟝이다. 
그런데 내가 그냥 빵가게를 들리는데 그 사장이
내게 맛있는 빵을 거저 주기를 희망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때는 위 원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장발쟝이 거울면을 놓고 문제를 풀어 
그 사장에게 자신이 먹고 싶은 빵을 들고가 먼저 
건네라는 것이 된다. 
그것이 말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장발쟝의 퀴즈는 다음이다. 

장발쟝이 자신도 여유가 없지만, 
자신보다 훨씬 힘든 어떤 이가 자신에게 
무언가 도움을 청하는 상태에 있음을 알아채면 
그 상대를 불러 자신이 그가 원하는 도움을 
베풀라는 것을 이것은 의미한다. 

이것이 거울면 원리다. 

이것이 모든 좋고 좋고 좋은 레시피를 만들어 내는
기본 원리라면 원리다. 

성경에도 같은 원리로 그 공식을 표현하는 구절이 있다. 

하늘이 내가 원하는 소원 소망을 들어주기를 원한다. 
그렇게 되게 하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불철주야 쉬지 않고 하느님을 열심히 찬양하고 외치고
기도하고 쉬는 사이사이에는 마음으로 꾸준히 행한다. 

이것은 기본이라고 하고 
그외에도 무언가가 조금 필요하다. 
한마디로 기도의 효력이 빨리 오도록 할 촉매제가 필요한 것이다. 

하늘이 자신을 돕게 하려면, 
거울면을 하나 놓고 그와 같은 형태로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도움을 바라는 이를 찾아가 
그렇게 도와주는 일을 성실히 하면 된다. 

쉽다면 쉽다.

그러나 원리나 공식자체는 단순한데 
구체적 현실에서 구체적 내용을 놓고 
이것을 살피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각 경우마다 수천억..조개의 
문제가 산출된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는 또 기본이다. 

그러니 연구를 해야 한다. 

일단 노래를 하나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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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ySZBnMukO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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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Jacques Goldman - Comme T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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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Jean-Jacques Goldman - Comme Toi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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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59/01/17/토/10:43


♥ 잡담 ♥보시수행론 

최근 little 님과 시장 안에서 보시수행에 대한 논의를 한 바가 있다. 

그 논의결과를 보고하기로 한다. 


현재 mun 님은 옆에서 안인 수행을 부득이하게 
하고 있는 중이다. 



아침에 경과를 물어 보니 
새벽 2 시 쯤에 화장실에 일보러 갔는데
그 상태에서 발에 너무 고통을 느끼다가
서 있는 상태에서 순간 현기증이 일어난 다음 바닥에 쓰러졌다고 한다. 

그 후 그렇게 혼절 상태로 누워 있다가 한참 후 깨어 났는데
깨보니 변기와 세면대 사이 바닥에 자신의 머리가 있는 상태로 쓰러져서
일어나려면 몸에 경련이 일어나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한참 화장실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상태에서 발도 움직일 수 없고 통증은 심하고 
또 화장실 바닥에서 냉기까지 함께 느껴져 몸은 떨리고
아픈 발도 자꾸 자기 멋대로 떨리고 퍽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일단 화장실을 벗어나야 할 것 같아 
30 분간 간신히 노력 끝에 침대에 올라가는데 성공하고  
그 후 잠을 간신히 자고 지금 아침에 깨고 난 이후 상태에서도
통증을 계속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안인 수행중이라고 보고한다. 


항생제나 진통제를 먹거나,
병원에 갈 의사가 있는가 물으니 
단호히 no를 외친다. 

왜 그런가하니, 일부로 고통을 만들어야
안인 수행에 비로소 들어갈 수 있는데
이유는 잘 몰라도 자연스럽게 찾아 온 기회를 헛되이 보낼 수 없고 
항생제는 결국 자신의 고통 하나를 없애기 위하여
다른 생명을 대량 학살하자는 취지와 같으니 행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다가 발이 썩어 자르게 되거나
전신으로 염증이 확대되어 사망에 이르게 되면 어떡하는가 하고 물으니, 
그것을 각오하고 안인수행에 임한다고 한다. 

이런 경우가 바로 가치저울에 예견되는 모든 것을 놓고 
자신이 선택하여 행하는 것이니 
제 3 자가 굳이 방해를 하면 안 되는 경우라고 본다. 

말 그대로 안인수행 중에 평안한가 물으니 괜찮다고 한다. 
안인 수행을 통하여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되었는가 물으니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그것이 어떻게 평안한 것인가 물으니 
이렇게 답한다. 평안한 데 고통이 없으면, 참을 필요도 없어서 
그런 경우에는 그저 평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마음은 평안한데 고통을 느끼니 그 고통을 참는 것이 필요하고 
그렇게 참고 있으니 평안하게 참는 수행을 한다고 말한다고 한다. 

국어사전에 적혀 있지 않은 말이라, 참고로 받아 적어 둔다. 

mun 님의 경우는 최근 본인의 위 내시경 검사 이후의 통증과 
조금 사정이 다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난,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이란 구절을 생각하자 곧 통증을 덜 느끼게 되었는데 
mun 님에게 이것을 권유하자, 
자신도 그렇게 해보았는데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위 말은 원래 오온이 본래 공한 것이어서 
누구에게만 특별히 그런 것이 아니다. 

또 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아는 이가 관자재보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일체고액을 모두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은 그런 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사정을 밝히는 것이 위 표현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한다. 

만일 그렇지 않고 일반적 사항이면 이렇게 표현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반야바라밀다를 행하고 오온이 공함을 관하면 일체고액을 벗어난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고 
수많은 보살 가운데에서 유독 관자재보살만, 
일체고액을 벗어났다. 
그런데 그것도 늘 그런 것이 아니고 
아주 특별한 시기 특별한 상황에서 그렇게 잠시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시기 특별한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보통은 있을 수 없는 그런 내용을 들어 
무량 겁을 두고 달력으로 시점을 표현할 수 없으므로 
아주 특이한 일이 일어났던 것으로 그 시점을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원래 깊거나 얕음이 본래 없고 
행할 수 있거나 행할 바가 본래 없어서 
깊은 반야바라밀다란 본래 행할 수가 없는 것이어서,
수행자가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한다는 것은 
무량겁에 걸쳐서 관찰해도 본래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도 관자재보살이란 특수한 분이,  
아주 특수하고 비상한 노력으로
그렇게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데 성공한 
그 아주 특수한 그런 시점에서 
그런 특수한 상태가 관자재보살에게만 일어났다는 내용을 
위와 같이 기술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렇지 않다면 또 다음과 같이 표현해야 한다고 한다. 

본래 오온이 공한 것이므로, 누구나 언제나 일체고액을 벗어난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수많은 헤아릴 수 없는 보살 가운데 
이미 무량한 겁전부터 수행을 시작하여 수행을 다 마친 
'관자재'보살이라는 분만 아주 특수하게 

그것도 늘 그런 것이 아니고 
아주 특수한 경우- 즉 본래 깊고 얕음이 있을 수 없고
행할 수도 없는 반야바라밀다를 놓고 - 특수한 노력으로 
자신이 그렇게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해보았을 때 

그런 그 특이한 시점에 
또 부대상황으로 오온이 공함을 관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 특수한 순간에 
일체고액을 벗어난 적이 (한 번) 있었다라는

보통은 잘 일어나지 않는 뉴스거리를
보고하는 취지라는 이야기다.

매일 늘 있는 일은 뉴스나 책에 기록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 해가 떴다. 자신이 숨을 쉬었다.
이런 내용과 같다.

그런데 그런 늘 있는 일이 아니고
아주 특이한 일이 그러그러한 특수한 보살에게 
특수한 상황에서 잠깐 일어난 적이 있기에
그것을 보고한다는 취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경우를 놓고
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반야바라밀다를 닦는다해도
고통과 재앙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특수한 수행 경험을 갖고 있는 분이 
이하에 일반적인 진리의 내용을 
기술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금강경의 가리왕 내용도 그런 취지라고 한다. 
늘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수행 기간 중 
아주 특수한 경우에 그런 일이 한 번 특수하게 
있었기에 특이하므로 
그런 내용을 알려준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런 mun 님과의 아침 대화를 기록해 놓는 것은 
mun 님이 아직 직접 기록하지 못하므로
나중에 자세히 이 부분에 대해 논의를 다시 전개해보고자 함이다.

무엇이 일반적이고
무엇이 특수한 것인가.

이런 부분에 대해 조금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고통에 대한 결론적 입장은 무엇인가 물으니, 
고통이란 실답게 있는 것은 아니나, 
실답지 않게 그러나 진짜처럼 매우 강력하게 있는 것이다. 
그 해결이 문제된다. 

이런 결론을 제시한다. 


원래 little 님과 논의한 보시 수행론에 대해 
적고자 했는데 곁가지가 길어졌다. 
 
>>>

○ 보시 수행론 

little 님과 길을 걸으며 



어차피 길을 걷는데 늘 하고 반복하여 잘하고 있는 것을 놓고 
이렇게 그것을 함에 있어서 
어차피 같다면 같은데, 
이 상태에서 조금만 무언가를 더하고 빼고 해서 즉 
자신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주변 이웃에게 좋음을 무량하게 만들어 나눠줄 수
있는 그런 방안은 없는가. 

이런 주제로 논의를 시작하였다. 

처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돈을 거리에 뿌리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가진 돈도 없고 
또 돈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면 
그 때 1 번 외에는 다른 이에게 좋음을 주는 일을 하지 못한다. 

여하튼 그렇게 했다고 하고 
이제 뿌릴 돈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즉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이웃에게 
좋음을 나눠 줄 수 있는가. 

물론 자신이 아주 특수한 재주나 능력을 갖고 있고 
이것을 다른 이웃이 많이 원한다면, 
그렇게 해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렇게 된 다음에 그런 일을 한다고 하면, 
보통 이번 생 안에 무언가 좋음을 남에게 주는 경우는 
희박하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사실 유가사지론에서는 
다른 이에게 무언가를 보시하는 것은 
복을 얻는 원인이 아니라, 
그 자체가 복이라는 설명을 한다. 

복이 없으면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약간 박복한 상태라고 할 수 있는 
little 님과 본인의 경우를 그대로 놓고 
그렇다면 여기에서 새로 복을 만들 행을 
할 방안은 없는 것인가. 

그것이 논의의 주제라면 주제였던 것이다. 

처음 little님이 제안한 방안은 이것이었다. 

이제 갖고 있는 것은 마음과 
할 수 있는 것은 말과 행동 태도 자세 그런 것뿐이 아닌가. 
물건이나 돈은 이제 제외된 것 아닌가. 

그러니까 그 범위에서 일단 찾아보자는 것이다. 

투자자본없이 처음 기업을 어떻게 일으키는가가 
사업가의 고민이라면 
베풀 물건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이에게 베풀 수 있는가도 
수행자의 고민이 된다. 

원래 불교에 재물없이도 보시할 수 있는 일곱 경우로서 
무재칠시라는 표현이 있다. 
내용을 외우지는 못하지만, 대강 얼굴빛을 좋게 하고 
사랑스런 말을 하고 자리를 양보하는 등의 일이다. 

검색을 통해 여기에 그 내용을 붙여 본다. 

무재칠시(無財七施)

안시(眼施 또는 자안시(慈眼施))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대하는 것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 자비롭고 기쁜 표정 미소 띤 얼굴로 대하는 것 

언사시(言辭施)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대하는 것, 

신시(身施) 바른 몸가짐으로 대하는 것 또는 행동으로 돕는 것  

심시(心施 또는 심려시(心慮施)) 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배려하고 대하는 것 

상좌시(床座施)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

방사시(房舍施)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 

또는 찰시(察施) 남의 세세한 것도 살펴 헤아림 



출처 : 《잡보장경(雜寶藏經)》

참조 FR https://mintpoetry.wordpress.com/2014/04/11/001/
http://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1691
http://www.buljahome.com/report/6b_muje7.htm



대강 그런 내용을 LITTLE님도 알고 본인도 알지만, 
그런 바탕에서 구체적 현실 상황에 
이것을 어떻게 적용하는가의 문제다. 





글을 적는 도중에 MUN 님이 
안인 수행 종료 선언을 했다. 
드디어 항복을 하는가 하고 물어보니, 
안인 수행이 종료되고 지금은 그저 평안하기만 하다고 한다. 
즉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서 참아야 할 것은 없고 평안하기만 하기에 
안인수행이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12 시 정도까지 예상했는데 1 시경 자신에게 고통이 안 느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다만 잘 걸어다니지는 못하는 것 보니 그냥 누워 있는 상태에서 
평안하기만 한 것 같다. 
평안한 열반을 기원한다. 




필요한 자료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LITTLE 님이 레시피 비공개 원칙과
보시수행방법의 구체적 레시피의 관계에 대해 문의한다. 



사정상 레시피가 공개되면 결국 
그것이 좋음의 성격을 잃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제기다. 


일찍이 방편적 지혜는 선악 무기인 것으로 
그것을 아껴서 공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공개함으로써 있게 되는 독과 부작용이 예상되는 경우 
그것에 대한 대책없이 공개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을 반복해 제시한 바 있다. 

대부분 공개할 특별한 내용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나 어떤 내용이 있더라도 
그런 사정때문에 선악 무기의 방편적 지혜나 기술 수단인 경우에는
그것을 널리 공개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말하면, 무언가를 제시하지도 않을 것이면서
마치 무언가 제시할 것이 있는데 
그러나 아끼고 감추는 듯한 인상을 주어 
공연한 불쾌감을 다른 이에게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방편적 수단적 기술 지식 물건 들이 
'일반적으로' 모두 그런 성격을 갖기 때문에 
먼저 가능한 독과 부작용을 발생하지 않을 대비책부터 먼저 갖추는
노력이 '일반적으로' 필요함을 제시하는 것이다. 


한 예를 들어 보자. 
오토바이를 자주 타고 다니는 누군가가 
새 오토바이를 하나 구입하고 
전에 자신이 타고 다니던 그러나 아직도 새것인 
멋있는 오토바이를 친구에게 선물했다. 

그 뒤 1 주일 후 그집 아들이 그것을 타고 나가서 
교통사고가 나서 하반신 불구상태가 되었다. 
그후 이 상황을 대한 그 친구 부인은 충격으로 사망했다.
그 친구는 이런 상황에서 정신을 잃고 있다가 
며칠 후 이 사고의 원인이 된 오토바이에 대한 원망을 품고 
오토바이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질렀는데
그로 인해 그 집과 이웃집까지 모두 다 타버렸다.  
그리고 방화범으로 체포되어
현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이런 경우 오토바이를 선물한 이는 그 친구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조금은 
어려운 사정에 빠지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원래 오토바이는 과부제조장치의 의미를 갖는다고 하는데 
그러나 잘 쓰면 좋은 물건이 아닌가. 

이런 문제가 일반적으로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LITTLE 님이 당시 평범하게 보이지만, 
나름 연구를 통해 밝힌 특별한 레시피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일단 그래서 기본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이 문제에 대한 검토를 마치고 
다시 항목을 달리하여 보고서를 올리기로 한다. 



일단 노래를 듣고 쉬기로, 

Quand tu m'aimes - Herbert Léonard - Clip & paroles [1987]

 >>>

https://www.youtube.com/watch?v=v3o5i9jPvQc

>>>




○ [pt op tr] Quand tu m'aimes - Herbert Léonard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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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테이블 

◈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5/01/16/금/22:29


♥ 잡담 ♥긴급속보 - mun 님 봉와직염 긴급재발 

세상엔 이상한 일이 많다. 
1 시간전까지도 멀쩡하던 mun 님이 


다시 왼쪽 발목 부분에 심한 통증 및 염증 증세로 의심되는 증세가 발생하여 
혼자 이동을 잘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전에 사용하던 부목을 다시 찾아 가져다 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 부목이 한 1 주일전까지도
연구실 한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데 
극히 최근에 그것이 사라졌다. 

필요없는 것, 1 년 이내 다시 사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품목 등이 발견되는 즉시  
긴급 재활용 처리할 것을 원칙으로 하여
매번 상당 물품을 강제 처리하시는 것을
연구실내 환경 정화사명의 업으로 삼고
활동하시는 한 분 때문에 발생한 일로 생각된다. 

여하튼 오늘 밤중에
갑자기 사태가 더 긴급 악화되는 일이 없기만을 바라게 된다.

전에 mun님의 다리 통증의 원인도 사실 아직까지 모호하였다.  

당시엔 전쟁 관련 문제에서
휴전선 부근에서 일정 영역을 매번 할당하여
각 정예군을 편성하여 부분 국지전을 벌여
승리한 쪽이 매번 상대쪽 땅을 일정부분 확보해 나가는 
새로운 부분 전투 활용론을 어느 사이트엔가 올린 후 
다리에 통증을 느꼈던 일이 있었다.

그 mun 님이 
공교롭게 이번에도 무언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글을 올리고 나서 
이런 증상이 오비이락현상처럼 발생하였다.

그래서 이 두 사건이 모두 
약간의 오멘 형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내가 볼 때
문제점은 lab님이 더 많은 것으로 분명 보이는데용 

그러나 여하튼 일단 경과를 지켜보기로 합니다. 




mun  님이 진통용 음악으로 몇 곡을 신청하여 
그 곡들을 여기에 올리기로 한다. 




>>>

Taxi Girl - Cherchez Le Garçon (1981)

>>>

http://www.youtube.com/watch?v=FfOOlppnZG4

>>>



○ [pt op tr] Taxi Girl - Cherchez Le Garçon (1981) 가사 




>>>

Team BS - Fierté

>>>

http://www.youtube.com/watch?v=n2Rhxkk3iz4

>>>






○ [pt op tr] Team BS - Fierté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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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Mun Tokyun 불기2559/01/16/금/23:54


♥ 잡담 ♥찾아낸 소년의 지시사항 

lab 님에 대한 응징을 준비 중에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다. 

진통용 음악들을 올려 놓고 들으면서
음악에서 보내준 메세지대로 
소년을 찾았고 
그 소년은 나에게 몇가지를 지시했다. 

좀 그럴듯 해 보이지만, 
사실은
옆에서 게임을 하는 
묘길상 인턴연구원에게 몇가지 도움을 청했고 
묘길상 인턴연구원이 다시
내게 무언가를 진지하게 요청했다. 

옆에서 아발로 인턴연구원도
무엇이라고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나 내가 나 스스로를 생각하건대 
그렇게 iq 가 낮지는 않다고 본다. 

사실은 최근에 다음과 같은 보도를 하나 들었다. 

대기업에서 어떤 사고가 많이 발생해서 
사망사고가 자주 발생하는데 
그 발생원인은 하나의 기업에서 

가장 위험성이 많은 부분을 떼내어 
외부에 외주를 주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 때문에
그런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생계 해결이 당장 곤란한 계약직 근로자들이 
여러가지 보장이 취약한 상태에서 
이런 현장에 투입되고, 

기존 기업의 근로자들은 
약간은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이들의 위험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하면 
정식 기업 근로자와 달리 산재 보험 처리로 보호받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처방전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업주가 그런 선택을 하는 데는 
그런 선택이 보다 효율적이고 저비용이 된다는 
어떤 계산이 있고 

다시 그 계산을 그렇게 행하게 하는 
어떤 제도적 배경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을 개선해서 각 기업주들이 합리적 계산으로 
선택을 할 때 
그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선택해 
근로자의 안전을 최대한 확보한 가운데 
근로를 하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극대 이익을 발생시키게 
제도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lab 님에게도 제시해보았는데 
lab 님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이 주장하는 원칙적인 방안이 
우선 가장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약간의 벽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건 lab 님 이론대로 일종의 만병통치약이다. 
사지를 뜯어내는 현장에서도 적용되는 원리라고 
금강경에서 제시되고 있고 
반야심경에서도 같은 내용이 가장 먼저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개인은 
현실에서는 너무 드물다. 
그런 현실에서 모든 개인에게 그런 방안을 먼저 
취할 것을 제시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닌가. 

나의 생각이다. 

그렇게 생계가 궁핍한 이들은 가장 위험한 전선에 
내모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러나 lab 님은 반대의 의견을 제시한다. 

그 각 취약 부분이 그렇게 헐값으로 
계약이 되는 배경에는 

자신의 생명 신체보다도 무언가를 더 우선시하고 
집착하고 매달리는 그 당사자들도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일단 빠져 주어야 한다. 

자신이 필요없는데 그러나 갈증에 의해 
같이 참여하여 
정말 급한 이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올바른 보호를 받고 
현장에서 보람찬 일을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불필요한 공회전을 일삼는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의식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책임을 다른 이에게 떠 넘겨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어리너에서의 생존 법칙이다. 

그런데 어리너에서의 생존비결은 
그 가운데 각 개인이 그런 집착을 버리고 
다시 한 번 현장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가치저울을 마음에 마련한 다음 
자신이 매순간 도박처럼 걸고 있는 것들을 놓고 
평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도 그것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그의 게임이다. 

왜 당신이 관여하는가. 

원래 이 선택은 왕자의 지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왕자가 가치저울을 놓고 선택을 처음 그렇게 한 것이다. 

왕자가 그렇게 하는데 
왜 그들이 그렇게 못하는가. 
이런 반론인 것이다. 

약간 할 말이 없다. 


○ 여하튼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lab 님의 해결방안은 조금 각도가 다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lab님이 올린 글을 그동안 보았으므로 
일단 lab님의 해결방안의 취지는 이해한다. 

묘길상 인턴연구원과 아발로 인턴연구원이 
내게 무언가를 요청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lab님의 해결방안에 대한 이해로는 

이런 요청을 단호히 우선 
거부하는 것이 우선 출발점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고 단지, 
이 스크린에서 부동의 상태로 
스크린을 스크린으로 알고
그대로 머무르는 것이다. 

무엇을 하는 것이 더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충고나
견해를 다 무시하고 
일단 그렇게 머무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당면한 문제를
한 번 돌파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lab님이 제시한 방안의 첫 순서이고
금강경과 반야심경에서 제시한 방안의 내용인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돌파가 된 이후 

조금 한참 지난 다음에 
이제 앞에서 묘길상 인턴연구원과 아발로 인턴연구원이 
한 요청들의 내용을 합리적으로 한 번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실은
그 다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순서를 바꾸어 하면 
사실 문제의 근본 해결이 뒤로 미루어진다. 

이것이 lab님의 해석인 것 같다. 

내 iq 로는 일단 문제의 해결방안을
그렇게 생각해 보게 된다. 





신청곡을 접수함. 


요즘 곡 올리는 것이 페이지 상의 매너인 듯해서~


lab 님의 신속한 신청을 접수하기로 한다. 

>>>

IDEM yannick duhamel 

>>>

https://www.youtube.com/watch?v=YcPHOd25puM

>>>







문서정보

 

 

 

 






















































































































































































































































▼▼▼일반문서창 


◈Lab value 2015/01/16/금/17:14


♥ 잡담 ♥각 CASE의 구체적 해결방안의 문제점 

LITTLE 님이 제기한 어린이집 사태 문제를 하나의 CASE 로 
놓고 이 문제에 대한 사전 예방적 조치와 사후 수습 방안을 연구한다고 하자. 

현재 가장 걱정되는 것은 사회내 집단적 비난을 받는 여교사의 상태인데 
이미 그의 배우자의 신상까지 공개되고 
공공연히 그 여교사의 삼족을 멸해야 한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나 이는 종합적인 시각을 갖지 않고
단지 초점을 맞춘 한 측면만 기준으로 너무 자비의 마음이 많고
강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해는 가지만, 정말 그런다면 그 교사의 다른 가족들은 무슨 이유로 그런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보는가. 
참고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305141645010010

그리고 이런 마음 상태로 이 피해를 기준으로
다른 모든 범죄의 피해도 처리하기 위해 
이런 이들에게 다른 범죄로 인한 구체적 상처와 피해의 내용을 자세히
설득력 있게 전해 주면 
이제 이들은 그 각 범죄마다 각기 어떤 처방을 비례해 내릴 것으로 생각되는가. 

문제는 이들이 정작 상처받은 아이들을 정상적으로 
마음을 치유해주거나, 다음 이후의 교육을 진행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보통 살인 사건이 하나 발생할 때 그 시체 위에 다른 이의 시체를 하나 더 
얹어 놓는다고 해서 그 이전의 시체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과 
사정은 같다. 

그러나 문제는 문제이므로 이 방안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적어도 응징자들이 올려 놓는 시체 외에 
다음에는 그런 범죄를 조금이라도 예방하는 데 기여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매우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계속 받게 방치하면 
이런 유형의 사고는 거리나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공공연히 어디서든지 재발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어떤 내용에 대해 생각을 할 때 
미리 생각하는 사람(프로메테우스)이 있고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에피메테우스)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생각할 때 
사전적 예방방안을 생각하는 경우가 있고 
사후적 수습방안을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과 사정이 비슷하다. 

Before service 와 After service 란 관념과도 유사하다. 

만일 예방적 조치가 완벽하여 어떤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사실 그것으로 고마움을 느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오늘 살인사건도 발생하지 않았고
굶지도 않았고  
또 기타 강도 절도 폭행 유괴 강간....등등의 사건이
자신이나 아이에게 모두 발생하지 않고 

심지어 자신이나 아이의 손과 발이 어떤 도구에 의해 잘리워 지지도 않고, 
또 어딘가에서 떨어져 목도 부러지지 않고
친구 어린아이의 장난으로 눈이 찔려 실명하지도 않고 
그대로 있다는 그런 여러 사실들이 
다 그렇게 너무나 당연한 상태로 평가에서 제외되어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위험성을 한 번 살짝 보여준 후 
그것을 치료해주면 대단히 고마움을 사람들이 느낀다. 

그래서 little 님이 소개한 거북도사님은 
문제를 해결할 때 상황을 오히려 이전보다 악화시키고 
상황을 다시 원래 처음 상황으로 되돌려 놓고 
그 상태가 갖는 고마움을 평가하게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방안을
각 어려운 문제에 대한
주된 해결방안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팔이 안 잘려지고 계속 달려 있으면 
사람들은 달려 있는 팔의 고마움을 별로 못 느끼고 평생을 사는데 

한 번 팔을 부러뜨리거나 자른 후 그 팔을 붙여주면 
이것을 대단히 고마워 한다는 사정이다. 

팔만 그러겠는가, 손이나 발이나 다리도 다 마찬가지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지나치는가를 보아야 한다. 

그 동안 보육을 맡은 교사들의 노고로 
발생할 뻔 했으나 발생하지 않은 수많은 위험과 사고는 
여기에서 모두 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다만 모두 초점을 보도된 내용에만 맞춘다. 

마술인가. 최면인가. 
이렇게 전체 사회나 대중은 현혹당하게 된다. 
그래서 돌만 주어지면 달려가 그 당사자 앞에 던지고 말겠다는 
결의에 불타는 것이다. 

그런데 당연히 그 비난을 기준으로 놓고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을 다시 비난한다고 해보자. 

이 사회에서 제대로 숨쉬고 살아갈 이는 그 이후에 거의 없게 된다. 

처방이란 기술적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이 기술적조치는 늘 반대의 부작용이 따른다. 

프로메테우스가 사람에게 전해준 불과 지혜는 
분명 긍정적 기능을 갖는다. 
그러나 그로 인해 화상을 입고 살아가게 된 이들이나, 
그 전에는 단순히 비난만 서로 하고 지내던 이들이 
그 지혜로 이제는 서로에게 미사일이나 원자폭탄을 언제든지 
날려 보낼 준비를 하고 서로 바라보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특히 이런 사건에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에게 
그런 무기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물론 먼저 공격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그래서 또 미리 잘 생각도 해 봐야 하고 
또 나중에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떤 소원을 놓고 그 성취를 간절히 원할 때 
늘 다음 질문을 같이 던져야 한다. 

왜 그 소원의 성취를 원하는가. 
그리고 그 소원이 뜻대로 성취되면 그 다음에는 
그것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과학기술은 그래서 이미 한 10 년전 5 년전에 널리 공개된 정도의 것을 
신뢰하고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아직 부작용이 검토되지 않은 기술은 위험이 많다는 의미다. 

범죄자들에게 채우는 전자발찌는 mun 님 소원대로 
이미 거의 전국민에게 다 채워져 있는 상태다. 

언제 채워졌겠는가. 
알게 모르게 스스로 다 그 전자발찌를 갖고 다니게
자연스럽게 되어졌다는 의미다. 

개미에게는 특수한 능력이 있다고 한다. 
여왕개미는 자신이 생산하는 2 세의 성별을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숫컷을 원하면 숫컷을 암컷을 원하면 암컷을 뜻대로 만든다. 

그런데 암컷은 일을 끊임없이 시킬 목적으로 생산하고 
숫컷은 전혀 노동을 시키지 않고 
다음 생식을 위해서 생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자녀를 여왕개미가 다 알아서 생산하고 
또 이들이 자신을 부양하게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인데 
이 여왕개미가 2 세들을 생산할 때 
개미라고 해서 이런 생각도 없고 저런 생각도 없이 
무조건 그 때 그 때 우연에 맞게 생산할 것 같은가. 

개미도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그런데 자신의 자녀를 누군가에 맡기고 
부모가 무언가에 바삐 시간을 보내고 
이제 그 책임을 모두 돈을 주어서 도움을 부탁한 이에게 
모두 그 책임을 돌리고자 하는 것은 혹시 아닌가. 

다 사정이 어려운데, 
이 각각의 관점에 거북도사의 처방안이 조금은 필요한 것이다. 

오로지 가해만 한 교사였는가. 
아니면 그외에도 보이지 않는 도움을 많이 준 교사였는가. 
이것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내가 볼 때는 한 어른이 어린아이를 5 명 이상 동시에 
통제하는 것은 거의 슈퍼맨의 능력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제 보육교사의 어려운 사정을 해결하기 위해 
근무시간을 적정시간으로 줄이고 
담당 어린 아이의 수를 제한하고 
충분한 급여를 제공하기 위해 
보육료를 한 3 배 전국적으로 인상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누가 나서면 
아마 그는 거리에서 돌더미에 깔려 죽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여하튼 어떤 방편이나 수단을 제공할 때는 
종합적으로 여러 면을 함께 평가하면서 접근해야 한다. 

당장의 문제만 하나 해결되면 그것으로 된다고 생각하고 
문제에 접근하면 엄청난 재앙이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일반인들이 설령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더라도 
누군가는 여기에 들어 있는 독을
중화시켜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 불과 지혜를 전해 주어
큰 도움을 준 것 같지만, 
그러나 재앙도 함께 준 측면이 있다. 

그가 제우스에게 체포되어 
낮에 간을 쪼이우고 밤에는 다시 재생되면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은 나름 사정이 있다고 본다. 

작용과 반작용 그 양측면의 장점과 효능 그리고 단점과 부작용 등등 
이런 것을 다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이 우선 먼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좋고 좋고 좋은 방안이 아니면 
즉 나 좋고 남 좋을 뿐 아니라 온 생명에게 다라다라 좋은 
이 측면도 좋고 저 측면도 좋고 두루두루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오래 오래 디리디리 좋은  
그런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 피곤하다면서 
자기 일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TV 드라마에 빠져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생각하는 방식이 이처럼 짧고 얕다는 의미다. 

그런데 대부분이 그렇다 해도 
누군가는 이것을 길고 깊게 추구해 들어가야 한다.

우리에게 많은 지식을 개척해준 과학자들에는 
아이러니한 운명을 보여주는 경우가 가끔 있다. 

망원경을 개발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는 
장님이 되었다. 

축음기를 개발한 에디슨은 귀머거리가 되었다. 

원자의 구조를 제시한 볼튼은 색맹이었다. 

우주 빅뱅이론을 발표한 스티븐 호킹은
불치의 근육마비증으로 대학원 재학시 2 년 시한부 선고를 받은
루게릭 병 환자였다고 한다. 


운명이나 영웅을 작곡한 베토벤은 귀머거리였다는 식이다. 
 
그럼에도 연구를 쉬지 않고 
그것을 널리 공개하였다. 

그것은 그런 기술이나 지식 수단 등이 
널리 인간에게 이로움을 가져다 주고 
행복과 평화 사랑을 가져다 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만일 그 기술과 지식으로 
나중에 스페인 군대 몇 백명이 
다른 대륙의 사람들 대부분을 학살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계기가 
될 줄 알았다면, 

그런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의 연구가 
오히려 대부분의 인류에게 원치 않는 심한 부작용과 독을 
가져다주리라 확신했다면 
그런 장애에 불구하고 그런 연구를 계속해나갔을 것인가. 
그런 의문도 가져보게 된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부분 텔로미어는 
한편으로는 정상세포의 수명도 관장하지만, 
그것이 곧 암세포가 암세포로 활동하는데에도 관여한다고 한다. 

이런 이상한 내용들은 
모두 묘길상 인턴연구원이 보는 오래된 소년과학잡지를 
화장실에서 보다가 얻어낸 내용들이다. 

한편 이 잡지에서 
인공고막을 비단의 단백질을 통해 싸고 쉽게 
재생해내는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소식도 본다. 

이제 귀머거리가 된 베에토벤이 
인류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음이 명확하여 
베에토벤의 고막을 재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에디슨의 경우에는 조금 의문이 된다. 

그가 개발한 전구가 
요즘 범죄 활동에 대단히 많은 도움을 준다는 
보고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할 일이 없으면 불끄고 잠을 자는 것이 
사회에 도움을 많이 주는 
사회내 암적 활동을 밤에 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의미다. 
그러나 자신이 그런 사회의 암세포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괴롭히는 다른 이가 암세포라는 데에는 과감히 동의한다. 

그런데 사회내 암세포의 성격이나 특징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는 거울면을 놓고 검토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경우엔 본인도 살짝 남을 비난하고 만 것이 된다. 

그런 의미라기 보다는 
그런 측면을 늘 고려하면서 
먼저 거울의 반대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입장을 역지사지 하고 

문제를 늘 거북도사의 시각으로 한 번 다시 검토하여 
이미 갖고 있는 많은 장점을 혹시 
그로 인해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도 
늘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본다. 

comment 가 주석이라고 생각했는데 
불어에서는 그것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라는 how 의 의미인 것 같다. 
구글 번역기가 도움을 준다. 

이 구글번역기가 
바벨탑이 막고자 했던 기능을 오늘날
유사하게 되살려 낸 것이다. 
이것이 정말 인류에게 도움이 될까? 

어떻게를 집착해 생각하기 이전에 
왜? 무엇때문에를 늘 염두에 두고 
자신이 이것을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소원이 성취되면 
성취되지 않은 경우보다 오히려 더 허무함을 
빨리 느끼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보복심리의 소원 성취에는 
이런 문제가 들어 있다.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서로 허무감만 빨리 맛보는 결과를 초래 하는 것이다. 

왜? 무엇때문에?를 자신도 묻지 않고 
남도 묻지 않고, 단지 어떻게만에 집착하여 
그 복수의 념과 소원을 성취해버렸기 때문이다. 

참고로 깊게 길게 생각하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두 메테우스 형제 때문에 
나중에 판도라 상자가 열리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그 온갖 문제가 다 부작용과 독으로 발생한 이후에 
이 처리에 하등 쓸모없는 헛된 희망만 하나 또 선물로 
주어졌다는 소식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그렇게 이미 많이 열려져 버린 것이다. 
더 필요한가? 





일단 자세한 주석 Comment 에 관한 노래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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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odie Frégé - Comment T'Appelles-Tu Ce Mat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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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Wqf3aZhXMJQ






○ [pt op tr] Elodie Frégé - Comment T'Appelles-Tu Ce Matin ?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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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5/01/16/금/18:52


♥ 잡담 ♥앗 위험 




앗 lab님의 글이 case 문제에 들어가면 늘 위험함을 느낍니다. 
늘 대다수의 견해와 동떨어진 이상한 발상을 하고
case 문제에 접근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mun 님이 옥상에 화형대와 장작 더미를 준비하고 
밧줄을 구하려 나갔습니다. 

묘길상 인턴연구원을 한참 바라보고
그리고 lab님의 사진을 한참 보고 
일어난 일입니다. 

빨리 피하세요. 무언가가 기억난 듯... 




그것은 특히 lab님이 mun님에게 다음의 이상한 곡을 
선사한 이후로 더욱 촉발되었습니다. 

일단 곡을 검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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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o Le M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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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fwXh9Yum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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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Allo Le Monde 가사 





문서정보

 

 

 

 








































































































































































댓글 테이블 

◈Mun Tokyun 2015/01/16/금/14:11


♥ 잡담 ♥사례연구의 문제점 

사례 연구를 통해 일부가 제시하는 해결방안은 
현실에서 보면 가장 최극단의 해결방안을 
근본 방안이라고 매번 제출하고 
이것이 최상이자 구극의 방안이라고 매번 
만병통치약으로 제시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사실은 
모두 현실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된다. 

불교에서 기본적으로 평등한 열반의 상태를 제시하지만, 
그러나 아라한과 연각과 보살과 부처의 차별을 다시 제시하고 
성불의 상태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상태로 제시하는 것은 
결국 무량한 CASE 에 대한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아닌가의 
차별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정말 불교의 본 입장인가는 별도의 문제로 하고 
일단 무량한 CASE 에 대한 개별적 해결없이 
모든 CASE 에 단 하나의 처방으로 일관하는 것은 
일종의 책임 유기 방관의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현실에서 이런 근본 처방을 취하여 해결을 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사실상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고 보는데도 
그러나 반복적으로 그것만을 제시한다면, 
현실 문제에서는 결국 무능하고 무력한 만병통치약의 
반복 제시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강하게 갖게 마련이다. 

그리고 비유하여 현실적으로 각기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 붙잡고
칼로 자를 때 
모두 다 이것을 극도의 공포와 고통으로 대하게 마련인 것도 
하나같이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그러니 이 만병통치약은 현실의 구체적 각 CASE와 각 개개인들에게 
무슨 해결을 과연 해준 것인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CASE 문제제기에 대응하는 
LAB님과 PRAJNA 님의 글을 읽어 보면서 




이런 노래들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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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hff - Qui Est L'ex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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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KNIXqAnk8G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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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Rohff - Qui Est L'exemple 가사 





이런 만병통치약의 반복제시는 
결국 구체적 당사자들에게는 피해를 주고 방기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머지 구체적 문제 해결방안은 
그것이 선악 무기의 방편적 성격을 갖기에 
그것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이고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일체 나무~로만 접근해 해결하는 방안이 된다고 
제시하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런 논의는 약간은 허무한 해결방안이고 논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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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erry Amiel - Où Vont Les Histoi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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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EjGj0sCDz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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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Thierry Amiel - Où Vont Les Histoires 가사 



차라리 이런 각 경우에는 김수미 님이 욕쟁이 할머니로 출연하여 
퍼붓는 욕이 
더 효과가 좋을 수 있다고 본다. 




각 개별 CASE 별로 철저한 응징과
사전적 예방과 사후적 해결을 촉구하면서
난 이런 노래를 다시 선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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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Silva La Route [Clip Offic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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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dVytFbfLo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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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Da Silva La Route 가사



그리고 이번 어린이집 사태의 문제의 근원은 
어린 아이들의 통제나 교육을
오로지 성인인 소수 교사에 전적으로 맡겨 부담을 지우기 보다는
이들 성인 교사를 보조하면서 
효과적으로 어린이들을 장악 통제할 수 있는 책임있는 어린이가
어린이들 안에 없다는 점과 

또 어린이집 교사가 거의 대부분 여성이라는 데에 
문제점이 있음을 보게된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이상의 책임감있는 
소년을 어린이집 봉사 요원으로 근무하게 한다던지, 

남자 보모 교사의 적극 채용을 국가가 권장하고 
일정 인원의 채용은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김수미양의 욕보다 조금 못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의외로 해결방안은 이 두 방안을 
종합하는 어딘가에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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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jna Citta 불기2559/01/16/금/12:54


♥ 잡담 ♥열반과 행복의 관계 

little 님이


불교의 목적 상태로서 니르바나(열반), 해탈, 보드히(깨달음)과 같은 상태가 
과연 doctr 님이 논의의 주제로 삼는 행복의 내용과 같은 내용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해 주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잡아함경 해설의 검토과정에서 충분히 논의가 되었다고 본다. 

▩[ 디스크 ]▩ [DISK] ○ 근본불교 K0650sf-- ☞○ 수행의 목표의 가치 

ж[ 웹 ]ж [web] http://buddhism007.tistory.com/228 ☞○ 수행의 목표의 가치 


그런데도 오해가 발생하는 것은 
현실에서 어떤 이가 무언가를 좋다고 집착해 추구할 때 
그것이 얻어진 상태를 목표상태로 설정해 생각하는 것과 

불교에서는 이들 일체 현상을 놓고 이 모두를 다
고통의 상태로 관하는 입장과의 차이와 
같다고 본다. 

물론 불교에서는 
일반 현실에서 부정적 감정, 정서, 느낌으로 보는 내용 
한마디로 악과 고통의 요소에 해당하는 내용을 제거해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doctr 님이 행복론에서 문제 현상으로 제시하는 내용이 
불교의 수행 목표상태에서도 공통적으로 제거해 없애고자 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는 공통한다고 볼 수 있다. 

반야심경에서는 도일체고액, 
또는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 몽상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등으로 
그 목적상태를 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반대로 
doctr 님이 제시하는 모든 좋은 감정, 정서, 느낌의 요소에 해당하는 
만족, 즐거움, 기쁨, 재미, 웃음, 보람, 가치, 평온, 안정, 의욕, 희망의 상태와 
완전히 같은 의미인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근본적으로 불교는 현실 안에서 현상적 내용으로 얻는 것은 
그것이 실답지 않은 것으로 관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것은 궁극적 목표상태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부정적 요소로 고통받는 상태에서 
각 생명을 일단 이런 상태로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방편적으로 같은 입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방편이고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상태로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마치 불교에서 하늘에서 얻는 즐거움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목적 상태로 보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각 생명이 일단 고통을 벗어나 
이런 하늘 상태에 이르러야 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를 방편으로 구극적으로 얻어야 하는 것은 
최종적 니르바나, 해탈, 보드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등등으로 
표현하는 상태라고 하는 것이다. 

생사가 열반이라는 것은 
본래 생사가 열반이라는 것이며 
생사가 열반임을 관하여 생사가 비로소 열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래 생사가 열반임에도 
그렇게 사실을 올바로 관하여 보지 못하면 
망상 분별과 집착의 상태에 뒤덮힌 상태에서 
본래 생사가 열반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각 생명은 그 상태에서 니르바나에 머물지 못하고 
오히려 그렇지 못한 현실적인 고통의 상태에 노출되게 되는 사정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에서 보는 좋고 나쁨이 모두 공통적으로 그런 
상태에 노출되게 된다는 사정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가운데에 궁극적 목적 상태를 둘 수는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일단 생명이 상대적으로 망상분별과 집착에 싸여
그 안에서 나쁜 상태를 피해 
좋은 상태를 집착해 추구하는 것이므로 

수행자는 방편으로 이들의 고통을 해소시켜주고 
다시 이를 통해 구극적인 니르바나 해탈 깨달음의 상태에 
이르게 하여 완전한 니르바나에 도달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제도된 상대는 또 다시 
다른 생명을 상대로 그런 노력을 하게 되고 
그래서 이것은 방편과 목적이 뒤섞이게 하는 측면을 갖지만, 
그러나 그렇다 해도 구극적인 목표점은 
망상분별 집착의 상태 안에 설정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 점이 doctr 님의 행복론의 논의주제와 
일부 관련이 되지만, 
그러나 
완전히 동일한 주제의 논의가 아닌 사정을 말해 준다고 본다. 


만일 불교에서 방편으로 보는 그런 망상분별 집착의 상태에서 
좋다고 보는 상태를 목표로 향해 노력하면 
그것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역시 부처님이 제시하는 바와 같이 
불완전하고 소멸하는 것이어서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는 없게 된다. 

그러니 일단 이를 목표점으로 하여 생명을 이에 이르게 하고 
다시 이를 방편으로 끝내 최종적인 
열반 해탈 상태에 이르게 하고 
그 이후 그 바탕에서 다시 방편을 취해
그가 또 다른 중생을 제도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그는 다시 다른 생명들의 망상분별과 집착의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며 
이것이 결국 수행자가 생사 윤회를 피하지 않고 
변역생사를 받아 
중생을 제도해 나가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결국 doctr 님의 행복론은 
최종적인 목표점으로 행복을 보지 않아야 하고 
그것이 또 다른 형태로 승화되어 나갈 출구를 마련해 제시하지 않으면 
한계를 그 안에 포함시킬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원래 처음 행복과 행복을 얻는 각종 수단, 
건강, 생명, 시간, 쾌, 지혜, 지식, 미, 인격, 
물질적 부, 명예, 지위.....등등을 나열해 추구하게 되면 
그것은 비록 각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구극적 목표로 생각하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입장에는 일치할 수 있지만, 
이는 간단히 말하면 악마의 행복론으로 전락되고 만다. 

그래서 행복을 추구하면서 그런 형태로 행복의 추구가 
전락되지 않게 규범적인 요소를 포함시켜서 
선한 행복론으로 형태가 바뀌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그것이 기본적으로 
불교에서 구극적 목표점인 니르바나 해탈 깨달음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보는 상태를 
최종적인 목적 상태로 보고 논의를 전개해나가는 것이라면, 

이 점에서 여전히 그 행복론은 
한계를 그 안에 갖는 논의가 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행복론에서 그 이상의 주제로 
종교 영역에서 제시하는 목표점을 제시하게 되면, 
이는 특정 종교의 내용이 되어 버리고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행복의 논의와는 거리가 있게 되지만, 

그러나 종교에서 추구하는 목표점이 
일반인들의 현실과 전혀 무관한 상태로 
논의되고 추구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결국은 행복론의 논의에서도 
이들 논의로의 출구를 연결시켜 주어야 하며 

그것이 반드시 불교의 내용이 아니더라도 
불교의 내용도 그 안에 포함시켜 제시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게 된다. 

그리고 왜 이런 목표점들이 또 다른 상위 목표로서 
각 종교 영역에서 제시되게 되는가 하는 기본 사정 정도는 
행복론에서 언급을 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그것은 Choice 님이 다루는 다른 종교영역에서 제시하는 목표도 


역시 공평하게 그런 기본 사정을 언급해 줌으로써 
행복론이 어떤 특정 종교의 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doctr 님의 기본 입장을 충족시키게 되리라 본다. 






현실의 문제를 만나게 될 때 
이에 대한 사후 서비스로서 after service 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원래 처음부터 이런 문제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사전 서비스 before service 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실 사정은 그렇지 않다. 
일부는 그렇고 또 일부는 그렇지 않다고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는 그렇게 보던 안 보던 
본래 문제가 해결된 상태에 있음을 다시 강조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런 사정을 깨닫고 대하고 보는 이는 
그에 따른 차별적 상태를 얻고 
그렇지 못하면 
사정이 본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태에 이르지 못하는 
고통의 상태에 노출되고 뒤덮여 지내는 상태가 되는
차별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본래 그러하다는 내용 이외에도
다시 사정이 본래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고 보는 것의
차별적 가치를 말하게 된다.

그런데 다시 그 입장에서는
본래 그런 차별이 없음을 다시 관하는 것이 된다. 

이 복잡한 사정이
우리가 현실이라고 보는 내용이기도 하다.  

만일 정말 before service 가 완벽하다면, 
수행도 필요없고 
그저 그런 상태로 아무 문제가 본래 없고 
어떤 사전적 사후적 조치 자체의 필요성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before service  와 after service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나은가 하면 사실은 
before service 라고 볼 것이지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으므로 
before service  와 after service 양 쪽의 노력이 모두 
다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을 구체적 사례의 문제로 취급하여 접근하면 
그것이 아무리 방편이라고 하더라도 
무량한 Case 의 문제가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근본적 처방도 어렵게 되고 
또 그것이 최종적 목표상태가 아니라는 사실도 
망각하게 되기 쉽다. 
그래서 Case 문제 해결방식으로 
각 논점을 관련시키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내용으로 최소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반대의 부작용을 
일으키게 되리라 본다. 




일찍이 before service 를 
Team BS 의 BS 의 의미라고 어떤 분이 
주장한 이후로 
그 노래를 그런 식으로 음미해 듣게도 되는데 
일단 그런 입장에서 노래를 들어보고자 한다. 

Team BS 의 Case Départ는 사실은 이런 여러 복잡한 의미를 
그 안에 담고 있다고 다라니적인 해석을 
취해보게 된다. 

Team BS - Case Départ [Clip Officiel]

http://www.youtube.com/watch?v=SRe9SsSFTes





○ [pt op tr] Team BS - Case Départ [Clip Officiel]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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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테이블 

◈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5/01/15/목/22:39



●행복론에서의 목표와 열반은 같은 것일까. 

행복론에서는 사람이 느끼는 여러 정서, 감정, 느낌, 생각 등에서 
긍정적인 내용과 부정적인 내용을 나눈 다음 
긍정적인 내용을 행복과 관련시켜 이해한다. 

만족, 즐거움, 기쁨, 보람, 가치가 있다는 느낌, 평온함, 안정감, 의욕, 희망을 그림, 
이런 등을 긍정적인 요소로 보는 것이다. 

반대로 불쾌, 불만, 고통, 죄의식, 무의미함, 불안, 걱정, 두려움 
등등의 내용을 부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LAB 님이 제시하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떠난 상태에서
추구한다는 니르바나는 
과연 이 가운데 어떤 요소와 관련이 되는 것인가. 
되지 않는 것인가. 

이 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유치원 교사를 이 사회가 욕할 수 있는가. 

왜 김치 남겨” 어린이집 교사가 네살배기 폭행

https://www.youtube.com/watch?v=xw6mOLW8Gnc


관련기사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501150100186990011329&servicedate=20150115

최근 언론에 보도된 어린이집 교사의 폭행사건에 대해 
온 사회가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제멋대로 엉터리 행동을 하거나 떼를 쓰기 쉬운
철없는 아동들이 
이 교사에 의해 제대로 각을 잡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우리 사회 각 부분은
바로 이런 상태를 선호하는 사회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보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마치 이것이 유치원에서 조기 교육되면 
그것만은 이상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 생각할 때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 각 개인이
각 조직에서 행하는 행위 자세이다. 

물론 그런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분노하는 것은 같은데 
사회 구성원은 반복해서 그것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이다. 

여기에 관련기사를 나열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몇몇 내용만 잠깐 언급해보자. 

최근 윤일병은 군대에서 폭행 당해 사망했다. 

각 체육부분 선수는 끊임없이 감독 코치 선배에 의해 폭행을 당한다. 

학교에서는 보통 있는 일로 생각하기도 한다. 

회사 직원들은 몽둥이로 사장에게 구타를 당한다. 
비행기에서도 무릎을 꿇고 맞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몇명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모 청장은 자신의 반복된 부하직원에 대한 욕설을
공식 사과했다. 

이런 사회 각 부분의 실질 내용이 
단지 언론에 보도된 그 일부만 그렇다고 보지 않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문화를 어린이들에게 조기교육하는 유치원이라고
반대로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만한 일은 혹시 아닌가. 

그리고 아이들이 일찍 이 문화에 적응할 수록
앞으로 사회에서 생존할 확률이 더 높은 것 아닐까. 

그것이 조기 교육되지 않는 이들은 
이후 점차 성장함에 따라 몹시 적응하기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한 번 
역설적인 접근을 해보게 된다. 

여기에 LAB 님은 저런 상황의 당사자들에게 
도대체 어떤 방안이 해결책이라고 제시하는 것인가. 

이 페이지에 올려진 LAB님의 과거글을 
이 경우에 적용해보기로 하자. 

현상을 그대로 두고 그 상태에서 그것을 평안하게 받아들여 
니르바나를 얻는 것이라면, 

저렇게 자신이나 자신의 아이가 구타를 당해도 
그 선생님은 
자신에게 식사시 김치를 흘리거나 반찬을 남기면 안 된다는
매우 소중한 삶의 교훈을 아주 쉽게 몸으로 가르쳐준 고마운 분으로서
이 상황을 모두 평안히 참고 받아들이는 자세로
그 아이나 그 아이의 부모는 임해야 한다고 보는가. 

또 그것이 과연 각 개인이 추구하는 행복과는 
어떤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의문을 제기해보게 되는 것이다. 

사회 각 부분에서 비슷한 사례에 해당하는 내용들은
검색해 보면 
곧바로 쉽게 내용을 검색해 찾을 수 있다. 


‘맷값폭행’ 논란 재벌가 ●●●씨 징역 1년6월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2081039061001


●●● 사무장 “대한항공 여승무원, 교수직 제안에 ●●● 욕설+폭행 부인” 미소 포착

http://en.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0113500005

-  대학 쇼트트랙팀 폭행...선수만 따돌림 피해 / YTN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Ds36VRkwXrE
대학 쇼트트랙팀에서 코치가 여자 선수를 폭행해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선수만 계속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YTN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 [e-만만]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맞았다" / YTN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lwn6IwcSEjQ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맞았다"는 선수들의 씁쓸한 증언이 뉴스 검색 1위에 오르며, 재조명되고 있습니다.2004년엔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거의 매일 코치들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밝혀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고, 한국 배구계 간판스타인 ●●● 선수도 2009년 코치에게 폭행당해 부상을 입자, "폭행이 일어...


[e-만만] '체벌 후 뇌사' 하루 만에 또 폭행 / YTN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qzkNQbU3yyY
[앵커]지난 3월, 교사에게 체벌을 받은 학생이 뇌사 상태에 빠져 있다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오늘 낮, 문제가 된 학교의 교사들이 수년간 상습적으로 학생들을 구타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네티즌들을 분노로 들끓게 했습니다.학생들 사이에서 '깡패 교사'로 불린한 교사는 수업시간에 졸았다는 이유로 학생의...

[노컷]초등생 체벌하는 교사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vdMXxWcYLnU

2008. 7. 23. [노컷]경기도 ●●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 4~5명을 빗자루로 체벌하는 동영상이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 등 인터넷에 유포돼 물의를 빚고 있다


참고로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정말 가혹한 사례다. (역설적 표현이다.) 

선수건, 학생이건, 몇 번 말을 해서 말을 안 들으면 바로 총으로 쏴버린다.  

노숙자 사살한 美 경찰관 2명 살인죄로 기소
http://www.hankookilbo.com/v/53f1936afe7c4988bed7b842f7d99b10

[2013년4월5일] 미국 대학농구, 폭력 감독 퇴출. KBS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7eVx5DPkR1A

한국은 이에 비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것이고 
심지어 이에 대한 유치원교사의 세심한 조기 교육마저 성행하는 것 아닐까 

항우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에 버금가는 
역발상기개세..(逆發想 氣蓋世)

특히 초등학생을 때리는 선생님은 동작에는 
강력한 포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름하여 사랑스런 매인 것이다. 
우리가 보통 한우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사랑의 표현과 조금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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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Lab value 2015/01/16/금/03:38


♥ 잡담 ♥LITTLE님의 우문현답

LITTLE 님이 스스로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현명한 답을 달아 놓으셨다고 본다. 
다만, 이미 MUN 님이 글을 통해 하지마 삼매에 대해 언급하면서 
하지마 삼매에서 무엇을 하지마를 밝히려는 순간
그것이 곧 하지마 삼매의 원칙에 어긋나기에 
그 내용을 자세히 밝히지는 않는다는 취지의 글을 남긴 것을 보았다.  

이처럼 MUN 님이 금도를 지키면서 글을 올렸는데 
LITTTLE 님은 언제까지 구체적 사례를 외면하면서 
연구를 진행할 것인가. 
언제까지 행복론 총론 각론의 편집을 미룰 것인가 
이제는 편집을 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제기 차원에서 
과감히 많은 훌륭하고 공덕이 많은 분들의 실명을 공개하는 
방안을 취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아직 그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다시 본인이 해당 실명부분을 
모두 ●● 형식으로 블라인드 처리하였다. 

어제도 LITTLE 님이 이와 비슷한 문제를 제기하여서 
글이 아니라 말로써 장기간 논의를 하였는데 
일단 논의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여 옮겨 놓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논의 내용의 요지는 다음이다. 

다삼작전에서 취해야 할 바란, 
자신이 늘 쉽게 할 수 있는 바에서 아주 쉬운 하나를 더하거나 빼거나 하여 
좋음을 만들어 그것을 끊임없이 늘 다른 생명에게 
베푸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방안을 구체적으로 찾아보자. 


그래서 LITTLE 님은 성경 공부를 시작하는 김에 
매일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인사를 올리고 
동시에 꾸준히 성경을 읽으면서 그 때 그 때 
성경을 처음 읽는 이가 대하는 성경의 이해 이런 제목으로 
앞으로 자신이 읽는 성경 내용을 요약해 그것이 필요한 이에게 
제공하겠다. 이런 취지를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운동도 하고 대외적 봉사활동을 위해서 
늘 그와 같은 일을 하는 방안을 찾아 보기 위해 
길을 같이 나서면서 논의를 시작했는데 

여기서 LITTLE 님이 곧바로 악마의 덫에 걸려들고 
본인도 동시에 함께 걸려드는 사태에 처하게 되고 말았다. 

아주 간단한 악마의 덫에 걸려들었는데 
그것을 다른 수행자를 위해서도 공개해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늘 시험문제는 이렇게 불시에 출제되고 채점되고 
탈락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 행동 수칙을 성인들로부터 배우고 
늘 주의하면서 훈련에 임하지 않는 경우는 
간단한 악마의 시험에 곧바로 걸려들어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모세를 따라 나선 이집트 노예들도 이 시험에 걸려들고 
문제를 풀지 못하고 그 이후 40 년간 방랑하는 고통을 겪었듯, 
LITTLE 님과 본인도 어제 그 시험에 걸려든 다음 
곧바로 장기간 거리를 방랑해야 하는 시련을 겪고 말았다. 

LITTLE 님은 최종적으로 그것을 만회하는데 성공했지만, 
본인은 만회하지 못하고 어제 하루를 마치고 만 것이다. 

여기서 쉬운 악마의 덫이란 이것이었다. 

그대는 만일 길거리에서 절을 한다면 
무엇에 절을 하는가. 이런 퀴즈였다. 

LITTLE 님이 처음에 걸려든 덫은 
길거리에 떨어진 1000 원 짜리 지폐의 덫이었다. 

분명히 자신이 떨어뜨린 지폐가 아니고 
또 자신이 누구의 지폐인가를 알고 그것을 찾아 주기 위한 목적이나 
지혜도 없으면서 
LITTLE 님은 이 지폐를 보자마자, 곧바로 
90 도를 넘는 180 도 절을 하면서 지폐를 줍고 
주은 다음에는 곧바로 본인에게 건넨 것이다. 

원래 본인이 이 퀴즈 문제에 매번 걸려들어 
큰 낭패를 본 경험이 있기에 
그 뒤에 하나의 매뉴얼 행동수칙을 정한 바 있는데 
그것은 
위 두 경우가 아닌 경우에는 그런 돈이던지 수표던지 황금이던지를 
보더라도 줍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것이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베푸는 방안이라면 그대로 놓고 방치한다. 
이런 어떤 행동 원칙을 정한 바 있다. 

명백히 이 사안은 주인이 없는 재화(무주물)이 아니고 
무주물동산은 먼저 취득하는 이가 주인이라는 
무주물선점의 법리가 적용될 사안이 아닌 것이다. 

물론 이런 점유이탈물을 보게 될 때
그 물건의 주인을 알아낼 지혜가 있다면 그 지혜를 발휘해 
주인을 찾아내 그것을 찾아 줄 방편을 취해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거리에 떨어진 지폐를 그 지폐만 보고
그 주인을 찾아낼 방안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이런 경우 그 상태로 그냥 방치해 두면
그 주인이 그것을 찾아가지도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 아닌 어떤 다른 이가 곧바로
점유이탈물횡령죄를 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더라도 위와 같이 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100 명 중 99 명이 다 횡령죄를 범해
그것을 주어 가지는 것이 현실 세태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이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남들이 아직 횡령죄를 범하지 않은 상태인데 
자신이 가장 먼저 빠르게 그런 횡령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 

자신은 오직 자신이 떳떳히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재화를 취하고 

또 무언가가 필요하면 그것을 가진 상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리고 상대가 명백히 자신에게 준 것을 취하고 
주지 않은 것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계율내용을 한자어로 불여취라고 표현한다. 
불여( 상대가 주지 않은 것)을 취하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LITTLE님이 지폐에 180 도 절을 드리고 나서 
그 지폐를 나에게 건넨 것이다. 

이 이상한 변종 형태의 문제를 대하고 
본인은 잠깐 실수를 한 것이다. 

그것이 장물이라는 생각까지는 미처 못한 상태에서 
LITTLE 님이 나에게 주는 지폐를 내가 굳이 
거부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상대가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면 안 되지만, 
주는 것을 내가 취하는 것인데 
이렇게 단순히 생각하고 그 사정을 다 지켜보고서도 
그 돈을 그렇게 취해서 
그 돈으로 잉어빵을 곧바로 사서 2 개는 내가 먹고 
1 개는 LITTLE 님에게 주고 만 것이다. 

알고 보니 이것이 횡령죄의 공범관계가 되고 만 것이었다. 
공범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장물취득행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후 LITTLE 님에게 일단 위와 같은 행동 수칙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앞으로는 다시는 
떨어진 돈에 절을 하지 말고 
그럴 시간이 있으면 길을 걸어다니는 불보살님이라고 할 
동네 꼬마,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낫다고 말을 하였지만, 
이미 계율은 어긴 상태로 길거리를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법률적으로 말하면 기수범 두명의 미체포 도주 상태가 된 것이다. 
사안이 사안이기에 사정을 뒤늦게 파악하였지만,
수사시관을 찾아가 자수를 하기는 곤란하고,
최종적으로 동일한 금액을 그 돈을 주은 장소에 다시 반환함으로서 
나름 사후 조치를 취했지만
누가 이 사건을 본다 해도 횡령죄가 이미 완료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CCTV 에 찍혀 수행자 뉴스에 방영됨으로써 
우주 곳곳의 수행자에게 반면 선생님 노릇을 함과 동시에 
LITTLE 님과 본인은 수행자세계에서 매장된 결과가 된 것이기도 하다. 

마치 LITTLE 님이 올려 놓은 동영상 클릭이 
어떤 한 훌륭한 선생님을 사회에서 매장시켜 버린 것과 
같은 결과가 된 것이다. 


LITTLE 님은 이 본인 사례를 제시하지는 않고 
엉뚱하게 또 다른 훌륭한 선생님 들의 수많은 사례를 발굴해서는 
이것을 나열하고 
어리석은 질문을 다시 던지고 
그에 마땅한 현명한 대답을 마치 그것이 답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제시하고 글을 마친 것이다. 

나름 교묘하다고 본다.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면서 일반 원칙을 현실에 적용하는 
방안을 살피자는 취지는 좋으나, 
그렇다고 사례가 무한한데 그 사례를 다 나열할 도리는 없고 
아무리 사례가 무한해도 
기본 행동 원칙의 방침이 달라질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미 많은 글에서 그 내용을 밝힌 것도 
또 같다. 

이미 사즉윤병 생즉임병 이런 사자성구도 사회에서 
널리 회자됨을 말하면서, 

이 각각의 경우에 일반 행동원칙이 모두 적용되고 
그 방안만이 현실에서 보는 부작용을 발생시키지 않고 
모든 경우에 원만한 결과를 얻어내는 길임을 제시한 바도 있다. 

윤병은 기본적으로 평안히 참는 것외에 보시, 계율의 덕목을 빠뜨리지 않아야 하고 
임병은 기본적으로 보시와 계율의 덕목을 행하는 것 외에 다시 평안히 참는 덕목을 
실천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LITTLE 님이 제시한 모든 사례에서 
각 구체적 당사자의 입장에서 부작용과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 
바로 위 각 덕목 가운데 무언가 하나가 빠져 있어서 
그런 문제 상황에 노출되고 만 것임을 누가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니 다른 이들은 이것을 보고 
이미 이 각 분들이 잘 하고 있던 내용 외에 
다시 그 빠진 것을 더해 앞으로 꾸준히 해나갈 방안을 
찾아서 행하는 것이 그 답임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LITTLE 님이 링크를 건 동영상 부분을 클릭해서 보면 
그에 따른 댓글은 
또 다시 또 다른 윤병과 임병의 사례에 해당하는 내용들만 
거의 99 % 가득함을 보게 된다. 

그러니 이들은 역시 다 같이
똑같은 상황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마치 자신은 아닌 것처럼 생각하면서 
이 선생님을 비난하는 대열에 합류하고 
아주 극소수만이 또 평안히 참지 못하고 
다시 이 비난하는 대열의 반대편에 서서
옹호하는 글을 남기는 모습을 보는데 
이 두분이 현실에서 모두 문제라는 것을 
이미 MUN 님이 제시한 사례에서 그 문제점을 살핀 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인을 모욕하는 자유언론과 
이 모욕을 평안히 참지 못하고 총기를 들고 사살해버리는 신앙인의 
관계가 이들 간에서 모두 성립함을 보는 것이다. 

이 상황은 마치 예수님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한 여인을 끌고 와 
벌하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상황과 같다. 

예수님이 그 경우에 어떻게 했는가를 곰곰히 LITTLE님은 되새겨 보아야 한다고 본다.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돌을 던졌는가. 
돌을 던지라고 했는가. 
아니면 돌을 던지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거꾸로 돌을 던졌는가. 
이들이 모두 죄인임을 스스로 다 알게 된 이후 
이제 이 모두를 다 체포하여 돌을 던졌는가. 
그렇게 안 했다면 그 이유는 또 무엇인가. 

이런 문제를 잘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LITTLE 님이 나열한 사례에 
모두 어떤 황제와 같은 유사한 분들이 취하는 방편을 관찰할 수 있다. 

어떤 개인이던지 자신이 자신의 뜻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왕과 같은 상태에 
다 한번씩 위치하는 것이다. 

군인으로 말하면 병장이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대학교에서는 선생님이고 교수고 
운동클럽에서는 코치나 감독이고 
회사에서는 사장이고 회장이고 오너 가족이고 
등등이 그런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왕과 같은 순간이 되지 않는 개인은 세상에 드물다. 
하다 못해 가장이라도 되지 않는가. 

그런데 바로 그런 순간에
앞에 댓글을 남긴 이들 99%는
그런 사태에 어떻게 임하는가가 하나의 퀴즈인 것이다. 

자신은 비록 남을 비난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비난하는 이와 똑같은 형식으로 임하고 있는 것이다 .
이 문제의 문제를 스스로 보지 못하기에 
대부분 똑같은 문제에 매번 반복해서 걸리고 만다. 





좀 덧붙인다면 성인이 가르치는 바는 
우리가 현실에서 행하고자 하면 
곧바로 행할 수 있는 쉬운 내용들이다. 

마음만 가지면 왼발을 조금 앞으로 밟고 
오른 발을 조금 앞으로 밟는 것을 행하는 것처럼 
아주 쉬운 일이다. 

그래서 자신이 늘 하고 또 하는 일을 놓고 
여기에서 아주 조금만 더하고 빼서 좋음을 만들어내 
그것을 주변에 이웃에게 널리 베푸는 행위를 하자는 것이 
어제 LITTLE 님과 본인의 연구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마치 
어떤 운동선수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타서 강의를 시작해보라고 권유하거나, 
반대로 노벨상을 탄 물리학자에게 동네에서 테니스 강습을 해보라고 권유하는 것처럼 
당사자들이 마음은 갖지만 행하지 못하는 지극히 어려운 일들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성인이 가르치는 일들은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발만 조금 더 내민다거나 손만 조금 더 내미는 것처럼 
자신이 현실에서 조금만 마음을 바꾸면 
곧바로 행할 수 있는 그런 것을 그렇게 행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마호멧드나 다 사정이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남에게 베풀려면 자신이 복권에 당첨된 이후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이것은 마치 노벨상을 탄 물리학자의 상태의 어떤 이가 
테니스를 앞으로 열심히 배워 동네에서 테니스 무료 강습을 해주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사정이 같다. 
그냥 그 상태에서 마음만 일으키면 할 수 있는 것을 하지는 않고 
굳이 어려운 것 10 년내에는 거의 할 기회를 갖지 못하리라고 보는 것들만 
나열해서 그것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대부분의 현실 상태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노벨상을 탄 물리학자는 아닌 것이 분명한데 
그저 평범한 상태인데, 그 상태에서 이런 물리학자를 상대로 
무언가 물리학 지식을 베풀라는 것도 아니고 
테니스 코치를 상대로 테니스 교습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은 이 모든 이보다 못할 수 있지만, 
그러나 자신이 무언가 좋음을 베풀고자 하는 뜻만 갖는다면 
좋음을 베풀 상대는 또 반대로 무한한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찾아서 쉽게 자신이 베풀 수 있는 것을 
베풀면 그것이 바로 수행의 시작점인 것이다. 

그렇게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므로 
성인이 가르쳐준 좋은 방안은 현실에서 실천되지 않고 
그 반대의 내용만 끊임없이 부지런히 행하고 
돌아다니게 되는 것으로 본다. 

좋은 것을 베푸는 것, 
나쁜 것을 베풀지 않는 것, 
자신이 나쁨을 받더라도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평안히 참고 
상대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 
이 내용을 가지고 
위 사례의 각 경우에 적용하면 
사실은 그 문제가 그렇게 나타나지 않았음을 쉽게 본다. 

그것이 그 각 당사자에게 지극히 행하기 어려운 일인가를 놓고 따지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물리학자에게 테니스를 가르치라고 한 것도 아니고 
테니스 코치에게 물리학을 가르치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일반인에게 하늘을 나르는 수퍼맨이 되어서 사람을 도우라고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상태는 사실은 자신이 좋음을 줄 어떤 다른 이에게는 
이미 대단한 물리학자이기도 하고 코치이기도 하고 수퍼맨 수퍼우먼이기도 하므로 
그 상태에서 그저 마음만 그렇게 일으켜 
행동에 옮기면 된다고 가르친 것이다. 

위 상황들이 사실은 다 그런 것이다. 
솔직히 생각하면 다 왕이고 여왕이고 왕자고 공주인데 
그리고 그렇게도 행하는데 
그러나 또 옆에 사람을 놓고 보면 그 왕이나 여왕이나 왕자나 공주나 
별 볼일 없는 것도 사정이 같다. 
그렇지만, 다 왕이고 여왕이고 왕자고 공주이므로 
그렇게 성인이 가르쳐준 대로 임하면 곧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왕, 여왕, 왕자, 공주의 위치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때 어떤 방식으로 행하는가를 관찰하면 
대부분 성인이 가르쳐준 대로 하지 않고 
모두 네로 황제나 측천무후 아니면 히틀러 스탈린 등등
여하튼 폭군이 되어 상대에게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면을 배워야 할 스승의 모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최소한 그런 상태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만이라도 
배워 행하면 되는데 
댓글 다는 그 입장에서부터 그렇게 행하는 이가 
이미 극히 드물다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수행자는 최소한 그렇게 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현실에서 곧바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쉽게 쉬지 않고 끊임없이 행해 나가야 한다고 
보게 된다. 


이런 원칙을 어제 정하고 LITTLE 님과 본인은 
거리를 거닐면서 구체적 방안의 실천을 위해 임했으나 
LITTLE 님만 성취를 하고 본인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LITTLE 님은 최종적으로 수레에 잔뜩 짐을 무겁게 싣고 
움직이기 힘들어 하는 분을 발견하고 
그 분의 최종 도착지점까지 끝끝내 수레를 밀어드리고 
귀환하는 용기를 보여준 것이다. 
본인은 뒤따라가면서 관찰했지만, 밀지는 않고 
최종 귀환 직전에 잠깐 손을 얹어서 귀환을 하게 된 것이다. 

이미 cctv에 찍혀서 수행자 뉴스에 다 보도된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사정을 자세히 기술하지 않는다. 


유치원교사가 어린이를 에네르기파를 발사하여 
날려 버리는 모습만 보면 
대부분 그 교사를 비난하는데 앞장 서게 된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직접 부모가 되거나 보모가 되어 
그 아이를 맡아 기르면 
쉼도 없이 에네르기파 내공파를 날리고 
그외에도 또 다른 파를 스스로 개발하여 날리는데 
주력하게 된다. 증오파 혐오파 비난파..등등 헤아릴 수가 없다. 

김치는 수행자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김치의 비밀까지 여기서 언급하면 대단히 문제가 
심각해지고 어려워진다. 

어릴 때 이 김치문제를 잘 극복하지 못하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매순간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부딛히게 된다. 
gYMNCH 영자로 이렇게 표현하면 이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된다. 
국제문제까지 비화하게 된다. 

이것을 다 헤아린 입장에서 어린이를 교육해야 하는 입장에 
임할 때 
어떤 일반적인 교육방침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이미 MUN 님을 비롯하여 많은 이가 
이 문제에 대해 언급을 마친 바가 있다. 

그 글들을 다시 검색해 찾아내 
다시 여기에 붙일 생각은 없다. 
시간도 걸리고 이미 본인의 글이 너무 길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정은 같다. 

이는 물을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 하는 
물리 문제와 사정이 같다. 

다양한 방법이 있다. 

원칙은 A  지점은 높게 하고 B 지점은 낮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물이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 방법이 아니면 또 다른 더 어려운 신공을 발휘해야 한다. 
A 지점의 물을 모두 흡수하거나 뜬 다음 B 지점 위로 옮겨가 
떨어뜨려야 할 것이다. 

여하튼 그 이후의 상황도 위와 같다. 
옮겨 놓고 그 물이 다시 다른 곳으로 또 흘러가면 
잠깐 옮겨 놓고 곧바로 다른 상태가 되버리기 때문이다. 


교육자도 같은 상황이다. 

그대로 두면 어린 아이가 상황을 모른 채 
달려오는 기차나 자동차에 부딪혀 죽거나 죽을 만큼 
고통을 당할 것을 알아챈 어떤 이가 
그 어린아이를 구출할 방안이 
앞을 걸어가는 어린아이를 발로 걷어차 
다른 옆으로 밀어 떨어뜨리는 방안 밖에 없는 경우라면 

그렇게 발로 차 떨어뜨리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보는가. 

교육이란 그런 성격을 갖는 것이다. 

그러니 B 지점을 향해 변화를 시키고자 할 때
그렇게 행하면 좋음을 주고
그렇게 행하지 않으면 나쁨을 주어 
이 두 선택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들어
그렇게 행하도록 이끌고 유도하는 것이 교육이기도 하다.

그런데 좋음만을 많이 주어서 그 차이를 만들어내 
이끌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것도 그 좋음을 상대적으로 주지 않으면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 상대에게는 그것이 
몽둥이로 때린 것과 사정이 같아진다는 의미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왜 교육자는 좋음을 많이 주는 방편을 취하지 않고 
말을 안 듣는 이에게 나쁨을 많이 줌으로써 
어떤 변화를 일으키려고 노력하는가. 

그것은 교육자들이 다 사정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교육자가 한마디로 모두 재벌이 아닌 것이다. 
정해진 급료를 받고 교육에 다 임하는 것인데 
취할 방안은 별로 없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원리는 다 같지만, 
여기에 성인들이 취하는 방안과 
수행자가 취하는 방안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리고 각국의 스승들이 취하는 방안이 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성인들은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단지 말로써 무엇을 행하면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좋은 결과를 알려주고 
행하지 않으면 그로 인해 얻게 되는 나쁜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 차이가 바로 천국과 지옥이기도 하고 
열반해탈과 고통의 생사윤회이기도 하다. 

이 성인들이 취하는 방편은 그 이후는 방관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성인들의 관점은 그것이 아니다. 

이 내용을 이해하거나 이해를 못해도 믿고 나서 
자발적으로 변화해서 그렇게 행하는 것만을 
진정 원한다는 그런 취지이다 

즉 자신이 어떤 로보트나 기계를 만들어 
그 로보트를 어떤 상자 속에 넣는 것처럼 
가르침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그 이상 어떤 강제수단을 동원하고 
힘을 발휘해서 억지로 변화시키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방식을 
성인의 가르침 방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 방식이 가장 무섭고 엄격한
교육 방식이라는 것도 
수행자는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비유하면 멈추지 않으면 자동차에 부딛혀 고통을 받게 됨을 충분히 알려주고, 
그러나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이를 보고
직접 몽둥이를 들고 때려 더 이상 걸어나가지 못하게 막지는 않는 스승과 사정이 같다. 

이렇게 되면 그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몽둥이를 맞고 걸어가지 못하게 된 경우가 
그 당사자가 자신의 행위 이후 처하게 되는 상황보다는
나은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그 말을 듣고도 계속 걸어가다
자동차에 받혀서 6 개월간 병원에서 치료와 수술을 받고, 
그 이후 다시 평생 불구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런 성인의 가르침은 
지극히 무섭고 엄격한 최고의 스승의 가르침 방식인 것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방안도 위와 사정이 같다. 


두 번 말하지만, 그래도 말을 따르지 않으면 
나는 그를 죽인다. 
내가 그를 죽인다는 것은 그대로 둔다는 의미다. 
그대로 두면 그는 생사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의미다.  

하나님이 취하는 방안도 유사하다. 
세상의 현실 모습을 보면 나타나는 극과 극의 차이가 
바로 그런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수행자가 취하는 방식은 조금 또 다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놓고 생각할 때 
스스로 이것을 다 이해하고 졸업을 한 후 
위험에서 벗어나 머무르는 경우가 있다. 
아라한이라고 일컫는 분이다. 
더 배울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의미로 무학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수행자는 다시 
다른 이를 돕기 위하는 마음으로 
그런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나서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를 보살이라고 칭하게 되는 데 
보살에게는 
여러 단계가 있다. 

처음 보살 수행을 시작하는 초발심보살이 있고 

안인 수행을 원만히 마치고 
더 이상 범부의 번뇌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 불퇴전 상태의 보살이 있고 


이제 한 생의 수행만 더 마치면 
부처가 되는 극한점에 이른 일생보처 보살이 있고 

부처가 충분히 될 수 있는 상태를 오래 전에 지나쳤지만, 
그러나 무한한 중생의 제도를 위해 
성불을 미루고 보살로 남아 있는 
자비 이찬띠까형 보살 수행자도 있는 것이다. 


이래서 이 각 수행자가 취하는 방식은 
또 앞의 부처님과는 조금 사정이 다른 것이다. 

원칙적인 방식은 
자신은 탐욕을 버리고 집착을 버린 가운데 
다른 상대가 집착하는 좋음을 아낌없이 베풀고 [보시]
나쁨은 가하지 않고 [정계]
그리고 자신이 나쁨을 받으면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평안히 참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안인]

이런 수행을 쉼없이 정진하여 모두 원만히 성취하여 [정진]
각종 정려와 반야지혜의 수행을 성취하여 
중생제도에 임하는 것이 
가장 표준적인 원칙이다. 

그래서 수행자가 원칙적으로 
취하는 방편은 선하고 교묘한 방편들이다. 


그런데 좀더 수행력이 높은 보살들의 경우에는 
상대의 제도와 깨달음을 위해서
'온갖' 방편을 다 취하는 수행자들도 나타나게 된다. 

불퇴전위 이상의 대보살님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비유하면 
꼭 필요하다면 
칼로 상대의 발을 모두 자르거나 ... 등등의 방안으로 해쳐서 
그래서 그로 인해 자신이 지옥에서 무량겁 동안 지내게 됨을 
스스로 잘 알더라도
그 방편을 취해서 상대가 제도되고 깨달음에 이를 수 있게 된다면, 
이런 방편도 피하지 않고 취하여  
상대를 끝내 제도시키고야 말겠다. 

이런 분들이 나타나시는 것이다. 

일반 초발심보살로서는 감히 흉내내기 힘든 
분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방편이라도 상대를 해치면 
그로 인해 그런 지옥의 고통을 받는 것을 이미 자신이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상대를 위하여 자신이 그런 방편을 취하는 것은 
몰라서 그렇게 행하는 일반의 경우와 달리 
더더욱 힘든 것이다. 

그러나 중생제도를 위해서 그런 고통까지 자신이 
감수하고 말겠다는 입장에서 
이런 온갖 방편을 다 가리지 않고 취하는 것이다. 


이처럼 되려면 무간지옥에 실제 들어가 지내면서도 
그 상황에서 평안히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행상태에 이르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곤란함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초발심 수행자는 
자신의 손톱을 뽑아도 보고 
손가락도 하나 톱으로 잘라도 보면서 
그런 현실 상황에 처하게 되면 
도저히 그것을 평안히 참을 수 없는 상태에 아직 자신이 머물러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면 

이미 오래전에 수행을 시작하고 아승기겁의 수행을 다 원만히 마쳐서 
불퇴전위에 이르른 대보살 선배님들을
함부로 흉내내려 나서지 말고 

어디까지나 부처님이 가르쳐준 표준 원칙을 엄격히 준수해서 
수행에 임하고 
이후 
안인 수행을 다 원만히 마치고 
무생법인도 증득하고 

그런 연후에 온갖 방편을 배워 중생제도에 임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보게 된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강제적으로 억지로 어떤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방편을 통해서 끝내 상대가 자발적으로 
최종적인 최상의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것만이
그 주체의 입장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생을 제도하는 사정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외 일반적인 세속의 스승의 경우는 사정이 또 위와 다르다. 

이 경우부터는 일단 외관상 원하는 상태를 
강제적으로라도 행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임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별과 집착의 문제가 개입되기도 한다. 

스승이나 학생의 입장이나, 
서로 망상분별과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하던 원하는 결과에 이르게 하고 행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교육과정에 참여하게 됨을 의미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그 사정은 다르지 않다. 
교육에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행하지 못하면 
현실이, 자연이 그에 따른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도 
사정이 같다. 


여기에는 각 국마다 조금씩 다른 특색이 있음을 쉽게 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사실은 이들이 모두 다 훌륭한 세속의 스승이기도 한 것이다.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으면 잘못 행하면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그 반대면으로 
모두 가르쳐주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스승의 역할이고 
또 제자가 배워야 할 내용도 이것인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최근에 꾼 꿈 이야기를 했는데 
구봉서 씨와 배삼룡 씨를 꿈에서 보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꿈에서 생각한 내용은 그러나 적지 않았는데 
이것이 이런 내용과 관련된다고 본다. 

세상을 하나의 교육시설로 보고 대하면 
각국의 스승이 다 다른 방식으로 가르치는데 

그 가르침을 가장 쉽게 배우는 것은 
9 번의 사례를 놓고 책을 구해 그 내용을 배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를 하나하나 직접 경험해서 배우려면 
그 고통이 너무 절절하고 극심하기 때문이다. 

구봉서 씨를 꿈에서 보면서 그런 내용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스승을 만날 때는 적어도 세 번 절을 지극한 정성으로 올리는 공경을 표하고 
다삼작전의 취지대로 다양한 삼을 배우려는 
용기를 가져야 함을 꿈에서 본 배삼룡씨로부터  떠올리게 된다. 

이것은 개인적인 꿈 해석이고 시감상이다. 

우리의 현실을 놓고 보면 
누구나 무언가를 배워야 할 입장이다. 

우리 주변에 우리를 가르쳐 주는 분들은 
모두 우리의 스승이다. 

그것이 정면의 직접적인 내용이던 
아니면 그 반대면이던 사정은 같다. 
그러니 과거나 현재 현실의 모든 분이 다 스승인 것이기도 하다. 

그런 입장에서 배움은 우선 책으로 쉽게 배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임진 왜란전의 상황을 놓고 1 번 배우고 
임진 왜란 상태를 놓고 1  번 배우고 
그 이후 상태를 놓고 1 번 배우고 

병자 호란 전의 상황을 놓고 1 번 배우고 
정묘 호란 당시 왕이 9번 돌계단에 머리를 박고 피를 흘려가며 기합을 받고
절을 하면서 항복한 당시를 놓고 1 번 다시 배우고 
그 이후 상태를 놓고 1 번 배우고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기 전의 상황을 놓고 1 번 배우고 
한국을 병합한 후 식민지로 삼아 남녀에게 각기 어떻게 행했는가를 놓고 1 번 배우고 
그 이후 상태를 다시 놓고 1 번 배우면 

9 번 충분히 비슷한 사례를 놓고 배워야 할 내용을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주로 몽둥이로 학생을 때리면서 가르친다면,
옆 이웃 국가의 문화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무언가를 지시하는데 그것을 따르지 않을 때
각 국의 스승이 취하는 방편이 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은 바다를 접해서 그런지
말을 하고 그 말을 따르지 않는 상대는
칼로 베어 버리는 문화가 있다고 본다.

중국은 넓은 땅을 접해서 그런지
말을 하고 그 말을 따르지 않는 상대는 
묶고 땅에 묻어 버리는 방식을 취한다고 본다. 

세상의 스승이란, 그가 말로서 처음 가르쳐보려 하다가 
상대가 그 말을 따라 주지 않으면
그저 방관하거나 스스로 자발적으로 배워서 이해해 행하기를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갖는 뜻에 묶이고 집착한 가운데
어떻하던지 상대를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상태에 이르도록 
강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관련 노래로 Formidable 이라는 노래를 들어 본다. 
'매'의 한 종류로서 나름 유명한 스트로우매
즉 빨대로 만든 매라는 분이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불어로  Formidable은 훌륭한 이란 뜻을 갖는다고 한다. 
그런데 외부에서 볼 때는 예를 들어 영국사람이 이 단어를 보면 
그런 의미보다는 공포스러운 이란 뜻을 취해 갖는다고 한다. 

세상의 스승은 사실은 배우는 입장에서 
몇십년 게속 쉼없이 노력해도 상대를 뛰어넘기 힘든 실력을 갖춘 매우 훌륭한 분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지극히 많은 고통을 주기도 했고 또 공포를 가져다 주는 분들이기도 한 것이
현실이다.

현실에서 누군가를 배워야 할 스승으로 보게 되는 경우는 
다 서로 간에 각 부분에 그런 차이를 본다는 의미다. 

노벨상 물리학자는 테니스를 배울 때 테니스 코치를 그런 
상대로 보게 되고 

테니스코치는 노벨상 물리학자에게 과학을 배울 때 
상대를 그렇게 보게 된다. 

이들은 제각각 어떤 면에서는 또 제각각 남의 스승이고 
왕이고 여왕이고 왕자고 공주이지만, 

그러나 또 한편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반대의 역할을 해야만 
하는 입장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복잡한 현실에 누구나 공통적으로 
처해 살아가고 있고 
그런 가운데 가끔 문제 상황에 자신이나 이웃이나 우리가 다 함께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용 가운데 
극히 일부의 사례들을 
LITTLE 님이 일일히 찾아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현실에서 수많은 가르침을 베푸는 현실의 스승을 쉼없이 만나게 된다. 

일본에서 수상의 이름을 보면 
이런 내용을 쉽게 본다. 
일본에서는 정치방면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들이기도 한데 
이들 이름을 놓고 생각해보면 
미끼, 다나까, (다) 나까소네~, 
그리고 최근에 물고기를 다 낚은 다음에 
이제는 어떻게 하냐고 하는 질문에 

이제는 칼로 회를 쳐서 먹는 일밖에는 남지 않았다고 보고 
과감히 명령을 하시는 분이 최고 인기라고 한다. 

그 분의 성함을 보면 그 의미가 적혀 있다. 

갈고리를 만들어 여기에 미끼를 매달고 
유혹한 다음 상대가 이에 붙잡히면
이후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칠수록 더욱 고통을 느끼게 만들어 놓고 

이렇게 상대가 잡힌 이후에는 
칼로 살을 베어서 맛있게 섭취하겠다는 
뜻을 시감상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LITTLE 님이 역발산기개세라는 시를 지은
항우 선생님을 예로 들었는데 

항우 선생님은 이름에서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항의하거나 저항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임을 
시감상방법으로 읽을 수 있다. 

이 분은 단지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가능성만으로도 
그것을 심히 걱정하여 
그 상대를 모두 묶어 땅에 묻어 버리는 벌을 주시는 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자신이 체포한 진나라 군사들 수십만명에게 
단지 항거할 가능성이 조금 있다는 사실만으로 
중간에 모두 그런 벌을 집행한 분인 것이다. 

물론 최종적으로 젖가슴을 의미하는 부드러운 분이 
항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그러나 이 분에게 일단 따끔한 교훈을 주는 분은 
또 다른 분이 있기도 하다. 

이 모든 분들이 각기 어떤 한 방면의 최고수가 되어
세상에서 가르침을 베풀고자 할 때
그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식들을 잘 관찰해야 한다고 본다. 


9 번 사례를 보고도 배우지 못하면 
그 이후 앞으로 다시 12 번 18 번 직접 하나하나 경험하면서
하나하나를 배워 나간다 해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못한다. 

중국 일본을 벗어나 또 다른 곳을 찾아다니며 
교훈을 얻으려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ㄴ느다. 

어떤 이가 가장 최고수 스승의 입장인데 

말을 하고 지시를 하는데 그래도 안 들으면
간단히 총을 꺼내 학생들을 사살함으로써 가르침을 
주시는 분도 있고 

또는 가장 어린 아이인 상태에서 상대를 묶어서 사정없이
송곳으로 찔러 한번 강한 교훈을 주고 
이후에는 모든 가르침을 간단히 송곳 하나만으로 가르쳐
이끌어 가는 분도 있고 

아니면 말을 하는데 안 듣는 이를 모두 모아서 
독가스를 마시게 힘으로써 가르치려는 이도 있고 

또는 이들을 모두 모아서 혹독한 얼음 들판에 방치해두어
가르치려는 이도 있고, 

가지가지인 것이다. 

나무에 사람을 묶어 매단 다음
몸에 못을 박아 놓고
죽을 때까지 방치해 두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가르치고 따르게 하려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칼이 목에 떨어지는 장치를 통해 
목을 잘라 가르치고 따르게 하려는 경우도 있다. 

각국마다 특색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 외에 
그 공포의 정도나 가혹함의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광활하게 사례를 찾아 나아가는 것보다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처한 현실내용을 그대로 놓고
이 내용을 그냥 직시하는 것이
차라리 더 교훈을 많이 빨리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옆나라 아베 수상은 
과거의 기록을 놓고 우리에게 무언가 중요한 점을 
아직도 배우지 못했느냐고
쉼없이 질문을 하면서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이들을 상대로 
또 쉼없이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이름 자체로 그 분은 그런 경우에 대처방안을
제시한다. 
그런 경우는 
아~ 베어버려 이런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그 최고수의 이름을 놓고 
시 감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수없이 비슷한 교훈을 이미 반복해 주었는데도  
그래도 여전히 교훈을 받지 못하고 임하는 이들에게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한가. 
이런 의미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또 내부 사정이 복잡하다. 

옆에 아베 수상을 하나의 반면 교사라고 놓는다면 
우리 안에는 또 다른 많은 스승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내 손에 한 번 잡히면 단 칼에 상대를 베겠다거나 이미 베었다는 등을 외치는 스승도 있고 , 
또는 그런 스승을 상대하여 상대의 칼날에 베임을 당한 다음 
오  네가 (날 이렇게 베는가..) 이렇게 외치는 입장도 있고 
그러거나 저러가나 둘 다 내 손에 잡히면 남김없이 다 베어버리겠다고 
외치는 이도 있다. 

또 한편 이러러나 저러거나 모든 경우에 다 열심히
성실히 따라 배우겠다고
열의를 불태우면서 각 교육현장에 성실히 참석하여
임하는 이들도 주변에는 많이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이 앞에서 든 모든 사례에서 
동일한 형태로 일어났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즉,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일합병 
이런 역사현실을 놓고 
이 상황을 음미하면
거의 같은 형태로 같은 모습이 반복되는 가운데
주변의 스승들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자 노력하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과거 주변에서는 우리를 도와주고 나선
주변에 또 다른 스승들이 있었음을 살필 수 있고 
그외에도 또 또 다른 스승들도 있었음을
각 경우마다 살필 수 있다. 

극히 최근 사례를 놓고 생각해보면
이들 각 주변 여러 스승들은
각기 나뉘어 싸우는 형제를 놓고
각기 또 다른 교훈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각 입장에서 보면 다 소원을 성취할 뻔 하다가 
성취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되버린 것처럼 결과가 되기는 되었지만, 

사실 주변 스승은 나름대로 자신이 돕고자 하는 이를 
도와주려다 그렇게 된 것이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다. 

여하튼 그렇게 되어서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안타까움을 생각하면 한없이 안타까운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냉정히 이 현실 상황을 그대로 직시하면서 
이 상황을 놓고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그래서 그렇게 이끈 행위나 반응 방식을 교정하지 못하면 

그래서 대부분 99%가 반응하는 방식으로 임하면 
이미 본 9번의 사례와 같은 형태를 
앞으로도 무한히 반복해 경험하게 될 것임은 
당연한 것이다. 

이것이 냉정한 현실의 과학이고 진리라고 할 수 있다. 

한 번 칼에 베였고 
두 번 땅에 묻히고 
세 번 칼에 베이는데도 
그렇게 된 원인과 과정과 결과에서 
스승들로부터 교훈을 얻어갖지 못하면 
같은 결과를 맞이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스승들이
각기 세상을 놓고 가르치는 방식이다. 

여기서 배우지 못하면 설령 묶여
독특한 개스실에 들어가 고통을 받는다 해도  
더 달리 배울 내용은 별달리 없게 된다. 


그럴 때는 그저 다음 노래나 시감상으로 들을 일이다. 

세상의 스승들은
성인들과는 가르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는 점이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상대가 배우지 않으려 하거나, 좀 게으르거나
능력이 떨어져 잘 배우지 못하면, 
그저 그대로 방치해두고 기회를 주고 또 주면
좀 더 상태가 나을 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이 세상의 스승들은 스스로 최고의 고수가 된 상태에서도 
그렇게 참아 주지 못한다. 

이미 스스로 자신부터 번뇌에 묶인 상태에서 
스스로를 묶은 번뇌에 스스로 집착하고 묶인 상태이기에 
스스로 풀려나지 못하고 
또 그런 상태에서 다른 이를 자신처럼 묶고
끝내 자신의 뜻에 따라 행하도록 
강제할 온갖 방편을 찾아 나서고  
그 방편을 행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번뇌에 싸인 세속의 스승들은 
스스로 번뇌에 묶여 스스로 그 번뇌에 사역당하는 한편  
다른 이도 사역시키는 유형의 스승들인 것이다. 

그런데 망상분별과 집착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그 누구나 
다 각 방면에서 공통적으로 이런 스승의 자격을 
갖고 다른 이를 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길을 3인이 걸어간다면 
여기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 내용도 바로 이런 사정과 관련된다. 

세상에 다른 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지 않는 이는 
전혀 없다. 
그것은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죄수라 해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자신처럼 행하면 안 된다는 반대의 내용을 
몸소 실천해 보여주는 
반면 스승의 최고수인 것이다. 

이렇게 모든 현실의 생명을 다 스승으로 관하는 입장에서, 
여기에서
앞과 같은 비교적 바람직하지 않은 형태에 속하지 않고
그 예외에 속하는 스승은 현실에서  
과연 누구인가. 

예수님은 여인을 죄인으로 체포해 온 이들을 상대로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누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자신이 스스로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자신은 그런 스승이 아닌가. 
이렇게 물어 보고 답해야 한다고 본다. 

대부분 그 잘못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기에 
그것을 스스로 의식하는 것이
이후 모든 것의 출발점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주인이 되어 
묶임에서 풀려나지 못한다면, 
그래서 현실의 대부분 99%가 
어떤 사태를 놓고 반응하는 방식대로 임하면 
이들 99%는 상대로부터 
그처럼 가르침을 받고 고통을 겪게 마련인 것이다. 

이런 각 상황에 성인들은 
또 어떻게 행하라고 몸소 가르치시는가. 

예수님이 그 내용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부처님이 그 내용을 보여주시기도 한다. 

가장 극악한 현실의 사람들이 
자신을 가장 극악하게 대할 때 
이 성인들은 그렇게 몸소 그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말씀으로는 또 간단하게 
같은 가르침을 가르쳐주신다. 

탐욕에는 이렇게 대처하고 
미움과 증오, 분노에는 또 이렇게 대처하고 
또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행하고 
저런 경우에는 저렇게 행하라..
...
그리고 이런 내용들이 
사실 현실에서 배워 열심히 
실천해야 할 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어제 LITTLE 님과 본인이 그런 각오로 길을 나섰다가 
출발 직후 곧바로 덫에 걸려 들어 
본인은 그 실천이 무산되었다는 사정을
여기에 이렇게 길게 그 사정을 적는 것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지극히 어려워 행하기 불가능한 것이 아닌데도  
그러나 번뇌에 묶인 죄인의 상태에서
스스로 포승줄을 풀고 벗어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것도 또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풀려나지 못하면 
그 묶임에 묶여 세상의 고통을 받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악마나 생명을 묶는 내용의
근본 정체는 사실은 별것이 아니다.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는 각 생명의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번뇌이다. 

번뇌는 개(蓋), 결(結), 계(繫), 구(垢), 누(漏), 박(縛), 
사(使), 소해(燒害), 액(軛), 전(箭), 조림(稠林), 주올(株杌), 취(取), 폭류(瀑流) 등의 
다른 표현으로도 표현한다. 

이런 번뇌가 생명을 묶어 
고통의 일을 시키고 
이 고통의 현장 저 고통의 현장으로 끌고 다니고
끝없는 고통의 생사 윤회를 받게 하는 것이므로, 

이 번뇌를 이처럼 수많은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문적인 불교 용어이지만,
이 각각이 다 그런 사정과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화살에 박힌 후 이 화살의 정체나 
원인 재료를 따지는 것은 늦다. 

미리 책을 통해 과거사실과 현재사실을 놓고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본다. 

꿈에 서 본 
구봉서님과
배삼룡님이
본인에게 전달하고자 한 의미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시 감상을 해보게 된다.  




>>>

Stromae - Formidable

>>>

Stromae - Formidable (Clip Officiel)

>>>

http://www.youtube.com/watch?v=cpWsHdWUgTE

>>>





○ [pt op tr]  Formidable 가사 



이 노래를 부르는 스트로우매 이분은
쉽게 말하자면 빨대로 매를 만들어 가르치겠다거나 
빨대로 매를 삼아 상대가 자신을 가르쳐달라는 그런 의미로
노래를 부르시는 스승이 아닌가 
시 감상 차원에서 생각해본다. 
도움을 주어서 상대가 자신을 가르쳐주면
열심히 배우겠다고 노래부르는데, 
그러나 빨대로 만든 매에서 빨대도 빨대 나름이다. 
때로는 치명적이다. 

엄격하기로 보면 가장 엄격하게 내용을 가르치는 분들은 성인인데 
그러나 성인들은 현실에서는 
가장 온화한 방식으로 가르치신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성인들의 가르침을 
경험으로 맞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역시 이런 가르침 역시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현실은 사실은 예수님이 보여주는 사례처럼 이뤄지지 않고 
끝내 상대를 잡아 가르치려는 스승들의 사례를 통해 
약간은 Formidable 한 형태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어느 형태던 여기서 배우지 못하면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고 
실질적으로 따지면 성인의 가르침의 경우가 
그 결과가 더 극심한 것이기도 하다. 

무한한 생사 윤회의 고통
영원한 지옥불..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현실에서 중환자실에서 교훈을 배우거나 
교도소에서 교훈을 배운다 해도 
크게 다른 것은 아닌 것이다. 


[ 자료화면 ]
매춘부 단속에 걸려서 채찍질
http://www.youtube.com/watch?v=clnpZxXkGFM






자신이 누군가에 억울하게 붙잡혀 고통을 당하는 어떤 
상황을 놓고
수행자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반인은 자신이 부당하고 억울하게 맞으며 고통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수행자는 자신이 상대의 공격을 모두 평안히 참고
이 공격을 모두 다 자신이 훌륭히 막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평안히 임하는 것이다. 

물론 일반인의 눈에는 다 똑같이 맞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수행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등을 상대가 채찍으로 때리면 
수행자는 상대의 채찍을 자신이 등으로 막았다고 여기고 
평안히 임한다. 

그래서 일반 세상을 이곳저곳을 다 똑같이 돌아다니는데 
각 경우마다 일반인과 수행자가 
평가하고 음미하는 내용이 다 다른 것이다. 

공교롭게 상대의 공격을 평안히 막는 곳이 
상대가 자신을 공격하고 때리는 그 지점이라는 것이 
그런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이기도 하다. 


[자료 화면]

>>>

수단 - 채찍질 받는 여성

>>>

https://www.youtube.com/watch?v=X4CzpBJfCqs

>>>



2013. 10. 5.

경찰에게 모르는 남성과 같은 차에 탄 이유로 

태형을 선고 받아 실행중인 여성의 모습

[자료 화면]

채찍에맞으심
http://www.youtube.com/watch?v=q0aAR6TBZMo





현실에서
다 쉼이 없이 열심히 각 분야에서 꾸준히 노력을 한다고 보게 된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각기 차이가 발생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어떤 한 부분에서 과연 누가 스승이고 누가 제자인가가
의문시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간단히 축구 경기 하나를 놓고 생각해보아도
이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다. 



동네에서는 상당히 자신이 잘한다고 여길 수 있는데 
그러나 막상 경기에 임하면 자신보다 월등히 
잘 하는 이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하는 이라고 해도 
막상 팀을 구성해 국내 대회에 나가면
그렇게 뜻대로 쉽게 상대를 이길 수 없다. 


그런 시합을 놓고 관찰할 때 
다들 열심히 임하지만, 
그래도 그 가운데에서 다시 월등히 잘하는 팀이 있고 
그래서 서로 시합을 하면 
매번 이기는 팀이 있고 매번 지는 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매번 이기는 팀과
각기 뛰어난 선수들만 모아 국가 팀을 만들어
또 다른 국가팀들과 함께 모여 경기를 하면 
또 사정이 달라진다. 

역시 앞의 경우와 같다. 

그래도 이 가운데 어느 팀이 
어느 지역에서는 상당히 잘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조금만 범위를 넓히면
또 사정이 다시 달라진다. 

그래서 세계 대회를 놓고 
이 문제를 바라보면 

대략 축구 분야에서는 
브라질팀이나 서독팀 이탈리아팀 스페인 팀 등을 놓고 
비교적 최정상 팀이고 선수들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현실 사정이다. 

그리고 
처음 한 동네에서
자신이 축구를 꽤 잘한다고 생각하면서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스승의 위치에서 가르치던 이는 
다시 이런 관계를 모두 놓고 
이 가운데 과연 
누가 스승이고 누가 제자인가를 곧바로 쉽게 알게 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그런데 이 경우 축구를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최고 팀의 최고 선수들이라고 하여도 
그러나 종목이 조금 다른 옆 종목에 출전시키면 
바로 그 지위가 뒤바꿔진다. 

예를 들어 농구같은 종목이나
세계 바둑대회 등으로 종목을 옮겨 넘어가면 
또 사정이 달라지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호 상대적 관계는 수없이
같은 형태로 반복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다 제 각각 스승의 자격이 있고 
동시에 또 다른 생명은 다 자신의 스승의 자격을 갖는 것으로 
보아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내용은 각 방면에서
하나의 방편적 수단적 지혜나 기술 지식 능력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이해하는 바탕에서 
다음 문제를 살피자. 

이런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어떤 이가 
좋음을 모든 생명에게 차별없이 베푼다. 
나쁨을 모든 생명에게 가하지 않는다. 
자신이 나쁨을 받을 때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평안히 참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보복을 가하지 않는다. 
이런 수행 덕목을 원만히 성취하지 못한 상태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만일 그가 어떤 한 부분에서 
다른 생명들보다 현격하게 차이나는 방편적 지혜나 기술, 능력을 취득하고 나서, 

자신이 조금이라도 탐욕을 일으켜 갖게 되거나
또는 부당하다고 느끼는 고통을 억울하게 당하게 되는 상태에 처하게 되면 
그는 이 방편적 수단적 지혜, 기술,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어떻게 행하여 나가겠는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곧 그처럼 그 부분에서 현실의 왕도 되고
남의 스승도 되어서 
자신의 이웃들을 대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이 사정을 놓고 그 이웃이 처하게 되는 사정을 살필고자 한다면, 
그것이 바로 앞에서 우리가 겪은 과거 비극적인 사례로서 
9 번의 사례와 같은 형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내용을 놓고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우리가 현실에서 교훈을 배워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일 그 상황과 정반대의 입장이 되면 
자신은 또 그렇게 행하지 않으려는 것인가. 

그것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모든 경우에 그런 수단적 방편적 기술이나 지식 능력들은 
다 이렇게 사용할 수도 있고 
저렇게 사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방편은 기본적으로 선악무기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무기는 선악 중간이란 의미를 본래 갖는 표현이지만 
공격 무기가 된다고 말할 때의 무기의 의미도 나타내기 위하여 
중의적으로 간단히 사용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방편적 지혜를 놓고 
자신이 정말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는 
앞의 수행덕목의 내용을 잘 검토해 보고 
실제로 자신이 현실에서
무언가 어느 부분에 그렇게 상대적으로 뛰어난 상태에 임했을 때 
실제로 자신보다 못한 다른 이에게는
어떻게 행했는가를 검토해 봄으로써도 알 수 있다. 

남자는 대부분 군대에 가 한 번은 병장도 되고 
또 남녀 누구나 한 번은 부모가 되기도 하고
또 정말 남을 가르치고 이끄는 스승의 위치에 서기도 한다. 

또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은 
사람 아닌 다른 동물 물고기 곤충 등을 대할 때는
거의 수퍼맨과 같은 상태로 상대 생명을 대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도 해도 되고 저렇게도 해도 될 때 
자신은 이들을 상대로 어떻게 행하였던가, 
또 앞으로 행하려고 하는가를 스스로 검토해 봄으로써 
자신이 반대로 다른 생명들로부터 어떤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인가도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 자신이 다시 어떤 상태가 되어
그 상대를 대하고 임하고자 하는가를 
늘 이런 입장에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서정보

 

 

 

 

































































































































































































































































































































































































































































































































































































































































































































































































































































































































































































































































































































































































































































































































































































































































































































































































































댓글 테이블 

◈Lab value 불기2559/01/14/수/17:37


♥ 잡담 ♥다삼작전과 중독현상 

이번에 위내시경 검사와 약 복용 이후 
한 10 일간 배에 계속된 통증을 느끼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처음 위염약으로 처방된 약을 먹고 나서 
강한 속쓰림 현상을 경험하였는데, 
사실은 그 약들이 그런 증상을 치료하는 약이어서 
이후 그 약을 계속 더 꾸준히 먹었던 것이다. 

물론 나중엔 이것이 원인이라고 보고 이 약을 끊었지만, 
그 증상은 없어지지 않고 
하루 종일 통증이 계속되는 이상한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많은 중독현상을 일으키는 것들이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 담배를 피던 때 그 담배는 맛도 역하고 
현기증만 일으키던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담배를 끊으면 작업이 잘 안되는 중독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다행히 술에는 중독현상이 없어서 
1년에 술마시는 횟수를 셀 수 있는 정도로 
아주 피하기 힘든 경우에만 마시는 상태이지만, 

그외에 중독현상을 일으키는 많은 것들이 
비슷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일반 음식이나 커피, 차, 등등의 기호음식도 
이런 점에서 사정이 같다고 본다. 

그렇게 중독현상을 일으키는 것들을 
갑자기 끊게 되면 오히려 많은 부작용을 오랫동안 겪게 된다 .
처음에 그런 중독증상이 없이도 
즐거움과 좋음을 얻었던 상태에 비해 
매우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이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이 중독증상에 묶이면 결국 그런 묶임에 의한 
피해를 받는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중독되었던 것을 대신하는 무언가를
다시 찾아야 하고
또 대신 여기에 자신을 중독시켜야 하는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담배를 끊는다고 전자담배를 피우려고 하니, 
이 전자담배도 또 하나의 중독을 불러 일으킨다고 하고, 
전자담배도 자세히 알아보니 
기존의 담배와 마찬가지로 많은 부작용을 갖는다고 한다. 

결국 기존에 중독현상을 일으키던 것들을 
대체할 것을 찾게 되는데 
이것은 과거의 것들과는 달리 부작용이 적고 
가능하면 오히려 장점이 많은 
그래서 사실은 중'독'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좋은 습관을 대신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게 된다. 



[그림- 중독현상] 

 
지금 진행하는 연구작전명은 다삼작전이다. 

그래서 다삼작전에 어울리는 새로운 중독(?) 행위를 개발해내기로 했다.

그간 몸이 아플 때 자주 잠을 자고 꿈을 꾸었는데
어느 천막교회 같은 곳에서
희극배우 구봉서씨와 배삼룡씨를 보았는데 
꿈 속에서 천막의 물을 닦아 내면 말이 나오게 될 것이라는 말을 
꿈에서 들었다. 

무슨 의미인가 잘 이해는 못하는데, 
아픔을 느끼는 동안 침대에 많이 누워 있다 보니 
꿈도 많이 꾸었다. 

그 가운데 어떤 꿈 내용은 꿀 때마다 반복해 꿈을 꾸는 
이상한 경험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현실의 통증이나 현실의 내용이 사실은 
꿈과 같은 내용이라는 내용을
꿈 안에서 반복해 말해 주는 
꿈이었던 것 같다. 

이런 비슷한 내용이 
영화 인셉션(2010)에서 나오는 것으로 안다. 

꿈 속에 어떤 세계를 들어가는데 
그것이 꿈 안의 또 다른 꿈의 세계이고 
다시 그 안의 또 다른 꿈의 세계에 들어가고
또 그 세계에서 벗어 나오는 그런 내용의 영화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이 영화를 만든 놀란 감독은 
최근에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도 만들었는데 
이 영화도 또 수행자에게 비슷한 주제를 던지는 것으로 본다 .


이 현실이 꿈과 같은데 
다시 이 현실 속에서 인류 구제를 위해 항성간 여행을 하고
시간 여행도 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것인데 
결국 수행자가 이 현실 속에서 향해 나아가는 방편의 수행도 
이런 방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림 -인셉션_인터스텔라+놀란감독] 

최근에는 몸이 많이 좋아졌는데 
그 큰 계기를 통증을 그대로 두고 
이 통증이 느껴지는 현실 그 자체가 
꿈과 같고 그 실재가 공하다는 데에서 
이 통증에서 벗어나는 방안을 취한 데에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더라도, 
다시 현실에서 통증을 없앨 다른 방편을 취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는데, 
여하튼 전자를 우선시하면서 
뒤의 방안은 보조적으로 사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다행히 뒤의 방안을 보조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이
앞의 방안만으로 최근에는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마 그간 중독된 약물이 이제 체외로 빠져나가고
새로 투여한 겔포스와 같은 약이 도움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새로운 약이던 과거 약이던 크게 의존하지 않고
통증에 대처하려고 노력한 결과로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겔포스와 같은 새약도 
최소한만을 투여하면서 고통에 대처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또 다른 새로운 꿈을 반복해 꾸는 경향이 있는데 
무언가 과거 글이나 인터넷 사이트를 접속하는데 
그 안에서 조금은 엉뚱한 과거의 글을 만나고 
또 그 안에 계속 수많은 글들이 나타나 
이것을 꿈 속에서 정리하는 꿈을 자주 반복해 꾸게 된다. 


사실 요즘 과거 글들을 백업받고 난 후 
이 글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가 고민사항이기는 한데 
이 내용이 꿈에서 그렇게 반영되어 
자주 반복해서 꿈을 꾸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little 님의 노력으로 
이 문제에 좋은 해결책을 얻어낸 것으로 생각한다. 

우선 과거글은 별도로 정리를 한다기 보다는 
백업받은 상태로 그대로 두고 
키워드 낱글자 검색을 통해 관련글들을 찾아내 이용하고 

한편 기회가 될 때마다 색인기호를 추가해 
관련글들을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나간다. 

그리고 이들 조각글로 부분적인 완성글을 
완성하면 이를 [op] 출력본으로 출력하는 한편 

이 출력본을 생산해낸 
관련글의 링크를
그 조각글 가운데 하나에 문서정보로 모두 기재하고 
그 조각글의 위치를 기점으로 
추후 보다 체계적인 글의 완성을 향해 
작업해 나가는 방안을 생각하게 된다. 

과거 방식처럼 어떤 주제마다 
일일히 목록 파일을 별도로 만들어 
관리하는 것보다 현재 백업된 형태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덜 번잡하게 된다고 본다. 

이런 방식으로 조금씩 글을 체계적으로 구성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현재 인턴연구원이 일종의 중독 상태가 되어
자주 행하는 마인크래프트 게임이 있다.

레고 블록처럼 각 재료를 더하고 빼고 하여
무언가를 만들고 이 안에서 무언가 여러가지를 하는 게임으로 안다. 

그런데 이런 조각글을 가지고 
더하고 빼고 하면서 체계적인 글을 완성해 나가는 작업도  
연구를 진행하는 나자신에게 마치 하나의 오락처럼
매번 즐거움을 안겨다 주고 
중독현상을 일으키는 연구 과정이 되기를 희망하게 된다. 


[그림- 마인크래프트 ]


현재 옆에서 게임에 열중 중인 묘길상 인턴연구원을 초빙하여 
마인크래프트에서 무언가 재료를 캐내고 
그것을 조합해 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방안을 배우는 중이다. 

어떻게 하는 지 몰라서 자주 물어보게 되는데
일일히 알려주는 것을 상당히 귀찮아 한다. 음~ 



[그림- 묘길상 인턴연구원 신세계 창작 기술 전수 ]

한편 이외에도 

다삼작전에서는 
기존의 좋지 않은 중독현상을 대체하고 
그 대신 매일 자주 반복해서 습관화해야 할 내용으로 
다음을 선택하게 된다 .

삼귀의 ( 불법승 삼보에 대하여 하루에 반복) 
삼학의 반복 수행
계율부분-
하루에 최소한 삼보시 수행 (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 등을 하루에 3 회 이상 반복)
정려부분 -
삼삼매 반복 수행  ( 쉬는 시간마다 공삼매, 무상삼매, 무원,무작삼매 반복 수행 )
지혜부분 -
하루에 경전 3 문단 그리고 다리니의 반복 암송  

우선 이 정도만 반복 습관화할 내용을 
추려 보게 된다. 

수행인으로써는 가능한 
이런 다삼작전의 내용을 반복 수행하여 
기존의 중독현상을 벗어남과 동시에 
수행을 정진해야 할 필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문서정보

 


댓글 테이블 

◈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5/01/14/수/13:12


♥ 잡담 ♥조각글의 획기적인 편집방안 

doctr 님의 글을 보면서 
doctr 님의 행복론 총론이 조각글을 통해
체계적인 글의 완성이 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았다. 

체계적인 내용에 각 조각글을 끼어 넣는 방안인데 

행복론 총론과 같은 경우 
기존 체계에서 글을 작성하는 경우 
기존 작성한 내용과 함께 

편집해야 할 분량이 증가함과 함께  
새로 추가된 조각글의 관리가 문제로 된다. 


또 다른 페이지에 총론 관련 조각글을 올리고 
이것을 다시 총론 편집과정에서 이용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일단 이를 검색해 찾고 
다시 이를 기존 체계안에 포함해 넣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런 경우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글접기 기능을 이용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우선, 
접기 기능은 글을 관리하고 표시하는데는 편하지만, 

기존에 이 기능을 이용하면
다음과 같은 부작용이 있게 되었다. 

즉, 해당 부분에 대해 백업하고 검색과정에서 이용하기 위해서는 
백업과정에서 일단 해당 페이지에서 그렇게 접은 부분을 일일히 찾아서 

그 부분을 수동으로 편 다음 복사해야 한다는 불편이 있었다. 



그러나 글 성격에 따라 백업과정에서 제외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부분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경우로는 조각글을 다른 곳에 다시 복사해 사용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이른바 [op, tr, pt] 의 표지가 불은 글들이다. 


각기 원본 조각글을 바탕으로 

출력된 글, [op]

원본자격이 이동되어진 글(과거원본) [tr]

원본의 복사본글 [pt] 

의 글들이다. 


이 글들이 다른 페이지에 중복 제시될 때, 

이것을 다시 백업해 이용하면, 

결국은 같은 조각글 내용이 중복 백업 관리되는 문제가 있게 된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오히려 접기 기능을 이용하여 

단순한 텍스트 복사 과정에서는 

해당 내용이 복사되지 않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doctr 님이 아래에 기재한 내용을 
다시 어느 곳에 재사용하고자 할 때 
그것의 위치를 이동시키거나 하지 않고 
그 원본을 그대로 두고 
그 부분을 복사해 사용하면 된다고 본다. 

이 경우 분량은 표면상으로는 크게 증가하지 않고 
내용을 보충할 수 있다. 

또 링크를 걸지만, 링크를 일일히 이용하기 보다는 편의성이 더 증가하는 장점이 있다. 

이 기능을 이용하면, 
조각글의 위치와 관계없이 전체글을 체계적으로 작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백업할 경우 같은 내용의 글들이 여러 곳에서 반복 검색되는 문제도 
방지할 수 있게 된다고 본다. 




[샘플] 
[pt] ○ 세상의 일체의 어머니가 자식에게 바라는 희망
[pt] fr http://story007.tistory.com/1022 ☞○ 세상의 일체의 어머니가 자식에게 바라는 희망



○  



참고로 

접기는 편집창의 메뉴를 클릭해 사용할 수 있지만, 
다음의 핫키로도 지원한다. oo, 2


○ 




사진 크기에 따라 페이지 크기를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가의 문제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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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2015/01/13/화/18:53


♥ 잡담 ♥고통의 해소와 수행문제 

고통의 해소 문제나 소원의 성취 문제 등을 놓고 생각할 때
대부분은 당면한 고통을 제거하고 
당장 추구하는 소원을 성취하는 것을 중요시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일체가 다 실답지 않고, 실재는 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일체 현상을 평안하게 참고 받아들이는 안인의 수행을 실천하고 
현실이 곧 니르바나임을 깨달아
이에 머무르는 것이 필요함을 말하게 된다. 

당장의 고통을 해결하고 소원을 성취하는 것보다 
왜 이것이 근본적인 방안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는 이미 앞 글에서 대략적으로 밝혔다고 본다. 
http://buddhism007.tistory.com/696

또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미 잡아함경 해설 부분에서 제시되고 있다. 

http://buddhism007.tistory.com/228 ♠○ 무상한 현상에 목표를 설정하는 일반의 경우와 불교의 목표의 차이 

간단히 말하면,
일체 현상은 무상하여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 것이어서 
아무리 좋은 것이더라도 결국 무너지고 사라지는 것이고, 
또 망상분별과 집착속에서 추구하는 것들은 
본래 그것이 무한하고 끝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상분별과 집착을 끊지 못하는 한, 
그 망상분별과 집착으로 받는 고통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또 다음의 의문들이
근본적으로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실재가 공한데 왜 이런 고통의 현실이
실답지 않게 - 그러나 현실적으로 매우 진짜처럼 고통을 주는 형태로 - 발생하는가. 

또 실재가 공하여 현실이 실답지 않다는데, 
그러나 왜 현실에서는 보시-정계-안인-정진-정려-반야-방편-원-력-지 등의 
수행을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이런 것이 모두 의문이 된다고 본다. 


가장 먼저 왜 삶이 고통인가 
도대체 왜 삶은 이런 모양인가. 
왜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되었는가. 
이런 것도 의문일 수 있다고 본다. 

왜 세계는 하필 이런 모습이고 
또 자신은 지금 왜 하필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사정이 그렇다고 하고 
이런 현실 상황에서 앞으로 어떤 상태를 향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도 의문이 된다. 



고통을 원하지 않지만, 
그러나 살아가는 현실이 고통인 것은 

현실의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고 변화하는 것이며 
그런 가운데 
자신은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집착을 갖고 대하기 때문에 
이 현실을 놓고 자신이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1차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내용을 자신이 원한 것이던 원하지 않은 것이던 
이러한 것이 바로 현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가운데 고통을 제거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며 
또 그 방안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방안은 
현실의 모든 내용이 실답지 않고 그 실재가 공함을 깨닫고 
현실에서 일으키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곧 일체의 고통과 재앙에서 자신을 벗어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안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도 곧바로 행하기가 쉽지 않고 
더욱이 다른 생명들도 그렇게 곧바로 행하게 이끌기가 쉽지 않다. 

현실을 살아가는 일반인과 수행자의 대처방안이 
달라지는 것도 바로 이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매일 반복해 대하고 정연하게 여겨지는 현실 내용을 놓고 
이것이 집착을 가질만한 실다운 내용이 아니고 
이들의 실재가 공하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그것을 깨닫는다고 하여도 
이로써 바로 현실에서 갖는 망상 분별을 제거하고 
생명이 본래 집착을 갖기 마련인
자기 자신, 생명, 신체, 재산, 가족, 지위, 명예...등에 
집착을 제거하는 것은 또 쉽지 않다고 본다. 

또 그렇게 분별과 집착을 제거하려 노력해도 
그로 인해 현실에서 감각으로 느껴지는 고통이
또 곧바로 제거되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번뇌와 고통을 마음에서 완전히 떠내 보내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망상분별을 걷어내고 
마음을 집중시켜서 현실을 실재와 관련시켜 관하는
수행이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수행자가 고통과 재앙에서 벗어나더라도 
수행자는 그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중생제도를 위해 수많은 방편을 닦아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생명은 
망상 분별과 집착에 싸여서 
당장 고통을 제거하고 집착하는 것을 성취하는 데
매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바로 수행자의 목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는 
다른 생명을 위하여 수행자는 
이들의 망상 분별과 집착 속에 뛰어들어 
다시 이들의 소원을 성취시켜주면서 
이들이 궁극적으로 니르바나 해탈과 깨달음을 
모두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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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2015/01/13/화/18:53


♥ 잡담 ♥논의장소의 변경

대략 작년 12 월 이후 지금까지 http://buddhism007.tistory.com/ 에 
불교공부_단상_ 형태의 조각글을 올려 왔는데, 
되도록 불교만의 논의로 논의를 전개하지 말고 
일반적인 바탕에서 논의를 전개하자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다시 http://story007.tistory.com/ 내  잡담공간 페이지로 논의장소를 옮겨 가기로 한다. 


극히 최근까지 본인은 매우 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고통의 해소와 수행의 문제를 생각해왔다. 

그 내용을 
http://buddhism007.tistory.com/696 등에 이미 제시하였으나, 

이후 관련 내용들은 
다시 페이지를 옮겨 다음 페이지에 기재하여 나가기로 한다. 
http://story007.tistory.com/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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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 Tokyun 2015/01/13/화/16:39


♥ 잡담 ♥글쓰는 자유와 한계문제 


샤를리 에브도 총격(Charlie Hebdo shooting)사건이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나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 개요는 다음이다.
2015년 1월 7일 11시경 복면을 쓴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의 두 사람이 
프랑스 파리에 소재한 풍자신문 《샤를리 에브도》 본사를 급습하여 총기를 난사하여
편집장과 만화가를 포함한 1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했다. 

http://ko.wikipedia.org/wiki/샤를리_에브도_총격



도대체 어떤 풍자만화나 기사가 이들에게 분노를 일으켰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노력했으나, 
관련 기사를 읽어보아도 정확한 내용을 찾아 볼 수 없다. 

아마 여기에는 하지마 삼매, 즉 무작삼매와 같은 원리가 들어 있는 것 같다. 

무언가를 중지시키기 위하여 하지말라고 말을 하게 되는데 
그 하지말라는 내용을 자세히 서술하다보면, 
원래 중지시키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게 되고, 
그것이 오히려 또 다른 문제의 원인이 되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
그래도 연구를 위해서 어떤 것이 문제가 되었나를 살펴보기 위해 
검색을 하고 또 하고 또 해서 
알아낸 내용은
그 풍자신문은 오래 전부터 회교와 관련한 만평으로 
문제가 있어왔었을 뿐 아니라, 
총격 사건이 있기 전 1 분 전에도 
트위터 등에 검은 회교도 복장을 한 이가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담은 풍자만화를 올렸다고 한다. 

파리시민들은 Je suis Charlie 라고 말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외치고 있다고 한다. 

Je suis Charlie 란 말은 나는 샤를리다 라는 말이라고 하는데 
불어를 모르는 lab 님이 이 말은  
죄수(jesu) 는(is) 철이다. 이런 말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세계에서 12 억명의 종교인이 
그림그리는 것을 금기시하면서 존중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대상을 
만화로 그려 풍자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또 그렇게 풍자를 한다고 하여
총기를 들고 해당 편집인을 살해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를  
떠나
현실은 계속 이런 식으로
서로 공격과 비난의 작용 반작용의 반응관계를 밟아 나가고 있다.

파리시민들이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대규모 집회를 이미 하였고, 

해당 주간지는 다시 회교 관련 만평을 게재한다고 한다. 
[참조]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14일 무함마드 만평 게재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5011309432136806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이에 대한 보복 사건도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참조 [코리아헤럴드]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보복 사건 잇달아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50113000586&md=20150113111957_BL

이들 사건이 회교국가들에 대한 반대를 일으키기 위한 음모라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 언론사 테러 음모론 제기…"미국·이스라엘이 배후?" - 충청일보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43844



이는 단지 종교의 영역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어떤 것을 좋게 바꾸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연구를 하고 글을 쓰는 것인데, 

이런 연구과정에는 늘 이와 비슷한 성격의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무언가 문제가 되고 잘못이 있다고 보는 내용이 있을 때
이와 관련된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고
이에 대하여 개선 방안을 논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런 사례로 나열된 이들의
명예가 훼손되고 그 개개인의 감정이 상처를 받기 쉽다. 

자신과 다른 이를 모두 좋게 변화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좋은 방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함에 있어서, 
다른 이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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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언∑ ∑언론자유∑ ∑글의한계∑

 




댓글의 댓글

◈Doctr Gong 2015/01/14/수/09:42


○ 세상의 일체의 어머니가 자식에게 바라는 희망 

개인의 문제나 사회의 문제를 바라볼 때,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다. 
하나의 상황에서 하나의 대상을 놓고도 각 당사자마다 입장과 관점이 다르다. 

그런데 이들 상황에서 이 문제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고
이들을 바라보는 제 3 자의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이 가운데 현실에서 비교적 표준적으로 바람직한 관점은 
어머니가 자신이 낳은 자식에게 바라는 희망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경우나 해결이 어려운 것은 두 당사자의 입장이 서로 대립되어 있는 경우다. 

그래서 이 쪽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볼 때와 
저 쪽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볼 때 그 처방이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이 경우 이렇게 두 당사자의 입장이 서로 대립되어 있을 때 
이들 대립된 당사자가 모두 자신의 친자식들이라고 할 때 
그 때 현명한 어머니는 어떻게 이들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표준적인 입장에서 현명한 어머니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자식이 가장 잘 되어주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그 가장 잘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 해석이 필요하다. 

무엇이 가장 잘 되고 가장 잘 하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현명한 어머니가 그런 것을 자식에게 원한다고 하여서 
그 내용을 곧바로 자식이 모두 섭취해 곧바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왜 어머니가 그것을 모두 다 대신 성취시켜서 
자신에게 가져다 주지 않는가를 따질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도 어머니는 단지 그렇게 희망하고 
그렇게 되도록 이끌 수 있을 뿐이다. 
또 자식은 모든 것을 다 어머니가 자신 대신 해주거나,
강제로 하게 하거나, 강제로 가져다 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이런 현실적 상황에서 현명한 어머니는 대립해 다투는 두 친자식을 놓고 
어떤 방안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이런 입장에서 모든 대립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본다. 


lab 님은 관세음보살의 대비주를 외우면서 


나모 스끄리따, 수끄떼레 이런 부분에서 
현실에서 취할 수 있는 방편 가운데 
결국 각 경우따라 취할 선택의 방향이 
little 님이 말한, pass, stop. turn, go 의 각 내용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그것은 본인의 행복론 총론의 장,단,무,현의 내용과 사실상 같다. 


mun 님이 대립한 당사자의 하나의 극단적인 예로서 파리 언론사 테러 사건을 제시했다. 


여기서도 이해나 견해가 다른 두 당사자의 대립을 볼 수 있다. 

각 당사자의 입장을 먼저 생각할 수 있고 
제 3 자적인 입장에서는 일반적인 입장에서 권력분립주의나 권력의 상호 견제 균형을 통한 자유를 확보하려는
자유주의 사상의 입장에서 취하는 견해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앞과 같은 두 대립 당사자를 모두 친자식으로 두고 있는
현명한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이들에게 어떤 방안을 취할 수 있는가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 각각은
무언가 할 것을 한 상태다.

여기에서 무언가를 각 입장에서 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어떤 현명한 어머니가
이들이 문제로 삼는 것이 갖는 가치를 1 이라고 보고 
이보다 수억 수조배 더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는
입장이라면 

비록 이 상황이 어떤 문제점이 있더라도 
반대로 이 상황이 이 상황 나름대로 갖는 장점을 향유하고 
자신이나 다른 이나 
모두 그 상태 그대로 조용히 머물러 있기만을 바라고 
그저 이 문제를 지나쳐 가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pass] 


한편, 현명한 어머니는 다시 그 각각에게 
그 각각이 그 각 입장에서 다음 단계로 일반적으로 
취할 수 있는 여러 선택가능한 내용을 나열해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것을 모두 다 나열해 검토하는 것이
곤란하다.

그래서 가장 극단적인 것만을 나열하거나,
또는 현실적으로 취해 나가기 쉬운 대표적인 것들을 나열한 다음 

이것들이 각기 어떤 문제나 부작용이 있는 것인가를 검토하게 할 것이다. 

현명한 어머니는 이 가운데에서 자식들이 아직 경험이 없어 미처 보지 못하는 
부작용의 사례를 좀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각 선택에 따라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부작용들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stop]


각각의 입장에서 좀 더 극단적인 방안이란 
이전에 취하던 내용을 
좀 더 강화하고 좀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그 최극단에 그들 각각이 서보는 것이다. 


새 편집방향에서 이 각 선택방안은 나열해 제시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이것은 아직 검토되지 않았다. 

다만 모호하게 이전보다 좀 더 극단적으로 나아가는 선택들이라고 
모호하게 표현하는 것만 허용되는가. 

아니면 그런 구체적 예들을 연구를 통해 제시하고
그 다음 그 실현방안은 제시하지 않는 것을 요구하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조금 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여기서는 이 문제의 검토를 위해 연구자가 다음과 같은
구체적 선택 대안을 제시한다고 할 때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놓고 이 문제를 검토해보기로 한다. 

우선 언론사 입장에서는
조금 더 자극적이고 상대에게 수치를 주고 분노를 일으키고
조롱하고 모욕을 줄 수 있는 표현을 찾아 이를 대다수에게 널리 공개하는 방안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수치스럽고 더럽게 여기는 내용을 나열하여 
상대와 관련시키거나 
또는 그 반대로 가장 성스럽고 아름다운 내용으로 고상하게 포장하여 
상대를 역으로 조롱하는 방안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모두가 상대에게 불쾌와 짜증 부끄러움 수치 분노의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데 초점을 두고 고안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이 극단은 아니다. 
그러나 언론이 또 다른 형태의 극단을 취하는 것은 
이제 언론의 일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언론사를 공격한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이미 총기를 통해 관련자를 찾아 사살한 것이 극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총기를 통한 사살보다 더 극단의 방안이라는 것은 
오늘날 원자폭탄이나 화학 세균무기와 같은 공격수단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 

또는 이보다 더 극단이란, 
결국 자신의 반대자들에게
가장 공포스럽고 가장 혐오스러우며 그 피해와 고통이 
상대에게 오래가고 오래 남는 방안을 찾아 
마치 과거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수용소에 수용하여 행한 것처럼 
상대를 가장 고통스런 형태로 가해하는 방안을 
역시 그런 극단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이후 어떤 문제점이나 부작용이 발생하는가를 
한 번 각기 검토해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앞에서 각 당사자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부작용을 
자세히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이것은 행복론 총론이나 각론에서 허용된다고 보는가. 
그것은 앞에서 각 선택 가능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허용되는가의 문제와 관련이 된다고 본다. 


이 경우 우선 이 각각의 극단의 방안에 대해 
다시 상대가 취하게 되는 극단의 방안이 그 문제점이라면 문제점이다. 
이미 상대가 취하는 극단의 방안이 그래서 그 부작용의 한 내용이 된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점을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결국 여기서 더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상대가 각기 자신에게 취한 내용을 그대로 
반대로 적용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각각의 입장에서는 
상대의 입장을 그대로 취하여 다시 극단으로 한번 더 나아가 
그 상대에게 되돌려 주는 방안과 같게 된다. 


그래서 이제 언론사는 자신을 총으로 공격한 상대에게
자신도 이제 무기로 무장하여 상대를 공격하려고 나서게 되고, 

총으로 언론사를 공격하던 이는 
이제 자신도 펜을 들어
언론사나 편집인 개개인,
또는 상대가 가장 성스럽게 여기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대상을 찾아 
이를 모욕하고 비난하고 수치를 주는 방안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또 반대쪽에서 보면 
부작용으로 추가되는 내용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만일 앞에 선택 가능한 내용으로 나열한 여러 방안들이
이처럼 부작용이 그 이후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면, 
부작용은 되도록 없고, 
좋은 점은 많은 다른 방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런 가운데 이런 수많은 또 다른 대안 가운데 
좀 더 부작용이 없고 
좀 더 장점이 많은 방향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이들이 이런 방안을 선택해 나가게 이끌고자 할 것이다. [ turn ]


서로가 대립하고 미워할 때
미운 상대를 가장 효과적으로 응징하는 수단에 대한
퀴즈는 이미 오래 전에 풀려진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 고전 퀴즈는 그 답은 간단히 정리되어 세상에 널리 유포되어 있지만,
여전히 현실에서는 잘 채택이 되지는 않는다.  

이 퀴즈에 대해서 가장 표준적인 답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 
가장 표준적인 답으로 보인다. 


여하튼 이런 방향으로 
원래의 방안이나 또 다른 부작용을 더 많이 갖는 다른 극단의 방안들을 
모두 다 버리고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되어 나갈 수 있도록 
현명한 어머니는 이끌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실 앞의 과정을 통해 
부작용이 많은 방안들이 모두 폐기되고 
가장 좋은 방향이 각각에 의해 선택된다면, 
이제 이 방안은 잘 실현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현명한 어머니라면 
다시 여기에서 이들이 각기 
이 내용을 즐겁게 쉽게 잘 성취할 수 있도록 
돕고 이끌고자 할 것이다. 


만일 이론상 앞의 각 선택가능한 내용들이 
부작용이 있어서 페기되고 
그 가운데에서 가장 최상의 선택방향이 제시된다면, 

결국 그것은 각각이 모두 대립관계를 해소하고 
다 각기 최상의 상태가 되는 것이 
그 내용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각각이 최상의 상태가 되는 방안은 
결국 어느 경우에서나 
그 방안이 공통될 것이다. 

그래서 이 방안을 각각이 즐겁게 잘 실천할 수 있도록 
현명한 어머니는 이끌고 돕기 위한 방안을 
다시 찾아나가야 한다고 보게 된다. 




>>>

https://www.youtube.com/watch?v=5KrCsH9nEKU

>>>

Sandy - J'ai Faim De Toi

>>>



문서정보

 

 

 

 































































































































































































































































































































○ Sandy - J'ai Faim De Toi - lyrics





댓글의 댓글

◈Lab value 2015/01/14/수/15:37

♥ 잡담 ♥대립관계의 해소문제 

실재가 공하다는 입장에서 
감각현실과 관념의 현상 내용을 대할 때는 
이를 일종의 시의 문제로 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자신이 대립관계의 일방당사자일 때 
특히 이런 생각을 지나치기 쉽다고 본다. 
그것은 자신의 견해가 너무 뚜렷하고 명확하여 
그것이 옳으며, 또 자신과 다른 견해는 잘못이라고 고집하기 쉬운 것이다. 

특히 종교 문제에서는 신앙은 이런 확신으로 변하고, 
자신의 신앙과 종교 사상과 일치하지 않는 다른 이의 신앙을 
무시하거나 적대시하기 쉽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2 + 2 = 4 를 옳다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 

○ [pt op tr] 2 더하기 2 는 4 가 아니라는 주장


이것이 진리와 관련된 문제라고 본다. 
간단히 결론만 제시하여 이 말이 무슨 말인가를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고 본다. 

자신은 마음으로 2 라는 숫자를 떠올릴 수 있다. 
이 마음으로 떠올린 2 라는 숫자(관념)에는 2 라는 숫자의 모양(자상)이 없음을 
우선 확인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반대로 자신이 눈을 떠 보는 감각현실로서 
2 라는 숫자의 모양(자상)에는 2 라는 관념도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관계는 관념-감각현실-실재-실체의 관계에서 
모두 비슷하게 적용된다. 

결국 이들의 내용이 모두 다른 영역에 그 내용을 
주장할 근거를 잃는다는 사실을 여기서 제시하는 것이다. 

현재 마음에서 기억을 통해 떠올리는 생각은 
자신은 과거의 내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도 여기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암기 문제 시험에서 자주 많이 틀리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이 
정말 과거의 그 순간의 관념이었을까 하는 문제에 
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 그것을 확인해 볼 
수단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바탕에서 우리는 
2 + 2 = 4 라는 내용 조차도 
서로 상대에게 확고하게 진리라거나, 
진리가 아니라고 입증할 수단을 갖지 못함을 
확인해야 한다. 

그래도 현실에서는 이 정도는 
종교나 사상을 떠나 서로에게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조차도 사실은 
사정이 이렇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서로 물러날 수 없는 상황에 대부분 몰려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고 
최악의 선택을 향해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비유하면 가축이 구제역에 걸려서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피해를 감수하면서 가축을 도살하는 사람도 
그런 입장에서 가축을 도살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극단적인 경우도 사정이 같다. 

그런데 사실은 자신이 그렇게 닫힌 상태로 놓인 그 상황 자체가 
환영 속의 일과 같고 꿈과 같은 것이어서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비로소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계기가 마련되는 것임을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서 실재가 공하고 현실이 꿈과 같아서 실답지 않다는 깨달음을 
가진 이는 
이제 실상과 현상을 관통하여 꿰뚤어 봄으로써 
현실에서 갖던 관념과 감각현실이 주는 한계를 돌파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이처럼 현실에 갇히거나 묶이지 않고 
벗어날 때 
다른 이도 또한 그처럼 벗어나게 할 수 있다. 

반대로 여기에 묶이면 자신도 묶이고 남도 묶이게 하여 
자신도 사역시키고 남도 사역시키는 관계에 빠져들게 된다. 

두 당사자가 대립할 때 
늘 일종의 음모론이 제기되는 것은 
이 당사자가 대립하여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선택해 나가서 
행위할 때 
사실 그 실질적 이익이나 소득은 다른 제 3자가 거두어 가게 된다는 것을 
놓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 그것이 그런 이득을 거두는 제 3 자의 음모에 의한 것이었던 
그렇지 않던 결과적으로는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번뇌 망상에 묶여서 자신도 사역시키고 남도 사역시키는 이 관계에서 
재주는 곰이 부리고 수입은 사육사가 얻을 때 관중은 즐거움을 얻게 되는데 
이런 상호관계에서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장 가치있는 것은 누가 얻게 되는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망상분별과 번뇌에 묶이고 집착하고
자신을 사역시키고 남을 사역시키는 이들은 
사실은 그것을 얻지 못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자신이 이들을 이 관계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자신이 일단 이 망상분별과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런 가운데 
다시 이들의 망상분별과 집착의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물론 대립 당사자들은 
곧바로 자신의 상태나 상황이 그러한 상태임을 
깨닫고 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망상분별과 집착이 그들의 눈을 가리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편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이 상태에 그들의 망상분별과 집착의 세계에 들어간 후, 
그들 각각의 망상분별과 집착을 
일종의 시로 생각하고 긍정하면서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 자주 인용되는 고사가 
황희 정승의 예라고 본다. 

황희 정승의 여종들이 서로 말싸움을 벌이고 
누가 옳은가를 정승에게 묻자, 

황희 정승이 
A 에게는 A가 옳다고 하고 
B 에게는 B가 옳다고 하고 
이것을 들은 부인이 다시
둘 다 옳을 수는 없다고 이 문제를 따지자, 
그 부인말도 옳다고 하였다는 이야기다. 

대립당사자들도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이 극도로 집착하는 
생명, 신체, 재산, 가족, 지위, 명예...등등이 걸려 있고 
이것의 득실을 놓고 다투고 대립하고 있을 때는 
더더욱 그런 입장이 된다. 

이 때 이들을 이로부터 구제하고자 하는 이는 
이들 각각을 황희 정승의 입장으로 대해서 
그들 각각의 입장을 시로 음미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 반대를 취하여 
모두가 다 틀렸다 잘못이다라고 접근할 수 있다. 

그러면 황희 정승은 이제 여종들의 싸움에 
다시 또 다른 당사자나, 심판자로서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원래 이 문제는 
사실은 옳고 그름이 판정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이 문제가 바로 2 + 2 = 4 는 옳은가라는 주제와 
관련이 된다. 

옳지 않다라고 근거를 제시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틀리지 않다라는 근거도 함께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사실은 
모든 감각현실과 관념이 
망상 분별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것을 실다운 것으로 각기 받아들이고 
삶을 시작하기 때문에 
대립관계에 서고 
스스로 사역을 당하고 또 남을 사역시키는
관계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각각의 내용을 
모두 옳고 그름을 떠난 문제로서
마치 시와 같이 생각하여 이를 대하고 
들어가서 

그들 각각에게 좋음을 가져다 주고, 
수많은 방편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이들이 
모두 그것이 실답지 않는 내용임을 깨닫고 
집착을 벗어나, 
다 함께 고통의 사역관계에서 벗어나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곧 수행자의 수행 목적이기도 한 것이다. 

특히 수행자가 
모든 현상이 실답지 않음을 깨닫고 
다시 그 현상 안에 들어가 
중생을 제도할 목적으로 
수많은 방편을 배우고 닦을 때는 
바로 이런 목적으로 수행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잘못 수행에 임하면 
자신이 마치 이들의 주장이나 견해가 모두 잘못임을 밝히고
이들의 잘못을 심판하고 비난하는 입장이 되어
이 현실에 임하기 쉽다. 

또는 이도 옳고 저도 옳을 수 없다는 비판에 맞서 
자신도 또 하나의 분쟁 당사자가 되어 분쟁에 임하여 
문제를 더 악화시킬 우려도 있는 것이다. 

또 때로는 
자신도 이 과정에서 
좋음을 얻지 못하고 
남도 좋음을 얻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또는 자칫 이를 통하여 
자신이 이 망상분별과 집착의 세계에서 
일시적으로 얻는 좋음이나 복덕이 
마치 자신의 수행목표이고 
또 다른 이의 목표점이기도 한 것처럼 
착각하고 수행에 임할 수도 있다. 

자신이 망상분별과 집착이 문제임을 보고 
그 망상분별과 집착을 벗어난 가운데 
다시 다른 생명의 망상분별과 집착 속에 들어갈 때는 

그 망상분별과 집착에서 복덕으로 보는 것을 얻기 위하여 
그 속에 들어간 것이 아님을 
스스로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문서정보

 

 

 

 






 






































































































































































































































































































댓글 테이블 

◈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5/01/13/화/13:20


♥ 잡담 ♥조각글을 이용한 체계적 글의 완성과 공동연구의 활성화 방안 


과거에 작성한 조각글들을 체계적으로
편집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방안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선, 행복론 총론, 각론, 이상사회론 총론, 각론, 현상의 진리론 총론, 각론, 종교의 진리
이런 형태로 큰 논의의 범주가 있는데
그간 lab 님의 논의를 통하여 이들의 논의가
하나 같이 현실의 고통을 제거하는 데 있어서 그 목표가 같다는 점에서
같이 병합하여 논의를 전개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주제에 관련하여 
각 논의가 함께 병합되어 전개될 수 있다고 본다. 


두번째, 총론적 해결방법론은 매번 구체적 현실에서 제기되는 문제점과 
같이 관련되어 논의되고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다만 여기서 구체적 주제와 관련하여
장점보기(pass)- 단점보고 끊기(stop)- 무시+다른 방향으로 전환(turn)- 실현(go)의 방안이 제시될 수 있는데 
이것이 모두 각 상황과 목적에 따라 선악무기의 성격을 갖고 있기에 
그 구체적 기술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도 
결론을 같이 하게 된다. 

그래서 이 각각의 pass, stop, turn, go 에 관련해 
그 각각의 구체적 방안들은 그 선악무기의 성격으로 인해 
이미 현실적으로 널리 공개된 내용 이외의 것을
새로 추가해 제시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떤 경우에 어떻게 각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조각글이 한번 작성된 후 
이 조각글이 각 체계적인 글의 완성에 이용되고 도움이 되려면 
다음의 방안을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1, 우선 기존 체계(행복론 총론, 이상사회론, 현상의 진리론..)에서 글이 체계적으로 기술되고 있는 바탕이라면, 
별도의 조각글 페이지를 만들어 그 안에 가능한 해당 조각글을 모아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1. 일반적인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통해  색인기호를 추가해 넣고 이 기호를 통해 
관련 주제글을 효과적으로 검색해 찾아내기로 한다. 

색인기호 ∑∑

어떤 글이 행복론 총론 - 만족과 관련된 글일 때 
∑만∑,  ∑만족∑, ∑행복론총론-만족∑, 과 같은 
여러 형태의 인덱스 글자를 각 조각글 문서정보란에 기재하여 넣는 것이다. 

색인기호는 색인부분을 구분하기 위해, 색인용 글자의 양쪽에 붙여준다. 

∑만∑  
∑만족∑ 
∑만족과 가치∑ 

이는 다음의 의미를 갖는다. 
∑ ∑ 기호로 둘러싸인 부분은 원래 별도의 독립한 색인 문자로 취급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만족과 관련된 또는 적어도 만족으로 같이 시작하는 색인 부분을 모두 검색하자면 
'∑만족' 형태로  색인기호를 앞에만 기재하여 낱글자 검색하면 된다. 

그러나 자신이 특정한 색인기호로 표시한 부분만 정확히 찾고자 한다면 
∑만∑  형태로 기재하여 낱글자 검색하면 된다. 

앞에 붙은 색인 특수기호 ∑ 는 
우선 일반 낱글자 검색시 '만'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모든 부분이 검색되어 나오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갖는다. 

한편 뒤에 붙은 색인 특수기호 ∑ 는 
'만'을 낱글자 검색할 시에 
∑만∑,  ∑만족∑, ∑만족과 가치∑, ... 등등으로  '만'으로 시작하는 모든 경우가
다 출력되는 것을 방지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형태로 검색되어 나오기를 원할 때는 ∑만 형태로 입력하여 낱글자 검색하면 된다. 

반대로 ∑만∑ 의 형태만 검색되어 나오게 하려면 ∑만∑ 의 앞뒤에 특수기호를 입력하면 되리라 본다. 

참고 - 현재 이 특수키 입력은 축약키로 oo, 1 의 키로 제공한다. 

 


1 과거 조각글들은 일부 다음 문서정보 형태로 정리 중이었으나 사정상 중단되었다. 




글 샘플-1  과거 파란블로그 또는 tistory.com 블로그 등의 글 

◈Real Is 2012/02/07 12:02   

●블로그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자신의 지식이나 앎을 과시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타인에게도 그에게도 이로움을 주지 못한다.

독설가의 운명이 고단한 것도 그런 연유다. 

자신은 자신이 남보다 많이 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확인시키고 즐거움을 얻는 것이지만, 

상대는 그가 준 상처를 오래 아주 오래 기억하고 되갚는다.


화가 나고 남이 밉다고 

남을 칼로 찌르는 것이 용기가 아니듯, 

남과 자신을 이롭게 하지 못하는 말을 

속시원하게 다 하는 것은 용기도 지혜도 아니다. 

화가 난다고 성을 내는 것이 천박한 일인 것처럼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 

역시 천박한 일이고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깊은 지혜는 자신과 상대 모든 이에게 

선과 지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결과를 일으켜야 한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은 

어떤 특정한 상대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라, 

글을 볼 가능성이 있는 무수한 상대를 가정하고 글을 올리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배설물을 올려 놓는 것과 같은 일을 하며 

즐거워해서는 안 된다.




Ω♠문서정보♠Ω

™[작성자]™ Real Is

◑[작성일]◐ 2012/02/07 12:02   

♨[수정내역]♨

▩[ 디스크 ]▩ [DISK] ●블로그글 10gfl--2012-02/2012-02월_댓글보전.txt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ж[ 웹 ]ж [web] http://essay007.tistory.com/116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 관련문서]⇔

{!-- 관련 문서 링크--}

인터넷상의 목록 http://idealsociety007.tistory.com/361

디스크상의 목록 ●현실적 이상사회 04fl--risd-catalog.htm

Ш[ 관련 문서 인용 부분 ]Ш

ㅹ[ 코멘트 등 정리 내역]ㅹ



글 샘플 -1-  페이스북 글 백업 본 

Mun Tokyun □ 세상을 보면, 수많은 벌레, 짐승,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 죄수, 노예, 탐욕에 찬 빈곤자들이 여기저기 몸부림치고 날뛴다. 기이한 현상은 그 가운데 몇몇이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어 
....

2010년 11월 29일 오후 8:46 · 좋아요


fr 04gfl--mun_단상_2010_1115.txt
http://idealsociety007.tistory.com/139




● 과거 조각글의 정리 취지는 해당 조각글에 각기
문서에 관련된 정보를 체계적으로 기재한
Ω♠문서정보♠Ω 란을 정리해 하나하나 붙임으로써 
이것을 체계적인 글에 사용하기 위함이었으나, 
정리 과정이 너무 시간이 소요되고 복잡하여 중단되었다. 

과거의 지난글을 모두 시간을 들여 다시 읽고 정리하고
그런 바탕에서 이를 이용하여 다시 체계적인 글을 작성하는 것이 
상당히 번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과거 조각글을 원칙적으로
텍스트 낱글자 검색을 통해 
자신이 해당 글을 개별적으로 찾아
이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이는 조금 불완전하지만, 
이미 백업된 과거 조각글의 텍스트를 그대로 놓고 
낱글자 검색을 통해 어떤 주제와 관련된 글들을 찾아내고 
이를 체계적인 글 작성에 이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와 같이 각 조각글을 찾아 다시 검토하는 기회가 되면,
그 개별글을 
다음의 원칙으로 정리를 해나기로 한다. 


1. 2010 년 mun 님 글을 보면 의미별로 행을 바꾸는 방식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기회가 되어 해당 글을 검색하여 이용할 때는 
이를 앞의 real 님의 글처럼 의미별로 행을 바꾸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한다. 

1. ♠ 이나 ☞ 기호를 통해 해당 파일의 북마크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각 조각글의 첫 줄의 문장이나 제목을 구획하여 주고 
나중에 수정이 필요하더라도 되도록 이 부분은 북마크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그대로 유지해두는 것으로 한다. 

또한 이처럼 북마크로 사용할 부분이 정해지면 그 부분에는 
○와 같은 제목 특수기호를 붙여 주어 해당 부분을 고정된 북마크로 사용함을 표시해주기로 한다. 

샘플 => 나중에 이 글을 변경할 때 - 다음과 같이 체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 첫 문장부분은 북마크 부분으로 기능하도록 보존한다. ) 


Mun Tokyun
○세상을 보면, 수많은 벌레, 짐승,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

세상에는 많은 벌레, 동물, 질병에 시달리는 이, 죄수, 노예, 탐욕에 찬 빈곤자들이
여기저기 몸부림치고 날뛴다. ( 나중에 문장을 처음 내용과 바꾸게 되는 경우에도 앞 부분은 그대로 둔다는 의미 ) 

이런 경우 해당 글의 원본을 참조하려면 다음의 방식으로 링크를 걸면 된다 .
04gfl--mun_단상_2010_1115.txt ♠○세상을 보면, 수많은 벌레, 짐승,
http://idealsociety007.tistory.com/139 ♠○세상을 보면, 수많은 벌레, 짐승,


1, 조각글은 정리를 통해 보다 관련이 있는 다른 페이지로 이동시키는 것이 
바람직해 보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글은 잡담 코너보다는 행복론 페이지나 진리론 페이지 또는 불교페이지 등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는 것이다.

이 조각글을 다른 글에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 링크로 연결시켜주지 않은 경우에는
이런 이동을 해도 무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해당 조각글 위치를 링크를 걸어서 사용한 경우에는 
이 조각글을 원본으로 그대로 고정시켜 놓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조각글을 이동시킴으로써 해당 조각글에 링크가 걸려진 것들을 모두 찾아
수정하는 작업이 매우 번잡하기 때문이다.


1 원본과 복사본[pt] 출력본[op] 원본위치가 이동된 조각글[tr] 등의 여러 판본의 문제 


조각글을 체계적인 글 작성에 사용하게 되면, 
비슷한 내용의 글이 이곳 저곳에 산재하게 된다. 

어떤 글의 수정작업이 있을 때
관련된 글을 모두 찾아 함께 수정해주는 작업은 대단히 번거롭고 어렵다. 

그래서 수정과 변경작업은 원칙적으로 원본의 글에서만 행하는 것으로 한다. 
나머지는 비록 오류 등의 문제가 있어도 방치하는 것으로 한다. 

그래서 비슷한 내용의 글들이 여럿 있을 때 어떤 글이 원본 자격의 글인가가 
중요해진다. 

현재 

인터넷 상에 조각글들이 위치한 사이트로는 
페이스북, 
블로그 - tistory
다른 블로그 

디스크 상에도 원본과 백업본 등의 
파일이 복수로 존재한다. 

백업본도 
텍스트백업본 
html 소스 백업본   
html 이미지 백업본 ( 디스크 안에서 그림 , 사진 파일 등이 자체적으로 구현되게 함 - 그림, 사진 등의 파일도 백업하는 의미 ) 

등의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여기에서 
원본은 
디스크내 단일한 -조각글 텍스트 파일
그리고 인터넷 페이지에서 원본 페이지 파일 [ tr, op, pt 등의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페이지 ] 
만으로 한정한다. 


이는 나머지 부분은 모두 복사본 출력본으로 취급하고 
백업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원본은 그 자체로 고정된 형태로 보존하는 원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번 수정작업을 통해 내용을 개선 변경할 수 있는 판본을 의미한다. 
그런 수시의 수정 작업을 통해 
매번 최신 원본의 성격을 갖는다. 

과거 그 날짜에 정확히 어떤 내용을 기재했는가 여부는 
오히려 아직 변경이 이뤄지지 않은 다른 복사본 판본[tr, pt, op] 등의 판본을 통해 
추정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체계적인 글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과거 작성한 조각글 원본파일을 검토하면서 
오류를 자유롭게 수정하고 
그것을 체계적인 글 작성에 반영하고 
또 다른 글 작성에도 이용하기 위함이다. 

이미 이 조각글을 링크을 걸어 둔 경우에도 
새로 수정된 내용이 반영되도록 
원본 성격의 글들은 
인터넷 사이트와 디스크 파일 들이 같이 일치된 형태로 
수시로 수정된 형태로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시점 이후로 페이스북이나 tistory 블로그 이외의 블로그 페이지들은 
모두 원본 자격을 갖지 않는 것으로 한다. 

1, 과거 페이스북에 올려진 글들은 
내용에 오류가 많다고 보지만, 
해당 내용을 tistory  페이지에 그대로 백업작업이 마쳐졌다. 

이런 경우 tistory 내 백업된 내용이 원본자격을 갖는 것이며 
페이스북 글들이 원본이 아니다. 

이 경우 오류나 내용 수정이 필요하면
페이스북글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tistory 페이지와 디스크에 백업한 텍스트 파일에서만
수정이 이뤄지게 되고, 
이것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글 작성에 이용하게 된다. 

- 이 경우 페이스북 글까지 일일히 찾아서 수정하는 작업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두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일괄 삭제 처리한다는 의미다. - 



문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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