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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휴게소]-2015_01월_04주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5. 1. 18. 18:40

[댓글휴게소]-2015_01월_04주
10gfl--2015-01월_댓글보전.txt
http://story007.tistory.com/1023



◈Mun Tokyun 2015/01/25/일/23:15


♥ 잡담 ♥언어도단과 안락행 

lab 님이 언어도단이란 말을
일본 수상이 is가 일본인 인질을 살해한 사태에 대해 사용했다고 소개한다. 

[참고] IS 일본인 인질 살해에 일본열도 충격 '언어도단이며 용서할 수 없는 폭거'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1/25/0200000000AKR20150125039600073.HTML?input=1195m

언어도단이란 말은 일반적으로는 
너무나 엄청나거나 기가 막혀서, 말로써 나타낼 수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데
이 표현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 입장에서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이런 의미로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원래 이 표현은 깨달음이나 깨달음의 상태는 
말을 떠난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므로 
분노나 어처구니없음, 이치에 맞지 않음, 억울함 이런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그렇기에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억울함과 분노를 나타내기 위해 이런 표현을 사용하면 
깨달음과 관련하여 언어도단의 표현을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게도 된다. 


화엄경 십행품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K0080V08P0544b17L; 佛子何等爲菩薩摩訶薩善現行此菩薩身

K0080V08P0544b18L; 業淸淨語業淸淨意業淸淨住無所得示無

K0080V08P0544b19L; 所得身語意業能知三業皆無所有無虛妄

K0080V08P0544b20L; 故無有繫縛凡所示現無性無依住如實心

K0080V08P0544b21L; 知無量心自性知一切法自性無得無相甚

K0080V08P0544b22L; 深難入住於正位眞如法性方便出生而無

K0080V08P0544b23L; 業報不生不滅住涅槃界住寂靜性住於眞

K0080V08P0544b24L; 實無性之性 '言語道斷' 超諸世閒無有所依

K0080V08P0544b25L; 入離分別無縛著法入最勝智眞實之法入

K0080V08P0544c02L; 非諸世閒所能了知出世閒法此是菩薩善

K0080V08P0544c03L; 巧方便示現生相佛子此菩薩作如是念一

K0080V08P0544c04L; 切衆生無性爲性一切諸法無爲爲性一切

K0080V08P0544c05L; 國土無相爲相一切三世唯有言說一切言

K0080V08P0544c06L; 說於諸法中無有依處一切諸法於言說中

...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선현행[善現行]인가. 


이 보살의 몸으로 짓는 업이 청정하고
말로 짓는 업이 청정하고
뜻으로 짓는 업이 청정하여, 


얻은 것 없는 데 머물러서
얻을 것 없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보이나니, 


삼업(三業)이 모두 없는 것인 줄을 아는 것이며, 

허망함이 없으므로 얽매임이 없으며, 

무릇 나타내어 보이는 것이
성품도 없고 의지함도 없습니다. 


실제와 같은 마음에 머물러
한량없는 마음의 성품을 알며
온갖 법의 성품을 알지만, 


얻은 것도 없고
형상도 없고
매우 깊어 들어가기 어려우며, 

바른 자리[正位]인 진여의 법성(法性)에 머물러서 방편을 내지만 

업보가 없는 것이어서
생겨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열반계에 머물고 고요한 성품에 머물고 진실하여 

성품이 없는 성품에 머무르며, 

'말로 할 수도 없고' 
세간을 초월하여 의지한 데가 없습니다. 


분별을 여의어 속박이 없는 법에 들어갔으며, 

가장 나은 지혜의 진실한 법에 들어갔으며, 

세간으로는 알 수 없는 출세간 법에 들어갔나니, 


이것이 보살의 교묘한 방편으로
생겨나는 모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이 보살이 생각하기를 

'일체 중생이 성품 없음으로 성품을 삼았고, 

일체 법이 함이 없음으로 성품을 삼았고, 

일체 국토가 형상 없음으로 모양을 삼았으며, 

일체 삼세가 오직 말뿐이니, 


모든 말이 여러 법 가운데 의지한 곳이 없고 

모든 법이 말 가운데 의지한 곳이 없다 합니다. 


보살이 이와 같이
모든 법이 모두 깊고 깊음을 알며, 

모든 세간이 다 고요하고, 

모든 불법이 더함이 없고 불법이 세간법과 다르지 않고, 

세간법이 불법과 다르지 않고, 

불법과 세간법이 섞이지 아니하며
또 차별도 없음을 이해하나니, 


법계의 자체 성품이 평등하면
삼세에 두루 들어감인 줄을 분명히 아는 것이며, 

큰 보리심을 영원히 버리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는 마음이 항상 퇴전하지 않으며, 

큰 자비심이 더욱 증장하여 일체 중생의 의지할 데가 됩니다. 


보살이 이 때에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중생을 성숙시키지 않으면 누가 성숙시키며, 

내가 중생을 조복하지 않으면 누가 조복하며, 

내가 중생을 교화하지 않으면 누가 교화하며, 

내가 중생을 깨우치지 않으면 누가 깨우치며, 

내가 중생을 청정케 하지 않으면 누가 청정케 하겠는가. 

이것은 나에게 마땅한 일이니 내가 하여야 하리라'고 합니다. 


또 생각하기를 

'만일 나만 이 깊은 법을 알면
나 한 사람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해탈할 것이니, 

다른 중생들은 캄캄하고 눈이 없어 큰 험난한 길에 들어갈 것이며, 


모든 번뇌에 속박이 되어
중병에 걸린 사람이 항상 고통을 받는 것 같을 것이며, 

탐애의 옥에 떨어져 나오지 못할 것이요, 

지옥·아귀·축생·염라왕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고통을 멸하지 못할 것이며, 

어두운 데 항상 있으면서 진실한 이치를 보지 못하고, 

생사에 헤매면서 뛰어나지 못하고, 

팔난에 있으면서 더러운 때에 물들고
가지가지 번뇌가 마음을 가리워서
삿된 소견에 빠져 바른 도를 행하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보살이 이렇게 중생을 관찰하고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중생들이 성숙되지 못하고 조복되지 못한 것을 그냥 버려두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다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니, 


내가 먼저 중생들을 교화하면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에 보살의 행을 행하되, 

성숙하지 못한 이를 먼저 성숙케 하고
조복하지 못한 이를 먼저 조복케 하리라.' 


이 보살이 이 행에 머물러 있을 때에
모든 하늘·마군·범천·사문·바라문과, 

모든 세간의 건달바와 아수라들이 만일 만나 보거나
잠깐이라도 함께 있거나 공경하고 존중하고 섬기고 공양하거나, 

잠깐 귀에 들었거나 마음에 한번 거치기만 하여도, 


이런 일이 헛되지 아니하여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여섯째
선현행이라 합니다.” 


fr k0080_sf--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선현행[善現行]인가. 

( 그외 입법계품) 

K0080V08P0909a08L; 無動色身生滅永離故不壞色身法性不壞

K0080V08P0909a09L; 故無相色身'言語道斷'故一相色身無相爲

K0080V08P0909a10L; 相故如像色身隨心應現故如幻色身幻智

... 

묘법연화경 안락행품에도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K0116V09P0768c17L; 復次菩薩摩訶薩觀一切法空如實

K0116V09P0768c18L; 相不顚倒不動不退不轉如虛空無

K0116V09P0768c19L; 所有性'一切語言道斷'不生不出不

K0116V09P0768c20L; 起無名無相實無所有無量無邊無

K0116V09P0768c21L; 礙無障但以因緣有從顚倒生故說

K0116V09P0768c22L; 常樂觀如是法相是名菩薩摩訶薩

K0116V09P0768c23L; 第二親近處爾時世尊欲重宣此義

K0116V09P0769a01L; 而說偈言

또 보살마하살은 

일체 법이 공[空] 함을 실상과 같이 관찰하여 

뒤바꾸지 말고 흔들리지도 말고 물러나지도 말지니라. 

빈 허공과 같아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니, 

'모든 말의 길이 끊어져'

생겨나지도 않고 나오지도[出] 않고 

일어나지도 아니하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고 있는 바도 없고 헤아림도 없고 끝도 없으며, 

걸림도 없고 막힐 것도 없으나, 

다만 인연으로 있어 

전도를 따라 

생겨나는[生] 것을 설하나니, 

항상 이와 같이 

법의 진실한 모양을 관찰하면 

이것이 곧 보살마하살이 둘째 친근할 곳이니라." 


fr k0116sf-- ☞일체 법이 공[空] 함을 실상과 같이 관찰하여


일반적으로 불교에서는 언어도단이란 표현은 
언어도단 심행처멸 이런 식으로 자주 표현하는 말이다. 

하나의 언어표현이
각 상황에서 
서로 조금씩 다른 의미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다는 것은 
언어 생활에 자주 보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원래 언어도단이 불교 경전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불교에서는 사실 최종적으로 궁극적이고 중요한 내용이기에 
이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현실에서
언어도단이라고 표현하게 되는 상황은 
사실은 
어처구니없고 불합리하여
억울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기가 막히고 말이 막히는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이를 통해 현실이 사실은 환영과 같고 꿈과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이 두 다른 언어표현은 일정한 관련성을 
갖게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여하튼 다른 이의 불행한 사태를 보면서
심정적으로 
억울하고 어처구니 없고 불합리하고 말이 안 나온다 
이런 마음은 공감할 수 있고 이해가 가지만, 

그 언어도단이란 표현이 원래 나타내는 내용과 같이 
궁극적으로 부처님이 가르치고자 하는 
언어도단의 상태에 이름으로써 
모두 니르바나의 상태에 도달하기를 바라게 된다. 




세상의 무수한 case 문제를 생각하면서 
원칙적으로 불교에서 제시하는 수행방안을 여기에 적용하게 되면 
매번 너무 극단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현실에서 구체적 문제 상황에서 
그런 방안을 취해 벗어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거의 힘들다고 보며 
때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찾게 되는 해결 방안들이
갖고 있는 부작용들은  
사실 그 방안을 통해 그 문제가 해결되어지고
소원의 성취되었다고 보는 그 이후의 상황부터
곧바로 그 내용들을 보게 된다.  

그래서 결국 이런 부작용과 문제를 모두 제거하고 
원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결국은 처음에 가장 극단적인 방안으로 여겨졌던 
이런 방안들이 가장 최상의 방안임을 
생각하게 된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현실과 너무 거리가 있게 된다. 

그래서 
이 두 지점 사이의 어느 중간값이 그나마 좀 더 
현실적으로 좋은 방안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도 된다. 

lab 님의 글을 보기 전까지는 
lab 님이 제시하는 수행방안과 함께 
무언가 현실에서도 취할 올바른 방안이
그 중간 어딘가에 분명 있으리라고 보았는데 

글을 읽다 보니 
오히려 여러가지 의미에서 언어도단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결국 현실에서 이 방안이나 
저 방안이나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기면서, 
할 말을 잃어 버리고 
머나 먼 이상적인 목표점만 그려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



그런 가운데 
그 하나의 case 에서 
그런 극단의 방안을 취해 나아가면, 
그것이 또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라고 보게 된다. 

예를 들어 lab 님이 
끊기 힘든 담배를 끊으면
자신이 모든 생명의 일체 번뇌를 쉽게 끊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결코 끊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사실 약간은 비합리적인 이런 태도에는 
resonance 라는 현상이 개입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resonance 란 같이 함께 운다는 의미의 공명(共鳴)현상을 말한다. 


백과사전의 설명에 의하면 
진동계가 그 고유진동수와 같은 진동수를 가진 외력(外力)을 주기적으로 받아
진폭이 뚜렷하게 증가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를 이용하면 세기가 약한 파동을 큰 세기로 증폭시킬 수 있다고 제시되고 있다. 
기계적 전기적 공명은 공진(共振)이라고도 하는데 
고층건물이나 교량, 기다란 회전체 등에서 공진이 일어나면
큰 이상진동이 생겨 파괴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fr [네이버 지식백과] 공명 [resonance, 共鳴] (두산백과)

결국 그 자체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거기에 앞 뒤에 거는 슬로건에 의해 공명현상이 일어나면서 
그것이 대단히 우주에서 큰 사건처럼 공명현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 case 저 case
이 방안 저 방안에 오락가락 하면서도
이런 초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little 님이 스크립트에 0.25 초의 여유를 주니
조금 더 낫게 실행이 된다. 

>>>

Raphael - Manager

>>>

http://www.youtube.com/watch?v=bFnSfHwpoGA

 



○ [pt op tr]  Raphael - Manager  가사 





문서정보

 


댓글 테이블 


◈Lab value 불기2559/01/25/일/13:26


♥ 잡담 ♥현실의 분쟁과 수행의 문제

mun 님이 제기한 Is 의 인질 납치 협박사건과 


little 님이 제기한


어린이집 교사의 아동 학대사건 등을 

검토하는 가운데 수행자의 역할을 살피게 된다. 


is 인질 납치 협박사건은 현재 진행 중인데 보도에 의하면 

2 명의 인질 가운데 이미 1 명은 참수를 당하였고 

나머지 1 인은 자신들의 포로 석방을 조건으로 내걸며 

생존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참고기사  IS 일본인 인질 참수사진 공개? “이슬람 율법에 따라 처형”…아베 정부 반응은?

http://news.donga.com/3/all/20150125/69264844/9



세상에 서로 다투고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사건은 무한하고 

이 해결에 필요한 지식이나 방편도 

또 무한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워보려고 해도 

어느 분야에서 그 내용을 대하던 

그 방대한 분량에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나게 되기 마련이다. 


   今以有限之力(금이유한지력)

   當讀無涯書(당독무애서)

   徒欲强記洽聞(도욕강기흡문)

   終恐脣腐齒落(종공순부치락)


   이제 인간의 한정이 있는 힘을 가지고,

   마땅히 끝이 없는 서적을 읽으려고 하며,

   한갓 많이 기억하고 흡족하게 들으려 한다면,

   마침내 입술이 썩고 이가 빠져서 몸을 망칠까 두렵다.


이는 당(唐)나라 중기(8세기)에 이한(李瀚)이 지은 몽구(蒙求)라는 책에서 

따온 구절이다.   

당나라 때 지식이 많이 쌓여 있었다고 해도 

지금에 비한다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그러나 그 당시에도 솔직히 한 인간이 소화하기 힘든 만큼의 

지식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당시가 현장스님이 불경을 번역한 시점이니 

이들 대장경 내용까지 고려하면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고 본다. 


몽구라는 책이름은 

어리석다, 어리다'라는 뜻의 몽(蒙)자와 

'구하다, 찾다'라는 뜻의 구(求)자로 되어 있는데, 

주역(周易) 몽괘(蒙卦)의 동몽구아(童蒙求我)에서 딴 것이라고 한다. 


주역에서 몽괘(蒙卦)의 내용은 

물어본 내용을 자꾸 다시 되물어보는 것에 대한 

주역 자체의 대답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같은 성격의 같은 구조의 

분쟁이 끝이 없이 반복해 이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 당사자들이 하나같이 그 문제에 빠져 

답답함과 억울함, 분노, 슬픔, 고통, 공포, ...등등을 

호소하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세상은  
조금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무언가를 가르치고
상대를 이끌려고 하는 
반면 스승과 정면 스승들이
가득한 상태라는 측면으로 보아야 한다고 본다.

수행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바세계는 그자체가 극락세계가 아니고 
당사자들에게는 
지극히 억울하고 비합리적인 상황을 setup 시켜
당사자가 참기 힘든 고통을 가하는 가운데 
이를 계기로 안인 수행을 완성해 마치게 하는 
수행장소라고 역설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문제가 되는 is는 이라크 시리아를 주된 활동 지역으로 하여 
그들이 점령한 지역에서 
축구경기를 본다고 공개처형을 하거나,
음악을 연주한다거나, 기타 복장이나 종교행사 참석 등 
각종 사소한 생활상 규율 위반을 문제삼아
손을 자르거나, 태형을 가하거나 공개 처형하는 방식을 통해 
무언가 열심히 가르치고 이끌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관련기사 참조] S 일본인 인질 살해 영상 공개, 과거 "공개처형 후 십자가에 매달아
http://www.hkbs.co.kr/?m=bbs&bid=envplus11&uid=338198

그것이 그들이 신봉하는 이슬람교의 어떤 원리이고 
이번에 인질을 살해한 것도 이슬람교 율법을 적용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is 밖에서 이 현상을 보면 정작 
무언가를 배우고 익혀야 할 이들은 사실은 
누구라고 보게 되는가. 

그렇지만 그들은 전혀 그런 내용은 배우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신이 오히려 최극단에 서서 그런 내용을
남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다. 

가르침에 사용되는 수단은 칼이고 총이고 
원자폭탄이 있다면 원자폭탄이 될 것이다. 

결국 is 입장에서 보면 is 입장이 옳고 정당하다는 것이고 
그 반대 입장에서 보면 is 는 체포되고
그들이 다른 이에게 행한 방식을 따라 처벌되어야 마땅한 대상이다. 

이렇게 서로 대립하고 분쟁에 처한 모습을 
보고 제 3 자가 이에 개입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이 모두를 좋은 상태로 만들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마 저 IS 의 인질사건을 해결하려고 한다면, 

불경이나 성경만 공부해서는 안되고 

코란에 아랍어를 잘 하고 

거기에 소진 장의를 능가하는 무슨 외교적 협상 방안을
마련해 가지고 

협상에 임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런 가운데 이 문제를 연구해야 할 최적임자는
little 님보다는 choice 님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




그런데 시야를 돌려 보면 
이런 성격의 분쟁이 수도 없이 많다. 

●  최근 뉴스 보도를 보면 
한국은 엄청난 고소, 고발 사건의 천국이라는 보도를 보게 된다. 


>>>

대한민국은 고소ㆍ고발 공화국…작년 형사사건 10건중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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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50121000303&md=20150121101215_BL

>>>

보도 내용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한국은 고소ㆍ고발이 유달리 많은 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2013년 기준으로 검찰과 경찰을 합한 고소ㆍ고발 건수는
69 만9865건에 달한다. 

인구 1만명당 약 73.2건 꼴이다.
법체계가 우리와 비슷한 일본 (1만명당 약 1.3건) 에 비해
'60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


한편 이는 2010 년도 통계내용과 엇비슷한 내용이라고 한다. 
당시는 인구 1만 명당 고소·고발이 86.8 건에 달했다고 한다. 

실제 사법 처리 대상이 되는 건은 접수된 10건 중 2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고소 고발이 형사적 정의를 실현하는 중요수단인 측면도 있지만,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이뤄지는 고소고발은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하튼 그런 고소 고발을 통해
자신의 당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구체적 당사자는 
얼마나 그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고통을 당하는 상태이기에 
그런 방안을 취하게 되는가 하는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략 통계로 보는 내용이지만, 
이 수치는 그 수치가 나타나는 대로 각 사람들이 
지극한 고통의 극단에 서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수치라고 보게 된다. 

현실에서는 이처럼 분쟁에 얽혀서 세월을 보내는 이가 
대단히 많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은 사실상 법체계를 일본을 통해서 수입하여서 
일본과 대단히 유사한 형태라고 보는데 
왜 현실 법 운영은 차이를 보이는가. 

한국만 일본에 비해
민사소송보다는 형사 체계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손쉽다고 여기는가. 

여러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고 본다. 
민사 소송제도가 분쟁에서 당사자의 분쟁 해결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은 
예를 들어 택시기사와 회사간에서 사납금 문제 등이 문제되어
이를 소송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민사소송을 통해 통상 2 년 6 개월이 소요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방송은 보고해주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너무 걸린다고 보는 이들 당사자 가운데 누군가가 
이 문제를 형사적으로 접근하면 더 낫다고 보고 
고소 고발을 이용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기도 한다 .



일찍이 이런 대립 분쟁의 문제를 
1-2-3 의 관계로 살핀 바 있다. 
어느 한쪽이 탐욕과 집착에 바탕하여 무언가를 추구한다. 
그러면서 다른 누군가에 피해를 준다. -1 
그러면 그 상대는 다시 그에게 피해를 돌려주려 한다. -2
이것을 제 3 자나 사법기관은 다시 제재를 가하게 된다. -3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으면 무관심하고 무시하고 방관한다 -4 

이런 관계를 일반 현실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당사자들이 이런 분쟁 상태에서  
사법기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려고 할 때 
판결이 나고 집행이 되더라도 
그 당사자들은 사실은 이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여전히 그 이후 계속 같은 관계로 상호간 임한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분쟁에서 
분쟁을 잠시 억누르고 막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근원적인 해결방안으로는 부족하다고 이를 보게 된다. 


부처님은 사실 이를 모두 중지하고 반대의 방향으로 임하는 것을 
그 해결방안으로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그렇게 행하게 되는 
잘못된 기본 바탕인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할 것을 근본 해결방안으로 
가르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깨달음과 
복덕과 지혜를 얻는 방편으로 제시되는 수행방안들이 
모두 그에 관련된다. 

삼먁삼(정등정)이라는 표현을 다라니적인 시감상 방법으로 
해석해서 일반인이 행하는 1-2-3 의 방식을 대치하는 
또 다른 1-2-3 의 방안이라고 음미해보는 것도 
그런 취지다. 

그것이 곧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고 
얻을 것이 없음(무소득)을 방편으로 하여 
자비희사의 사무량심의 마음으로 생명을 대하며, 
보시-정계-안인-정진-정려-반야-방편-원-력-지의 수행방안을 
실천해나가는 내용이기도 하다. 

다라니 삼매의 수행을 기본으로 
3 보에 귀의한 가운데 
계-정-혜 삼학 등 다양한 3 과 관련된 수행을 통해
연구를 진행하는 다삼작전도 이와 그 취지가 같다. 


● 다가오는 1월 27 일은 
2 차대전시 전쟁 피해자를 기념하는 
홀로코스트의 날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민도 비슷한 피해를 경험하였기에 
이것이 전혀 남의 일처럼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인질사건의 피해국이라고 할 일본 아베수상은 
홀로코스트가 벌어진 수용소도 방문해 과거 비극을 참회한다는 등의 취지로 연설하고 
일본인 인질 살해에 대해서는 언어도단이다라고 말하며 분노를 표현하면서도 
그러나 과거 일본이 한국민에게 행한 악행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무시하고 합리화하고 부인하는 식으로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이 모든 문제에 임하는 모습을 
제 3 자인 한국국민은 관찰하게 되는데 

그러나 그런 모습은 단지 
아베수상에게서만 발견하게 되는 모습은 아니다.

홀로코스트의 최대 피해자였던 유태인들은 
오늘날 이스라엘을 건국한 가운데 
원래 그 땅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또 다시 비슷한 방식으로 상대하는 모습을 
제 3 자 입장에 있는 이들은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문제만 생각한다면, 
당사자들이 서로 극단적으로 이해관계와 입장이 대립하는 모습은 
역사적으로 바로 히틀러와 유태인의 관계를 통해 볼 수 있다. 

히틀러가 유태인을 집단학살해야 마땅한다고 본데에는 
히틀러 나름대로 이유와 명분이 있었던 것이고 
그런 내용을 가지고 독일 국민을 가르치고 이끌었던 것이다. 


당시 히틀러가 이끌던 독일은 
2 % 남짓한 유태인들이 사실상 독일의 40 % 의 부와 
중요요직을 차지하고 있었고
유태인들은 독일 국민과
종교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동화되지 않은 가운데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이 히틀러가 유태인을 배척하고 나선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사실상 그런 상황은 오늘날 유태인이 건너가 활동하고 있는 
미국도 사정이 엇비슷하다고 한다. 
이런 바탕에서 각종 세계적 분쟁의 배후원인으로 활동한다는 각종 음모론이 나오는 것도 
전 세계적으로 유태인들이 금융자본을 장악 독점하고 
노벨상을 거의 휩쓰는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유태인의 상대적 능력의 우월성과 함께
그들이 보여주는 종교적 민족적 선민사상과 독선주의 및 민족적 결집력과 
배타적 성격이 이에 작용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여하튼 히틀러는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을 독일 게르만족이나 아리안족 나아가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유대인 박해를 감행해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박해와 차별이 유태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지극히 비인도적이고 억울하고 고통스런 박해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 이런 상호 극단적인 대립 상황에 개입하여 

유태인이 수용되 학살당하고 있는 수용소를 방문하여
유태인을 구제하려고 생각한다면
어떤 방안을 취해야 한다고 보는가. 

사실, 별 방안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히틀러가 전쟁에 패배하여 자살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는 없다고 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유태인을 1200 여명을 구출해낸 인물이 있다. 

스필버그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져 널리 알려졌는데 
Schindler 라는 인물이다. 


한국에서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타다 보면 
Schindler 라는 이름을 보게 되는 수가 있는데 
이 인물과는 직접 관계없는 것으로 알지만, 
여하튼 그 상표나 글자를 볼 때마다,
늘 이 Schindler 라는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연상의 힘이라고 본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는 쉰들러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한국말로 '신들려' 이런 단어를 생각하고 
연상 기억했던 기억도 있다. 

여하튼 
스필버그(Spielberg)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1993) 에 
유태인을 구출하는 과정에 대해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만, 
결국 쉰들러가 행한 방법 정도가 당시 나치 치하의 유럽에서 처형 위협에 처해있던 
유태인을 구출해낼 방안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쉰들러는 전쟁 종료 직후 유태인 공장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고 한다. 

"당신들에게 제발 인도적으로 행동하길 부탁합니다.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그들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내버려 두십시요"


그러나 세상에 저절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자신이 심판자가 되어 이들을 체포하고 벌하려고 나서기 마련인 것이다. 

Schindler가 당시 그나마 1200 여명의 유태인을 구출해낼 수 있었던 것은 
물론 Schindler가 당시 나치 장교들과 매우 친분이 있는 독일사업가였던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1939년 9월 나치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오스카 쉰들러는
나치스에 협력해 많은 돈을 벌고 나치당원으로 활동하지만, 
이후 유태인 구출을 목적으로
나치 관료들에게 뇌물을 주고 군수물자 생산에 꼭 필요한 인력이라는 구실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 폴란드내 수용소에서 크라코프의 공장으로 빼내
유태인 구출 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후 사업은 파산에 이르렀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당시에 좀 더 그 취지를 유태인들에게 알려 
생산성도 높이고 수익도 실제로 많이 올려
유태인들을 한 없이 더 많이 구출해내고 
더 나아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구출해야 할 이들이 한없이 있으므로 
그와 같이 계속 구출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소설을 써보지만, 
이렇게 소설을 쓰면 누군가 반드시 물을 것이다. 
당신은?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하는가? 


그런 질문에 답하기는 곤란하고 
다만 조금 시나리오을 이어서 더 좋게 작성해보려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한 번 해본다는 것이다. 


조금은 거친 선생님들이 
세상을 이끌고자 나설 때 
그 수단이 매우 잔인하고 거친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상황에 이해관계나 주장과 견해
심지어 믿는 종교관마저 서로 첨예하게 대립되어 
다투고 있는 상황에 개입하여 
누군가를 구출하는 문제는 
그래서 대단히 어렵다고 본다. 

원래 그런 형태로 각국이 분열되어 치열한 싸움을 벌이던 
전국 시대의 중국에서 외교가로 활동한 유명한 인물로 
소진 장의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 스승은 공교롭게 귀곡자라는 분인데 
전하는 이야기로는 귀곡자의 제자 가운데에는 
서로의 분쟁을 가장 극단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으로서 
병법을 배운 이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방연과 손빈이 그런 인물로 거론된다. 

그런데 이들 동문수학한 제자들간에는 
비극적인 사연이 있다고 한다. 
그들이 배운 분야가 병법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방연은 친구 손빈을 자신의 경쟁자로 보고 책략을 써서 
손빈의 발을 끊어 버리고 가두었는데 
손빈은 탈출한 다음 
다시 교묘한 책략을 써서 전쟁터에서 만난 
방연을 화살로 고슴도치로 만들어 
복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동문 수학한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사연이 있어서 그런 지 몰라도 
소진과 장의는 서로 이런 관계를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래서 서로 사실은 정반대되는 
합종 연횡책을 가지고 각국에 외교를 맡아 나서는데 
당시 이들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각자의 뜻을 펼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도 역시 
같은 의문을 던지게 된다. 
무엇때문에 그런 일을 한 것인가. 
그런 일을 성취한 후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 

사실 이 각국의 문제 해결에 임했던 소진은 
나중에 이에 관해 이렇게 술회했다고 한다. 

자신이 먹고 살 농토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일을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아리송한 이야기를 남겼다는 것이다. 

결국은 당대 최고의 지위에 올라
최고의 명예와 부와 지위를 다 차지한 소진이 
인간들에게서 본 것은 결국 
그런 측면이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여하튼 결국 전국시대의 혼란은 일단
진시황이 이끈 진나라의 통일로 귀결되는데 
그렇다고 세상의 문제가 모두 다 해결되고 
조용해졌다고 보는 이는 드물다. 

진 나라라는 진시황이 분서갱유등 각종 학정을 일삼으며 잠시 머물렀다가 
이후 곧바로 붕괴되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 이후 그 이후도 사정은 같고, 

이렇게 보면 무슨 완전무결한 해결책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궁금증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수행자의 수행을 이런 현실문제와 대비시켜 생각하면 
수행자는 이런 세상의 모든 온갖 분쟁과 문제를 다 외면하고 
어느 한가한 곳에 들어가 몸을 숨기고 
잠을 자거나 선정을 닦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기 쉽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수행자는 사실 이 세상에서 번뇌가 일으키는 문제와 
생노병사의 고통의 현장에서 그 문제를 보고
처음 수행을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행자는 사실 수행과정에서 
이 모든 분쟁과 문제 속에 
각 당사자로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 모든 문제를 자비희사의 마음으로 대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하여 

이 쪽으로 들어가서도 바라보고
저 쪽으로도 들어가서도 바라보면서
이 모든 문제 상황의 근본적 해결방안을 
찾아 자신의 수행에 적용해 나가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쪽의 문제상황에 자신이 들어가 위치해 
수행의 방법을 통해 그 문제를 극복해 나오고 

또 반대 쪽 문제상황에 자신이 들어가 위치해
똑같이 수행의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해 나오는 것을 
꾸준히 수행하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그렇게 그 문제를 해결해 나오지 못한다면 
자신 자체의 문제 역시도 해결할 방안을 찾지 못하고 
남의 문제도 해결해 낼 방안을 찾을 수 없다. 

설령 다른 이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 
다른 이들의 문제에 개입한다해도 
역시 자신부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알지 못하므로 
다른 이를 구출해 낼 수도 없다. 

그러니 우선 자신부터 그 각 상황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 또 다른 당사자의 문제를
대하게 될 때에도 역시 사정이 같다. 


그런 가운데 다른 당사자들의 하나의 문제를 대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외에 다시
또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예를 들어 자꾸 잔혹한 처형을 일삼는 is 대원에게 
다가가 그 행위를 중지하고 
모든 사람을 자비의 마음을 갖고 이끌고자 하는 형태로 
변화시키려면 
자신이 이에 다가갈 수 있다고 할 때
도대체 무슨 방편으로 그를 그와 같이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가. 

또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is 대원에게 자신의 자녀가 살해당하고
자신의 손이 잘리워져 억울함을 느끼는 이에게
다가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려면 

또 자신은 무슨 방편을 가지고 
그들이 모두 평안함에 이르고 
더 나아가 이를 계기로 최상의 상태에 이를 수 있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가. 

우선 아랍어라도 유창하게 잘 할 필요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가. 

자신이 불교를 믿더라도 
불교만으로는 곤란하고 
코란을 한 번이라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는가. 

성경을 믿더라도 사정은 같다. 
자신이 보는 성경 이야기만 상대에게 해서는 
상대가 도무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받아들여 주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코란은 그런데 사정이 어렵다. 
불교나 성경은 각국말로 번역이 되는 것이 허용되는데 
코란은 원칙적으로 그런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극히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그런 기본 바탕에서 다시 소진이 공부해 익혔다는
상대의 속마음을 꿰뚤어 본다는  
췌마(揣摩)술을 익히던지 

아니면 요즘 최면술사가 사용하는 최면술이라도 
익혀서 
각 당사자의 마음을 변화시켜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니 자신이 잘 모르고 취하는 방편은 
자신의 뜻과 같이 이루어지지 않고 
온갖 부작용만 일으키기 쉬운 것이다. 


파리의 신문사에 괴한이 난입하여 
만평을 그리던 작가와 편집인을 총기로 살해했는데 

그들도 결국은 죽었다고 한다. 

이에 프랑스 사람들은 
Je suis Charlie 죄수는 철이다 
라고 외치고 다니며 항의시위를 한다지만,  

그러나 이런 항의시위만으로 
이러한 분쟁이 쉽게 해결된다고 보기는 힘들다. 
당장은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다고 보지만,
이것은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고
단지 문제가 잠재되어 있는 상태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이런 상태를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방안을 찾다보면 

망상분별을 제거하고 
집착을 제거하고 
모든 악과 고통의 근본원인인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 사견 등을 
제거하는 것을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는 것이다. 




>>>

Quand tu m'aimes - Herbert Léonard - Clip & paroles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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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v3o5i9jPvQ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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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Quand tu m'aimes - Herbert Léonard  가사 



little 님의 경우는 


원래 처음 지구에 도착할 때 
사막에 도착하여 쎙떽쥐베리 옹과 사연이 얽혀 있기에 

이번 is 사건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카라반을 이끌고 무대책으로 현장에 접근해 가기 쉽다고 본다. 

그러나 그전에 수행을 통해 
자신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고 많다고 본다. 

일단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부터 구출을 잘 해야 된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little 님이 마음에 두는 분은 

이름 자체에서부터 omniscient 한 상태가 드러나는 분인데, 
이 문제부터가 해결이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자신 내부의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하고 
그 다음 여타의 문제를 같은 원리로 접근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세상이 사실은 자신 정신의 스크린 안에 
맺힌 내용이다. 
이런 것부터 일단 잘 점검해 보는 것이 
늘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일체유심조. 유식무경, 반야바라밀다. 도일체고액 
이런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인 것이다. 


Raphaël - Caravane

>>>

https://www.youtube.com/watch?v=xHJoY0oSD_Y

>>>




○ [pt op tr]  Raphaël - Caravane 가사 



● 자료를 찾아 복사해 붙이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이상한 문제를 보았다. 

논리에 관심을 보이는 little 님이나


과학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mun 님께서 



이 문제를 이렇게 푸는 그 원리가 무엇인가 
답할 수 있는가. 

우선 손자산경(孫子算經)이란 책은 
중국 한(漢)나라 때부터 당(唐)나라 초기까지의 고전 수학서의 총칭인『산경십서(算經十書)』중의 하나로서 

당(唐)나라 시대에 ‘산학(算學)’이라 불리는 교육기관에서 교과서로 사용하였던 책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이 책에 수록된 문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꿩과 토끼가 바구니에 있다. 
위를 머리의 수가 35 개 
아래를 보니 다리의 수가 94 이다. 
꿩과 토끼는 각각 몇마리인가.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풀이가 나와 있다.


발의 수를 반으로 해라 : 94 ÷ 2 = 47

그것에 머리의 수를 빼라. 이것이 토끼의 수이다 : 47 - 35 = 12

그것을 머리의 수에서 빼라. 이것이 꿩의 수이다. : 35 - 12 = 23



다음과 같은 문제도 있다.


물건이 몇개 있는지 총수는 알 수 없다. 
다만 3개씩 세면 2 개가 남고 
5개씩 세면 3개가 남고 
7 개씩 세면 2 개가 남는다고 한다. 


이를 ‘손자(孫子)의 문제(問題)’라 부르는데,『묵사집산법(黙思集算法)』의 해법에 따라 이의 답을 구하면 다음과 같다.


(70 × 2 + 21 × 3 + 15 × 2) - 105 × 2 = (140 + 63 + 30) - 210 = 233 - 210 = 23


‘손자(孫子)의 문제(問題)’는 일반인 사이에서도 널리 회자됐는데,
진(秦)나라 왕의 비밀 병사 점호법[진왕암점병(秦王暗點兵)]․
한신(韓信 : ?∼B.C. 196) 장군(將軍)의 병사 점호법[한신점병(韓信點兵)]․
반복 사격술[복사지술(覆射之術)]․귀곡산(鬼谷算)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fr http://cafe.naver.com/geochips/4968  


문제의 답보다도 왜 이런 식으로 
풀이식을 제시하게 되는가 
그것이 더 궁금증을 자아낸다. 

mun 님이 아래 문제에 대해 이런 식으로 접근한다. 

x= 3a+2    2, 5, 8, 11, 14, 17, 20 ,23

x=5b+3     3, 8, 13 18, 23

x=7c+2     2, 9, 16, 23 


내가 이런 난센스 문제에 대하여 한가지 말한다면 
다시 똑바로 세는 것이 좋다고 말하게 된다. 

한 번 셀때 정확히 세면 
3씩 묶어 세던 5 씩 묶어 세던 7 씩 묶어 세던 
곧바로 답을 얻는데 왜 똑바로 한 번을 세지 않고 
여러번 세고 
답을 모르면 그 시간에 다시 똑바로 세면 될 일을 
이렇게 문제에 접근하는가. 

꿩과 토끼의 문제도 같다. 
왜 꿩과 토끼를 왜 한 곳에 놓고 그렇게 이상하게 세는가. 
꿩이 가끔 발이 1 개만 있기도 하고 
토끼도 가끔 발이 3 개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것을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되는가. 

목적을 올바로 하고 
목적에 맞게 올바로 방안을 취해야 한다. 

이런 산수가 현실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지 않으면 
그 논리나 산수 과학의 한계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 

온갖 노벨상 수상자나 
수많은 화폐를 벌어들이는 빌게이츠나 쥬커버그나 워렌 버핏이나, 
기타 등등의 인물들에게 
모두 For what? And what? 의 질문을 던지면 
다 공통적인 상황에 빠지게 된다. 

사실 이들이 서로 회합하여 방안을 찾는 것은 
벌기는 벌었는데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 그 답이라면 답이다. 

그러나 이들이 그것을 문제의식으로 갖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본다. 
대부분은 그것을 문제의식으로 갖지도 못하고 
무한히 질주해 나가버리기 때문이다. 

모든 과학 이론의 바탕에도 동일한 문제가 
들어 있다. 
그 출발점에서 문제삼지 않고 
출발의 기초로 삼고 무한히 전개해나간 
그 각 지식에는 
늘 그 이론을 한계지우고 
다시 또 다른 문제와 모순을 제기하는 질문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빛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고 이론을 전개하면 빛에 스스로 갇히고 
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고 모든 것을 성문제로 환원시켜 이해하면 
그 성에 스스로 갇히는 결과가 된다. 

그래도 심심할 때는 
이 무한 회로에 뛰어들기는 들어야 한다. 

왜 저렇게 푸는가? 
이상하다. 

이 문제에 들어가기 전에 
2 + 2 는 과연 4 인가 이런 문제부터 붙잡고 
잘 풀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가장 먼저 2 란 숫자의 모습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2 가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
이런 것부터 잘 확인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그런 문제제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공연히 희론을 무한히 일삼아 나아가는 것을 
방지하고 
원래 삶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그리고 
무한히 반복되는 고통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매 문제와 매 소원마다 
맹목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그것의 성취를 놓고
For what? And what? 의 문제를 
잘 풀고 각 문제에 접근하여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한 것이다. 

오늘도 파이 원주율 값을 구하려고 노력하고 
또 앞으로도 무한히 계산을 해나간다고 하여도, 
그 끝이 보인다고 보는가. 
그러나 그 값이 그렇게 엄밀하게 문제가 안 된다면 
왜 그렇게 끝없이 그 값을 구해나가겠는가. 
약간의 차이가 결국 큰 차이를 낳는다고 보고
때로는 도착지점이 아주 엉뚱한 곳이 되기도 한다고 보기에 
그렇게 계산을 하고 또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요하고 
그러나, For what? And what? 의 문제를 대하는 가운데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면 
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문서정보

 





◈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5/01/25/일/08:12


♥ 잡담 ♥익숙한 현실과 돌파방안 

현실은 사실 매우 익숙하다. 
꿈과 같다고 말하지만, 꿈과는 또 다르다. 

익숙한 내용이 매우 정연하게 반복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록 꿈과 같이 무상하고 일시적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꿈과 같이 실답지 않은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많이 실답게 진짜처럼 느껴진다. 

아침 커피를 마시고 왔는데 
정말 진짜같다. 


is 단체의 인질 문제를 놓고 lab 님이 올린 글을 
보았는데 
결국 대처방안은 
제 3 자는 이를 자비희사의 마음을 갖고 대하고 
인질을 살해하려는 입장에서도 자비의 마음이 필요하고 
인질의 입장에서는 또 안인의 수행방안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라고 본다. 

결국 일반인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는 방식을 
중지하고 그 반대의 방향으로 행하라는 요구이지만, 
그러나 현실에서 이렇게 행하는 경우를 보기는 드물다. 

직접 그 상황을 마음에서 그려 놓고 해보려고 해도 
잘 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의 일로 놓고 볼 때는
정말 그 각각이 그와 같이 하여 평안한 상태에
이르기를 바라게는 된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잘 될 것인가 생각하면 
또 약간 우울해진다. 

불교에서 자비희사를 말하는데 
자(慈)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사랑의 의미라는데 왜 사랑 애(愛) 자를 쓰지 않을까. 

비슷한 말로 어질 인(仁)도 있는데 이것과는 어떻게 다를까. 
그런 궁금증을 갖게 된다. 


사전을 찾아 보니 다 사랑이란 말이지만, 
사랑 애(愛)는 물욕 탐욕과 관련되는 말인 것 같고 
사랑 자(慈)는 어머니, 인정(人情), 동정(同情) 이런 의미와 관련되는 것 같다. 

행복론 각론에서 
사랑의 각종 단계를 나열하여 살필 때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은 
한우 사랑, 또는 치킨 사랑, 이런 식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때의 
사랑부터 살피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무조건 차지하고 
자신이 맛보고 섭취하는 행위를 사랑한다는 말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강간범이나 성추행범이 자신은 쉼이 없이 여인을 사랑한다고 할 때도 
사정이 같다. 

이것은 적어도 애완견을 자신이 사랑한다고 하면서 
애완견의 입장에서 애완견이 행복을 느끼도록 
배려하고 도와주는 사랑과는 다르다. 

그런 사랑의 단계를 넘어 
다른 형태의 사랑이 많이 나열되게 된다. 

현명한 어머니가 자식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으로서 
사랑을 설정하면, 
조금은 더 많은 내용을 포함시키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가 자식에 갖는 사랑의 마음도 
각 경우마다 다르고 
또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점을 보게 된다. 

자신의 자식을 사랑하기에 
이기적으로 행하고, 심지어 악을 행하는 부모도 
많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나아가면 
사랑은 인류나 모든 생명을 제한없이 
모두 최고의 상태로 이끄려는 그런 사랑의 내용으로 
나아가게 된다. 

각 단계에서 보는 사랑으로 인한 문제가 해소되고
그 사랑으로 인한 장점이 많아지는 것을 형태를 
찾아 나가다 보면 결국은 
그렇게 나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사랑하기에 
상대에 집착하고 상대를 구속하고 
심지어 상대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형태도 있다. 
이것은 자신도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는 형태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당사자나 상대나 다 함께 불편하지만,
잘 벗어나오지 못한다. 

때로는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도 
이런 형태로 전개되는 수가 많다. 

먼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질 사태를 하나 놓고 
이를 자비희사의 마음으로 대하라고 하니, 
생각해보게 되는데, 

인질범이나 인질피해자나 다 안타깝다는 마음 뿐이지, 
막상 이들에게 어떻게 해줄 무언가를 찾아내기 힘들다. 

그렇다고 나와 당장 관계없다고 모두 다 떠나 보내는
사라는 방안을 취하기도 힘들고
기뻐할 일도 없으니 기뻐하기도 힘들고
그저 안타깝고 안 되었다는 그런 마음만을 갖게 될 뿐이다.

인질범이나 인질의 입장에서 
다시 죽음의 협박을 받고 살아가는 상태에서
이를 평안한 상태로 받아들이라는 부분에서는 
조금 감당하기 힘들다. 

무슨 근본정신이 어떻고 하면서 
복잡한 내용을 제기하는데 

그러나 내 생각에 
현실은 꿈과 같다고 하지만, 
상당히 꿈과 다르고, 
진짜같고 실답고 
또 상당히 오래 유지되는 내용이고 
또 상당히 정연하고 
또 상당히 규칙적이고 안정적이고 
익숙하게 반복되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내가 나 자신이나 나의 것으로 보는 내용들은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실다운 
나이며 나의 것들인 것이다. 

이것이 훼손되고 침해될 상황에 놓여 있는데 
이 때는 
그냥 정신을 잃고 혼절하는 것이 
최상이 혹시 아닐까. 




>>>

http://www.youtube.com/watch?v=WMf3aH0n2V8

>>>

Marc Lavoine - Toi Mon Amour

>>>






○ [pt op tr] Marc Lavoine - Toi Mon Amour 가사 







문서정보

 


◈Mun Tokyun 2015/01/24/토/16:43


♥ 잡담 ♥글자만의 분별 

정신의 문제를 살필 때 정신(식)이란 글자에
온통 붙이는 글자만 달리 덧붙여 
제시되는 데
이것으로 그 정체와 그 내용을 알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도대체 누가 이것을 그렇게 설명하는가. 
그는 과연 그것을 보거나 만지거나, 한 것인가. 

소설이야 누가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가. 

설령 그렇게 설명하는 이야
자신이 직접 그 내용을 다 보고 경험해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이에게 그와 같이 설명하게 되면, 
당연히 역시 같은 문제를 만나게 된다. 

그 말을 듣는 이가 역시
이 각기 다른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없어
같은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어떡해야 되는가. 


본인이 연구 중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았다. 

그런 내용보다 현실에서 당장 필요한 내용은 
오히려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복사해 가지고 왔다. 

lab 님이 반복 제시하는 보정안정 (보시-정계-안인-정진) 수행 항목 안에 
추가될 만한 내용이라고 보게 된다. 

 


원래 대승기신론의 정진[진문(進門)] 항목 안에서
제장방편(除障方便- 장애를 제거하는 방편)의 내용으로
소개되는 내용이다.  

...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하였으나, 
전생(前生)으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기 때문에
삿된 마군과 여러 귀신에게 괴롭힘을 받거나 어지럽힘을 당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事務) 때문에 여러 가지로 끄달리고 얽매이며, 
혹은 병고(病苦)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기 때문에
마땅히 용맹정진하여 밤낮 여섯 때[晝夜六時]에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권청(勸請)하고
수희(隨喜)하며
보리(菩提)에 회향하기를 늘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를 벗어나게 되어 선근이 증장하기 때문이다. 
...

fr 대승기신론기회본 K0616sf--


대략 수행 방안에 대해 살피자면 
상식적으로 앞과 같은 보정안정과 같은 내용을 
기본적으로 꾸준히 열심히 수행하여 완성하고 난 후 
다시 또 수행해 나가면,
아름다운 여인 초선을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런 예상을 해보게 된다. 

생겨남을 떠난 기쁨과 즐거움[이생희락離生喜樂]을 선사해준다는 
여인이다. 

그 뒤는 다시 그 뒤에 가서 생각해볼 일이라고 본다. 
일단 이 분부터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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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59/01/24/토/11:29


♥ 잡담 ♥불과 자신의 정체 문제

little 님이 불의 정체를 파악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 그러나 실재의 불을 파악하고자 할 때 
현실에서 자기 자신이나
또는 각기 하나의 감각기관만 가진 sam 들이나 
다 그런 유사한 내용을 얻는다고 볼 수 있으므로, 
그런 내용들과 비례하고 유사한 어떤 내용이
실재의 불이라고 보는 것이 
정당한 추리가 아닌가 묻는다. 


○ 또 실재가 설령 공하다고 하여도 
또 실재나 감각현실 자체에는
현실에서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문제삼는 그런 생사나 고통 등의 문제가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하여도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문제가 그와 같이 반복해 나타나는 것이니, 
이렇게 나타나는 현실 내용들이
사실 더 중요한 것이고 실다운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 또한 실재 진여 자체는 현실에서 보는 내용과는 달리,
그런 문제가 없고 본래 극히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라고 하지만, 

그러나 현실이 이렇게 나타나고 
그것이 근본정신에 의해 세세 생생 생사를 반복하면서 
나타나는 것이라면
앞과 같이 그것이 오히려 결국 현실의 실다운 문제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데 

그러나 본래는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그런 바탕에서 현실이 그것이 그렇게 된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때문인가.  

이런 여러가지 복잡한 의문을 제기한다. 



[IMG2--15] http://buddhism007.tistory.com/691 ☞● 불의 정체의 실험

08pfl--image/불의정체-실험.jpg



● 우선 위 실험에서 
little 님이나 각 sam이 그의 주관에서 얻는 내용이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실재의 불을 추리할 때 그 실재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가가 
당연히 의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각 주체가 얻는 내용이
그것을 얻게 한 실재내용과 비례한다거나 유사하다는 등의 내용을 주장하려면,

최소한 실재의 내용을 하나라도 얻어야 그것을 바탕으로
그런 내용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 실재 내용을 단 하나라도 얻어야
이것을 바탕으로 다른 내용도 또 그와 같을 것이다는 등의 
내용을 그 바탕에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내용을 하나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그와 같이 우선 밝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미 현실에서 각 sam 이나 little 님이 얻는 내용을 놓고서 
이것을 살핀다 해도 

각 sam 이 얻는 내용을 다른 sam 에게 대해 그것이 실답다고 주장하면
다른 sam 의 입장에서는 그런 주장은 도무지 그런 내용을 전혀 얻지도 못할 뿐더러  
전혀 엉뚱하고 근거가 박약한 내용이 되는 사정을 
각 sam 의 입장을 놓고 헤아리면 
적어도 이 각 sam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 little 님은
이 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little 님은 당연히 이들 각 sam 이 얻는 내용을 다 함께 얻는 상태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이들 각 내용을 모두 합해 놓아도
원래 처음에 갖던 문제점은 달라지지 않고 
일부를 떼어도 또 그 사정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들 간의 문제는 다음이라고 할 수 있다. 

1 번 sam 이 있다고 보는 것을 왜 2 번 sam 은 전혀 없다고 하는가. 
1 번 sam 이 없다고 보는 것을 왜 2 번 sam 은 또 무언가가 있다고 하는가. 
1 번 sam 이 어느 부분과 어느 부분이 같다고 하는 것을 왜 2 번 sam 은 또 그렇지 않다고 하는가. 
1 번 sam 이 어느 부분과 어느 부분이 다르다고 하는 것을 왜 2 번 sam 은 또 그렇지 않고 같다고 하는가. 
...등등의 문제가 속출하는 것이다. 

이것은 little 님에서도 사정이 같다. 
위 실험에서는 little 님과 little 님과 유사한 sam 을 초빙하여 
실험한 것이지만, 
이제 전혀 이질적인 감각기관을 갖는 다른 생명체를 초빙하면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진다. 

흑백 색맹이고 후각이 발달한 것으로 알려진 개를 초빙한다해도 사정이 비슷해지고 
박쥐를 초대해도 그렇고 
방울뱀을 초대해도 그렇고 
두더쥐를 초대해도 그렇고 
그래서 사실은 위 상황에서 그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sam 이나 little 님이나 또 이를 관찰하는 또 다른 제 3 자나 
모두 타인의 감각내용이나 관념 내용을 직접 얻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조 수단이 되는 언어나 
간접적 관찰로 이 문제를 접근하는 것인데 
결국 최종적으로 만나게 되는 문제는 
다 사정이 비슷한 것이다. 


● 한편, 
존재한다고 문제삼고 논의과정에 생각하게 되는 여러 내용들  가운데
무엇이 다른 것보다 더 바탕이 되는 내용이고
좀 덜 허황된 것 (좀 더 실다운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나비 꿈을 꾸고 깬 장자가 제기한 의문과 사정이 비슷하다. 

나비 꿈을 깨고 일어난 장자가 스스로 생각하길, 
장자가 잠시 나비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장자꿈을 길게 꾸는 것인가 이런 
문제제기와 성격이 같기 때문이다. 

꿈에서 배개에 눌려
코끼리에 밟히는 꿈을 꾸고 일어난 이는 
배개가 그런 꿈을 꾸게 된 것과 전혀 관계가 없지 않고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러나 배개를 놓고 꿈속에서 본 코끼리를 찾는 일은 잘 하지 않는다. 

그 사정이 무엇인가. 

그것을 헤아려 실재와 현실의 관계
그리고 감각현실과 관념의 관계를 모두 
그와 같이 그것들 각각이 꿈은 아니지만, 
마치 꿈과 같은 성격과 관계로서 그런 내용을 얻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꿈 내용을 잡고 집착하는 가운데 
현실을 보면 꿈이 더 실다운 진짜의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사정이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그와 같이 깨달아서 
망상 분별과 집착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함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img2--01]

08pfl--image/존재의_영역_설명.png



● 존재로서 문제삼는 내용들을 나열할 때 
위와 같은 다양한 차원의 내용을 나열할 수 있지만, 
이들 각 내용가운데 서로가 서로와 어떤 관계성을 갖는 것이고 
이 가운데 무엇이 무엇보다 더 실답고 덜 실다운가도 위와 같은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 

실험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위에 표기한 내용을 없애거나 다시 만들어 넣을 때 
아래의 내용이 그에 따라 어떤 변화가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반대로 아래에 표기한 내용을 없애거나 다시 만들어 넣으면 
위의 내용이 그에 따라 어떤 변화가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위의 내용은 아래의 내용에서 그 내용이 그대로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가.
그대로의 내용이 그 안에 없다면 
위의 내용과 아래의 내용은 서로 어떤 관계인가. 

그리고 앞의 실험 내용이
이런 설명과 해석과정에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좋음의 문제를 하나 놓고 이 문제를 생각해보자. 

짜장면을 배고픈 상태에서 먹을 때는 
그 짜장면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지극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먹게 되지만, 
그러나 짜장면 안에 그런 좋음이 어디에 있고 
이 좋음과 짜장면의 모습과 
짜장면을 먹을 때 느껴지는 맛의 감각 등과의 관계에서 
이들 내용은 어떤 관계인가. 

또 이들이 각각 다른 영역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이들 각 내용은 
어떤 것이 어떤 것보다 덜 허황된 내용인가를
문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이런 다양한 내용들 사이에서
다 비슷한 형식으로 제기되는 것이다. 

만일 위 실험에서 
짜장면을 세그릇 계속 강제로 먹고 
또 짜장면을 곧바로 이어서 먹어야 상황에서 
짜장면을 다시 대하면 
이제 그 짜장면은 앞과 달리 이제 무엇을 자신에게 주는가. 

그것도 앞의 실험과 관계되는 
실험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들로
하나같이 실답지 않은 내용들인데도 
현실에서는 이 각 내용을 하나같이 집착하는 가운데 
이 모든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이 모두를 묶고
또한 이 각 내용을 집착하는 가운데
이들을 대하게 되면 

그것이 사실은 하나같이 실답지 않은 것들인데도 
이 망상분별과 집착의 묶임의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날 방안을 도무지 찾아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켜 가진 상태에서
그 내용들이 집착을 가질만한 실다운 내용들이 아님을 
스스로 관하지 못하면 결국 
그 묶임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그것이 주게 되는 고통에 그대로 노출되고 마는 것이다. 

어떤 감각현실을 얻는 바탕에서 
이 각 부분에 대응시켜 관념을 갖고 
그 어느 부분을 놓고 '그것이 무엇이다'라고 판단하고 
또 이런 내용을 언어로 진술하는 과정에는 
모두 이런 망상분별의 과정이 전제된다. 

자신은 
꽃이라고 보이는 모습 부분을 하나 묶어 나누어 놓고
그 부분이 꽃이라는 생각을 하고 
다시 이를 kkot['꽃'] 이라고도 부르고 그렇게 글자로도 적는데 
이 과정이 모두 그런 성격을 갖는 것이다. 


● 한편, 자신이 눈을 감고 꽃이라고 생각할 때에도 
그 꽃이라는 생각만은 얻을 수 있는데 
정작 그 내용에서는
눈을 뜨고 자신이 꽃이라고 생각한 부분을 바라볼 때 얻는 모습이나, 
코를 대고 맡던 향기 자체는 
그 생각 안에서는 결코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얻은 감각현실 내용에서 일정 부분을 묶거나 나누어 
어떤 부분은 꽃이다 어떤 부분은 화분이다 
또는 어떤 부분은 어떤 말을 하는 소리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과정에는 
모두 이런 과정이 전제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관계가 
마치 배개에 눌린 상태에서
배개로 인해서 꿈 속에서 코끼리 꿈을 꾸는 상황과 
사실은 그 상호 관계가 같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망상분별을 행하는
망상분별 편집증 환자가 있을 때 
그가 무언가(다른 이들이 꽃이라고 보는 부분)을 대하고, 
그것을 전혀 엉뚱하게 '외계인의 기지'라고 주장하는 것과도 
사실은 그 성격이 하등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망상증 환자도 
그것을 대하고 나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고 
그것을 대하지 않을 때는
그런 생각을 일으켜 갖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처럼 그가 갖는 생각의 내용이 정작 그 안에는 없는데도
그런 생각을 일으켜 가진 다음 
그런 내용이 그 부분에 있다고 집착하는 마음이 
다 성격이 같다는 의미다. 

그는 또 그 각 부분을 각기 나누어도 보고 묶어도 보면서 
가지가지 분별을 다시 행하게 되는데 
여기에서도 사정이 같다. 

먹물을 흐트려 뿌려 놓고
거기에서 거미를 보는 사람이 90 % 이고 
여인을 보는 사람이 10 % 일 때 
이들 상호간의 관계가 이들의 관계와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성격을 갖기에
그 모든 분별이 결국 시감상의 문제라고 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놓고 
궁극적으로 누가 정확하게 옳은 것인가의 논의를 진행하면 
결국 다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는 의미다. 

다 함께 망상분별 상태에 있다는 것이 
그 결론이라면 결론이다. 


● 한편 원래 진여 실재는 이런 문제가 본래 없이 
극히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라고 표현하는데
그러나 왜 현실은 오히려 이런 모습인가.
그렇게 된 최초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의문과 관려해서는
우선 다음과 같은 입장이 중요하다고 본다.

어떤 이가 어디서에선가 날라 온 독화살을 맞아서 고통을 당할 때
그 독화살의 근원과 소재를 따지고 논의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우선 확인해야 한다.

그 근원과 그 화살의 재료 등을 아무리 논의해도
자신이 독화살을 맞아 고통을 받는 현실에서
그 논의를 통해 자신이 갖는 궁금증이야 해소가 된다고 해도 
정작 그 고통을 제거하는 데는
당장 큰 쓸모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 급한 것은 
그 고통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고통을 해결하고 앞으로 이런 고통을 받지 않을 
근본적인 방안을 찾아 나서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현실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근본 과정이나 원인을 
따지는 문제도 사정이 같다. 

그것이 어떻든 지금 자신이 대하고 있는 현실의 정체가 
그와 같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그런 바탕에서 그 문제상황을 벗어날 방안을 찾고 실천하는 것이 
그 다음으로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유가 있어서
굳이 이에 관해 논의한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추가로 제시할 수 있다. 

우선 
현실에서 우리가 문제로 보는 이 현실 상황이 
어떻게 발생되고 
또 이것이 어떤 방안을 통해 
어떻게 해소되는가와 관계없이 

실재는 실재대로 처음부터 그와 무관하게 
극히 청정한 상태 그대로라는 것만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현실에서 소지장(지적인 번뇌 장애)를 제거하고 보리(깨달음)을 얻고 
번뇌장(감정 정서적인 번뇌장애)를 제거하고 니르바나와 해탈을 얻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그런 망상분별 속에서의 일이고 
판단이라는 점을 여기에서 먼저 확인해야 한다. 

망상분별 안에서는 그렇게 그 과정이나 결과를 보는 것이지만, 
망상분별을 떠나서 이 내용을 대한다면 
그런 것은 처음부터 모두 존재하지 않는 환영과 같은 것임을 
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본 상태는 생멸을 본래 떠나 있고 
불생불멸의 상태이며
본래 니르바나의 상태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시 이 내용을 현실을 기준으로 대하면 
여전히 그것을 그렇게 관하지 못하고 
현실 망상분별 속의 내용을 기준으로
그런 주장을 되풀이하려고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현실 속에서는 당면한 중대문제인 것이므로 
역시 이런 입장에서 
수행의 필요성을 강조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비유하면 다음과 같은 문제이다. 

비유하면 최면에 걸려든 사람은
최면의 상황에서 최면술사가 불어 넣는
여러 관념에 따라 여러 사물이나 문제도 있다고 보고
또 그 사물이 사라져 없어지고 문제가 해소된 상황도
역시 그처럼 생겨나고 멸함이 있다고 생각하고 대하게 된다. 

그러나  최면에 걸리지 않은 상황에서
이 최면걸린 이의 상황을 바라본다면, 
그가 최면 속에서 보는 그 모든 것들은 
본래 생겨난 일도 없는데 
없어지는 것은 또 무엇인가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게도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 최면에 걸린 이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중요하다면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이 두 관점을 같이 가지고 
현실과 실재를 관통하여 
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게 된다. 



최면의 비유를 놓고 이 상황을 해석한다면,
처음 최면에 걸려들지 않는 상황에서 
어느 순간 최면에 걸리게 되는 계기와
그 이후 이를 바탕으로 오랜 기간 번뇌와 고통에 노출되게 된 
이유와 과정을 설명한다고 한다면, 

현실 상태에서 이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과정을 헤아려야 한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처음 little 님과 sam 들이 함께 모여서 
불의 정체를 파악하는 문제에서 
각자가 얻는 그 모든 내용이
사실은 현실에서 각자의 어떤 부분에서 얻어지는 내용인가를 관찰하고 
거기에서부터 역으로 
그 근원과 근원을 찾아 나가고 
최종적으로 이 모든 정신의 근본이라고 볼 
근본 정신의 원 상태를 거슬러 올라가 
이 문제를 살펴 보아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는 관찰자 누구나 
자신의 마음은 자신의 마음이 직접 보지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이의 마음은 더더욱 직접 보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한계상황을 고려에 미리 넣어야 한다. 

지금 눈으로 사물의 모습을 볼 때 
그 눈으로 보는 정신을 자신이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인데 
이 문제는 그 너머 너머를 스스로 파헤쳐 
헤아려 보는 입장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관찰과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과학상식의 내용으로 
다 알다시피 

한 생명은 처음 일정한 물질 가운데에서 
일정한 부분을 그 외부와 분리시켜 
자신의 모습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 있음을 보는데 

만일 근본정신의 출발이나 개입을 생각한다면, 
이 과정부터가 그런 근본 정신이
개입되어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최초의 육체 상태에서는 
그것이 다른 외부와는 독자적으로 
무언가 생성 변화과정을 꾸준히 유지해 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근본정신과 관련하여 이 과정을 해석해야 할 필요도 
있게 되는 것이다. 

원래 실재는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이분적인 값으로 그 내용을 얻지 못하는 것인데 

그러나 그런 바탕에서도 어느 정신을 기준으로 보면 
본래 그 값을 얻지 못하는 내용을 
모두 일정한 값으로 바꾸어 얻어 내는 과정이 
기본적으로 전제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사실은 이런 것을 근본 무명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낸 값을 바탕으로 
어느 부분은 자기 자신 (주관)
어느 부분은 자기 외부의 내용(대상) 이렇게 
분별해 가며 
일정한 부분에 대해 자기자신이라고 집착하여 
이후 정신을 분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 거꾸로 
우리가 현실에서 늘 작동시키는 
여러 정신 기능들이
이를 바탕으로 다시 분화되어 나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이런 상태에서
이런 정신들을 갖고 현상의 내용을 얻고 대하게 될 때 
이제 그런 상태에서는
그 얻는 내용에 대해
그 근거나 이유를 더 이상 묻고 따질 수 없게 된다. 

일단 그렇게 얻는 내용은 그 상태에서는 
그 시점을 출발점으로 
그 상태를 시원적으로 절대적인 값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눈을 떠 자신이 일정한 모습이 일정하게 보일 때 
그것을 그 상태에서 따지고 물어보았자, 
그런 내용이 그렇게 얻어진다는 맹목적인 형태의 답 밖에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런 상태에서 그렇게 얻으니까 그런 것이다. 
그런 식의 답 밖에는 할 수 없다는 의미다. 

마치 최면술사가 존재하지 않는 사과를 
최면걸린 이에게 불어 넣을 때 
그가 사과의 모습을 얻고 나서 
그것이 어디에서 어떤 근거로 얻게 된 것인가를 
문제삼고 따지는 것과 상황이 유사하다. 

꿈고 같고 환영과 같은 내용을 가지고 
꿈 속에서 그 앞의 꿈 내용을 가지고 이것을 찾거나, 
꿈 밖의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거나 
다 사정이 안타까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꿈 속에서 그런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또 않은 것이다. 

이를 굳이 표현하면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으로 그런 것이다
이렇게도 설명하게 되는데 

그러나 이런 설명이 모든 각 내용에 대해 제시될 때 
과연 이런 설명으로 무엇인가 
속 시원한 내용을 제시받은 것인가.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의미를 갖는다. 

현실 안에서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어떤 내용의 원인이나 결과를 
그 내용의 앞의 내용이나 동시에 파악되는 
다른 내용에 갖다 붙이고 
문제를 또 다른 문제로 계속 옮겨 가는 
설명방식과는 다른 것이다. 

사실은 세속에서 옳다고 보는 인과의 설명은 
영화 스크린에서 보이는 내용을 놓고 
다른 장면에서의 보이는 내용에 그 원인을 
찾고 설명하고자 하는 것과 사정이 같다. 

기본적으로 그와 같이 설명하지만, 
이는 세속제적인 설명이라고 하고 
그런 설명이 갖는 문제를 
다시 승의제적인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표현으로 다시 제시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실재 진여와 
현상의 관계를 관통해서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할 필요성을 
자각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모든 언어 진술을 통한 설명은  
부처님이 밝히는 바와 같이 하나의 방편이고 
따라서 희론의 성격을 갖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모두 떠나야 함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니 사정이 대강 이렇다는 것을 이해하고 
보다 급한 문제는 
그런 논의라기 보다는 
이 현실 상황을 직시하고 
그 상황이 갖고 있는 문제와 앞으로 갖게 될 문제를 
제거하려 노력하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의 망상분별과 
그 망상분별에 바탕하여 일으키는 뜻과 말과 행위 등의 업은 
다시 이후의 고통의 상황을 
계속 상속시켜 만들어 나가게 되는 이 [혹-업-고]의 관계가 
사실은
이 망상분별의 현실속에서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다. 

원인이나 그 해석이야 어떻든 
오늘 대하는 현실이 그와 같다면 
그 바탕에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방안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다. 




>>>

Thomas Dutronc - Turlututu (clip officiel)

>>>

http://www.youtube.com/watch?v=k11oBiY0bh0

>>>






○ [pt op tr] Thomas Dutronc - Turlututu 가사 





문서정보

 


◈Lab value 불기2559/01/24/토/07:18


♥ 잡담 ♥넓은 오지랖과 수행 

MUN 님이 IS 의 인질사건을 언급하고
십현연기 내용을 서술하였다.
신뢰할 수 없는 부정확한 내용으로 보인다. 




십현연기문은 차라리 인터넷에서 다음 내용을 참조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내용이라고 본다. 
[ 참조 ] 십현연기문 [十玄緣起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9136&cid=46648&categoryId=46648

오지랖이란 웃옷을 덮는 겉옷 앞 자락이란 의미라는데 
MUN 님의 오지랖을 확인해보면 그렇게 넓어 보이지 않는데, 
여하튼 최근에 과학문제를 포함하여 경제문제와 인질문제를 포함하여 
세상에서 원만히 해결하기 힘들고 성취하기 힘든 온갖 문제를 다 나열해가면서 
굉장히 넓은 폭의 오지랖 범위를 보여주고 있다. 
 

초점을 인질사건에만 맞춘 상태에서 
이런 인질 사건과 같은 경우를 대하여 
그것이 자신의 일은 아니기에 관심을 깊게 갖지 않고 
마음에 평정을 깨뜨리지 않고 평안함에 머무르는 것은 
일반인 누구나 그렇게 행하는 범부의 일이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또 관심을 갖더라도 아주 잠시간 그것을 바라보고 
그런 협박을 하는 이에 대해 비난을 퍼붇고 
그런 협박범들을 잡으면 그에 상응한 고통과 공포를 주어야만 
마땅하다고 분노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것도 일반인이 행하는 범부의 일이지 특별한 일은 아니다.

나중에 이 측면만 따로 바라보면 이것은 
또 다른 NEW IS 대원의 출현과정이고 반응인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또 입장이 반대가 되어
72 시간 후에는 목을 칼로 잘라 죽이겠다는 협박을 자기자신이 직접 받고 

묶인 상태에 놓이면 
그 당사자나 그를 사랑하는 가족이나,
대부분 극도의 공포와 불안을 겪게 되고 
또 그렇게 죽임을 당하면 극도의 고통과 분노 슬픔을 받고
미움과 증오 원한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것 역시 
일반인 누구나 그런 상황에 놓이면 받게 되는 일이고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보게 된다. 

이것 또한 일반인이 행하는 일반적인 일이며, 
더 나아가 거의 모든 생명이 이와 같은 모습으로 행해나가기에 
사실은 이것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보게 된다. 


수행자는 사실은 이 각 경우에 
이와는 다른 모습, 다른 방식으로 임할 것을 요구받는다. 

물론 그런 요구에 따라 그와 같이 행하는 것은 
수행자나 일반인이나 다 함께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그런 요구를 해도 쉽게 되지 않고
실제로 그렇게 행할 수 있는 이도 드문 것이 사실이기에
이는 사실은 공연한 요구라고 생각되지만, 
그러나 각 문제 상황을 해결해내려면, 그 내용을 음미하고 
그런 요구에 가까운 상태가 되도록 평소에 꾸준히 
늘 수행하고 훈련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IS 인질 사건을 놓고 보면, 
이들은 종교와 관련된 단체로 생각되는데,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들이 믿는 절대적인 신이 얼마나 힘이 없고 지혜가 부족하고 미약한 존재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이런 신이 자신과 같은 이들에게 세상의 정의의 실현을 위탁하여 

대신 실현해주기를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잘 보이지도 않는 미미한 존재들이 
신을 명분으로 내걸고 행하는 일이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다른 종교의 광신도들의 경우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지켜보면 이런 단체의 희생자들은 
또 같은 형태로 복수를 다짐하고 나서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전에 손을 얹고 이에 대한 복수가
또 자신의 뜻대로 자신이 믿는 신에 의해 이뤄지기를 
기도하면서 복수를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경전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 있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의 내용이 적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여하튼 그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신의 대리인, 순교자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생각하고 
세상에서 악으로 보는 모든 일을 자행해 나가기 시작한다는 점이 
큰 문제라면 문제다. 

어떻게 보면 망상분별 속에서 집착을 일으키고 편집증세에 
행하는 일들도 사실은 이런 일과 모두 성격이 같다고 보게 된다. 



원래 다른 이나 다른 생명이 지극한 공포나 고통을 느끼는 상황에 있는데 
이것을 바라보고 이와 직접 관련이 되지 않은 일반인 대부분은
마음에 평정을 깨뜨리지 않고 
평온함에 머무르게 되는데
그 이유는 사실은 간단하다. 

다른 생명이 설령 지금 손 발을 잘리워 고통을 겪는 상황에 있더라도, 
그 고통이나 공포를 자신이 직접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고통을 자신이 느낄 수 없으므로,
그런 모습이 보이고, 또 그것이 예고되어도 
자신과는 무관한 일로 태연한 상태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당장의 이해관계나 고통에 관련이 없는 일이고,
자신의 만족이나, 
자신이 집착하는 것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 이상,  
누구나 성인 군자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은 어떤 범부도 그렇게 행하는 것이고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입장을 바꾸어
다른 생명이 겪는 고통과 공포를 헤아려 보고 
그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그것을 해결할 방안을 찾고
더 나아가 근원적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방안을
찾아 나서는 것이 
사실은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수행자는 이런 면에서 사실은 오지랖이 조금 넓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수행자는 생명들이 겪는 수많은 
악과 고통, 두려움, 손해 등의 상태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자-비-희-사의 마음으로 이를 대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이 자-비-희-사의 내용은
현명한 어머니가 자신의 자식들을 대할 때 
이들 자식이 가장 최고로 아름답고 가치있고 선하고 지혜롭고 행복한 상태가 모두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마음을 놓고 
이 내용들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아무리 현명한 어머니라도
각 경우에 개입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또 할 수 있더라도 마땅히 하지 않아야만 하는 일이 있으므로, 
결국 그런 입장에서 그런 마음으로 
다른 생명의 문제를 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세로 무량한 자비희사의 마음을 갖고
세상 모든 일을 관하고 대하는 것이 
사실은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자체를 갖는 것도 사실은 쉽지 않다.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마음으로 
다른 생명의 문제를 대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그것이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다른 생명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과 관련된다. 

냉정하게 현실을 보면, 
is 대원이 인질들이나 그 상대 포로들에게 행하는 일은 
사실은 우리가 소나 돼지, 닭, 때로는 생선이나 개를 놓고 
매일 행하는 일과 그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맛있는 식사를 위해 수백, 수천만의 다른 축생이 
도살장에서 도살되고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맛있는 식사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고 
이들 다른 생명의 고통은 외면하고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자비희사의 마음으로 다른 이, 다른 생명의 고통을 관하는 것은 
결국 이런 자세로 생활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축생을 키우는 이는 자신은 그저 가두어 키울 뿐이고 
도살하는 이는 자신이 이들 축생을 특별히 미워해서라기 보다는 
단지 생계를 위해서 직업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하고, 
이 고기를 먹는 이들은 자신이 이들을 직접 죽인 것이 아니고 
죽은 상태로 얻어 먹게 된 것 뿐이라고 하여 
이들 각각이 다 이 문제의 책임이 있지 않음을 말한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사실 이들은 다 함께 광범위한 공범 협력 형태가 되어 
수없이 이런 일을 행해나가는데, 
하나하나 알아듣게 이 행위가 갖는 문제를 말하여 
이런 행위를 하지 않도록 말리고
방향을 돌려 반대로 행하게 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의미다. 

최소한 축생들이 살아 있거나 죽임을 당하는 순간에
고통과 공포를 겪지 않게 배려하기를 바란다해도
이런 희망마저도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을 위해 희생된 축생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갖기만을 바란다해도 
그것은 또 쉽지 않다. 

그러나 여하튼 수행자가 이런 문제에 취해야 할 자세나 태도는 
이런 입장에서 그런 내용들을 취하고
행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인질을 사로잡아 참수해대는 is 대원에게 
다른 제 3 자가 무언가를 요청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그런 경우 그 상대가 
신이 인간에게 베풀고 행하는 자비나 사랑의 내용
또는 신이 다른 이웃을 대할 때 행하라고 요구하는 자비나 사랑의 마음을 갖고
다른 상대를 대하라고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IS 대원은 이것을 그렇게 행할 것인가. 
그 IS 대원은 그것을 지극히 행하기 어려운 일로 
생각하고 좀처럼 그렇게 행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행할 수 밖에 없게 된
다른 상대가 자신들에게 행했던 수많은 잘못과 기타 수많은 이유를 나열하며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은 
마치 현실에서 다른 생명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하여 
도축업을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라거나, 
또는 다른 생명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맛에 대한 탐욕과 건강을 
추구하지 말기를 요구할 때 
일반인이 이것을 지극히 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좀처럼 그렇게 행하려고 하지 않는 것과 사정이 같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나치 독일에 의해 지극히 큰 피해를 입은 유대인들은 
그 나치독일의 만행을 비난하집만, 

입장이 바뀌어 이웃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대할 때는 
다시 거꾸로 마치 나치 독일 군인들이 자신들에게 행한 것처럼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대하여 행해 나가게 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즉, 자신은 남에게 고통을 가하지 말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자신은 다른 이나 다른 생명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나 다른 생명에게 
고통을 가하는 일을 계속 행하고
이를 멈추는 것을 지극히 어려운 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자신이 비난하는 남의 모습이기도 하고
거울면에 나타나는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MUN 님이 최근 여러 과학적 내용을 나열하는데



이렇게 제시할 수 있는 과학지식 가운데는 
운동에 관한 
작용 반작용의 법칙도 생각할 수 있다. 
어떤 힘을 어느 것에 가할 때 
사실 힘을 받는 쪽과 마찬가지로 
힘을 가하는 쪽도 그 영향을 그 순간에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리적인 내용이지만, 
현실의 삶도 사정은 같다. 

인질에게 72 시간의 여유를 주고 협박을 가하는 이는 
그런 협박을 가하는 순간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보는가. 
그 순간 이후 그들은 어디를 간다해도 
사실은 동일한 내용의 협박을 
살아 있는 동안 계속 꾸준히 받게 되는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굳이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탈리오의 법칙을 
주장하여 적용하려 애쓰지 않더라도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생각할 때 그것이 
온 인류 온 생명을 위해 올바른 일이라고 여긴다면 
그런 형태로 그런 모습을 찍어 
세상에 공개할 것인가. 

그러니 생각해보면
어떤 계기로 그렇게 되었던 어느 순간 
이 둘 다 안타까운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거울면의 원리나, 
작용 반작용의 원리나, 
남에게 대우받고 싶은 대로 자신이 남에게 행하라는 원리는 
잘못된 선택을 하며 나아갈 때
만나고 처하게 되는 결과에 대해
다 같은 사정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 그러나 여하튼 입장이 바뀌어 이제 
자신이 인질이 되어 처형을 기다리고 있거나, 
당하는 상황에 놓인 경우에는 
또 어떤 자세로 이를 임해야 하는가. 

이 문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역시 이 경우에도 
일반인 누구나 이 상황에서 
지극한 고통과 공포를 경험하고 
때로는 황망한 가운데 정신을 잃게 되고 마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도 일반인 범부가 대부분 행하는 내용이어서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수행자에게 요구하는 내용은 
또 이 경우에 다르다. 

기본적으로 자기자신과 
인간, 자신의 생명, 신체, 목숨, 재산, 가족, 지위, 명예....등등 
자신이 평소 집착을 갖고 대하기 쉬운 것들에 대해 
망상분별을 일으키지 말고 집착을 버리고 
분노를 일으키지 말고 
미움과 원망을 버리고 
상대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평안히 고통을 참고 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수행자나 일반인이나 모두 
실천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것이어서 
이를 따라 실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기대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사정이 그렇지만, 
그러나 수행자는 이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도록 
평소에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근거로 
제시되고 또 그것을 실천한다면 
어떤 내용을 바탕으로 그렇게 행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것은 사실 앞의 내용과 같은 상태로 
그 상황을 대할 수 있다면 
조금은 가능하다고 보게 된다. 

즉 자기자신의 일로 보는 것이 
사실은 강건너 나무에 붙은 불과 같은 것임을 
이해하여 그 상황을 대하면 
앞에서 일반인 범부 누구나 쉽게
남의 고통을 대하여 평온함에 머물러 있던 것처럼 
자신의 일도 그와 같이 평온하게 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고통이 현실로 느껴지고 
더 큰 고통이나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앞의 상황과 
엇비슷한 상황이라고 관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일단 어렵더라도 사정이 사실은 
그와 같다는 것을 이해하거나 
그 사정의 이해가 어렵다면 믿음으로라도 이것을 받아들여
그렇게 대처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수행자가 행하는 수행이나 공부는 
결국 이런 문제를 기본적으로 해결하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우리가 자신으로 보는 부분은 
사실 그 부분에서는 고통이나 즐거움의 감각을 느끼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느끼지 못해 
자신의 외부라고 
쉽게 이해하는 바탕에서 갖는 생각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진리 판단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살피면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사정으로 인해, 
우리가 보는 자신의 몸으로 보는 부분은 
사실은 진짜의 자신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이 대하는 자신이나 외부의 내용은 
사실 모두 자신의 정신(식)의 내용임을 깨닫고
그래서 자신의 정신은
자신이 자신의 몸과 관계없이 
생사 전후로 유지됨을 관하는 것이다 .

그러나 이 정신은 앞의 몸에 비교하면 
좀 더 진짜의 자신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이 어느 것에도
진짜라고 할 자신이나 자신의 것은
없음을 다시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이 관계를 놓고
각 상황의 문제를 관하면
결국 이 모든 문제는
우선 진짜의 실다운 자신의 문제가 아니어서
결국은 앞의 상황에서
자신이 남의 문제를 평온하게 관하듯이
대해야 할 성격의 문제임을 깨닫게 되고

또 진짜의 자신은 아니지만,
생사를 관통하여 이어지는 자신의 정신 역시
실다운 것이 아님을 관하고, 
그 정신은 그 정신대로 이런 문제 상황에서 
별개의 다른 내용을 통해 근본 문제를
해결해내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점인 것을
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에 진짜라고 할
나와 나의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관하여 

자신이 집착하는 그 모든 내용이 
기본적으로 망상분별 속의 분별이며 
그것은 집착을 가질만한 실다운 내용들이 하나같이 아님을 깨닫고, 
이 모든 문제상황에서 기본적으로 벗어나야 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결국 유식설에서 말하는 
유식무경의 내용이기도 하고 
수행자가 수행과정에서 익히고 배워야 할 
깊은 지혜의 반야바라밀다 수행의 내용이기도 하다. 

반야심경에서 첫부분에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이라고 
하여 모든 일체의 고통과 재앙을 벗어나는 근본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사정이 같은 것이다. 

사실 이 문장에는 그런 문제상황에서 
가장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관자재보살이 있음도 
주목해야 한다. 
관자재보살을 념하면, 비록 자신이 직접 그 문제를 해결해 벗어나오지 못해도 
도움을 주시고자 서원을 가진 분이 자비행을 실천하시는
관자재보살이시기 때문이다. 

또 직접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여 
그와 같은 상태에 도달하는 것도 방안이 된다. 

그래서 일체 현상의 내용이 사실은 공함을 관하고 
그것이 실다운 내용으로서 집착을 가질 만한 내용이 아님을 깨달아 
망상분별과 집착에서 벗어나게 되면 
또 문제가 거의 해결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정말 관한 이치대로 
현실에 임하여 그것을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남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하튼 
이것은 단순한 기호의 문제나 믿음의 선택 문제가 아니고
엄연한 과학의 내용이기도 하고
진리이기도 하다.  

일찍이 불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LITTLE 님과 각기 하나의 감각기관만 갖고 있는 



여러 SAM을 초빙하여 
실험한 내용을 소개하였는데 

이것이 결국 같은 문제를 밝히는 과정이기도 하다. 
 


[IMG2--15] http://buddhism007.tistory.com/691 ☞● 불의 정체의 실험

08pfl--image/불의정체-실험.jpg



위 상황에서는 불을 놓고 불의 정체를 각기 무엇으로 보고 
또 진정한 불의 정체는 무엇이라고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를 살핀 것이지만, 
위 상황에서 논의주제를 자기 자신의 정체 파악 문제로
바꾸면 
자기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도 
역시 같은 결론을 얻게 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고 본다. 


LITTLE 님이나 각 SAM 이나 위 상황에서 



각기 자신이 자신으로 보는 내용이 있게 마련인데 
그러나 그 정확한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차원에서 
이 내용을 검토하면 
결국 앞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위 실험 관찰과정에서 
눈만 가진 sam 에게는 눈을 감았다 떳다를 반복시키면서 실험에 임하고 
코만 가진 sam 은 코를 막았다 뗏다를 반복시키면서 실험에 임하게 하고 
..
little 님 자신도 그와 같이 행하면서 그 내용이나 변화가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인가를 헤아리고 
또 이 little 님과 sam 을 다시 관찰하는 제 3 자나 자신도 
그와 같이 행하면서 이 문제를 곰곰히 
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관찰 실험의 결과, 
그렇게 얻게 되는 그 모든 내용에 
그것이 곧 진짜라고 할 나와 나의 것은 없으며[무아, 무자성, 인무아, 법무아, 승의무자성]
그 실재는 공하여 그 내용을 얻을 수 없고[일체개공]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과 같다 과 다르다 좋다 나쁘다 등의 일체 이분법적인 분별을 
행할 수 없는 것이고 
그런 바탕에서 현실에서 실답지 않고 꿈과 같고 환영과 같은 내용처럼  
감각현실을  얻고 
그에 대해 실재와 감각현실에는 본래 없는 내용들에 대해
망상분별을 행해가면서 
현실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진리판단과 관련한 이 모든 사정은 
LITTLE 님과 SAM 의 판단이나 실험과정을 
지켜보는 제 3자로서 자신의 경우를 놓고 
다시 생각해보아도 
사정이 같다. 

이 사정을 little 님이 다른 sam 의 관찰과정을 다시 관찰하고 
또 그 little 님이나 sam의 관찰과정을 
다시 제 3 자인 자신이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mun 님과 2 + 2 는 4 인가의 논의에서 
제일 기초적으로 논의하는 문제로 
숫자 2 를 그려 놓고 거기에는 
2 라는 관념이 없고 
2 라는 마음 속 관념에는 눈으로 보는 숫자 2 의 모습이나 모양이 없다는 
내용과도 함께 관련되는 것이다. 

이것이 과학이라면 과학이고 
엄연한 진리라면 진리다. 

그러나 망상 분별 속에서는 
마치 진짜처럼 나타나고 진짜라고 여겨지는 
감각현실과 관념을 놓고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집착을 일으켜 
이에 임하기 때문에 
결국 어느 상황에서든지 
앞에 나열한 가지가지 문제상황에 노출되고 마는 것이다 .

망상분별 속에서는 
분명 이 부분에서는 감각과 고통이 느껴진다고 보는 것이고 
그 외의 부분에서는 그것과 또 무관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답게는 그런 고통이나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데 
그러나 실답지 않은 고통이나 문제는 
마치 꿈과 같고 환영과 같은 것인데도 
그러나 마치 진짜인 것처럼 나타나고 
그것이 현실에서 모두 문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 이 문제가 중대하고 
해결해야 할 중대문제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수행자도 모두 일반인의 상태에서 출발하여 
이 문제를 대하게 되는 것이며 
수행이 모두 원만히 성취되기 전까지는 
누구나 같은 상황에서 이 문제를 대하게 된다. 

그리고 수행자는 이런 내용을 깨닫고 
그 깨달음에 바탕하여 
이런 상황에서 마땅히 요구받는 
마땅한 방식으로 이들을 대하고 임해야 할 것을 
요구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수행자나 일반인에게 
모두 절벽에서 줄없이 뛰어내리는 것처럼 
지극히 힘든 것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치로 이 사정을 깨닫는 것도 
쉽지 않다고 보는 한편 
그것을 이치로 깨닫더라도 
정말 그 이치대로 
이 모든 상황에서 
망상분별을 벗어나고 
집착을 갖지 않고 
임하는 것은 또 다시 지극히 힘든 일이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수행자가 처음 수행의 마음을 일으키고 
이런 수많은 고통과 번뇌 상황에서 
평안히 모든 것을 대할 수 있게 되고
원래의 일반인 범부 상태로 물러나지 않게 되는 것은 
지극히 오랜 수행을 통해서 원만하게 성취되는 일로 제시된다. 

한마디로 말이 쉽지 정말 그렇게 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쉽지 않은 상태에 도달하고 나서 
수행자가 다시 행해야 할 일이 무한히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사정은 이미 앞에서 본 것과 같다. 

모든 생명이 서로 얽혀서 
그와 같은 문제 상황에 그런 형태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우리가 대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쉽지 않은 상태에 
다른 이나 다른 생명이 다시 이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수많은 방편적 지혜를 수행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기초적으로 요구되는 내용은 
여기에서 무엇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수행자 자신부터 먼저 더 이상 물러나지 않은 
보시 - 정계 - 안인 - 정진의 수행덕목들을 원만히 성취하는 것이 
가장 기초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현실의 정체에 대해 올바른 관을 갖고 
얻을 것이 없음(무소득)을 방편으로 
보시 - 정계 - 안인 - 정진의 수행을 통해 
복덕과 지혜의 자량을 성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얻을 것이 있음(유소득)을 방편으로  
망상분별과 집착에 바탕하여 
그 이상의 수행덕목들을 성취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치면서 
다 함께 무간지옥을 향해 나아가는 지름길이 
된다고 제시하는 이유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간단히 보면 
자신의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작은 욕심이나 분노 불쾌 고통의 상황에서도 
탐욕과 분노에 바탕하여 어리석음을 바탕하여 행하는 
Is 대원의 손에
이제는 총기가 아니라
핵폭탄이 쥐어져 있는 상황과 
사정이 같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탐욕과 분노, 미움, 증오만 마음에 갖고 있다거나, 
또는 이를 바탕으로 상대에 욕설을 퍼붓고 비난하여 공격하거나, 
돌만 가지고 상대에 던지거나, 
그후 칼과 도끼나 창 방패만 갖고 공격할 때에도 
그 문제가 심각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총기를 갖고 이를 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런 문제를 놓고 
수행자는 수행자대로 깊이 반성하고 
이 모든 문제상황을 자신의 문제로 놓고 
수행에 전념할 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

Raphaël - schengen

>>>

https://www.youtube.com/watch?v=vYfgReiFDJw

>>>




○ [pt op tr] Raphaël - schengen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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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 Tokyun 2015/01/23/금/22:35


♥ 잡담 ♥십현연기 

일본인 인질이 is에 구금중인데 석방조건으로 2억달라를 요구했다고 한다. 

[참조] IS 일본인 인질 생사, 72시간 협상 시간은 끝났다…어머니의 ‘눈물’
http://star.mbn.co.kr/view.php?no=77368&year=2015

일본 아베수상은 이런 요구를 거부하고 협상기한은 이미 종료되었다고 한다. 

처음 이 사건 발단은 고토 씨가 먼저 붙잡힌 또 다른 인질 유카와 씨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시리아 국경을 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한다.
결국은 동료를 구하지 못하고 둘 다 위험에 처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시리아 라는 곳은 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인가. 
내전이 시작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오래 전이고 
골격만 남은 건물 안에서 총격을 주고 받으면서
담배가 없어서 절박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소리치던 
이들을 본 것도 오래 전인데 
이제는 또 이상한 단체가 그곳에서 활동 중인 것 같다. 
자세한 내역을 알기 힘들다. 
이들 IS 단체는 유전을 점령하고 암시장에 석유를 팔면서 활동자금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최근 석유값이 내려가게 되자, 단체의 활동비를 새로운 형태로 마련하려는 시도인 것으로 
보여진다고 한다. 

이웃나라 일이지만, 
수차례 칼로 목을 베어 처형하는 모습을 보여준 이들이라 
남의 일같지 않고 답답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다른 뉴스도 있지만, 기타 사항은 다 생략하고 
화엄교학에서 제시된 십현연기의 내용을 검토해 보는 중이다. 

십현연기가 화엄경의 어느 부분에 제시된 것인가는 잘 모르지만, 
여하튼 화엄경 전반에 대해 깊이 연구를 진행했던 
두순-지엄-법장으로 이어지는 중국 화엄교학을 대표하는 스님들은 
고십현과 신십현의 내용으로 화엄연기사상을 정리했다고 한다. 

첫글자를 떼어 암기용 글자를 만들어 보면 
동광일제은미인탁십주 이런 새로운 문장이 나타난다. 

주로 하나와 많은 차별상을 놓고 이들의 상호 관계성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이해해본다. 

문제는 하나라고 표현하여 제시하는 것이 
현상 안의 하나인가, 아니면 차별상을 나타내는 실재의 내용을 
단지 하나라고 표현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글자는 그것을 명료하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미루어 문맥상으로 이해를 해야 할 부분들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사종법계의 내용과 육상원융관도 살펴야 한다. 
4 종법계란 존재를 이와 사로 구분하여 상호관계를 살피는 내용이다. 
이란 결국 실재와 관련되는 내용이고
사는 우리가 현실에서 대해 얻는 현상의 차별적 내용을 가리킨다고 본다.
사법계와 이법계가 그래서 제시되고 
이와 사가 서로 상즉상입 원융무애한 측면을 이사무애법계라고 표현한다. 
차별적인 개개의 현상 사이에서도 다시 서로 무애한 측면을 파악하여 
이를 사사무애법계라고 표현한다. 

반야심경에서 제시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결국 이사무애법계의 측면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 데 
이것이 실재와 현상의 상호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상과 현상이 상즉상입 원융무애한 것은 또 어느 측면에서 
어떻게 파악되는가. 
연구가 필요하다. 

물론 각 현상은 진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를 바탕으로 각 현상과 또 다른 현상이 갖는 관계성이나
연결점을 찾아 볼 수는 있다. 

문제는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현실의 어떤 측면을
나타내는 것인가 하는 점과 관련된다.   

개인적으로 현실에서 이론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이 부분이라고 본다. 

여하튼 십현연기의 내용은 
하나와 여럿이란 표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나타내는가하는 
기본적의문과 함께 다음의 여러 측면을 나타내는 내용으로 본다. 
그러나 주로 사사무애법계의 내용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상 가운데 하나의 현상과 다른 나머지 현상 간의 관계의 내용이다. 
이런 해석인 것이다.
수많은 현상과 그 바탕으로서 하나라고 표현하는 실재의 관계
이런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 내용은 대강 다음이다. 

수많은 내용이 구족 원만하다는 측면 - 동시구족 상응문 
순일한 행 가운데 복잡한 행이 그대로 덕으로 갖추어져 있다는 측면 - 제장순잡구덕문(고), 광협자재무애문,  

하나(일)와 여럿(다)은 서로 장애가 없지만, 각기 특성을 잃지 않는 측면 - 일다상용부동문
하나는 곧 여럿이고 여럿은 곧 하나라는 측면 - 제법상즉자재문 
하나와 여럿은 은밀하고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들이 선후가 없다는 측면 - 비밀은현구성문(고), 은밀현료구성문 
하나는 여럿을 함유하고 여럿은 하나를 포용한다는 측면 - 미세상용안립문 
하나와 여럿이 서로 그림자 비추듯 서로 포용하는 측면 - 인다라미세경계문(고), 인다라망법계문 
차별적 현상이 진리 그대로여서 진리를 이해하게 하는 측면 - 탁사현법생해문
시간상 3 세의 3세가 1념과 함께 상즉상입하는 측면 - 시간 여행에 관한 이론처럼 보인다. - 십세격법이성문
일체는 여래장심을 그 본성으로 하여 마음뿐이라는 측면  - 유심회전선성문(고), 주반원명구덕문 

정확한 내용은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대강 이런 내용으로 이해한다. 

십현연기에서는 인다라망 이라는 낯선 표현이 나온다. 
인다라망을 직접 본 이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떠나 
구슬이 줄줄이 그물에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각 구슬에 서로의 그림자가 중첩되어 있고 
그 각 그림자는 또 다른 구슬의 그림자를 역시 그와 같이 
맺혀 상즉상입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한다. 

수행에서 순일한 수행과 복잡한 수행이 덕으로 함께 갖춰저 
서로 장애하지 않는 것을 
제장순잡구덕문 또는 광협자재무애문이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후배인 법장 스님이 선배 스님인 두순 지엄 스님의 내용을
약간 바꾸어 제시한 결과 고십현, 신십현의 차별이 있게 되었다고 한다.  

화엄경 야마천궁게찬품에는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 이라는 게송이 나온다고 한다. 

마음과 부처와 생명 이 셋은 차별이 없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현실문제 대부분은 
무차별이 아니라 수많은 차별이 있기에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다. 

화엄경에서 관심을 갖는 주된 주제는 
성기사상이다. 

모든 생명이 불성을 갖추고 있는데 
이 불성이 드러나 일어나 나타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현실문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온갖 것이 다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다. 

분명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나 어떤 시각에서 이를 보면 
그렇다고 하니, 
일반인 입장에서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과거로 들어갔다 미래로 출현해 나타나고 
이런 것은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는 내용이고 
상식적으로 그렇게 되면 
온갖 문제가 그로 인해 속출된다고 보게 되는데 

그것이 스크린 상의 일이어서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이고, 
다만 각 개인이 그런 상태가 되는가 안되는가는 
또 그 이론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그렇게 각 개인이 
모두 신출괴몰할 수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러나 현실에서는
뉴스에 보도되는 대로
원치는 않지만, 인질로 잡히는 수가 있고 
또 어떤 경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IS 단체의 취지에 공감하고
그렇게 인질을 잡는 활동에 참여하려 떠나는 이도 있다는 소식을
어지럽게 접하게 되는 것이다. 




동영상 올리는 데 사용해보니, 
LITTLE 님 스크립트 약간 불완전함을 느낀다. 

Bernard Lavilliers - Stand The Ghetto

 >>>

https://www.youtube.com/watch?v=LoHiNXVCz2g
실패다. 아마 동영상 화면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링크만 걸기로 

>>>
새 동영상 클립 

https://www.youtube.com/watch?v=OUx3-t9SC8U






○ [pt op tr]  Bernard Lavilliers - Stand The Ghetto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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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59/01/23/금/20:38


♥ 잡담 ♥다삼작전의 훈련 

다삼작전은 물론 본인이 행하는 훈련이지만, 
삶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매일 3 가지씩 훈련을 꾸준히 행하는 것이다. 

모기를 상대로 하는 훈련을 
말벌을 놓고 훈련하기는 상당히 힘들다. 
그러나 원래 훈련은 한계를 두지 않고 실행하는 것이다. 
극복하지 못하고 성취하지 못한 한계선에서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 조금씩 훈련을 해나가는 것이다. 

바퀴벌레 손으로 만져보기가 돌파되더라도 
변 손으로 만지기는 돌파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뱀 목에 두르기는 성공해도 
바퀴벌레와 같이 누어보기 이런 것은 실패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있을 수 있다. 

오늘은 다라니 공부에서 
지안나 작전을 수행하고 왔다.
자세한 comment는 생략한다. 
자세한 comment 를 붙이는 분이 옆에 누어 있는 가운데 
상황은 조명이 밝아 상대방은 환하게 이쪽을 들여다 보고 
반대로 상대는 어두워 잘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각 상태에서 할 일을 마땅히 하는 것이다. 
왜인가. 누가 본다 해도 
그 자신이 그안에 빠져 있지 않고
그 모두에게 제한없이 
좋고 좋고 좋음을 주기 위한 노력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표방하는 슬로건에 불과할지라도 
그런 의식을 가지고 모든 문제를 대하기 때문이다. 

little 님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유투브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고 한다. 
오히려 해당 저작권자나 게시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하므로 
공연한 망상적 오해를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

William Sheller - Le Capitaine

>>>

https://www.youtube.com/watch?v=dLIJh9Am1TI

>>>




다삼작전은 
꾸준히 3 가지씩 ~ 조금씩 ~ 

○ [pt op tr]


다삼작전의 취지는 이렇다. 

하나만 알아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사실은 하나부터 무량하게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러나 그 하나부터 알지 못하면
대단히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그 하나만이라도 
정확히 알고 행하면
또 사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도 보는 것이다. 


올려 놓은 노래는 나비부인과 관련되는 내용이라고 한다. 
나비부인의 배경은 
2차대전 때 히로시마와 더불어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으로 유명한
항구도시 나가사키라고 한다.
일본에서 개항과 함께 서구문물을 제일 먼저 받아들인 곳이라고 한다. 

나비부인의 간추린 내용은 다음이다. 

미국 해군 장교 핑커튼은
아버지가 할복자살하고 집안이 몰락해 게이샤가 된 열다섯 살의 ‘초초’상
('나비'라는 뜻의 게이샤 예명. ‘버터플라이’는 서양인 고객을 위한 이름)과 일본식 전통 혼례를 치른다.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지만, 핑커튼은 본국으로 귀환하여 케이트라는 여성과 결혼한다. 
나중에 아들을 데리러 나타나지만, 
핑커튼은 온 집안에 가득한 꽃들을 보고는 괴로워서 숨어버리고
결국 나비부인은 
‘명예롭게 살 수 없다면 명예롭게 죽으리라’라고 쓰여 있는 아버지의 칼로 자결한다.
핑커튼이 돌아와 ‘버터플라이’를 외쳐 부른다. 

이런 스토리라고 한다. 

미국과 일본은 나중에 전쟁 상황에 서로 만나 
서로간 상대에 대해
아마 말벌 이상으로 혐오스럽게 느껴졌으리라 생각한다. 

섬 하나를 지키고 점령하는 과정에서  
치루는 쌍방의 희생이 너무 심대하여 
매 전투의 승자도 전혀 승자처럼 여겨지지 않고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던 전쟁은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폭이 투하됨으로써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함으로써 끝이 났다. 

이 와중에 우리는 또 엉겹결에 해방을 맞고 
일본과의 전쟁에 뒤늦게 참전한 소련과 미국에 의해 
국토가 분할 점령되고 
한국은 다시 미국의 에치슨 방위선에서 제외되는 사태에 처해 
그후 또 이상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널리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후 미국이 참전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고 
인천 상륙작전 이후 압록강까지 나아갔지만, 
이후 중국이 참전하여 다시 원 상태로 되어 
오늘날까지 휴전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처음에 일본에게 통채로 주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미국과 일본 간에 비밀 협약이 있었다는 내용도 듣게 된다. 
이른바 카츠라 태프트 협약이다. 
필리핀과 우리나라를 서로 맞교환해 차지하는 것이
협약의 핵심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잘 생각해보면 이는 
한 게이샤의 운명이 문제가 아니다. 
남들이 이렇게 저렇게 바삐 계산을 하고 돌아다닐 때 
멍 때리고 있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의 하나다. 

그 최초 발단은 무언가 새로운 문명이나 기술이 
먼저 전해진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왜 그 옆나라에게는 불행의 원인이 되는가. 
이런 점에서 졸고 있기도 곤란하고 
너무 선두에 나서기도 곤란한 여러가지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선두에 서는 것이 좋다는 시각도 있지만, 
지혜가 있을 때는 또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도 보게 된다. 

기호 식품을 하나 놓고도 
홍차가 좋다 
커피가 좋다 
보이차가 좋다 등등 의견히 달라지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보리차가 제일 구수하고 편하다고 본다. 

매사 가장 극단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불교의 방안이라고 비난을 받지만, 
수많은 처방의 문제점과 부작용을 제거하고 제거하여 
만나게 되는 최고의 처방이 
결국 부처님이 제시하는 방안이라고 본다.

개인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에서  
그 각 방안을 나열하고
하나하나 더 나은 방안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나열하는 것을 
little 님과 real 님 등이 연구의 방향으로 잡는 것이지만, 
조금은 피곤한 작업이라고 보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가보고 성취하고 나서 그 때부터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려 나서는 것은
하책 가운데 하책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종합적인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모두 하나로 통합되어 
논의될 성격의 문제임을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 오게 된다. 
자신 안에 자리잡고 있는 번뇌를 항복받지 못하면 
백약의 처방이 다 무효인 상태가 되므로 
거기에서부터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기도 하다. 

다삼작전의 취지도 사실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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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 Tokyun 2015/01/23/금/15:38


♥ 잡담 ♥문제의 해결과 방치 

little 님에게 요청한 일인데 왜 자신이 나서서 
가로 막는가. 



나도 내가 혼자 할 수 있음을 아는데 일부로 방치하게 된다.  ^_^
본보기를 위해서다. 

2010 년도에 칠레에서 33 인의 광부가 700 M 지하 구리광산에 
69 일 동안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구리는 원자번호가 무엇인데 이런 교훈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가. 

이들이 모두 무사하게 구조되었는데 
구조된 것만 보면 다행이다, 잘했다. 이렇게 끝나는 일이지만, 
그 자세한 내막을 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구조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구출 최종단계에서는 구출할 순서를 정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에서 최고로 상태가 좋고 강인한 사람 4 명 
그 다음 부터는 최고로 상태가 안 좋은 순서로 
순서를 정해 구출했다고 한다. 


타이타닉호의 구조 원리와는 조금 어긋난다. 
거기에도 다 사정이 있다는 것이다. 

nasa 의 협조 하에 그런 세부 매뉴얼들이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그 지점까지 구멍을 파 내려가는 작업에서도 
각종 첨단 기술이 골고루 적용되었다는데 
그 가운데 효과를 본 것은 
미국의 기술이었다는 것이다. 

칠레가 사용하던 기존 방식과 
석유채굴시 사용한 방식외에 
원리는 잘 모르지만 여하튼 압축공기를 이용한 굴착 방식을
다 적용했는데 이 방식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

그것을 당신이 아는가? 

구조 캡슐에는 심해에서 고강도의 압력도 견디는 
캡슐제작원리가 적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시 
2 일 분의 식량만 가지고 69 일을 견디는 과정에서 
33 인을 잘 이끈 팀장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런 종합적인 조건에서 
그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알고 보면 쉽고 
모르면 결코 쉽지 않고 하나같이 어렵다는 진리는 여기에도 
적용된다고 보다. 


태국에서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코끼리는 먼저 알고 급히 도주하는 데도 
사람들만 상황을 이해 못하고 대량 희생되었던 일이 있다. 
그런데 그런 대량 희생이 발생하던 그 지점에 
우연히 독일 전 수상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는데 
그 독일 수상을 급히 구해낸 것은 
미국 정보기관의 헬기라고 한다. 
그 수상이 구조를 받고 어떤 표정이었을 것 같은가. 


그런데 그 반대유형의 사건 사고도 수시로 보고받게 된다. 

현실에서 대형 병원 대다수가 
필요한 약사 인원을 채우지 않고 계속 운영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수익성이 가장 높은 업종으로 알려진 곳에서 
왜 그렇게 무리하게 운영을 하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면 누가 그 부담을 받고 해결해야 하는가. 
그것도 알고 보면 쉽다. 

사태가 좀 더 심각해지면 
기공사나 간호사 면허 보유자가 
의사를 고용한 가운데 수술을 시행하고 
의사에게 월급을 주고 
자신이 나머지 수익을 가져가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한다. 
별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고 
사실은 더 잘한다는 시각도 있고 
큰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현실적으로 스케일링이나 간단한 치아 치료 정도는 
간호사 선에서 하는 것이 
효과가 더 좋다는 것이 현실이다. 

임플란트 시술 같은 경우는 아예 
기계적으로 시행해서 후유증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에는 또 의사를 지휘하는 상층부의 
각고의 지휘 노력이 겻들여져서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 지휘를 따르면 한달에 수억원의 수익이 있지만, 
아니면 힘들 것이다. 이런 것이 그 최상부의 
지시사항이라고 한다. 



대형 어선들도 사정이 비슷하다고 한다.
대부분 선장도 없고 
선장 역할은 1 등 항해사 
1등 항해사는 2 등 항해사 이런 식으로 
대강 대강 인원을 채우고
장비도 없이 급히 바삐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이다. 

왜일까. 

거기에도 다 급하고 힘든 사정이 얽혀 있다 .

그러다 사고에 직면하면 
최고 책임자는 사람과 배를 놓고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구조선이 와도 사람을 옮기지 않고
사람을 구조할 기회를 다 놓치고 난 다음에 
침몰당하면서 이상한 이야기를 보고한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등 
... 횡설수설하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치저울에 올려놓고 이 문제를 살피면 
그것이 너무 엉뚱한 일을 엉뚱하게 처리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관련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대부분 말하는 내용은
그것은 그것이지만, 
그러나 또 그것은 그 부분에서 그것이 아니고 
아니면서 인듯하고 인듯하면서 아니고 
횡설수설을 끊임없이 늘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 근본원인을 보면 조금씩 
무리를 하게 되는 상태에 노출되는데 
이것을 구체적 상황에서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밑바탕에는 대부분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이상한 것이 각 개인을 붙잡아 두고 
매번 사역을 시키고 다른 이를 사역시켜 나가게 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리고 나서 모든 사건 수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체포하게 되는 근본적 범인은 결국 
다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되돌아가게 된다. 


요즘은 섬탄다는 이상한 말이 돌아다니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가 어원을 해부해 알아보니, 

some thing 에서 thing 이란 부분이 없는 상태에서 
모호하게 처신하면서 
이것 저것을 섞어 타 마시는 것이 좋다는 등 
비슿한 횡설수설하는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결국 섬탄다는 신조어에는
모호한 상태에서 좋아 보이는 잇점은 적당히 누리는데 
그러나 막상 그로 인해 부담이 가고 불리한 상황이 되면
쉽게 빠져나가고 벗어나고 싶다는 심리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다만 이것은 각 상황에서 독을 타 섞자는 취지는 아니고 
각종 행동 원리에서 자신에게 편한 내용만 뽑아 
이리저리 유리하고 안전하게 적용하면서
살고 싶다는 그런 이야기인 것처럼 들린다. 

즉, 무거운 부담은 다 떠 넘기고 
매 순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대처하는 것이 좋다는 그런 취지로 이해하게 된다. 

또는 
칼은 유리할 때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칼을 선택해 휘두를 수 있는
쌍칼을 쥐고 휘두르는 것이 좋다. 
그런 표현인 것 같기도 하다. 




자료에 의하면 포유류의 20 % 조류의 12 % 식물의 70 %가 
멸종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 산업화 기간 동안
5200 종의 동물과 3만 4 천 종의 식물이 멸종을 완료했다고 
보고한다. 
하나가 멸종하면 이후 이를 통해 덩달아 멸종하게 되는 종이 
이어 속출하는 현상도 보고한다. 
1846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감자잎 질병으로 기근이 발생하여 100 만명 이상이 기아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여기에도 그런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그 전에 무언가 열심히 아일랜드 사람들이 감자라는 식물 하나를 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런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노력했다면 한 것인데 이상한 일이다. 

과거에는 수억년 또는 수천만년에 걸쳐서 일어나는 이런 현상이 
오늘날은 인류의 도움에 의해 가속도를 받아서인지 
수십년 수백년의 기간에 걸쳐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다. 

이런 문제로 브라질의 열대 우림 개발에 
문제를 제기하자, 
브라질이 발끈하여 이웃 주변 국가에 항의를 제기한다고 한다. 
너희들이 한 일은 문명발전이고 내가 하는 일은 환경파괴인가. 

여기에 바퀴벌레가 한 마디 거든다고 한다.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난 그러거나 저러거나 무사할 터이니, 

이런 우울한 보고도 받지만, 
긍정적인 보고도 함께 받는다. 

자기 피부로 부작용없는 혈액을 만들어 냈고, 
농작물 경영도 이제 공장에서 짓게 되었다고 한다. 
led 조명으로 한 층의 건물안에서도 5 개의 겹층 농사도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공 블랙홀 실험이 지름 22cm 크기로 실험을 마쳤다고 한다. 
한편 10 조 도의 초고온에 극 초밀도 상태를 만들어 미니 빅뱅 실험도 성공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미 끝난 실험 내용이다. 

한편 두정엽에 전기 충격을 주면 수학을 잘한다는 실험도 완료되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점은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충격을 줄 때만 그렇고 
그 반대는 그 반대이고 또 하나는 충격을 줄 때 대한 내용만 그렇다는 것이고
다만 긍정적인 점은 효과는 상당히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다.  


이런 잡스런 내용을 나열해보는 것은 
역시 lab 님의 의문들을 여기에 적용해보고자 함이다. 



이미 끝난 내용인데
이와 관련하여 아직 자세히 진행되지 않고 있는 
lab 님의 추가 의문의 내용들을 덧붙여 살펴보기 위함이다. 

매번 알아도 큰 도움이 안 되는 내용을 
굳이 알아보고자 노력하게 되는데 
성실하게 꾸준히 열심히 풀어야 할 문제가 
사실은 이 곳곳에 다 담겨져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Rohff - Qui Est L'exemple
>>>

http://www.youtube.com/watch?v=KNIXqAnk8G4

>>>





○ [pt op tr] Rohff - Qui Est L'exemple 가사 

저작권법상 원 저작권자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강요하는 이 시스템의 문제를 
어떡할 것인가.  
인용은 허용된다고 한다. 



나무를 안고 - 이해인  


길을 걷다가 하도 아파서

나무를 껴안고

잠시 기도하니

든든하고

편하고

좋았어요

 

괜찮아

곧 괜찮아질 꺼야

 

나뭇잎들도

일제히 웃으며

나를 위로해주었어요

 

힘내라 힘내라

바람 속에 다 같이

노래해주니

나도 나무가 되었어요

 

[출처] 나무를 안고 이해인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본다.


나무를 부르고 


Mun Tokyun

 

방안에서 

하도 아파서

나무를 찾아보자하고 

소리치려다 보니 

잠깐 창피했어요

 

괜찮아 

나무가 없어도 

곧 괜찮아질 꺼야

 

차가운 타일도 

싸늘하게 바라보며 

모른 척 했어요 

 

힘내자 힘내자 

이대로 사라져도 

후회는 전혀 없어 

노래하다 보니 

나도 내가 서있는 곳에서는 

하나의 나무임을 보게 되었어요 


-> 복사는 쉽다. 




문서정보

 



◈Lab value 불기2559/01/23/금/13:34


♥ 잡담 ♥남의 문제와 자신의 문제

숙왕화 님이 갑자기 나타났다. 
역시 묘길상 인턴연구원의 문제 때문인 것 같은데 
내용은 잘 모르고 어딘가로 에스코트하기 위해 나타난 것 같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관찰자는 무언가를 본다. 
사실은 문제가 숙왕화 님에게도 무언가가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떠나는 숙왕화 님에게 그 무언가를 물어보자, 
태연한 표정으로 답을 한다. 
무엇무엇을 했고 나머지는 mun 님처럼 
엎어진 채 사라지겠다는 답을 하고 바삐 사라진다. 

이는 특별히 숙왕화님에게만 있는 증상이 아니고 
거의 온 생명이 다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물학자는 이런 보고를 한다. 
현실에서 하나의 종이 사라져 없어질 때 
하나의 종만 그렇게 없어져 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도대체 현실 세상에 얼마마 많은 생명의 종이 있는가. 
일일히 세 본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지만, 
천만 종 이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 하나만 놓고 보아도 
이 개들이 단순하지가 않다. 
사자같은 개가 있는가 하면 
쥐 같아 보이는 개도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미 현실에서 만나는 생명의 종이 수도 없이 다양한데 
그런데 또 화석 등을 통해 보면 
또 다시 특이한 생명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이들은 도대체 왜 이런 모습으로 살다가 
또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는가. 

궁금한 일이다. 

학자들이 하는 일은 이런 궁금증에 
설득력있는 답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 궁금한 일도 있다. 
그런 것은 그렇지만, 
그러나 까마득한 시점에도 있었고
지금까지도 있는데 
그것은 또 무슨 이유로 그렇게 계속 있는가. 

나 살아 가는데 큰 도움이 안 되어 보이는 생명체가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와 관련하여, 
인류가 환경 재앙 등으로 갑자기 다 멸망한다해도
바퀴벌레만은 생존을 계속해 나아갈 것 같다는 
보고도 받는다. 
그리고 바퀴벌레는 알고 보면 인류의 흔적을 찾아 보기 힘든 
과거 시점에서도 있었던 것 같다는 보고도 받는다. 

시간의 문제를 놓고 이것을 헤아릴 수단이 
무엇인가. 

과학자는 이런 질문을 받고 
자신이 이런 주장을 제시하는 데 사용하고 의존하는 수단을 보여주면 
믿지 못하겠는가? 
라고 답하게 된다. 

그 가운데 모기도 그런 경우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모기가 지금 찾아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데 
그러나 때가 되면 또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어디 숨어 있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또 자세히 관찰을 계속해온 분이 
친절하게 답해주기도 한다. 

일단 이를 무시하고, 궁금증을 계속 가져본다. 

그런데 이 모기 하나를 
잘 보지 못하면 
삶에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 준다. 
우습게 보고 대하면
우리가 모기로부터 받는 고통으로 알고 있는 
심각한 고통을 이로써 함께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pun 님이 작년에 아주 엉뚱한 보고를 한 적이 있다. 



이 모기 하나를 상대해서 
일반인이 대하는 방식과 달리 대하면 
이를 통해 6 가지 수행을 한 번에 할 수 있다고 제시한 것이다. 


본인도 이를 듣고 엉겹결에 따라 해보았는데 
일반인이 행하는 방식과 반대의 방식이란 
상당히 혐오스럽고 행하기 힘든 방식이다. 

도무지 뻔히 다른 돌파 방안들을 잘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않고 이를 참고
pun님이 제시한 방식대로 행하기가 힘들다는 그런 의미다 .

그런데 한 번 실험삼아 속는 셈 치고 참고 해보았다. 
의외로 모기에게 예견되는 그런 내용과는 다른 내용을 가득 가져다 주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여하튼 그런 문제가 현실에 많다. 


이런 여러 사정을 감안하여 
mun 님의 도움 요청은  
본보기로 방치해두기로 했다. 



무엇이던 엎어져서 나무만 외치면 다 해결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쉬운가. 

그런 경우는 누가 생각해보아도 
입장이 뒤바뀐 것이다. 

절대적인 신이 최고가 아니라, 
이 신에게 기도하면서 
해주 해주~만 외치는 이가 사실 최고인 것이다. 

그런 경우에 이런 질문을 예상하게 된다. 

도대체 내가 왜 그것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현실에서 바삐 그 형체를 사라져가는 
종들이 수도 없이 많다고 한다. 
인류가 바삐 무언가를 갈구하면서 살아오는 동안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관심을 갖고 예민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오랜 관찰을 통해 제시하는 보고다. 

이미 사라진 공룡이 현실에서 다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것도 사실은 아닌데 
그래도 그런 희망이 있다면, 

굳이 멀리 시간을 되돌아갈 필요가 없고 
지금 대하는 다른 생명체들을 그런 시각으로 
보면 될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관찰자와 과학자들이 덧붙이는 말이 있다. 

이들의 종이 없어질 때 결코 
이들 종만 단순하게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인과 보고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것이 다 남의 일이고 
자신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왜 그런가 그런
단순한 인과 차원의 왜의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이와는 조금 다른 입장에서 
어떤 소원을 가질 때 
그것은 무엇때문인가. 
그것을 이루면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가라는 
의문도 함께 가져야 한다고 보게 된다. 

예술도 종합 예술 
과학도 종합 과학이 되지 못하면 
결국 불완전한 것이다. 




>>>

Axel Bauer - Zazie - A Ma Place

>>>

https://www.youtube.com/watch?v=IB-HdMudR3o

 >>>



노래는 기본적으로 어느 노래나
그 기본 성격이 시이다. 

그리고 
시는 아무 것이나 
아무 상황에 붙여도 
다 알아서 시가 갖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시라면 시인 것이다. 

시인의 시를 가지고 
과학이나 논리를 적용하려면 
이상한 입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그렇지 않다고 보면 
시를 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모든 노래가 다 같은 성격을 갖는데
왜 외국노래인가. 

망상분별이 망상분별인 줄 알고
그런 바탕에서 시를 대해야 
시가 갖는 부작용을
또 다시 일으키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문제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시를 감상하면서 갖는 온갖 문제가 
여전히 있는 것이다. 

망상분별 속에서 
간단하게 망상 분별 편집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2 + 2 가 4 가 아니라는 문제를 
자꾸 랩 가수처럼 제시하는 것이다. 

나름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것이다. 

아무 것이나 붙일 때
그것이 각기 다르리라고 여기는 것 그 자체가 
망상이라면 망상인 것이다. 

mun 님이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에 
온갖 시를 대하면서 
어 또 아우쿵텡쿵텡테...이런 조크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시 감상의 마음을 가지고 
소설도 보고 영화도 보고 하면 된다. 

카프카의 변신도 보고 
오페라의 유령도 만나 보고 등등...
물론 본인은 만나 보지 않는 내용이지만, 
원리가 같다는 그런 취지에서 추천하는 방식이다. 


○ [pt op tr] Axel Bauer - Zazie - A Ma Place 가사 




문서정보

 


◈Mun Tokyun 2015/01/23/금/09:40


♥ 잡담 ♥캐릭터변신무죄 

본인이 잡스런 수학 과학 관련 문제를 제시하는 등으로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는 문제를 제기한다고 이이를 제기하는 분이 있는데 

본인이 황제의 마음으로 황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다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황제의 본연의 임무는 1차적으로 유희이고 
2 차적으로 이 유희를 모든 국토의 생명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세상의 문제는 
본인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들이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일으키기 쉬운 실수가 고통을 호소하는 입장에서만 그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을 하려고 하기 쉽다는 점이다. 
그 이후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와 그 문제 이후의 문제 등을 
계속 해결해서 가장 부작용이 적은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본인의 과제라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그런 방안이 그런 식으로는 끝내 얻어지지 않는다는 
회의적 입장이 있는 것이고 
그러나 이미 방안이 제출되었으니
그래도 그보다는 조금 부작용이 덜한 방안을 찾아 더 노력해본다는 
입장이 있는 것이라고 본다. 



하나의 예를 들어 
로켓트를 발사하여 인공위성을 우주 공간에 올려 놓는 문제를 놓고 
국민들이 다 함께 관심을 집중시킨 시절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 위 두 입장의 차이를 적용하면, 
역시 본인의 입장은 이에 관해
조금 더 나은 방안을 찾아
조금 더 노력해볼 방안을 찾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두 입장은
결국 같은 내용을 앞으로 보고 뒤로 본 차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결국은 최종적으로 가장 좋고 좋고 좋은 것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선 이 부분에서 
이런 경우에는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다는 이 부분을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고 본다. 

그처럼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이유를 찾아 볼 수 없을 때 
사실은 그것이 가장 쉽게 실현된다는 것도
이 내용은 함께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는 잘 믿기지 않지만,
시간은 사실 무한대로 앞 뒤로 열려져 있고 
우리가 지극히 해결하기 힘들다고 보는 대부분 문제는 
이미 아주 오래 전에 
표현한다면 10 겁 이전에도  
이미 다 해결된 상태라는 보고를 받는다. 

그런데 왜 그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닫혀져 있는가.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모든 방편 수단적 지식이나 노력은 
선악 무기이고, 더 무언가를 덧붙이는 방편 역시 선악무기이기에 

그래서 최종적인 목적과 연결되지 않는 한
일체 개입하지 않는 것이 최상이고
개입한다면 최종 목적 상태로 개입해야 한다라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방편적 지혜 지식이 
이미 실천되고 가동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는 또 이런 면대로 
이미 발생한 부작용을 조금씩 줄이고 완화시켜 갈 방안을 찾고 
그러면서 최종목적 상태를 향해 이끄는 것도 
필요한 노력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로켓 발사가 막대한 금액을 들이고도 실패를 할 때 
국민들이 다 함께 관심을 집중시키고 걱정을 하는 가운데 
이 문제를 보았을 때 
그 현장에 그 답이 적혀 있는 것을 대강 알 수 있었다. 

그 발사기지가 자체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날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먼저 심각하게 던지고 있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좀 더 멋있게 많이 적어 놓는 작업을 생략하고 
당면 목표에만 집중하여 
무조건 날기만을 원하는 상태로 보였기 때문이다.

연구원들이 당시 기술력이 부족해서
기술유출을 걱정하는 외국으로부터 엄중보안된 상태로  
로켓만 사가지고 와서 발사시키는 것이 
무슨 자체 로켓 발사인가 하는 
회의적 시각도 있었는데 
여하튼 그렇게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면서 하나하나 배워나가고 
또 그 만큼 기술을 배워나갈 필요성을 
각성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여전히 질문은 계속된다. 

무엇때문에 날려고 하는가. 
날고 난 뒤에 그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가. 

상식적으로 나열하는 답들이 있는데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답 위에 역시 다시위 질문을 반복하여
더 멋지고 아름다운 답들을 적어 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재 우주 공간에는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니는 우주 쓰레기가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우주 공간이 넓다고 하지만, 우주 쓰레기 양도 상당히 많아서 
결국 인공위성을 올려 놓아도 이 쓰레기를 방치하고
올려 놓는 일만 계속 해나가면 
결국 나중에는 올려 놓은 것들이 한 순간 연쇄 폭발하는 상태를
예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것이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다. 

이것은 단순한 상상속의 일이 아니고 현실 문제다.
최근에도 우리 인공위성이 간신히 이런 위험을 모면했다는 기사를 
보기 때문이다. 

인공위성이 그런 상태이니,
우주 공간에서 사람이 활동할 때는 
그 위험이 오죽하겠는가. 

무언가를 개발하면 좋은 것만 있다고 볼 때
반대로 나쁜 것도 있다는 측면을 
함께 볼 수 있어야 된다고 본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역시 같은 질문이 이어지는 것이다. 
무엇때문에 , 그리고 나서 무엇하려고? 


● 현재 믿기지는 않지만, 다음 내용을 보고로 받게 된다 .

인공 장기 3D 프린터키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이다. 
3D 프린터키로 총기 같은 것을 제작해서 문제인데 
이런 원리로 필요한 장기를 그 때 그 때 제작해 내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우주 공간과 지상과를 매번 로켓트를 통해 오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주 공간과 지상을 연결하는 우주 엘리베이터도  
이미 계획단계에 있다는 소식이다. 
그것을 개발하고 설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소재는
현재 개발된 나노 탄소 섬유에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다이아몬드 미세 섬유로 만들면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그런 이야기다. 


산을 오르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맨 손으로 수직 암벽을 올라가는 방법만
올라가는 방법으로 보고 노력하는 이도 있지만, 
그것이 힘들다고 보면 다른 방안을 사용해서 
올라가면 되는 것이다. 

어느 지점에 올라가는 것이 목표라고 볼 때에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된다. 

우주 개발기지 나사는 사실은 
수직으로 곧바로 올라가는 것이 힘들어 
잘 안 되면
나사 모양처럼 빙빙 돌아서 올라가도 된다는 
메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잘 안 되면, 
어느 위치까지는 쌍끌이 방법으로 끌어 올리고 
그 지점부터 문제를 해결하는 절충방안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선 왜 이렇게 무겁게 많은 것을 
올려 놓으려 하는가. 
이것부터 검토해야 한다. 

모기와 코끼리를 놓고 생각해보면 결국 같은 기능인데 
왜 이렇게 몸집이 굳이 커야 하는가. 
이것부터 잘 검토해 볼 일이다. 

당장 현재 상태에서 보면 해결이 난망하지만, 
그러나 과거 진공관식 라디오를 한 번 보고 
요즘 라디오를 보면 어떤 것이 더 나아 보이는가. 


기타 등등 뉴스가 많지만 생략하고 
이 모든 문제에는 공통된 질문이 첨가되어야 한다는 점만은 
다르지 않다.

그 문제들을 모두 다 생략하고 
각 문제에 접근해 매달리면, 
잘못하면 곰이 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재주는 곰이 피우고 ~ 라고 시작하는 속담에 나오는 그 부분에
자신들이 다 그런 곰이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이 맹인 상태로 맹목적으로 
무엇에 달라 붙을 때 발생하게 되는 현상이다. 

이것을 자신도 주의하고 남도 주의시켜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장기를 만들어 내는 3D 프린터기에 대해 언급하다보니 
어제 뉴스에서 보고받은 프린터기 사건이 생각난다. 

칼라프린터키로 스캔작업을 해 온갖 위조를 하는데 
대출에 필요한 온갖 서류를 위조해내기도 하고 
심지어 지폐도 위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1억원 위조지폐를 80만원에 팔고 
이것을 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찾아가 
위조지폐가 담긴 가방을 맡기고 
3 천만원을 빌려 갔다는 사건을 보고 받는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 사건이 자체에 
넌센스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미 자신이 1억원 돈이 있다고 보여주는 이가
왜 그 돈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고 
그것을 맡기고 또 다른 돈 3천만원을 빌려 가는가. 

여기에 맹 현상이 들어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여하튼 각기 그 끝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돈이 지극히 많은 한 분이 있는데 
이 분이 나이가 이미 90 세를 넘었는데 
거의 최후의 사업 정도로 생각하면서 
다시 123 층의 빌딩을 세우는 모습을 본다. 

이 분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니, 
이 분이 이런 답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미 내게는 그런 것이 더 필요없다. 
그러나 무엇무엇을 위해서 그런 것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답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대부분 그 심정을 이해한다. 
그 심정을 이해하는 경계선이 어디인가 하면 
그것을 매년 국가가 심사해서 발표한다고 한다. 

그것을 넘으면 사실은 모두 그 재벌회장과 같은 
마음 상태에 같이 이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국가가 발표하는 그 수치는 표준 수치라고 보지만, 
그러나 이것도 사실은 구체적으로 보면 다 다르다. 

그러나 여하튼 현실적으로는 그렇다고 이해해야 한다. 

어차피 세울 것인데 왜 세계 최고가 아니고 
하필이면 123 인가. 
이런 추가 질문을 해보지만, 
정확한 답은 없다. 

이에 관해 pun 님을 떠올리게 된다. 




일반적인 경우는 그런 시각으로 질문을 하고, 
또 예토의 시각에서 보면 그것이 가장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그러나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 이후로도 역시 그와 같은 자세로 
추구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한히 있다는 입장이다. 

극락은 안양이라고도 표현하는데 
그런 곳을 개발하고 건설할 이유는 
앞의 시각에서 보면 본래 없다고 해야 하지만, 
그러나 뒤의 시각에서 보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처음 중국에 지혜가 심원한 한 스님에 의해 그런 자각이 일어났을 때 
puntarika 님이 마치 개입된 것처럼 
설명하는데 
그것이 백련결사라는 정토 념불삼매 운동이라는 것이다. 
백련사에 염불삼매 운동을 당시 혜원 스님이 주창할 때 
스님 외에도 속인도 123 명이 참여 했다는 사실을 말하는데 
123 이란 숫자에 묘하게 이를 결부시켜 
설명하는 엉뚱한 답이다. 

언젠가 lab 님은 무슨 다른 식으로 시감상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정말일까. 

그런 식의 시감상이 도움이 될까?

여하튼 일단 경계선을 지났다고 생각한다면 
이후의 문제는 모두 그런 식으로 
바라보면서 
매 구체적 상황에서 갈구하는 소원들을 놓고 
그에 관련하여 
무엇때문에, 그것을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성취되면 그 상태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의 질문에 
성실히 답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답을 찾아내지 않고 
매번 살기 위해서 먹고 먹기 위해서 일하고 다시 일하기 위해서 살고. 

이런 식으로 맹인이 맹목적인 답을 매번 바꿔 답하는 식으로 
답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예토를 하나의 수행장소로 본다면 
현실에서 만나는 세상의 모든 문제나 소원은 
다 깨달음을 가져다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실은 그런 계기를 마련해 주기 위해 
예토가 예토로서 존재한다고 본다면 
이 예토에서 만나는 문제나 소원은 
모두 깊은 의미가 그 자체에 들어 있는 것이라고 본다. 

다만 여전히 맹인의 맹목적인 자세로 대하면 
같은 내용들도 그렇지 않다. 
그러니 각 개인이 깊이 이 문제를 놓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이런 문제를 말한다. 

그 예토는 예토 그대로 극락이 될 수도 있는데 
잘못 접근하면 그 예토 그대로 지옥이 될 수도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리는 사실 
지옥을 직접 가도 그렇고 
극락을 직접 가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에서는 자신이 먹다 먹다 더 이상 못 먹고 
토하고 버리는 상태에서야 겨우 남에게 
베풀려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바로 이 상태에서
그것을 그렇게 받고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본다. 
안인의 수행을 가장 중시하는
예토 사바세계에서 
수행해야 할 내용과 그 수행 원리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붙이는 것이 글의 지루함을 덜어내기 위해 필요하다는데 
이 작업 때문에 상당히 번거로움을 느낀다. 

이런때 쉬운 방법이 있다. 
이미 마땅한 좋은 답을 찾아 그것을 그대로 copy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린터기로 화폐를 스캔 복사해 내면, 
당연히 문제되지만, 
이런 경우는 불법상 권장 사항이다. 

이를 응용하면 다른 것도 역시 그와 같음을 이해할 수 있다. 

재벌회장이 짓는 123 층 빌딩이 당신 것인가?
누가 물으면 당연히 
원칙적인 답을 하게 된다. 

원래 그것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세상일체를 놓고 그 안에 
나와 나의 것은 전혀 없다. 

이렇게 원칙적인 답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만 
열심히 복사하는 작업이 뒤따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불법 안에서 권장하는 항목이다. 
자세히 보면 여기에서도 주의사항이 첨부되어 있다. 


무조건 복사하는 것이 아니고 
어떠어떠한 경우에 
즉 맹인이 맹목적으로 맹하게 하는 경우가 아닌 경우에 
그런 복사활동이 매우 권장된다는 주의 사항이다. 

그것을 사자성구로 표현하면 
수희원요의 활동이라고 표현한다. 

그러그러한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그렇게 복사해 갖고 
또 필요하면 그런 희망마저도 함께 복사해서 
그것을 추구해 나가면 된다는 내용이다. 

당연하게 보이는 내용이다. 

그런데 노래를 하나 복사해보려니 잘 안 된다. 
복사해 놓고 보니 테이블이 이상하게 되어 버렸다. 
일단 little 님에게 이 복사문제의 어려운 부분의 해결을
의뢰하기로 한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마치고 
그 이상은 엎어지는 것이다. 
나무~ ( 나무는 일설에 의하면 케냐말로는 기린을 뜻하고 한국말로는 tree 이고 불어로는 사랑이고 그리고 namo 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한다.) 

elephant collective mon am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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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JNNcIXRKT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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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5/01/22/목/18:39


♥ 잡담 ♥캐릭터의 변신 문제 



mun 님의 이력을 살피다 보면 
오래 전에 행복론 각론 편집을 맡아 행하는 가운데 
홀로 황제즉위식을 올리고 황제가 되어 
국토 순례를 하다가 
한동안 암파리를 놓고 아름다움과 가치에 대해 깊이 연구를 진행하고, 

요즘은 가끔 현실문제 CASE 를 가지고 
문제제기를 하시는데 
이번에 올린 글을 보면 과학자인양 여러 가지 잡스런 문제를 제기하여 
이분의 캐릭터 성향을 의심하게 된다. 

이런 문제를 놓고 논의를 제기할 때 
LAB 님 처럼 말려 들면 안 된다고 본다. 

출처를 알아 본 즉 주변에서 
인턴연구원이 읽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인턴연구원은 결코 잘 읽지 않는 책들을 기초로 
이런 문제를 마구 제기한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흥행에 성공한 명량이라는 영화에 
성웅 이순신으로 출연한 배우 최민식 님을 놓고 
그간 최민식 님이 출연했던 영화의 내용과 역할을 놓고 
잠깐 살펴보면서 
이를 MUN 님에게 오버랩시켜 보게 된다. 




영화배우야 가지가지 영화에 출연하게 되는 것인데 
감독들이 어떤 배우에게 기대하는 상이 
어느 정도 기본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검색을 해보니 취화선, 쉬리,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태극기 휘날리며,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등의 영화에 출연해 왔다. 



각 영화는 무언가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영화 한 편 속에 오로지 행복하고 평안하게 잘 지냈다. 
이런 메세지만 담는다면 관객도 함께 그렇다. 
나도 행복하고 평안하게 잘 보았다. 
이러겠는가. 

사정이 이렇다보니, 온갖 뒤틀리고 이상한 현장에 
배우들이 배치된다. 

이 사이사이에 도대체 어떤 좋음이 깃들어 있는 것일까. 


그나마 영화 배우는 다행이다. 
영화가 영화인 줄 알고 출연하고 
영화속 내용과는 별 충격을 받지 않고 
현실에 복귀하기 때문이다. 

어떡하나, 다음 영화는.
그러나 이런 걱정은 보통 배우가 하는 법이고 
일반인이 배우 걱정을 하는 것은 
기우에 해당한다. 

각론 편집을 이어 맡은 입장에서는 
물론 자세히 보면 헤어나올 길이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기술을 하기는 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온갖 오락가락 갈팡질팡의 
삶을 살게 되는데 
대강 코스안내 정도는 해야 마땅하지 않는가. 
누가 보던 안 보던 
여하튼 반드시 그 코스로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비교적 적절한 관람 코스를 안내하는 것이 
필요한 것 아닌가. 

매번 논의끝에 잘 모르겠다는 상태로 
끝나면 이게 무엇인가. 



MUN 님이 이번에 구입한 재활용 비닐 봉투를 보고 
이를 숙왕화 님에게 비밀로 하라. 
이런 지시를 내린다. 

숙왕화 님으로 인해 
상당히 피해를 보았나 싶다. 

차를 공짜로 여기저기 타고 다니는 레시피를
공개할까 한다는데 
말리고 있다. 


>>>

http://www.youtube.com/watch?v=3pfefJg9HEI

>>>

Marc LAVOINE - Paris [1991]

>>>






○ [pt op tr] Marc LAVOINE - Paris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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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59/01/22/목/12:21


♥ 잡담 ♥응징모드에 봉착한 인턴연구원 

숙왕화 님이 어제
매번 게임만 하면서 엉터리 보고를 해대는 
묘길상 인턴연구원에 대해 응징모드로 
나타났다. 

긴급 중재인이 된 본인이 간신히 
이를 봉합했지만, 
묘길상 인턴연구원과 숙왕화 님이 그 후 
어떤 관계로 사태를 수습했는가는 
알기 힘들다. 

묘길상 인턴연구원이 한참 후에 다시 나타나, 
각 동네의 다른 인턴연구원들에게 
일일히 서로 상황도 보고하고 통신을 시작한다. 

요즘 각종 드론 장치가 선보이고 있고 
심지어 무인 자동차도 실현 단계에 있다는 보고를 받는데 
묘길상 인턴연구원의 활동을 옆에서 보면, 
아무래도 터미네이터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연상된다. 

딱히 지금 상태로서는 그 게임 기술로
장차 생계문제나 삶의 문제 전반을 해결해낼 무슨 뾰족한 대책이 보이는 것이 아닌데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그런 곳에라도 그 게임기술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는 것이다. 

나에게 그런 통신 서버를 열어 
여기는 어쩌구 저쩌구...거기는 상황이 어떤가 오바 로저...
이렇게 해보라고 

누가 요청하면 
대략 난감하기 때문이다. 


mun 님이 여러 가지 퀴즈를 나열하여 놓았는데 
큰 쓸모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상식의 지평을 조금 넓히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같다. 

원래 원의 면적과 같은 정사각형 구하는 문제
또 자와 컴파스만 가지고 작도하는 문제가 
출발한 동기를 mun 님은 아는가.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이 문제에 봉착한 본인은
그것을 대략 아무렇게 마음대로 나누고 
그러한 방식에 대해 제기되는 각 불평에 대해 
그 땅에서 나오는 수확량의 질, 량, 시의 복잡한 
계산식을 다시 추가로 제시해 
이 문제를 처리한 경험이 있다. 

물론 약간은 허구다. 

그렇게 해결되면 해결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떤 방식도 도움이 안 된다는 
자조적인 해결방안이다. 

그러나 구체적 현실에서는 이렇게 임하면 
정말 곤란해진다. 
관련된 그 누구도 그런 식의 문제해결에
전혀 납득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밀한 수학적 접근이 요구되는 대목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도
tok 님이 엄밀 수학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기는 힘들지만, 
원래 원과 사각형이 척 보아도 
모양이 다른데 어떻게 같음을 얻어내라는 것인가. 

문제되는 기본이 무엇인가. 
그 안에 벽돌 놓기 위한 문제인가. 
그러면 벽돌을 채워넣어 재서 같아지면 같은 것이다.

거기에 물을 채워 넣는 문제인가. 
그러면 물을 가지고 채워 넣어서 같은 부분이 
그것이다. 

이런 식이다. 

숫자로 만족을 원하는가. 
원래 이것은 수학상 정답이 없다. 
그래도 구하는 것은 
대략 근사값에서 만족하겠다는 입장이다. 

엄밀하게 접근하면 근사값은 
정확한 값이 아니고 
문제되지 않는 부분은 무시하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그렇게 무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런 무책임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가치 저울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보면 
조금 입장이 달라진다. 

그것을 땅이라 놓고 수확량을 원래와 
같게 하자는 것인가. 

아니면 수확량으로 시장에 판매한 수입액을 
같게 하자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최종적으로 문제되는 최종 가치를 놓고 
그것을 최고로 만들거나 
같게 만들자는 것인가. 

그렇다면 원래 그 문제가 
본래 그런 성격의 문제임을 이해하고 
이와 함께 그런 문제와 이 문제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부터 
살펴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mun 님이 제시한 문제에서 
12 m 줄로 만들 수 있는 도형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은 것은 어떤 형태인가 
이렇게 물어보지만, 
만일 기준이 둘레면 어떤 것이나 다 같은 것 아닌가. 

그러나 또 다른 문제라면 
또 달리 접근해야 하는 것이 된다. 
매번 측정기사가 가로 5 m  세로 1 m 로 도형을 
만들고 
자신의 땅에서는 가로 3 m 세로 3 m 이런 정사각형을 
만들어서 다 같다고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라고 해도 
또 달리 생각할 점이 많고 많은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이런 문제가 없다고 보는가. 
수도 없이 많다. 

도로에 접한 앞면 1 M 와 
뒷면 1m 를 같다고 보아야 하는가 아닌가
어느 도로인가 등등 
잘못 접근하면 머리가 폭발할 수 있다. 

그래도 다 개입해서 정확히 숫자로 
표시해주고 다니지 않는가. 

그런데 사실 엄밀하게 보아 
수학과 과학 등은 모두 엄밀한 입장에서 
공통적인 문제점을 갖고 출발하는 것이다. 

미분 적분의 문제도 다 사정이 같다. 

공식만 외우고 그 공식이 도출되는 기본 원리를 
살피지 않으면 
0.99999999999...는 
1 과 같은 것이다는 회괴한 주장을 하고 
나서게 된다. 

이는 원래 공간을 무수히 미분해 나갈 수 있기에 
앞 선 거북이를 뒤에 있는 달리기 선수가 
추월할 수 없다는 회괴한 주장에 대해 
반박논리로서 제기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는 그런 일이 현실에는 오히려 없기에 
해괴한 논리적 주장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반박을 위해 그것을 궤변으로 치부하고 
다시 반박할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 두 입장이 다 
망상 속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말과 논리의 세계에서는 억어지로 보이는 
주장이 그 말과 논리에 의해 성립한다. 
그 주장의 전제와 규칙 약속을 다 받아주면 
그런 결과를 만나게 된다는 그런 의미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과 다르다는 점을 
또 다른 한편에서 이해해야 한다. 

두부를 2 분하면 두부라고 하지만, 
그러나 의자를 2 분 하면 그 나뉜 것을 의자라고 말하게 되는가. 
라디오나 컴퓨터 이런 것을 놓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처음 이 관념 실험에 생명체를 동원했으나, 
윤리문제가 발생한 점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하고, 
수정한다. 


그러나 여하튼 반박을 위해서 
그런 입장을 또 잘못 취하면 
같은 논리로 
1.00000000000000000.....1 은 
무한대의 값과도 같은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고 나서게 되기 쉽다. 

이것도 엉터리인 것이다. 
이것이 도긴 개긴(요새 말로 도찐 개찐)의 원리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값이 구해지지 않는 가운데 
무한히 미세하게 나아가는 부분은 
일정한 값으로 대신 생각하고 말자는 
내용이 전제가 된다. 

그러나 만일 엄밀성을 고집하면 
tok 님의 문제제기에 모든 경우에 답을 하지 못하는 
근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이 사실은 또 
mun 님과 논의한 바 있는 
2 + 2 의 값을 구하는 문제의 성격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려면 
잘못하면 mun 님이 말하는 랩가수가 되기 쉽다. 
같은 내용을 매번 같이 제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간단히 보면 
숫자로 2 라고 분명 써놓고 그것을 놓고 
거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2 의 내용은 안 얻어진다. 
여기서 부터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누가 억어지 주장을 하는 것 같은가. 


오래 전에 이 억어지 주장을 놓고 
논의한 것을 기억하는데 
일단 찾아지면 붙여 놓아 보기로 한다. 


○ [pt op tr] fr http://essay007.tistory.com/37 ☞인턴연구원이 0.9999999..... 가 1이라고 하는데 


little 님이 tok 님의 논의내용을 요약 제시한 부분을 찾았다. 
간단히 보면 1/3 의 값을 0.333333... 이런 식으로 표시하면 이것을 답의 내용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이 이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1/9은 0.111111 ...인데 여기에 9를 곱하니 앞 쪽이 1 이라는 등의 증명도 
모두 이 착각에 바탕해서 진행한 것이다. 

원래 1/9은 문제를 문제로 적어 놓고 답이라고 표시한 것이다. 
옆 항은 그것을 숫자로 표기해 보려니 끝내 확정된 숫자가 제시되지 않고 
계속 작은 나머지가 자꾸 나타나 미 해결상태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엉터리 계산을 하고나서 
마치 0.9999999999...가 그 답인 것처럼 착각하고 
그 양쪽이 같은 것이다 이렇게 나아간 것이다. 


결국 한 쪽에서는 
마치그 문제가 적당한 선에서 
근사값 구하는 문제인 것처럼 착각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0.999999999..의 표시는 
그렇게 한없이 표시해나가도 
정말 무시하고 싶을 정도로 작다고 생각되는 나머지 +b 가 계속 한없이 나타나는데 
그 +b 를 표시하지 않고 그렇게 나타낸 것 뿐이다. 
그래서 위 표시만으로는 그것이 원래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이 아님을 
그렇게 나타내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분 적분에서도 그런 근사값 공식이 도출되는 전제에는 
그런 처리 과정이 사실은 들어 있는 것이다. 

다만, 
수학의 약속이 

처음 1 = 1 이 처음 약속이고
이것을 토대로 다음 계산을 해나가는 것인데,
만일 이런 이상한 주장을 바탕으로 

1=1.000000000....=0.99999999......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꼴의 표기를 양쪽에 기재하고서  
근사값이나 미세한 나머지 수 무시 원리에 의해 
이 가운데 어느 것이나
서로 같은 수를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도긴 개긴의 원리에 의해 
나머지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자는 극단적 
주장도 가능해진다고 본다. 

tok님이 이에 대해 논리적 검토를 한 내용은 
검색 결과 다음에 있는 것으로 본다.
tok님이 재검토를 해야 하는데... 

09gfl--진리_단상_2010_0624.txt ☞거리의 무한 나누기(미분논리)

http://truth007.tistory.com/4187 ☞거리의 무한 나누기(미분논리)



다만, 일면 어느 쪽 주장이나 수긍할 수 있는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각 논리를 수행 측면에 적용해 생각해 보면 
제 자신의 고민도 현실에서 해결을 잘 하지 못하는 초발심 수행자나 
극락세계를 건설해서 수많은 수행자를 일생보처 보살로 
수행시키는 아미타불이나 
다 거기서 거기라고 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저러나, 
어제는 어제대로 긴급 응급 조치를 요구하는 
보고가 올라왔다. 

또 어떤 시설이 파손되었다는 보고다. 
방법이 없어 전문가를 초빙하여 수리를 맡길 수 밖에는 없었는데 
그 시설을 수리한 전문가의 말이 이렇다. 

그것은 그것을 보고한 이의 전적인 잘못 같은데 
왜 그것을 그렇게 처리하는가. 

모른다. 
단지 아는 것은 그렇게 안하면 
더욱 곤란해진다는 것만을 알 뿐이다. 
누가 정말 그것이 좋아서 그러는가. 

혼자 속으로 해보는 말이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사태가 수습된 줄 알았는데 
오늘 또 재차 응급 조치를 요구하는 보고를 받는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묘길상 인턴연구원이 
지금 안 보인다. 

묘길상 인턴연구원 인턴연구원 
지금 어디 있는가. 

게임 프로그램을 가지고 오라. 


사실 이 문제는 관련 당사자 입장에서 제각각 
자신의 논리를 앞세우고 
집착한다는 현실 사정이 있다. 

위치를 바꾸어 안경을 바꾸고 문제를 살펴봄에 따라 
다 옳고 다 조금씩 이상한 주장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숙왕화님이 투입되면 더 이상한 
방안을 해결방안으로 취하고 
끝내게 된다. 


그래도 본인이 개입해서 
적절하게 마무리 하고 
doctr 님에게 보고서를 올리고
doctr 님에게 배경 사정을 잘 설명하면
그나마 문제가 덜하다고
보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골치아프다. 

 





원래 글 하나에 
노래 하나 붙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귀찮다는 것이다. 

난 그런 글을 읽는 것이 귀찮다. 

무슨 해괴한 시감상을 꼭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심심하니까 아무 것이나 붙이라는데도...

망상분별 속에 또 다른 망상분별을 하면서 
어떤 노래를 붙여야 망상이 해소될 지 몰라하는
망상속의 또 다른 망상증상이라고 해석하게 된다. 

>>>

christophe willem entre nous et le 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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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vZ9GM2lBv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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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christophe willem entre nous et le sol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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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 Tokyun 2015/01/22/목/07:49


♥ 잡담 ♥삼맹현상과 과학지식의 응용문제

연구실적이 가장 빈곤한 것으로 평가받는 NO 님이 올려 놓은 글과 노래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게 된다. 




이상사회를 실현하는 기본 방안에는 1개의 방안에서 무량한 방안까지를 
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 기술하고자 할 때도 사정이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그렇다는 것이다. 
자신이 아파서 도움을 청하며 말하자 상대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됐네 별 것 다해줘 ~ 
관세음보살이 소원의 신속한 해결을 바라는 중생들에 대해 갖는 바람도
사실은 이런 사정에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LITTLE 님이 일찍이 소원의 성취 과정에 들어 있다고 하는 
3 맹 현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3 맹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모든 소원의 성취와 그 소원의 성취를 도와주고자 하는 이들의 관계는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과정과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생명이 갖는 소원이나 희망은 그것이 무엇이던
결국 다음의 3 단계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우선 희망을 관념으로 만들어 갖고 
그 관념을 얻는 감각현실을 얻고자 하고  
그리고 그렇게 노력해 얻어낸 감각현실에서 다시 이에 대해 얻는 관념이 원래의 희망과 일치하거나 엇비슷하면 
이제 그것을 놓고 소원한 바가 성취되었다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각기 맹목적으로 이것을 대하는 3 맹 현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여기에 덧붙여지는 
문제가 변덕왕자와 변덕공주가 매번 변덕을 부리는 문제 
그리고 이 때마다 그 소원의 성취를 도와주려는 거북도사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변덕왕자와 변덕공주의 문제란
거북도사가 상대가 소원하는 감각현실을 이해하고 이를 애써 만들어 주면 
그 상태에서 원래의 희망을 망각하고 다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거나, 
아예 식물인간형태로 된 변덕왕자와 변덕공주가 만들어 놓은 감각현실에 대해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따라서 그 가치를 평가하지도 못하고 
거북도사에게 또 다시 새로운 요청을 한다는 것이다. 

거북도사가 반복되는 이 문제의 해결때문에 
이 요소들 가운데 종국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생각하고 
쉽게 그것만 만들어 주려고 하면 
그러나 상대는 역시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 가운데 무엇 하나를 빼는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곧 소원 성취와 관련하여 
망상분별과 집착을 갖고 임하는 이들이
이와 관련하여 깊은 번뇌 상황에 빠져들어가게 되는 근본 요소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각각의 단계에
각 주체의 맹목적인 집착과 추구현상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little 님이 제시하는 3 맹 현상이다. 

이 과정에 도움을 주는 거북도사마저 맹인인 상태에서 도움을 주려고 나서면, 
이것이 곧 
맹인이 맹인을 이끌고자 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내용이 
이미 성인의 말씀에도 있다는 것이다. 




LAB 님이 수직암벽을 며칠간 노력하여 맨 손으로 올라가는 이를 보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고 한다. 

왜 올라가는가. 올라간 다음에는 그 후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이런 질문에 상대는 그저 좋아서 올라간다. 올라간 다음에는 좀 쉬고 
다시 내려오려고 한다. 이런 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모든 간절한 소원들에서 이런 비슷한 답만을 얻게 되기에 
이것을 매우 안타까운 문제현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좋아서 무엇을 원하고 그래서 그것을 성취하고자 애쓰고 노력하는 것에 대해
왜 공연히 딴지를 거는가. 

그런데 이것이 사실은 의미없는 무한한 공회전의 과정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심지어 상식적으로 무한동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데 
이런 생명들의 무의미한 활동이 사실 무한동력기관의 원리이기도 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DOCTR 님이 모든 생명이 공통적으로 수행하는 행위로 
먹고 싸고 놀고 하고 쉬고 자고 하는 내용을 든다.  
각 생명이 행하는 이런 활동에서 그 목적어에 해당하는 부분 OO은 다 구체적으로 
다르다. 

지렁이가 먹는 OO, 파리가 먹는 OO, 사람이 먹는 OO
이런 것은 다 다르다는 의미다. 

그러나 매 순간 그것이 좋음을 준다고 보고 그 OO을 구해 
그런 행위를 반복해서 이어가는 것인데 
정작 그것이 그 순간 이후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1 주일전에 먹은 OO 
1 주일전에 배설한 OO
1 주일전에 놀은 OO
1 주일전에 한 OO
1 주일전에 쉬면서 한 OO
1 주일전에 잔 OO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질 때 
각 생명이 매순간 그것이 가장 좋아서 또는 선택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좋은 OO으로 취한다고 보이지만, 

정작 OO의 내용에 대해 별다른 의미있는 내용을 
꺼내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이런 구조로 무한 동력활동을 
열심히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의 의미가 거기에는 없기에 
기억도 단기 기억으로 끊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상한 해석이다. 


또 다음의 문제제기가 있다. 

진리나 존재의 구조에서 
실체와 실재와 감각현실- 관념 - 좋고 나쁨 느낌 - 선악
이런 여러 측면을 나열하면서
이 가운데 어디에도 진짜를 찾아낼 수 없는 가운데 
어떤 상태가 목표상태가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실 여기에서 가장 그 존재의 기초가 부실하다고 보이는 것은 
좋고 나쁨의 느낌, 그리고 선악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다른 것에도 역시 진짜라고 할 내용은
본래 찾을 수 없는 것이기에
만일 그 측면을 모두 다 그대로 두고서도
어떤 이가 그에서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굳이 다른 측면을 목표로 제시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표를 찾게 되는 것은 
사정이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모두 진짜가 아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비록 그 정체가 마치 꿈과 같고 환영과 같아서 실답지는 않지만, 
그러나 현실에서는 진짜처럼 여겨지는 고통의 현실이 있기에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라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길거리에서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두 당사자의 
고전 문제가 제기된다. 

A의 입장을 놓고 보면 A의 소원을 성취시켜 주고 A의 고통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 
목표인 것 같은데 
그러나 그것이 동시에 A의 상대인 B에게는 그 고통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그 반대도 반대다. 
그래서 매우 해결곤란한 고전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결방안이 없는 것은 아닌데 
이런 유형의 문제가 무한히 제출되고
각 구체적 사정따라 마련해야 할 방안이나 방편
그리고 이에 따라 살펴할 내용이 무한히 증가된다고 한다.

대강 이런 문제점을 나열한다. 


극히 최근 세금 년말정산과 관련하여 
대다수 직장인들이 불만을 호소하는 현상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과거보다 연말정산과정을 통해 돌려받던 세금액이 
적어진 느낌을 받고 약 100 여만 명의 직장인이 
불만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책집행자 일부는
이는 일종의 조삼모사 착시현상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고 한다. 

많이 거두고 많이 돌려주었던 과거에 비해 
미리 적게 거두고 적게 돌려 받는 것인데 
이것을 잘못 오해하는 문제라는 설명이다. 

여하튼 이것이 문제가 되자, 
어느 쪽 해석이 맞는지 잘 살펴보고 나중에라도 문제가 발견되면
이 문제를 소급해서 
시정해주기로 여야가 합의를 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과 국가에게 전체적으로 좋음을 많이 주기 위해 
정부는 정책을 마련해서 시행하는 것이고 
이 과정이 결국 다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노력해가는 것이라고 본다.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 의견이 다르고 
이것을 놓고 따지면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나 연구를 쉴 도리는 없다. 



그런데 이에 대한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이상사회론을 연구한다고 하는 NO 님은 
결국 이들 방편에 대해서 
앞과 같은 원칙적인 입장만 반복해 제시하는 것이다. 





lab 님이 자주 말하는 방편이 갖는 선악무기적 성격과도 
관련되는 문제다. 

이렇게 사용될 수도 있고 저렇게 사용될 수도 있는 성격의 
지혜나 지식은 공개한다고 해서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보면 그러거나 말거나 
공개된 수많은 지식이 방대하게 이미 있다. 

이제 이런 지식들을 놓고는
반대방향으로 퀴즈를 내서 
이 퀴즈를 각기 풀어야 한다고 본다. 

원래 이런 지식이 제공되는 것은 
당연히 이런 지식은 선한 목적에 좋게 사용된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 당연한 전제와 관련하여 
약간의 차이를 보기에 
다시 다음과 같은 문제를 풀어보아야 한다고 본다. 

이런 지식이 가장 좋게 사용될 수 있는 목적상태는 무엇인가 .
이런 지식을 통해 일정한 소원이 성취되면
그 이후 또 그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 과학퀴즈 

다음과 같은 수학문제가 있다. 
● 길이가 전체 12 m 인 줄이 있다. 
이 줄로 사각형을 만들고자 할 때
그 면적이 가장 넓어지는 형태는 
어떤 경우인가. 


위 문제를 풀 때 
풀고 나서 우리는 이런 원리를 하나 찾아 내게 된다. 

만들 수 있는 도형 가운데 직사각형 꼴보다는 
정사각형 꼴이 면적이 가장 넓게 되는 것 같다. 

이 문제도 앞과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그와 관련된 퀴즈 문제를 풀어보아야 할 것 같다. 

이런 바탕에서 또 다른 문제를 대하게 된다. 

● 너비가 24 Cm인 스테인레스판으로 
물이 흘러가는 긴 통로를 만들려고 한다. 
만들 수 있는 통로의 형태 가운데 
되도록 한번에 가장 많은 용량의 물이 흘러가게 하려면 
어떤 형태로 만드는 것이 좋은가. 

여기엔 약간의 함정이 들어 있다. 
정사각형 꼴로 만들기 위해 8 -8-8 의 꼴로 U 형태로 
판을 구부려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과연 그런가가 이 문제가 갖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사실 간단한 수학문제다. 
다만 문제를 풀려면 2 차 방정식을 만들고 
최대값을 구하는 문제로 접근하면 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역시 비슷한 
추가 문제를 덧붙일 수 있다. 

잘못하면 똑같은 어구를 반복해대는 랩가수가 되기 쉽다. 


비슷한 착시현상의 문제가 있다. 

● 공을 굴리거나 자전거를 타고 갈 때 
직선을 굴러간다고 보는 공이나 바퀴는
그 직선을 따라 굴러 가는 것 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의문제기가 있다. 


그래서 공이 자연스럽게 목표지점까지 경사면을 굴러가게 하고자 할 때 

목표점까지 직선으로 경사면을 만들어 놓는 것보다 
다른 형태로 만드는 것이 
최단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가. 

이것에 대해서 정리된 지식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대서도 같은 랩가수의 반복어구가 필요하다. 
현실에서는 이에 답하여 사이클로이드 미끄럼틀을 만들어 
제공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하튼 이런 착시현상과 관련하여
시사받는 내용이 많지 않은가 한다. 

이에 관한 내용을 일단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사이클로이드원리와 최단강하곡선 

1.최단강하곡선: 미끄럼틀을 따라 똑같은 높이에서 공을 잡고 있다가 놓는다.
그러면 미끄럼틀이 사이클로이드 모양일때, 공이 가장 빨리 땅에 도착한다.

 

2.등시곡선: 직선모양의 미끄럼틀에서는
공이 땅에 도착하는 데에는
높은 곳에 있는 공이 낮은 곳에 있는 공보다 오래 걸린다.
하지만 사이클로이드 모양의 미끄럼틀에서는
공의 높이가 서로 달라도
바닥에 도착하는 시간은 똑같다.


[참고] 사이클로이드 곡선 



























●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연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또는 성과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각종 심리적 장치를 마련하게 된다. 

성과를 잘 달성하는 경우에는 포상을 하고 
또 반대로 성과를 못 내는 경우에는 
보직을 이전시키거나, 그런 식으로 
성과를 많이 잘 내도록 유도하고 이끄는 방안들을 
강구한다는 것이다. 

어느 일에 묶이거나 매이지 않는 가운데
그러나 가장 즐겁게 그러나 잘 그 일을 하고, 
동시에 성과나 그 성과가 갖는 가치는 
가장 높게 하자는 
목표를 제시하는 이가 

같은 목표로 연구를 하는 이들간에 
성과를 높이고 일하는 가운데 재미를 주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고 한다. 

매일 단기목표를 제시하고 
목표를 성취하는 이와 성취하지 못하는 이 사이에 
군밤을 하나 때리기 
아니면 군밤을 하나 사주기 
이런 식으로 재미있는 규칙을 정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연구팀을 동성팀으로 구성해 이 게임을 하는 것이 좋은가 .
이성팀을 구성해 이 게임을 하는 것이 좋은가. 
이런 심리 퀴즈를 제출하였다고 한다. 

어떤 것이 가장 좋은가. 
혹시 그렇게 안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좋은 것은 아닐까.  

다음과 같은 문제가 또 있다. 

● 아름답게 하늘을 날라다니는 나비의 일생을 
면밀히 추적 조사한 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나비는 매우 이상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선 나비는 어느 시기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그 알은 부화하여 이상한 형태의 벌레가 된다고 한다. 
우리가 송충이라고 보는 그런 이상하게 생기고 
약간은 징그러워 보이고 꿈틀꿈틀 대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풀잎 나뭇잎 등을 갉아 먹고 살아가는 애벌레가 된다는 것이다 .

이 애벌레는 매번 더 다른 형태로 변하기 위해 허물을 벗는 
변화를 거친다고 한다. 

이런 허물벗기를 한 번 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의 
애벌레로 변화해 가는 것이다. 

그런 변화를 한 4 번 거치면 이 횟수에 따라 5 령 애벌레라고 
이름을 붙이는데 

이 5 령 애벌레가 1 번 더 변화하면 번데기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최종적으로 번데기가 된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올 때 나비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내용을 보고 받는데 
그런데 여기에 lab 님이 개입하면 
이것이 모두 문제가 된다. 

각 단계의 나비나 알이나 애벌레 번데기 모두에게 
왜 그런 짓을 하는가. 
그렇게 되어서 끝내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의 질문을 
끝없이 퍼붓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써 오랜 기간에 걸쳐 이런 변태의 과정을 관찰해서 보고하는 이에게도
또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왜 알고자 하는가. 
그렇게 그런 내용을 알아서 끝내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이런 식으로 질문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부분의 답이 같은 형태인 것이 
불만인 것이다. 

대부분 뻔한 대답만 한다는 것이다. 
그저~,
그냥, 
안 하는 것보다는 좋아서, 
매우 좋아서, 

이런 식으로 각 경우가 다 대답한다는 것이다 .

먹고, 싸고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고전적 유머의 
답이 있다. 

왜 매번 먹는가. 
살기 위해서
왜 살아가는가. 
먹기 위해서 

이렇게 답하는데, 
이것이 약간의 조크성 답이면서 
사실 현실의 대부분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lab님은 이런 답들에 대해서 매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극히 정상적인 매 과정과 답에 대해 조금은 불만스럽게 
여기는 독특한 입장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서 나비가 되는 과정은
그것만 보면 아름다운 나비가 그저 삶을 즐겁게 유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 단계마다 많은 고통과 시련이 있다고 한다. 

자신을 해치려는 각 천적들에 맞써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을 취하기도 하고 
또 각기 한정된 식량을 놓고 경쟁하기도 하고 
그리고 고통을 느끼며 희생되기도 하고 
또 각 상태에서 추구하는 것이 성취되면 좋음을 느끼는 
그런 삶의 애환과 고통이 
일반 다른 생명과 비슷한 정도로 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들 알과 애벌레를 낳은 나비와 
애벌레들 간에는 약간은 서로 돕는 관계가 보인다고 한다. 

애벌레가 취하는 음식과 나비가 취하는 음식 등이 
서로 경쟁관계에 놓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벌레는 자신이 장차되는 모습이 나비의 모습이라는 것을 
미리 알기는 아는가. 

애벌레는 또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의 모습을 
보기는 보는 것인가. 

또 나비는 알이나 애벌레나 번데기가 
비록 자신과 크게 다른 형체라고 해도 자신의
사랑스런 자식이나 분신이라고 보는가. 

또 애벌레나 번데기는 언제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방법을 배우는가 
나비가 날아갈 때 그 비행 연습은 언제 한 것인가. 

이런 의문이 꼬리를 잇는다. 

꿈에서 
real 님과 prajna 님이 





구식 대형 프로펠러 비행기를 마련해 
바다를 건너 멀리 같이 날아가자고 하는데 
그러나 꿈 속에서도 생각해보니 
겁이 난다. 
비행기 운전에는 하나같이
왕 초보들이 아닌가. 

비행기 뒤에
이 비행기에는 아이가 타고 있어용 
이렇게 써 붙이면 바다를 건너갈 때 
조금 안심이 되는가. 


여하튼 
그런 관찰까지 보고하는 이를 상대로 
lab 님은 조금 지나친 태도로 대하는 것 같다. 




계속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그것은 무엇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인가?
그렇게 해서 천년 만년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아다녀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인가?

이렇게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좋아서 그렇다는데...


사실 나비 하나만 바라보아도 복잡하지만, 
이런 형태는 다 각기 다르고 복잡하다. 

매미는 매미대로 사정이 복잡하고 
새우나 게도 그렇고 
온갖 생명이 다 복잡하다. 

사람이 자신의 신체로 보는 몸은 
사실은 그 80 % 이상이
자신과 별개의 다른 생명체가
제각기 자신의 몸이라고 보는 세포라는 내용도 
보고받게 된다. 

백혈병에 시달리는 환자의 수많은 백혈구들이 
가령 그 상태를 문제삼는 환자에게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언제 내가 당신 말 듣고 세균을 쫒아 다닌 적 있는가. 
그냥 나  좋아서 하는 일이다. 

설마? 

여하튼 
현실에서 각 생명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살아가는 생태계에 관하여
각종 복잡한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가 있다.

세계 각국이 서로 교류하는 가운데 
간혹 외국의 특이한 
외래종이 들어와 기존의 안정적인 생태계 구조를 
파괴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이런 생태계 파괴 문제가
곧바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가령 
어느 곳에서 늑대가 많이 있는 것이 문제라고 보고 
늑대를 모두 체포해 제거하였는데 
이후 그 결과로 환경이 모두 파괴되는 문제가 
발생하였고 
그것이 결국 늑대를 제거한 인간에게도 
큰 문제가 되었다는 식이다. 

늑대가 제거되자 초식동물이 증가하였고 
그래서 풀들이 고갈되고 
그런 식으로 연쇄적인 악영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황소개구리나 뉴트리아, 베스라는 외래종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문제 때문에 
이를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일히 이들을 사로 잡아 제거해서 
원 상태로 되돌리려고 하는데 
쉽지 않은 문제라고 한다. 

그런데 혹자는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원상태는 뭐 그렇게 좋은 상태이기는 하였는가. 
왜 호랑이는 없어졌는가. 
좀 기다리면 그 새로운 황소개구리를 통해서
새로운 균형 상태가 나타나고
그것을 놓고 그냥 그렇게 보면 되는 것은 혹시 아닌가.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는 것이다. 

굳이 원 상태를 좋다고 보아야 할 이유도 없는데 
그렇게 되돌리기 위해 
일일히 뉴트리아를 잡아 항문을 꿰매고 
그렇게 꿰매면 뉴트리아가 지극한 고통과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신의 새끼와 종족을 스스로 제거하게 된다고 
어느 과학자가 발표한 내용을 놓고 
너무 잔인한 방법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어차피 제거하는 것이 목표인데 
무슨 이것과 저것의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하는 
반론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보시오 라고 말하자, 
내가 왜 바뀔 가능성이 없는 입장을 굳이 
바꾸어 보아야 하는가 
그런 회답을 받게 된다고 한다. 

이런 자연 생태계 문제나 환경파괴 문제로 고민을 하는 것은 
다른 국가들도 사정이 다 비슷하다고 본다. 

어떤 것을 개발하면 어떤 점이 좋은데 
그로 인해 어떤 부작용이 나타난다. 
그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면 
또 다시 그로 인해 이런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런 문제가 끊임이 없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쉴 도리도 없다는 것이다. 
분명 찾고 구한 좋음이 있고 
그 좋음을 포기할 수 없는데 
그러나 그로 인해 나쁨이 또 나타나기에 
이 노력을 쉴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생태계에서 만나는 이 상호 대립 경쟁관계에 관해서는 
또 다른 고전적 문제가 있다. 

● 매가 비둘기를 잡아 먹으려고 하자 
비둘기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람이 비둘기를 숨기고 도와주려고 하자
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저 비둘기를 잡아 먹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나는 어떻하는가. 

만일 당신이 비둘기를 보호하고자 하면 
내 문제도 함께 해결해주라. 

비둘기가 지금 상황에서는 피해자인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둘기도 사정이 나와 같다. 

비둘기도 다른 생명을 나처럼 해치면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 많다. 

뱀이 꿩을 잡아먹으려고 하자, 
선비가 이를 보고 
뱀을 죽이고 꿩을 살려줬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 뱀의 아내가 밤에 
그 선비를 체포하여 
복수를 하였다는 식이다. 

그런데 다행히 살려줬던 꿩이 
은혜를 갚기 위해 
뱀이 용서해주는 조건으로 내건 요구조건을 
성취시켜 주기 위해 
자신의 머리로 종을 울려 죽어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가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그래서?
도대체 그 일로 
누가 좋아진 것인가?

오히려 개입하지 않은 것보다 
개입하여 도움을 준 것이 
더 못한 결과를 낳지 않았는가. 

개입하지 않은 상태와 
개입한 상태의 차이가 무엇인가. 

이 이상한 고전 퀴즈는 
그래서 여전히 문제로 제기된다. 

어떻게 보면 감동을 주는 동화 같은데,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보니 
문제에 문제를 더 얹어 놓은 
이상한 이야기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여 
무언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지혜를 발휘하지 않은 것보다 
오히려 결과는 더 나쁜 상태가 된 것 아닌가. 
이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어리석음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어차피 나쁜 일을 할 바에는 
하나의 작은 나쁜 일을 하는 것보다는 
대량으로 한꺼번에 많이 깊게 행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많은 경우 
한 개인에게 행하지 말라고 하게 되는 
살인, 강도, 강간, 약취유인, 감금, ...등등의 범죄 행위를 
정하고 그것을 못하게 하면서 
전체 국가는 이웃 국가에 대하여 집단적으로 
그런 행위를 과감히 하는 경우를 
세계의 영웅이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약간 어려운 문제다. 

이런 고전 퀴즈문제에 
그러면 누군가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어떤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인가. 

한편 
매와 비둘기의 모순되는 문제제기를 받게 된 
수행자는 
매의 요구에 의해 자신의 살과 피를 비둘기의 살과 피에 
동일한 양으로 맞추어 
제공하여 이 문제를 간신히 해결했다고 한다. 

매와 비둘기 분쟁의 문제에 개입한 수행자의 
이런 방안은 사실은 도저히 사람들이
그것을 해결 방안으로 취할 수 없는 내용이다. 

이런 해결이 가능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지극히 곤란하다고 본다. 

그 한 문제는 그렇다고 하고 
생태계의 수많은 생명이 이것을 보고 
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면 
이제 그는 다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게 해서 이 모든 문제가 다 원만히 해결된다면 
정말 좋고 좋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다고 
little 님의 거북도사는 말한다고 한다. 




사전 서비스를 통해 
모든 문제를 제거하여 놓으면
정작 그들 가운데 그것을 가치있다거나 
좋다거나 하는 이는 또 아주 드물다는 것이다. 

차라리 한번 팔을 잘라 놓고 
일주일 후에 치료해주는 것이
매 경우에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사후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과 같다.

이 어려운 문제가
결국 no 님의 입장과 모두 관련이 되는 것 같다.  



매번 구체적 case를 놓고 해결방안에 대한 논의를 요청하면 
매번 no, no, no 만 반복해 외치는데, 
최소한 그것은 답이 아니라는 것만 자신은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슨 다른 대안이 있는것인가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별 대책이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또 아니라고 한다. 

이상한 연구 자세의 배경과 이유는 이해는 되지만, 
서로 답답함을 심하게 느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연구 지체 현상에 빠져 있는 
doctr 님이 닥터 슬럼프란 만화를 보고 나서 
자신을 닥터 슬럼프로 보아달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닥터 슬펌프 이전에 
만화가 고우영씨가 그린 만화 가운데 
짱구박사라는 만화가 생각난다. 

광고 방송 때문에 TV 시청자가 짜증을 내자, 
짱구박사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TV를 개발해낸 것이다. 
TV 옆에 달린 작은창에서 계속 광고만 나오게 하는 TV 인 것이다. 

그런데 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방송국에 찾아가자, 
담당자로부터 된통 야단만 맞는다는 이야기다. 

좋은 아이디어 같은데 왜 그것이 문제일까. 

요즘은 그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꿈이 실현된 모습도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선각자의 이상을 일반인들이 잘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웃음의 문제로 취급한 것은 혹시 아닐까. 

인터넷이 개발된 시대에 
한국은 현재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한다. 
해외 직구구매비용이 20 억달러인데 
거꾸로 해외에서 한국물품을 인터넷으로 구매해가는 액수는 
극히 적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한국이 인터넷을 다른 측면에서는
세계적으로는 잘 활용하고 있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원래는 무역상들이 대량으로 물품을 구매하고 
그것을 국내에 이윤을 붙여 팔아왔는데 
이제 이것을 국내소비자가 인터넷 마켓 가격과 비교하면서 
불만을 느끼고 직접 구매에 나서서 이런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기존 무역상은 무역상대로 문제를 느끼는 한편 
전체적으로도 조금은 이상한 내용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여하튼 반대로 장점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국내 기업들도 이것을 잘 활용하면 
균형을 기대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세계를 상대로 판매할 상품이나 인터넷 숍도 없는 본인이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것을 문제라고 본다면
이런 각 문제에 대해 부작용이 가장 적은
레시피를 강구해 볼 일이다. 



최근 lab님이 글을 올린 플렛폼 사업 내지 산업 방식 이런 것을 
여기에 적용해 볼 수도 있다고 보지만, 
이것도 결국 또 다른 매와 비둘기 문제는 혹시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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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 Tokyun 2015/01/21/수/14:11


♥ 잡담 ♥뻔한 계산 

택배로 주문한 물건들이 정확히 다 도착했다. 
문제가 없는 세상인 듯 보이지만, 
이 현장에 문제가 많다고 보는 시각도 물론 있다. 

왜 1층 택배비와 2 층 택배비가 같아야 하는가. 
왜 소품 택배비가 박스 택배비와 같거나 오히려 더 비싸야 하는가. 
등등의 의문이 꼬리를 잇는다. 

물건을 꺼내 잠시 30 초 삼매에 들었다. 
우리가 배우고 익힌 상식에 의하면 
이 원재료가 무엇인지 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구입비를 놓고 계산해 보건대 
구입비도 상당하지만, 
그러나 계산법을 달리해보면 
몇 건의 물건구매로 얻은 이익이 수억원을 초과함을 
쉽게 계산해 낼 수 있다. 

물론 원재료구입비부터 계산을 시작하는 순수 계산식에 의한 것이다. 
기회비용 이런 것도 다 고려되어 있는데, 
물론 시장에 주장할 수 없는 계산식이기는 하다. 

LAB 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결국 단체 배낭여행이나 가고 
인터넷 해외 직구 버튼만 누르면 될 일들을 
힘들게 해보자고 오늘도 소설을 쓰는 
이들이 가끔 있다는 것이다. 

유단자인가 아니면, 
시간 여행자인가. 

그런 분들 때문에 오히려 다른 배낭여행족만 
불안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REAL 님이 해외 여행 중인데 
결국 REAL 님은 누구를 믿고 그렇게 여행 중인가. 

결국 찾고 찾다 보면 LAB 님도 아니고 
결국 언제든지 무한궤도를 몰고 다닐 수 있는 나를 믿고
다 그렇게 하는 것 아닌가. 


물건을 보면서 생각해보니,
한 품목은 한계가 보이는 물건이고 
나머지 두 품목은 한계가 보이지 않는 물건들이다. 

하나는 하도 건강 문제를 제기하는 주변사람들 때문에 
구입한 혈압계이다. 

무슨 교훈을 이 혈압계가 매번 주는가. 

체크하고 조심해서 관리하지 않으면 
갑자기 자신이 안인 수행을 시작하고 
주변사람들이 또 안인 수행을 시작할 수도 있다는 
경고판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 승부의 최종 승자는 안인수행 극복자들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아니다. 
한계가 보이는 것이다. 

보면서도 기쁨보다는 당연히 예상되는 
걱정들이 순간 머리 속을 스쳐지나간다.
오늘 괜찮다고 내일 괜찮은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어제도 응급 진료실 프로에서 
비슷한 환자를 보았다. 

가족이 말하길 아침까지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는 99% 포기의 심정이었다고도 한다. 
회복실에 있을 때는 가족들은 성경을 옆에 들고 
환희를 느낀다고 한다. 

거북도사가 여기에도 무언가를 한 것인가. 

사실 거북도사의 방문은 희소식이 아닌데 
그러나 결론은 희소식이기도 하다. 

가족들의 결론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부터는 어제와 달리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행복하게 잘 해주면서 살겠습니다.
이런 취지의 발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런 사고 없이 그냥 전환해 그렇게 
살았으면 더 좋은 일 아니었을까. 

아무리 뇌수술을 완벽하게 해주었다고 해도 
그래도 환자는 조금 불편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 가족의 생사를 놓고
그 극과 극을 한번 오가면서 
공포와 공포의 해소, 안도를 느끼면서 
원래와 엇비슷한 내용을 놓고 다시 감사와 환희로서 
바꾸어 대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소중한 것이다. 

이 현장을 직접 가서 방문하지 않아도 
수술 장면의 단면까지 보여준다. 

의사의 절친한 친구라고 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여하튼 여러가지로 감사를 느껴본다. 
그래도 여기에서는 답답한 한계를 보게 된다. 

이 진단체크가 어떤 해결책까지 같이 
보내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알던 모르던 해야 할 일은 마찬가지임을 
아는데 그래도 알면서 체크하면서 
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모든 약이나 식품은 한편으로 부작용을 갖는다. 
되도록 적은 부작용을 기대하는 것 뿐이다. 

LAB 님이 10 갑을 가지고 올해를 맞이했는데 
몇 갑이 남아 있는지 체크를 대신 해보아야 할 것 같다. 

반절 남았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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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59/01/21/수/07:27


♥ 잡담 ♥자매들의 사랑과 독점욕의 문제 

요즘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에 
김수미 양이 출연하는 드라마가 있다. 

>>>

‘전설의 마녀’ 김수미, ‘연애금지령’ 내리며 투자자 행세

>>>

http://reviewstar.wowtv.co.kr/Article/ArticleView.php?WEB_GSNO=10232981

>>>


현재 사건은 단순하게 말하면 연애과정에서 흔히 발생되는
3각 관계가 소재이다. 





복녀(고두심 분)와 이문(박인환 분)이 서로 좋아 지내는 가운데 
영옥(김수미 분)이 이문(박인환 분)을 좋아하면서 
사이가 복잡해지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복권 당첨후 복녀가 하는 마법의 빵집 사업에서 투자자가 된 영옥(김수미 분)은
이 사태에 사업 정상화가 될 때까지 ‘연애금지령’을 내렸다.


이 문제를 어떡해야 하는가. 
영옥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복녀와 이문의 관계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잘못 보면 영옥이 공연히 마녀 역할을 하고 
나서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의 문제가 단순해서 오직 누가 먼저 사랑했는가의 선착순 문제라거나, 
또는 누가 더 오랜기간 사랑했는가 등의 문제라거나 
누가 누구를 사랑할 때는 다른 이는 다른 누구를 전혀 사랑할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일반 상식의 입장과도 멀어지고 
또 원래의 사랑의 취지와도 멀어진다. 

단순하지만 어려운 삶의 문제인 것이다. 

각 입장따라 하나의 상황을 해석하는 내용이 다 달라진다. 

마치 새가 하나 날아가는 것을 놓고  
날아가는 쪽에서는 새가 날아 온다고 생각하고 
반대쪽에서는 새가 날아 간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하나의 상황을 놓고 하나는 때린다고 생각하고 
또 하나는 맞는다거나 막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다 다양한 것이다. 

이런 일반적인 생각에 대해 
부처님이 제시하는 내용은 일반적 입장과는 모두 다 다르다. 

오고 감도 없고 행하는 자나 받는 자도 본래 다 없는데 
그러나 망상 분별 속에서는 문제삼는 그 모든 것이 
마치 진짜로 있는 것처럼 여겨지면서 
그 실답지 않은 모든 것이 번뇌와 고통을 가져다 주는
삶의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망상 분별 속에서도 어떤 자세를 취하고 
어떻게 행하면
그것도 단지 그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그렇게 뜻과 행위 방향을 바꿔 취하면 
그로 인해 문제가 해소된다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해결방안이 쉬어보지이지만, 
그러나 당사자들은 모두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처럼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현실 속의 문제인 것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다윗왕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윗왕은 자신의 충직한 장군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사랑하게 된다. 

지혜의 왕으로 알려진 솔로몬 왕은 이런 다윗과 밧세바의 사이에서 
태어난 왕으로 전해진다. 

참조 구약성경 [사무엘하11:2~]

당시 왕은 오늘날 왕의 상태와는 조금 다르다. 
솔로몬 왕은 아내가 700명, 첩이 300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솔로몬 왕 때 갑자기 왕이 그렇게 많은 부인을 거느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과거 고대의 왕들의 형태를 보면 
이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왕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많이 취해 갖고 있음에도 
다른 이의 아내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데에는 
본래 탐욕은 무한하여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사정을 보게 해준다. 


그래서 이는
유독 다윗왕에게만 발생하는 현상은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보통 무엇이라고 이들에게 
메세지를 보내게 되는가. 

누구나 이에 대해 하게 되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것을 중지하고
오히려 그 반대되는 방향으로 생각과 행위를 하느라 
하루 하루 매일 분주하게 보내는 것이
좋다는 것이 일반적인 처방이 된다. 

누구를 사랑한다면 
한우와 치킨을 사랑하여 소와 닭을 상대하는 그런 입장이나, 
강간범이 여인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행하지 말고 
최소한 애완견을 사랑하여 애완견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입장으로 전환해서 그 문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만으로 부족하기에 
그 이후 사랑과 관련하여 나아갈 내용은 많다.

이에 관해서는 일찍이 LITTLE 님이 정리작업을 하다가
방편의 선악 무기의 성격 등과 관련되어 중단한 사정은 있지만,
여하튼 그것이 출발점이라면 출발점이다.

즉 취할 수 있는 다양한 방편을 나열하고 
부작용과 독이 많은 방편에서 
점차 부작용과 독이 덜하고 장점이 더 많은 좀 더 나은 단계의 방편을 취해 나아가고 
이것을 계속 해나가는 가운데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단계에서 갖는 장점은 장점대로 다 갖고 
부작용과 독은 모두 제거해 버리는 상태에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답은 성인들이 몸소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극히 일반적 상식적 입장과 너무 멀어지게 되고 
구체저 현실 속의 당사자들은 이를 
결국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일을 하는 것처럼 
극히 행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행하기 힘들다면 최소한 다음 
방안을 취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자신은 자기 자신 하나나
자신의 방안에 있는 이만 
고려하고 사랑하지만, 
그러나 최소한 자신의 몸이나 자신의 방안에 찾아 들어오는 생명은 
그것이 어떤 생명이라도 제한을 두지 않고 
모두 차별없이 사랑하고 이들을 제도하겠다는 마음만이라도 
갖게 되면 된다. 

그 범위가 좁기는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인해 
그는 환희행의 수행단계라는 
차원이 다른 수행자의 단계가 되는 것이다. 
범위가 좁다해도 이 역시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하튼 이로써
범위를 닫고 행하는 사랑과는 그 성격이 달라지고  
범위를 닫지 않고 온 생명에 대하여 제한없고 차별없이 
자비와 사랑으로 임하는 성인의 사랑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경계선이 그 지점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초발심과 초발심 이전의 상태는 
본래 모든 것이 공하고 차별이 없다고 보는 가운데에서도 
서로 극과 극의 차별이 있게 되는 것이라고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왕들도 그 문제를 잘 풀지 못하고 
일반적인 이들도 역시 그 문제를 잘 풀지 못한다. 

이들이 나아가는 길은 그래서 사실 악의 길이다. 

그것은 좁게 자기 자신만 사랑한다고 하는 이도 그러하지만, 
그 범위를 넓혀 넓은 범위로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아가는 이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사실은 사정이 이렇기에
그런 자세는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작은 악에서 더 큰 악으로 
나아가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간단히 보면
나를 위해서 악을 행한다는 이보다는 
내 가족을 위해서 악을 행한다는 이의 악이 
더 커진다. 

예를 들어 
과거에 넓게 아리안족을 사랑한다고 
공표하고 나선 이가
현실에서 행하는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무엇무엇인가를 헤아려 보자.

자신만 사랑하거나 자신의 재물만 사랑하여 
살인이나 강도를 범하는 이도 악이지만, 
그나 자발적이건 아니면 억지로 묶인채 끌려가건 
그를 따라 행한 이들의 악은
그에 비해 얼마나 증가하였는가. 

어떤 이는 다른 이가 행한 악을 보고 
그 잘못은 보지만, 
그러나 직접 자신이 행하고 있는 악이 
그렇다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 뉴스를 보면 어느 나라 수상이 
그처럼 과거에 그가 악을 광범위하게 행한 수용소를 방문한 가운데 
그러그러한 내용이 큰 잘못이어서 
다시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마치 다른 이가 행한 잘못을 자신이 대신 참회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거기에서 어떤 이상한 문제점을 
보게 되는가. 

사정이 사실은 이와 같은 것이다. 

자신은 다른 이의 잘못을 쉽게 알아 보고 쉽게 비난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와 같은 형태로 행하는 악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그러니 오죽하면 죄인들이 
어떤 여인을 죄인이라고 지목하고 체포하여 
예수님에게 심판을 해달라고 요청하겠는가. 

이 대목에서 죄가 없는 예수님은 
그 여인이나 나머지 죄인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자신이 돌을 들어 이 모두에게 
힘껏 다 던지는가. 
적어도 그것은 아님을 쉽게 아는데 
그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행하고 
그렇게 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그런 관점에서
각 상황의 문제를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본다. 


성경에서는 다윗왕의 악에 대해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식을 신이 죽이고 
그 후 태어나게 된 것이 솔로몬 왕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여하튼 악인 것이다. 


그런데 이 하나의 상황에 오로지
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의 입장에 대해서는 또 다른 내용의 메세지를 보내게 된다. 

역시 취지 자체야
처음 김수미 양이나 다윗 왕에게 보내는 메세지와 
같은 바탕에 있다고 보지만, 

그러나 여하튼 그 당사자는 
도저히 행하기 힘들다고 보게 되는
그런 내용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그 메세지를 받고 
따르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생각해보면 
원래 원칙적인 사랑의 문제에서는 
이런 문제가 잘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한 어머니가 한 자식을 사랑한다. 
그러나 자신이 그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자식의 아버지나 그 외 다른 이들이
자신의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못하게 막지는 않는 것이다. 

또 그 자식이 자신 이외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막지 않는 것이다. 

원래는 어떻다고 보아야 하는가. 

각기 널리 사랑하고 널리 좋음을 서로에게
베풀고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원칙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사랑에서 
그것이 이성간의 사랑 등으로 될 때는 
그것이 그렇게 되지 않음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동시에 다른 이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하고, 

또  내가 사랑하는 이를 다른 사람이 사랑해서도 안 되고 

내가 사랑하는 이 역시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된다는 
형식으로 대하게 된다. 

배타적 독점적인 형태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다른 이를 배제시키고 나 혼자만, 이런 의미다. 
그 사랑하는 것에 극히 집착하므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성간의 사랑에는
일반적인 탐욕의 문제외에 
그 문제를 악화시키고 복잡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가 들어 있다. 

원래는 다 같은 문제이지만, 
이 경우에는 특히 이 사랑으로 인한 
2 세들의 출생과 상호 부양문제
그리고 가족관계의 형성 등
삶의 번뇌가 출발하게 되는 계기가 모두 이에 관련된다. 



일반적으로 이성에 대한 사랑문제는
좋음과 관련하여 탐욕의 문제가 갖는 이런 여러 문제점 때문에 
부처님은 수행자에게는
특별히 여러 사항을 주의사항으로
가르치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수행에 전념해야 할 이가 
그에 따르지 않으면 그로 인해 
당연히 온갖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번뇌를 해결해서 제도시키는 것이 
수행목적인 이가 
오히려 번뇌의 수렁에 자신이 빠져 고통을 받으면 
되겠는가. 


삼국유사에 조신이란 스님이
한 여인에 대해 집착의 마음을 일으켜
번뇌 상황에 빠지자,
관세음보살이 방편으로 꿈에서 
조신이란 스님이 갖는 소원을 성취시킨 다음 
그 이후 어떤 문제들이 차례대로 나타나는가를 
스스로 볼 수 있게 하여 
조신이란 스님이 꿈을 깨고 나서
이후 수행에 전념해 나아가게 이끌었다는 것도
그와 관련되는 내용이라고 본다. 


LITTLE 님이 말하는 거북도사가 취하는 방편도
사정이 이와 유사하다. 

소원의 성취가 불러 일으키는 수많은 부작용과 독을 미리 보게 하거나, 
원래 있던 상태보다 더 나쁜 상태를 만들어서 
원래 있던 상태의 장점과 가치를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방편이 필요한 것이다. 

여하튼 일반적으로 각 경우에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를 생각하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가

다 제각각 그것을 중지하고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입장이 
바로 그와 같기에 현실의 그런 문제가 
발생하고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은 
김수미양은 김수미양대로 
고두심 양은 고두심 양대로 
박인환 씨는 박인환씨대로 그래서 각기 행해야 할 
방향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문제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아무리 상대가 자신을 좋아해도 
자신은 도무지 좋지 않고 오히려 불쾌한 경우가 있다. 

상대가 불치병 전염병을 갖고 있는 환자처럼 
추하고 더럽게만 느껴지는 경우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도 역시 같은 바탕과 취지에서
또 다른 형태의 메세지를 전달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중지하고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방향을 취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그 내용이 되게 된다. 

이 양면에서 외형상 다른 형태로 제시되는 메세지가 
바로 부정관과 자비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는 더러움을 보고 탐욕에서 벗어나라고 말하고 
어떤 경우는 반대로 자비의 마음을 일으켜 사랑의 마음을 일으켜
대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서로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 두 내용은 
그러나 사실은 모두 각 상황에 있는 독을
중화시키기 위한 요구임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일반적 상식적 입장을 취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하는 경우에 
그 안에 들어 있는 
탐욕과 분노의 독을 제거하기 위하여 
각기 그에 대치하여 
탐욕에는 부정관을 사용하여 독을 중화시키고 
분노에는 자비관을 사용하여 독을 중화시키라는 의미이다. 




보시 수행론과 관련하여 내용을 살피면 
보시 수행이 환희행의 내용이라고 하여 경전에 제시되고 있지만, 
이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일반 상식적인 입장에서는 
너무 극단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런 내용을 제시하게 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수행자에게
자신의 생명이나 살이나 골수를 다른 이에게 보시하라는 등의 이야기는 
그 기본 전제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이나, 자신의 생명, 신체, 재산, 가족...등으로 집착하는 것이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고 
망상 분별 속의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인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를 보시하면 
그 이후 자신은 존재하는 바탕이 전혀 없고 
보시를 계속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재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이다. 

부처님은 그것이 망상 분별 속의 생각이고, 
그와 같은 것을 필요한 다른 이에게 베푼다고 하여서 
그것이 없어지는 것도 아님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래 이 모든 것에 자신과 자신의 것이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현상 속의 자신과 자신의 것으로 보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기도 한 것이다. 

그 복잡한 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하여 
망상분별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래서 
늘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앞에서 모든 것이 식뿐이고 대상은 그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식무경과 관련한 내용을 살피고 
실상과 현상을 관통하여 무분별의 지혜로 관하는 반야바라밀다의 수행을 말하고 
분별로서 망상분별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무수한 방편의 지헤를 말하는 것도
다 사정이 같은 것이다.

그러나 조금은 복잡하다.  

관세음보살이 이런 삶의 수많은 고통을 제거하기 위하여
추천하는 교육기관은
한마디로 능제일체고이다.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

能除 一切苦 眞實不虛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능제 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결국 이런 입장에서 보시를 이해하자면, 

수행자가 무엇을 자신이 남에게 베푼다고 하지만, 
사실은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이기도 하고, 
또 베푼다고 하지만,
그것이 어디로 없어져 버려지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이런 사정을 종합하여 
보시바라밀다는 
베푸는 이나 베품을 받는 상대, 베푸는 물건 등등의 상이나,
모든 집착과 번뇌의 근본이라고 볼 수 있는 
나 자신, 사람, 생명, 목숨 등의 상을 일으켜 
집착하여 이에 머무르지 않고 
얻을 것이 없음을 방편으로 
'버리지 않음'을 방편으로
반야바라밀다를 바탕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제시된다. 



그러나 일반인은 결코 그렇게 보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 가운데 지극히 집착하고 그것을 대하는 것이고 
그 집착을 가지고 사실은 그것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을 
궁극적으로 잘 얻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두 내용이 너무 극과 극의 내용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수행자가 얻고자 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디라는 것에는 
더 이상 그 위가 없는 이란 의미를 갖는 아뇩다라(무상)과 함께 
삼먁삼 즉 정등정 이란 표현에서 
다라니적인 접근으로 
이 내용을 이해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일반 상식적인 입장에서
탐욕과 분노에 바탕해서 취하는 
1 - 2 - 3 의 행위 방식은 
사실은 악이다. 
그래서 그것을 중지하고 
그 반대로 행위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것이 
지극히 청정한 바탕에 있음을 
함께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그렇게 볼 수 있어야 
이것을 그렇게 행하여 
모든 문제상황에서 독을 제거하고 
모두를 좋고 좋고 좋은 상태로 이끌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만일 오로지 모든 것이 본래 평등하고 차별없다는 것 하나( 등 ) 하나에만 
머물러 있으면 그 자신은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만,
그러나 다른 일반 생명의 고통은 해결해 줄 방안을 
찾아내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널리 이들 중생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이를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해나가려면
광대 무변한 방편적 지혜를 

함께 갖추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현실은 어떠한가. 
현실의 문제의 원인은 다음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1 각 생명은 자신의 망상분별에 바탕하여 탐욕을 일으키고 집착하여 추구한다. 
그래서 다른 생명에게 좋음을 베풀 생각을 일으켜 갖지 않는다. 
이것이 첫번째 문제다. 

2. 그런 집착에 바탕해 추구하기에 자신이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좋음(생명, 신체, 재산, 가족, 지위, 명예...)를 무수히 침해하고 나쁨을 주어도 
자신은 그것을 잘 의식하지 못하고 의식하더라도 무시해 나간다. 

3, 그러나 반대로 자신이 집착하는 좋음(생명, 신체, 재산, 가족, 지위, 명예...)을 
다른 생명이 조금이라도 침해하면 자신은 그것을 결코 평안히 참지 못하고 
분노를 일으키고, 미움과 증오의 마음으로
상대를 용서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가운데 
보복하여 해친다. 

4, 그리고 자신의 이해관계와 직접 관련이 없으면 방관한다. 

이것이 일반 생명이 상식적으로 행하는 행위 반응 체계인 것이다. 


현실에서 추구하는 온갖 이성적 지혜도 이를 위해 
구하고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식적이고 일반적으로 생명이 취하는 
본능적, 감성적, 이성적인 모든 내용은 여기에 집중된다. 

그리고 자신이 고통에 노출되고 
다른 생명도 함께 고통에 이끌어가는 원인도
사실은 바로 이런 본능적, 감성적, 이성적인 행위 반응 체계 때문이다.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고 상대도 그렇고 
거의 대부분의 생명이 다 위와 같이 행하기에 
결국 이는 거울면의 내용이기도 하다. 

자신이 그렇게 행하는 것은 
상대도 그렇게 행하게 되는 작용과 반작용의 관계이고 
서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얽혀 무한히 
고통을 주고 받는 순환관계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지혜롭게 관해서 
탈출키를 구해 미리 훈련을 열심히 하고 
구체적 현실에서 사용하지 못하면 
그는 곧 이에 묶이고 고통에 끌려갈 도리 밖에는 없다. 


가지가지 고통을 주는 가리왕이 늘 가지가지 형태로 
자신에게 초대장을 보내기 때문이다. 


아무도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평안하고 만족한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세상의 성인이나 도덕군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자신이 집착을 갖고 
도저히 양보할 수 없다고 집착하는 것을 대하게 되거나, 
그런 것에 다른 생명의 침해나 위협이 있게 되면 

그는 곧바로 악마의 손에 이끌려 
악마가 이끄는 악마의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리왕의 초대장을 받는 즉시
대부분 곧바로 악마의 형태로 반응하고
그로 인해 곧바로 가리왕에 이끌려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그래서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기에 반대로 수행자는 평소 
부단히 이를 념두에 두고 훈련하여 두지 않으면 
실제 상황에는 가리왕의 초대를 받는 즉시
곧바로 무너지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수행으로 당대 명망이 높은 지족선사도 
황진이의 단한번의 유혹으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한편 탐욕과는 반대로
분노를 일으키는 상황에 노출되어도
사정이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수행자가 
기본적으로 보시-정계-안인을 원만히 성취하지 못하면 
그 이후는 다른 수행덕목을 설령 성취한다해도 
오히려 그로 인해 얻게 되는 능력이나 지혜는 
모두 자신과 다른 생명을 
무간지옥으로 다 함께 빨리 신속하게 이끌어 가게 하는 
기능만 하게 되는 것뿐이다. 

이는 달리말하면 
모든 것이 본래 지극히 청정하고 공한 바탕에서도 
악취공견을 취하는 수행자가
향해 나아가는 결과이기도 하다. 

대반야바라밀다경에서는 이 차이를 
얻을 것이 있음(유소득)을 방편으로 수행하는 수행자와 
얻을 것이 없음(무소득)을 방편으로 수행하는 수행자의 
차이로 제시한다. 

한쪽은 자신과 다른 이를 무간지옥으로 다 함께 이끌어 가는 수행이고 
한쪽은 그것을 벗어나고 다른 이를 다 함께 벗어나게 하는 수행이기도 한 것이다. 


>>>

https://www.youtube.com/watch?v=ygb_ykWySPM

>>>

Da Silva "L'indécision" [Clip Officiel]

>>>





○ [pt op tr] Da Silva "L'indécision"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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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sungham 2015/01/20/화/22:10


♥ 잡담 ♥알수 없는 앎 

MUN 님이 REAL 님 걱정을 한다. 
사람들의 눈 때문이다. 요즘 이상한 사건의 배후에 IS 라는 이상한 
철자가 많이 보이는데 REAL 님은 real is 이기 때문이다. 
위험한 일 아닌가. 

축구경기를 관람했다고 체포해 13 명 정도를 사살했다는데 
사실 축구가 위험한 경기이기는 하다. 

[ 참고 ] IS, 아시안컵 축구경기 시청한 13명 공개 총살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8&news_seq_no=2176630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2015 아시안컵 축구 대회 경기를 시청한 10대를
집단 총살했다고 타임스오브 이스라엘과 영국 데일리메일이
현지 활동가의 말을 인용해 20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여기에는 모든 과학과 세상문제와 관련하여 
눈의 특이성이 문제된다 .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지구가 동그랗게 그런 모습으로 보이고
인공위성에서 사진을 찍어봐도 역시 그런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가지고 오는 이유에 대해서 
그 기본 원인이 사람의 눈 때문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사람에게 벌의 눈 구조로 된 안경을 씌우고
인공위성 카레라 렌즈도 그런 구조로 된 안경을 씌워 사진을
찍어가지고 오면 다른 모습을 다르게 보게 될 것인가. 
그래도 전과 같은 모습을 보게 될 것인가가 
퀴즈로 제시되고 있다. 

비슷한 구조로 하나의 내용을 놓고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타이틀을 붙이는 
문제가 우리 자신에게 있는데 
이 특이 현상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우리에게는 의사고 밖에서는 테러리스트인 이 이상한 문제는 
사실은 현실의 어려움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어려운 문제의 해결을 요청할 때 
이를 요청받는 이도 동일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렌즈를 갈아 끼울 때마다 각기 다른 문제로 보이는 
이 이상한 현상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결방안이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문제를 문제로 잘 보는 것이 우선 필요한 것이다. 

현실에서 모든 어려운 모순적 문제의 해결사로 알려져 있는 
관세음 보살에게 어떤 소원을 신청 접수할 때는 
사전 전제절차가 있다고 한다. 

그 자신부터 일정한 소원을 일정한 체계로 갖추어 
소원의 성취를 접수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지혜안 

이런 부분이 눈과 관련되는 항목이라고 본다. 

대부분 이것을 갖추면 자체적으로 
문제의 대부분은 해결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외 자세한 내용은 다음이다. 

만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동남·동녀가 이 주문을 독송하려면 


모든 중생에게 자비심을 일으키고 

마땅히 나(관세음보살)를 향해 

먼저 이러한 원을 발해야 하나이다.


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 귀의합니다.

원컨대 제가 속히 모든 법을 알아지이다.


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 귀의합니다.

원컨대 제가 일찍이 지혜의 눈을 얻어지이다.


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 귀의합니다.

원컨대 제가 속히 일체 중생을 제도하여지이다.


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 귀의합니다.

원컨대 제가 일찍 좋은 방편을 얻어지이다.



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 귀의합니다.

원컨대 제가 속히 지혜의 배에 올라서지이다.


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 귀의합니다.

원컨대 제가 일찍 고해(苦海)를 건너지이다.


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 귀의합니다.

원컨대 제가 속히 계(戒)와 정(定)이 만족하여지이다.


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 귀의합니다.

원컨대 제가 일찍 열반을 증득하여지이다.


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 귀의합니다.

원컨대 제가 속히 무위도(無爲道)를 만나지이다.




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 귀의합니다.

원컨대 제가 일찍 법성(法性)을 증득하여지이다.


제가 만약 도산(刀山)지옥을 향하게 되면

도산(刀山)이 저절로 꺾어지이다.

...

K0294V11P0964a19L; 生不受胎藏之身若有比丘比丘尼
K0294V11P0964a20L; 優婆塞優婆夷童男童女欲誦持者
K0294V11P0964a21L; 於諸衆生起慈悲心先當從我發如
K0294V11P0964a22L; 是願

K0294V11P0964a23L;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知一切法
K0294V11P0964b01L;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智慧眼
K0294V11P0964b02L;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度一切衆
K0294V11P0964b03L;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善方便

K0294V11P0964b04L;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乘般若舩
K0294V11P0964b05L;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越苦海
K0294V11P0964b06L;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得戒足道
K0294V11P0964b07L;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登涅槃山
K0294V11P0964b08L;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會無爲舍

K0294V11P0964b09L;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同法性身

我若向刀山 刀山自摧折
我若向火湯 火湯自消滅
我若向地獄 地獄自枯竭
我若向餓鬼 餓鬼自飽滿
我若向脩羅 惡心自調伏
我若向畜生 自得大智慧

K0294V11P0964b15L; 發是願巳至心稱念我之名字亦應
K0294V11P0964b16L; 專念我本師阿彌陁如來然後卽當
K0294V11P0964b17L; 誦此陁羅尼神呪章句一宿誦滿三

[참조] k0294sf--




그래서 대부분 소원, 기도, 다라니 등등의 
구조는 어디에서나 비슷한 형태인 것으로 보인다. 

비록 성경에 직접 나오는 표현은 아니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다.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잘못 이해하면 자기가 자기를 돕는 (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자기문제를 해결하는) 이를 돕는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런 경우 도울 필요가 있는가 부터 의문이 되기는 한다. 

그런데 (자신들끼리)  서로 서로 (남을) 도와주는 이를 하늘이 도와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고 본다. 

프랭클린 말이라고도 하고
또는 프랭클린이 서양의 속담을 적어 놓은 것이라고도 하는데 
그럴 것 같다. 

기도나 소원의 성취가 그 성취 이후
곧바로 모두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 
하늘이 그것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보는 것은 
그 기도자 외는 없다고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문제는 그래도 
하늘이나 절대적 신이 자신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양쪽이 만나서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옆에서 볼 때는 과연 누구의 말을 들어줄 것인가 관심을 갖게 된다. 

해결하기 힘든 이 2 인의 문제는 
온 사회의 문제가 갖는 성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어려운 문제에
해결의 원리가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공개하기 힘든 순두부라면 레시피를 공개하기로 한다. 
라면을 끓일 때 순두부를 함께 넣고 끓인다. 
맛있게 먹기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때 먹는다. 
이 양 쪽이 잘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 
왜 먹는가, 먹은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답을 잘 적는다. 
먹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다음 레시피 작성에 좋은 영향을 준다. 


Non non non (écouter Barbara)

>>>

http://www.youtube.com/watch?v=JswOaaE9X-I

>>>





○ [pt op tr]  Non non non (écouter Barbara)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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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59/01/20/화/19:15


♥ 잡담 ♥대책없는 시나리오작가에 대하여 

가끔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된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형태로 맨 손으로 수직 암벽을 며칠을 걸려 올라가는 것이다. 

밑에서 가족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는 말한다. 이제 세상은 내 아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한 마디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정말 궁금하기 때문이다. 
FOR WHAT? AND WHAT?

그런데 대부분 그 이후 이야기가 없다. 
그렇게 좋아서 올라갔으면 
올라간 이후 거기에서 한 7 년간 정도 
해야 할 무슨 이야기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대부분 허무한 이야기는 올라가고 나서 
곧 다시 내려온다는 것이다. 

다시 묻는다. 
FOR WHAT? AND WHAT?

그러나 또 허무함을 느낀다. 

또 다시 장비를 챙기고 또 어디론가 바삐 떠나 버리는 것이다. 

이 분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세상이 온통 이와 비슷하다. 

반대로 어떤 경우에는 단지 
이유는 없지만, 거기에 한없이 머무르는 것 그 자체만이 
목적인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도 다시 답답해진다. 

또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FOR WHAT? AND WHAT?

그에 대한 자세한 답을 들어 보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이런 것을 의미없는 무한 공회전이라고 
이름 붙이게 된다. 

무한 동력이 불가능하다거나 있을 수 없다는 
말에 속아지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이 무한 공회전이 현실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지극히 걱정한다고 한다. 
쓰고 쓰면 분명히 다 말라서 없어질 텐데 
이것을 어떻할 것인가. 

그것을 짧은 관찰의 걱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제의 해법은 간단하지만, 
주제는 이것이다. 

간절한 소원들이 있을 때 
늘 그 소원성취와 관련하여 
그 다음 질문도 함께 음미해보는 일이다. 
FOR WHAT? AND WHAT?

왜 그것을 그렇게 원하는가?

그 소원이 성취된 다음에는 그 이후 그 상태에서 
왜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 것인가?

옆에서 구경하는 이는 
대부분 이것이 의문인 것이다. 

수만년분량의 드라마 시나리오를 미리 다 쓰라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한 7 년 정도의 시나리오는 있는 것인가를 묻게 된다. 
그러면 3 년 후부터 다시 이어쓰고 또 이어쓰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것이 없는 경우가 많고 
당황하고 곧바로 허겁지겁 내려오거나 
아무 이야기도 없이 무의미하게 계속 머무르기만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있다 해도 자신 혼자 외에는 별로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다 문제라고 본다. 

이상적인 것은 종합적으로 좋고 좋고 좋음을 주는 그런 
감동적인 스토리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면서 
한마디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돈이 드는 것이 아니고 
질문을 하고 답을 하려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저, 왠지 모르지만 그것이 좋아서, 

이런 답은 사실 맹목적인 것이고 
자신이 그저 어느 순간 최면에 걸려서 
그렇게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행하게 된 것뿐이라는 
안타까움을 말하는 것 뿐이다. 

증세가 같으면 또 이런 답에 환호한다. 

수행자의 보시에는 이유가 있다. 
수행자가 이것을 행하고 머무르는 상태에 대해 
이를 다른 이름으로 환희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환희행(歡喜行)이 그것이다. 

환희의 의미를 알기 위해 한자를 자세히 분석해볼 수도 있다. 

새도 보이고 하품도 보이고 선비도 보이고 입도 보이고 
이들이 환희라는 것이다. 
마음 심자가 보이지 않는데 
그럼에도 입이 두개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나는 블랙홀이고 하나는 화이트홀인가. 
여러가지 상상으로 환희가 이것들을 조합해서 
왜 나오는지 알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는 환희는 무엇인가. 

환희의 물결, 환희의 함성, 환희...

여하튼 이것을 보시와 관련시키고 있다. 

보시하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저 누가 하라고 해서, 
그냥, 이런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FOR WHAT? AND WHAT? 
에 대해 무한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처음 이 질문을 과학과 관련되어 제기될 수도 있다. 

멈추어 있는 것만 자주 본 이는 움직이는 것이 궁금할 수 있다. 
움직이는 것만 자주 본 이는 멈추는 것이 궁금할 수 있다. 
없는 것만 자주 본 이는 있는 것이 궁금할 수 있다. 
있는 것만 자주 본 이는 없는 것이 궁금할 수 있다. 
생겨나는 것만 자주 본 이는 멸하는 것이 궁금할 수 있다. 
멸하는 것만 자주 본 이는 이제 생겨나는 것이 궁금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은 온갖 것이 다 궁금한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설명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것은 
그 모든 것에 
FOR WHAT? AND WHAT? 
에 대한 궁금증이 더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어리석은 답을 지혜로운 답인 것처럼 생각하고 
답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화장실을 놓고 생각해보자. 
화장실 밖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화장실 들어가기전 생각과 들어 간 후 생각이 달라지는 이들이 
이유도 없고 답도 없이 
무조건 맹목적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면, 
밖에 있는 이들은 사색이 되어 가게 된다. 

그래서 있는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주던지 
아니면 빨리 소원을 성취하고 나와 주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도리라면 도리다. 

그래서 대부분 사진 찍고
짐 정리하고 바삐 줄을 타고 내려오는 것으로 이해한다. 
맹목적인 경우이다. 

그런다고 쉼이 있을 수는 없다. 
그런 형태로 무한히 여기저기 공회전을 하면서 
다른 이의 궁금증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또 왜? 
장소를 옮겨 다니며 매번 같은 형태로 같은 사업을 하는데 
물을 때마다 매번 같은 답을 듣는다. 

안타깝지만, 이는 
최면걸린 상태의 공통증세라고 평가하게 된다. 

칭기츠칸을 따라 다니던 이들은 
중국 황실 앞에 파오 집을 치고 잠을 자는 칸을 두고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앞으로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었고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관찰자는 이왕이면 좋고 좋고 좋은 
이야기로 
누구에게나 고루고루 감동을 주는 
그런 이야기를 오래 오래 만들어 주기를 희망하게 된다. 

그것은 왜일까?

입장을 바꾸어 보면 그런 희망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아닌가.


DOCTR 님이나 LITTLE 님의 대책없는 편집과 관련해서는
다음 의문을 갖게 된다. 




왜 스스로 지겹게 여겨지는가?
그 지겨움은 어디에 탈출구가 있는가?

역시 같은 질문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본다. 

그것은 편집인에게서만 느껴지는 현상은 아니라고 본다. 
관찰자도 공감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

Maître Gims - J'me tire (Official Video)

>>>

http://www.youtube.com/watch?v=F_rEHfLgdcY

>>>








○ [pt op tr]  Maître Gims - J'me tire 가사 





문서정보

 


◈Doctr Gong 2015/01/20/화/08:51


♥ 잡담 ♥대책없는 편집체계에 대해서 

제한된 시간에 같은 내용만 반복 읽는 고통이 
편집인에게는 있게 된다. 
고통스러운 일은 반복하지 않는 것이
행복론 편집 원칙 이전에 삶의 제 1 원칙이라고 본다. 

같은 글을 편집을 위해 반복해 읽지 않으면서도 
편집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에 한 번 실험을 해보고자 한다. 

( 본인이 매일 읽지는 않는 다만 책이름이 매일 읽는으로 되어 있는 )
'매일 읽는 긍정의 한줄'이란 책에서 
한 구절을 복사해 본다. 

○ 행복의 비결 
행복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남들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막대기를 던지면, 
강아지가 다시 물어오는 것처럼 
사랑과 호의도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면 
바로 우리 자신이 행복해진다. 

-- [유감스럽게도 이 책에는 페이지가 기재가 안 되어 있다.]---
fr '매일 읽는 긍정의 한줄' 린다피크 유미성 옮김  책이있는 풍경  (1/3 의 끝부분)

lab 님의 글을 보다 보니 
그러나 이것을 알기에 
이를 계산해서 그렇게 행하면 조금 곤란해질 것이다. 
이런 명제를 추가시키는 것 같다. 

낮추면 높아진다
높이면 끌리어 내려질 것이다
이런 말도 있다. 
그런데 이것을 알고 계산해서
엘리베이터 이용하듯 오르락 내리락하면, 
조금 곤란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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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5/01/20/화/11:01


♥ 잡담 ♥편집의 수렁

편집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편집의 수렁에 빠져 버리는 경우가 있다. 

정리가 안 되는 상태로 뒤섞이고 
반복해 읽는 가운데 이제는 더 보기도 지겹고 
그렇다고 그 상태로 다른 이에게 넘기기도 곤란하고 
이런 이상한 상태가 된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는 다시 그것을 
일단 조각내가면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하나의 조각글들을 모아 놓을 
범주를 정하고 
범주마다 작은 색인기호를 만들고 
각 조각글을 그 색인기호를 통해 분류해 주거나,

또는 범주별로 조각글의 위치를 이동시켜 한 장소에 같이 묶어 배열해두고  
또 재차 그 때 그 때 체계를 잡아 각 조각글의 위치를 재배열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종적으로 전체적으로 수미일관한 글이 
되게 하기 위한 편집작업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글이 쌓이고 길어지면
이 작업이 혼란스럽게 되기 쉽다. 

그러나 여하튼 누가 편집을 맡아 해도 결국은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고 본다. 

DOCTR 님의 위 조각글 하나를 놓고
이 조각글이 도대체 어느 부분과 관련되는 글인지 
파악하기는 힘들다. 

그런 경우는 그런 경우대로 
일단 방치해두고 

나중에 그 글을 찾아낼 키워드 정도만 
기억해 두는 것이 필요한 일인지 모른다. 
=> 일단은 행복의 비결? 이 정도가 키워드가 될 지 모른다. 적절한 지 모르지만, 일단 
조각글의 제목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 조각글을 ♥ 잡담 ♥이라고 표시하여 
글을 쓰는데 글을 쓸 때는 
우선 명확한 주제를 정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이 마음 편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나서 
수정하는 과정에서라도 이것을 
변경시켜주는 것이 조금은 좋다고 본다. 

그리고 자신의 전체글 체계가 있고 
내부 목차가 있다면 
그 기호를 일단 붙여 주는 것이 
조각글을 전체글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OO 핫키를 제공하고 있는데 
∑편집∑ 
이런 식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범주별로 조각글을 검색해낼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 놓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굳이 각 조각글의 위치를 이리 저리 옮겨 이동시키거나, 
또는 별도로 각 조각글의 링크로 목록을 만들어 두고 (<-번거롭다 )
그 안에서 링크 위치를 재배열하는 노력을 굳이 하지 않는 가운데
글 정리를 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 

일단 검색을 통해
일정 범주와 관련된 글을 모두 검색창에 나열해 놓고
각 부분의 수정 정리작업을 하면서 
최종 정리시
출력본을 복사해 만드는 과정에서 
조각글을 정리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목록을 만들때는 링크를 조각글 쓸 때마다 매번 만들기도 복잡하고 
빠진 부분이 있으면 또 이를 찾아내 보충하기도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본다. 

목록파일내 링크의 순서를 변경하여 글을 정리한다는 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http://story007.tistory.com/1023 ☞♥ 잡담 ♥편집의 수렁
http://story007.tistory.com/1023 ☞♥ 잡담 ♥보시수행론-06
http://story007.tistory.com/1023 ☞♥ 잡담 ♥대책없는 편집체계에 대해서

여기서 각 부분의 조각글은 조각글 안에서 수정작업한다. 

순서의 재배치는 

http://story007.tistory.com/1023 ☞♥ 잡담 ♥편집의 수렁
http://story007.tistory.com/1023 ☞♥ 잡담 ♥대책없는 편집체계에 대해서
http://story007.tistory.com/1023 ☞♥ 잡담 ♥보시수행론-06

이렇게 하면 전체적으로 조각글의 위치 순서가
변경이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전체 조각글 들에 대해 이런 목록 파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전제된다. 

OO 핫키 세트는 
일단은 이것을 뒤로 미루고 
각 조각글이 전체 글 체계에서
어느 범주에 해당하는 글인가만을
판단해 문서정보에 표기해 두고

나중에 그 색인기호로 검색되어 나오는 조각글을
검색창에서 검토하면서
그 작업을 최종적으로 하는 방안을 의미한다.

OO 핫키세트에서는 
그런 검색시 중복 검색되어 나올 필요가 없는 조각글 부분을
접기 상자안에 넣는 기능도 포함된다.

○ [pt op tr]

 





>>>

 Philippe Cataldo - Les Divas Du Dancing

 >>>

 https://www.youtube.com/watch?v=dhu-KDRU2Kc

 >>>





○ [pt op tr]




문서정보

 




◈Lab value 불기2559/01/19/월/13:50


♥ 잡담 ♥보시수행론-06



세상에서 번지 점프하거나 맨손으로 수직 암벽을 등산하는 일이 
공포스럽고 힘들다고 여긴다. 
사실 해보려면 도저히 하기 힘든 일로 생각된다. 
하는 이는 왜 하는가하고 물어보면
즐겁기에 재미있기에 그런 일을 한다고 답할 것 같다. 

최근 뉴스에서 암벽에 매달려 텐트까지 쳐가며 
수일을 걸려 맨손으로 그런 수직암벽을 등산하는 것을 보았다. 
철봉에 매달리는 일만 하려도 하기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본다면, 
상상이 잘 안 되는 일이다. 

이처럼 힘들게 여겨지고, 
사실 막상 해보려면 방안도 생각나지 않고 힘들게 여기는 일이 있다. 

좋은 것을 남에게 대가를 받지 않고 부작용이 없게 하면서 
베푸는 일이 그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연구가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실제 연구과정에서 내용을 이해해 안다해도
막상 행해보려면
번지점프를 하려 하거나 
등산에 취미도 없는데 수직암벽을 1주일 걸려 맨손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힘든 일로 생각하게 된다. 
사실 그렇다고 공감하게 된다.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 

마음을 비우면 얻게 될 것이다. 

베풀면 얻을 것이다. 
얻으면 베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행하면 곤란할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복잡한 명제가 제시된다. 

예수님도 이런 부분에 대해 
여러가지 말씀을 하신 것으로 나온다. 

왼손과 오른 손을 서로 모르게 하라. 
이런 이상한 이야기가 왜 여기에 관련이 되는가. 
복잡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수행을 하면 보물이 쌓인다는데 
사실 그 내용은 공개곤란한 레시피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인과를 제시할 때 
잘못 이를 받아들이면 조금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 보물을 얻기 위하여 그런 것을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당연히 이해하게 되고 
그 바탕에서 그렇게 행하게끔 이끌려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인과는 사실인데 왜 그것이 다시 문제가 되는가. 

그래서 그렇게 알고 행하면 곤란할 것이다. 
이런 내용을 첨가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을 장삿꾼의 계산에 의한 보시라고 설명하게 된다. 
원래 시장에서 잘 하던 일을 
단지 시간만 약간 띄어 놓고 해보라고 한 것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시역법이라고 표현하는데 시장에서 장삿꾼이 
하나의 물건을 가지고 나가 더 좋은 돈이나 다른 상품을 
바꾸어 가지고 오려는 행위인 것이다. 

지혜가 있으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인데 
왜 그것이 문제인가. 

사실은 보시도 그렇기 때문에 하는 것 아닌가. 

보시 수행론에서 레시피가 자세히 뒤 따라 제공되지 않으면
결국 시장에서 교묘한(?) 장삿꾼처럼 
열심히 잘 계산해서 보시를 잘 하라고 말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것보다는 그 반대가 중대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우선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중대 범죄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자신을 기준으로 놓고 무엇이 가장 중대한 악일까를 생각하면 
그것은 누군가 자신을 찾아와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말하면 자신이 가장 집착하는 것이 
자신의 생명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 다음 집착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그런 순서로 일반적으로 악을 배열하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생명만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자신의 입장이고, 
일반화하면 모든 생명은 제각기 자신의 생명을 중요시한다. 

그러니 생명을 살해하는 것은 큰 악이라고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는 이는 왜 그런 일을 하는 것인가.  
그 근본 원인을 따져 그렇게 과감하게 행하게 되는 
원인을 다시 그 중대 범죄의 실질적 범인이라고 찾아 나서게 된다. 

결국 중요한 악을 행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 
곧 더 중요하고 심각한 악임을 생각하게 된다. 

우선 다음의 중대한 악을 살필 필요가 있다. 


○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화해하라. 
자신이 분노를 일으키거나, 
또는 남을 분노하게 만들어서, 
온갖 생명이나 그 밖의 것에 대하여 
나쁜 욕설을 하며, 
주먹질이나 매질을 하고, 
그 사람이 좋은 말로 참회하여도 
분노를 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악이다. 

수행자는 언제나 끝없는 자비심으로 
모든 생명을 평화롭게 하며 
자비한 마음과 효순한 마음을 내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에 위반하여 행하거나, 
행할 바를 행하지 않으면 
이는 매우 심각한 악을 행한 것이 된다. 


그리고 
이런 중대 악에 준하여
탐내고 아끼는 마음이 
또 다른 악이다. 
당연히 그 반대가 보시를 행하는 것인데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 역시
그에 준하는 악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이것보다 더 근본되는 중대 범죄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물론 근본 어리석음과 관련되는 중대범죄가 그것이다. 
근본 어리석음이 가장 큰 악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말해도 되는데 
그것이 이런 모든 악과 고통을 발생시키는 가장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해결해 주기 위해 활동하시는 분과 
그 수단이 있는데 
이것을 비방하고 그것을 방해하고 나서는 경우가 있다. 

이런 가치 판단을 바탕으로 
보물 가운데 가장 고귀한 보물을 세가지 찾아보라. 

그런데 그런 보물을 비방하면 
근본 어리석음은 제거되지 못한다. 

반대로 그것을 해소하려면 
그 보물에 의존하고 도움을 청하는 마음을 일으키라. 
그러면 그 각각의 구체적 상황에 맞추어 
독을 제거하는 방안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런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본다. 

결국 요약하면 3 보를 비방하면
대단히 곤란한 상황에 빠져든다. 
비방하니, 망상분별과 사견에 의한
어리석음의 제거가 늦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 해당한 것들이 극심한 악이며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과감하게 행해 나서게 되고 
그에 이끌려 그 결과를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결과가 발생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수습하기 힘들다. 

그렇다 해도 그 때부터라도
다시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그러므로, 일단 자신이 확신을 가질 때까지 
지혜를 총동원해서 
이 문제에 대해 연구를 깊게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장삿꾼이 계산을 하고 거래를 하면 
당연히 계산한 것처럼 대부분 
얻고자 한 것을 얻는다. 


○○를 베풀면 ○○를 얻으리라
○○를 얻으면 ○○를 베풀 것이다. 
이 명제를 검토해보자. 

○○는 사실 좋은 무엇이기는 한데 
앞의 ○○과 뒤의 ○○은 그점에서만 같고 
그 구체적 모습은 다 다르다고 해야 적절하다고 본다. 

쉽게 생각해서 자신이 돈을 베풀었다고 해서
돈이 그대로 되돌아 온다면 
그 상대와 은행거래를 자신이 한 것이다. 

이런 은행 거래를 포함하여 
이 문제를 잘 생각해보자. 

그런 경우가 과연 시역법인가, 보시인가. 
이것은 거래 행위이고 
보시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보시를 하는 이는 
대부분 이 관계를 기본적으로 안다. 

사실 ○○을 보시하는 이는 
그것은 반드시 돈에 국한한 것은 아니고,
단순히 무언가 좋은 ○○를 대가를 바라지 않고 
상대를 위해 베풀었을 뿐인데 

그로 인해 그 후 
자신이 베풀었던 ○○ 이상으로 
매우 소중하다고 보는 가치를 
○○의 형태로 얻는 관계를
잘 아는 것이다. 

그것을 잘 아는 이부터 
다시 부작용 주의문이 첨부되게 된다.

하기도 힘든 일을 마음을 일으켜 하느라 수고하였는데 
그러나 이 점을 주의하지 않으면 
은행거래시 돈을 되돌려 받는데 
겪는 수고와 피곤함을 받고
그것을 돌려 받은 이후부터
여러가지 부작용과 번뇌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사실은 
당대 최고의 상인으로 평가받는 한 상인이 
가치관계와 가치저울 사용법을 익히고 나서 
부처님께 선물하기 위해 
자신이 보유한 금을 깔아 땅을 사서 
보시한 일이 있었는데

부처님이 이 분을 따로 불러 
그에 첨부해준 주의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주의문을 같이 받지 않으면
당연히 그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계산되는 
무량한 ○○을 얻게 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무량한  ○○을 얻는데
그러나 그로 인해 뒤따라 함께 받게 되는 
심한 부작용을 주의하라고 
덧붙이신 말씀이기도 하다. 

비유하면 어떤 투자자가 
그 투자로 인해 
100 층 빌딩을 얻는데 

그렇게 얻은 100 층 빌딩을 
이후 관리하는 과정에서 
세상의 온갖 번뇌에 다 노출되는 상황을 
생각하면 쉽다. 


시장에서 거래에 능한 이는 
여하튼 이 기본적인 관계를 잘 안다. 

거래에 서툰 이는 보지 못하지만, 
가치를 잘 알고 
거래의 인과관계를 잘 아는 이는 
쉽게 보는 내용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잘 보지 못하는 가치를 
쉽게 먼저 알아보고 
또 대형 투자를 감행하는 것이다.

당시 그 상인으로부터 땅 구매를 요청받았던
왕자도 사정이 같다. 

왕자도 상인의 이 이상한 행동을 보고 
그 사정을 캐물은 것이다. 

결국 그에 공감하고 
자신도 공동 투자를 행한 것인데 
역시 이 경우도 사정이 같은 것이다. 

중요하다면 중요한 내용이라고 본다. 

그런데 누구나 막상 이런 일을 해보려면 
번지점프를 하기 싫어하는 이가 
절벽에서 줄 없이 뛰어내리는 일처럼 
힘듦을 본다. 

그러므로 사실 보시를 할 수 있는 이는 
그것이 나중의 복을 얻는 원인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이미 복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복이다. 

이런 결론을 다시 얻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좋음을 베풀고자 생각해봐도 
방법도 생각이 나지 않고 
(누가) 무엇을 누구에게 언제 어디에서 어느 상황에 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반 기사문 작성의 중요 요소가 
다 잘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잘 모르는 가운데 하면 
잘못하면 백년간 잠자는 숲속의 공주로 지내기도 쉽다. 
그 동화에서 제시하는 사정은 간단하다. 
초대장을 발송해야 할 10 명이 있다면
무슨 이유에선지 그 가운데 1 분은 
행사초대에서 제외했기 때문에
기껏 비용을 들여 잔치를 하여 열심히 베푸는 행위를 한 번 하고 난 이후 
그런 결과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기껏 어려운 마음을 내고 보시를 했는데, 
그후부터 그 일에 대해 자꾸 후회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되는 데에는 여러가지 사유가 있다. 
그런데 이 경우도 그로 인해 온갖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기타 자세하게 하나하나 살피면
대단히 복잡하다. 


그런데 간단하게 접근하면 
이 문제의 해결이 쉽다. 

자신이 무언가를 상대로 부터 좋은 것이라고 받았는데 
그러나 그 전후의 배경이나 그 내용에 관해 
기사 작성의 6 요소를 다 실질적으로 검토해본 결과, 
상당히 불쾌하다.
이렇게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올바른 보시라고 볼 요소를 다 충족하였는데
단지 그 좋음을 건넬 때 어떻게 한 것 뿐인데 
그것 때문에 그것을 받은 이는 
심한 억울함을 느끼고 모욕감을 받아 
자살을 하였다는 소식도 현실에서는 보고 받는다. 

이런 경우를 물건은 물건대로 손해이고 
나쁨만 서로 가득 받게 되는 경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결과적으로 되게 한 요소가
그 가운데 무엇인가를 역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돈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고 
그냥 무언가 어떤 추상적인 형태로
예를 들어 이미 앞에서 본 것처럼 부드러운 어떤 말이나 눈빛 표정만으로 
좋음을 받은 것 같은데
좋고 좋고 좋다. 

그런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또 
그렇게 된 요소가 무엇인가를 
앞과 비교하여 검토를 해본다. 

이렇게 생각하면 단순하다. 

구체적 레시피를 얻는 원리 자체는 그래서 간단하다. 
그러나 자세하게 살피면 복잡한 것이다. 


원래 왜 수행자가 보시를 하는 것인가. 

사정이 있다. 
자신에게 좋음이 이미 차서 
아무리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자꾸 좋음이 넘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을 아낀다 해서 좋음이 더 늘어야 할 이유도 없고, 
이것을 베풀어도 자신의 좋음이 줄어드는 것도 아님을 안다. 

그래서 다른 어렵고 고통을 받는 상대가 
좋고 좋고 좋은 상태를 얻게 하기 위해서
어떤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없이 
우선 자신이 갖고 있는 좋음을 아낌없이 다른 생명에게  
베풀어 주어야 한다고 당연히 여기는 계기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보시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아무리 무엇인가 좋은 것을 얻고 또 얻고 해도 
자신의 만족이 얻어지지 않고 
갈증이 해소되지 않고 
마음 속의 빈 구멍으로 자꾸 빠져나간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마음에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욕심이 무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늘 갈증에 허덕이는 상태라면 
자신의 갈증의 해소가 급한 것이지 
다른 이나 다른 생명에게 무언가를 나누어줄 
마음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무언가를 베풀려고 할 때도 
그것으로 대가로 무엇을 얻는가를 
늘 열심히 헤아리기 바쁘게 된다. 

그런 계산에 집착하는 경우 
당연히 같은 값이면 손해 보는 거래를 할 수 없는 것이고 
계산을 해서 자신이 무언가 남는 것이 있다고 여길 때에만 
그 일을 행하게 되기 쉽다. 

이 차이가 바로 복이 있는 경우만 
겨우 보시를 할 수 있다고 
보게 되는 사유다. 

그래서 보시는 복을 나중에 얻기 위한 원인행위가 아니고 
그 자체가 복이다. 

이렇게 이해한다. 


글을 적고 쉬고 잠도 자고 하였는데 
아낌이 죄악이 된다는 이야기는 도대체 어떤 계율조항에 
있는 내용인가를 묻는 이가 있다. 

경전의 근거를 묻는 내용인 것 같다. 

자료를 찾아 본 결과, 
저 팔계입니다. 이렇게 답하게 된다. 
10 대 악 가운데 8 번째의 내용이라는 의미다. 

[참고]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제십
K0527sf-- ☞간석가훼계(慳惜加毀戒)     ○ 8. 자기 것을 아끼려고 남을 욕하지 말라.



이렇게 답하면서 생각하니, 
갑자기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가 생각나고 
돼지도 생각난다.
손오공은 원숭이였는데 
사오정은 무었이었는지 갑자기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식사 때 다른 이들이 햄을 구워 먹는데 
최근에 육식을 안하기로 하였는데도 
햄이 당긴다.   
그간 몇 번 이 광할한 공범관계를 통한 살생업의 동참과
그에 따른 복잡한 인과관계를 알듯 모를 듯 이야기는 하였지만, 
설득력이 없어서인지 대부분 무시하는 경향이다. 

맛이 없어서 안 먹는다기 보다는 그것을 생각하면서 
동참하기가 곤란하다고 보는 것인데 
그러나 동참을 할 사유가 생각이 난다. 

한 두어개를 집어 먹었는데 
이런 시나리오가 생각난다. 

저, 팔계입니다. 그것 제 살인데용...

이런 문제를 생각해본다. 

이것은 한 생명체가 
나의 맛과 생존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위해 
자신의 생명과 신체를 베풀어 준 일로 평가할 수 있다. 
돼지의 고귀한 희생이기도 한 것이다. 

감사를 느낄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주변에 자신의 생명을 돌보아 주고 도움을 주는 
많은 유형의 일이나 사람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왜냐하면 가치저울을 놓고 
이런 것들의 가치평가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의사분들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질병에 걸려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가장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고마운 일을 
하는 분들이다. 

의사분들 가운데는 많은 소득을 거두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측면에서 조금 이상한 측면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 기술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의료 행위를 통해 가장 많은 돈을 번 것도 아닌데 
그러나 의사의 대표를 뽑아 보고자 할 때 
현실에서 수많은 재산과 높은 의료지식 등으로  
명예가 높은 분을 떠올리기 보다는 

그렇지는 않다고 보지만, 
그러나 무언가의 이유로 
의사의 대표라고 떠올리는 분들이 있는 것이다. 

여하튼 다 이런 내용이 
사회에 좋음을 주는 내용들로서 가치가 있는 내용들이라고 
평가하게 된다. 

이제 가치저울을 놓고 
이 가운데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가를 
계산해 본다고 하자. 

처음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한 저팔계 님의 경우를 평가할 때 
상식적으로 대부분은 이것을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되는 요소는 무엇인가. 

그런데 반대로 또 어떤 경우는 직접 자신에게 무언가를 준 것 같지도 않은데 
대단히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끔 된다. 

그렇게 또 평가하게 되는 요소는 무엇인가.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서 
자신이 그런 행위를 해보려고 생각한다고 하자. 
그 결과를 비교해 보는데 
한쪽은 화려하고 평안함이고 안락함 등등이 연상이 되는데 
한쪽은 그 반대의 내용들이 당연히 연상되지 않는가. 
왠지 그냥 그 자체로 무언가 질병에 자신이 노출되어 
전전긍긍한 상태로 보내야 할 것 같은 생각마저도 들게 된다. 

객관적으로 무엇이 무엇보다 훨씬 좋다고 평가하더라도 
자신이 직접 해보려면 
절벽에서 뛰어 내리는 일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희생한 것으로 보면 가장 힘든 생명을 희생한 것으로 보이는 
돼지는 왜 정작 높은 평가를 하지 않는가. 

아마 굳이 이유를 찾자면 돼지의 경우는 
어리석음에 의해 탐욕을 추구하다 살이 쪄서 
그렇게 잡혀 죽임을 당한 것이지, 
그것이 어떻다는 것인가. 
이런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 저 팔계가 그 억울함 때문에 반드시 
한 번 방문을 할 것 같다. 
그러나 그 문제는 일단 논외로 하고, 

이런 여러 내용을 검토하면서 
이론적으로 무엇이 무엇보다 가치가 있고 
그후 내용이 어떠어떠하고 이런 것을 비교 평가해보는 일은 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겨우 딱지 몇장 얻기 위해 
자신의 신체나 생명을 대가로 보내주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거나 남들이 보아도 
이상하고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쉽게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의 각 문제에서 이런 시각을 갖고 
문제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무언가 회계장부 상에서 숫자로는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은데 
그러나 막상 자신이 숫자로 표시하지 않고 제외시킨 내용이 
희생된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을 막상 가치저울에 올려 놓고 
화폐와 비교하여 숫자를 평가해보려니
숫자가 없는 것이 아니었고, 
숫자를 기재하는 것을 끝이 없이 해도 오히려 부족한 것이었다. 
이런 경우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두 눈을 뽑아서 시장에 갖고 나가서 
대신 화폐를 바꾸어 얻어 보려고 노력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치저울에 올려 놓고 
평가해보니, 숫자가 그간 안 적혀 있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little 님이 이야기하는 
바로 이런 문제때문에 
거북도사는 다른 이들이 어떤 문제와 고통을 호소할 때 
그 상태에서 상대가 처한 상황을 더 악화시켜 버리고는 
그간 당연하다고 느끼고 평가에서 제외시켜 버리는 수많은 것들이  
갖는 가치를 재평가하게 만드는 일을 
기초적으로 행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그냥 계속 팔이 달려 있는 상태에서는 팔의 가치를 모르는데 
한 번 부러뜨리거나 끊어 놓고 
일주일 후 붙여 주면 대단한 감사와 찬탄을
상대가 거북도사에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전 서비스 팀 요원들도 
그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게 된다. 

팔이 잘라지는 사태를 미리 다 막아주면 
그 경우에 상대가 좋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소중한 좋음들을 다 망각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좋음을 주는 것이 목적인 입장에서는 
어느 부분에서 문제점을 보게 되는 것인가. 

상대의 가치 계산 능력에 무언가 결함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여하튼 숫자나 비유로 그 비례관계 등을 보여 주지 않으면 그 가치를 잘 모르고 
그러나 막상 숫자나 비유로 그 비례관계 등을 보여주면 
이제 그것때문에 그것을 계산하여
행위해나가게 된다. 

그러니 이 양쪽이 다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다. 
그래도 가치의 방향은 이해는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거북도사가 느끼는 안타까움은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무엇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뒤집힌 상태에서 평가를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회계장부의 숫자를 보면서 
정작 자신의 눈이나 다른 상대의 눈이 갖는 가치는 
숫자로 얼마인지 오락가락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평생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우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눈은 얼마인데
다른 생명의 눈은 또 그 반대로 극히 저평가하는 경우도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일반적인 경향 때문에 거꾸로 
자신은 지극히 스스로를 높고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거울면의 반대 원리를 통해 다른 이들로부터 그렇게 저평가되어 
처리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런 종합적인 안타까움이 현실에서 실제로 발생한다. 
이른바 당신이 주장한 내용이나 방식을 
내가 이제부터 거꾸로 당신에게 그대로 적용한다는 
그런 논리다. 

가치 문제에서 목표는 
좋고 좋고 좋은 상태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나 좋고 남 좋고 온 생명이 제한없이 좋고 
이리 보아 좋고 저리 보아 좋고 두루두루 좋고 
지금 좋고 나중 좋고 오래오래 좋고 
그런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른바 다라다라 두루두루 디리디리 좋고 좋고 좋은 상태를 
구하는데 
그것은 어떻게 구하는가
그런 문제의식에서 이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론을 연구하지만, 
그 이론에 따라 현실에서 적용해보려고 하면 
연구인부터 몹시 어려움을 느낀다. 
최근 현장 실험에서도 little 님은 두시간의 노력을 거쳐 한 번 성공함을 보았는데 
본인은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이론과 현실, 생각과 말과 글과 행위, 태도, 자세 이런 것들의 일치가 
현실에서 쉽지 않다는 의미다. 




쉬면서 노래를 들어보기로 한다.

>>>

https://www.youtube.com/watch?v=EfDeiVZfRjk

>>>

Francoise Hardy Tirez pas sur l'ambulance

>>>







○ [pt op tr]  Francoise Hardy Tirez pas sur l'ambulance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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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59/01/19/월/11:38


♥ 잡담 ♥보시수행론-05

PRAJNA 님의 유식무경 논의에 참여해서 
힘이 든다. 

일찍이 생명 안에서도 독특한 집단적 편견을 갖고 사는 인간이란 종족인 자신이
또 다시 그 자신의 독특한 견해 편견 가치관을 형성시킨 동굴에 갇혀 지내다 
본래 자체적으로 문제가 많은 언어와 근거없는 대중의 풍문이 무성한 시장을 돌아다니며
엉터리 규칙과 주장과 체계가 오히려 권위와 전통으로 자리잡은 극장이란 곳에 들를 때는, 
우선 안내인을 잘 만나야 한다. 


그 안에서 관람객 안내를 오래 맡아 하는 동안 
경험을 반복해 이를 정리해 진리를 얻어 내는 것 즉 귀납이 중요하다고 본 베이컨이란 안내인이 있었다. 

우선 그를 만나 
맛있고 싸고 질 좋은 베이컨은 경험상 어디서 사야 하는지 베이컨 구매 법칙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다시 베이컨이 그 동안 만난 그  수많은 아이돌(~이도라)때문에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수행자는 좋고 좋고 좋음을 구하고 
그 좋고 좋고 좋음을 얻어 
이것을 다시 베풀어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일반인의 상식적인 입장에서는 
소중한 것은 아끼고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이를 미덕으로 강조하게 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는 이것은 큰 죄악의 하나다. 

10 대 죄악에 나열되는 한 가지이기도 하다. 

그것은 가치 저울을 잘 마련하고 가치판단을 할 때 
당연히 얻게 되는 결론적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기서부터 조금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왜 아끼는 것이 번뇌이고 악인가. 
그러면 수행자는 무엇을 갖고 사는가. 


사실 여기에는 약간의 비밀이 있다. 
수행자가 자꾸 좋고 좋고 좋은 것을 얻어 
아낌없이 베풀고 한없이 베푼다고 하더라도 
줄지 않고 그럴 수록 쌓이고 보관되는 보물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 보물만 따로 자신이 아껴서 창고에 따로 보관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데 
그러나 그것은 자꾸 쌓여서 자연스럽게 보관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이 이상한 창고에
그런 보물이 가득 쌓이게 될 때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통은 일반적 상식적 입장에서 좋다고 보는 상태에는 
그것이 잘 안 보이고 있어도 적다고 보는데, 

반대로 수행자가 수행을 반복해 나가면 나갈수록 
그런 보물이 쌓이고 이것은 잘 안 없어지는 형태가 되어 
자연히 창고 안에 쌓여 있게 된다는
그런 이상한 보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 보시 수행론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무엇때문에 유식무경과 같은 난해한 논의를 전개하는가. 
그 취지는 무엇인가. 

결국 현실을 살아가면서 
가치저울을 재면서 가치를 평가할 때 
나쁘고 나쁘고 나쁜 것은 제거하여 없애고 
반대로 좋고 좋고 좋은 것을 얻고 
그것을 자신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생명에 대해 제한없이 그렇게 만들어 주고 
그런 상태에 또 이끌려고 
그런 논의가 시작되는 배경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렇게 보지 못하기에 
온통 뒤집혀서 거꾸로 행해 나가기 때문이다. 


자신의 살을 베어서 딱지를 하나 구해 가지고 온다면 
누구나 이상한 일을 한다고 쉽게 안다. 

그런데 사실은 그처럼 각 생명들이 그런 이상한 일을 반복해서 
행하고 헤매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매 순간 이것(원인행)과 이것(그 결과)를 
따로따로라고 여기면서 각기 분리해서 대해나가다 보면 
그는 이것이 서로 묶여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앞과 같은 행위를 매번 하면서 좋다고 여기는 것이기도 하다. 

나중에 이것을 묶어 함께 볼 때쯤 그것을 알지만, 
그 때는 또 어쩔 도리가 없다. 

어쩔 도리가 없는데도 또 그는 그것을 그렇게 보지 않고 
다른 것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그로 인해 다시 또 더 나쁜 상태로 나아간다. 

LITTLE 님이 말하는 
거북도사도 이에 개입하여 그렇게 보지 말라고도 
말하고 
여러 현인 성인들도 다 말리는데 
유독 당사자들은 그 견해를 고집하고 버리지 않는다. 


현실 문제를 진단하는 부처님과 보살님들은 
이 점을 극히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본원인이 무엇때문인가를 
헤아려 보건대 
바로 그 근본 출발점이 
무명 어리석음과 그를 바탕하여 형성한 잘못된 견해 사견에 
있는 것으로 진단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무엇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정확히 잘 알지 못하고 
그저 각종 도라이 아이돌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정신없이 이리 돌고 저리 돌아다니는 현상 때문이라고
우회적으로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조금 의학적 용어로 각색하여 표현하면 
환자의 망상분별 편집증세가 바로 그 근본원인이라는 
진단이 내려지는 것이다. 

불교용어로는 한마디로 전도 몽상 집착 편집증 현상이다. 

유식무경설은 이 치료에 필요한 중요한 내용이기는 한데 
일단 복잡하다. 


반야심경에서 관자재보살님이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 전도 몽상....
이런 취지의 말씀을 하실 때 
이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반야바라밀다가 필요한 것을 밝히고 계신 것이기도 하다. 

반야심경은 외어야 되는데도 매번 적어 놓고 
잠깐 원문이 맞는지 확인해보게 된다. 

...
역시나 무엇인가가 빠졌다.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한 때 이 부분에서 언어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는 이도 있었다. 
이 부분이 다라니도 아니고 무가애 부분은 무괘애로 읽어야 맞지 않은가 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이 한 때 있었다. 
그러면 보리는? 

개인적으로 언어기능상 큰 문제가 없는 한 다수설을 따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노래를 잠시 듣고 필요한 경전 암송을 일단 하면서 
쉬기로 한다. 


>>>

elephant collective mon amour

>>>

https://www.youtube.com/watch?v=JNNcIXRKTH8

>>>




◎005

○ [pt op tr]  elephant collective mon amour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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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jna Citta 불기2559/01/18/일/21:42


♥ 잡담 ♥편집체계의 획기적 변화란?

편집체계가 획기적으로 변화했다고 하여서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조금 문제는 있지만, 
편해진 느낌은 받게 된다. 

다만, 인터넷 원본 페이지를 어느 곳으로 정하고 
수정 작업을 해나가고 
디스크내 내용과 연계시킬 것인지는 조금 문제되는 것으로 본다. 

통합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현재 사이트를 모든 인터넷 판본의 원본 페이지가 위치하는 장소로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여기에 각각의 복사본을 위치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일단 좀 더 검토를 해보아야 한다고 본다. 



노래를 붙일 때 꼭 가사는 같이 붙여야 하는지...

노래 의미를 모르고 단지 편집체계에 대해 
하고 싶은 표현이 있어서 그냥 싣는 것입니다. ^_^


maurane - toutes les mamas

>>>

https://www.youtube.com/watch?v=xgg2jQ6VqtI

>>>



○ [pt op tr]  maurane - toutes les mamas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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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5/01/19/월/01:04


♥ 잡담 ♥샘플 논의 

아래 prjna 님의 샘플에 
샘플 논의를 덧붙여 놓았습니다. 
새 편집방식과 새로 지원되는 핫키는 이런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샘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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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의 댓글

◈Lab value 불기2559/01/19/월/01:52


♥ 잡담 ♥댓글의 댓글 상자 형식의 문제 

원래 댓글의 댓글 상자는 90% 사이즈로 되어 있는데 
이 상자 안에 글을 길게 쓰면 
상자와 다음 상자가 밀려서 만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제가 little 님의 댓글에 글을 달아 보려하니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보기는 안 좋은지 모르지만, 
댓글의 댓글도 원래 댓글 상자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합니다. 
( 이것처럼 짧은 것이 분명한 경우는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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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문서창 


 


◈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5/01/18/일/18:42


♥ 잡담 ♥테스트

같은 내용을 만들어 테스트한 결과 

클립보드 복사시 오류발생 문제는 

시스템에 피로가 누적되어 
아마도 메모리 상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이므로 
휴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핫키 사용이나 클립보드 붙이기할 때 나타나는 
테이블 분리현상은 
prjna 님이 
사용한 테이블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임 





추정하건대, 
글접기 상자내 편집과정에서 
아마 재차 붙이기 하는 과정에서 
html 소스로 < div >....< /div >가 
일정 문장 다음에 입력되어 
나타나는 문제로 판단됨 

이런 문제가 발생시는 html 편집모드로 들어가 
글상자내 해당 소스를 제거하여 주시기 바람.

노래를 듣거나  
가끔 컴퓨터 시스템도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인터넷 사용 중 바이러스나 트로이목마 프로그램이 시스템에 
침투 작동되어 발생하는 현상일 수도 있음 

원래 prajna 님이 바이러스나 트로이 목마 그 자체일 수도 있음 ^_^

노래를 들으면서 
시스템 정비를 합시다. 



>>>

Natasha St-Pier - Mourir Demain

>>>

https://www.youtube.com/watch?v=KZEVTPN1hvo

>>>



○ [pt op tr] Natasha St-Pier - Mourir Demain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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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jna Citta 불기2559/01/18/일/17:16


♥ 잡담 ♥텍스트연구와 병행작업 테스트 

같은 내용을 무의미하게 여기저기에 반복함을 피할 수 있는 
획기적인 편집체계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테스트 중이다. 

○ [pt op tr] k0154sf-- ☞외도와는 다른 다라니의 뜻



테스트 결과 클립보드 복사과정에서
약간 오류가 발생한다. 
클립보드에 들어 있던 이전의 다른 내용이 
자꾸 복사되어 나온다. 

본인의 아바타아이콘이 나타나지 않고 
기본 복사내용이 나타난다. 




오류발생신고...
핫키 사용시 
테이블 분리되는 현상 나타남 
 
오류발생신고...
텍스트 파일에서 클립보드 복사후 붙이기시 
테이블 분리되는 현상 나타남 

>>>

little 님의 도움을 받아 
다시 테스트 진행 중 

>>>

[ 논의 ]

[IMG2--15] http://buddhism007.tistory.com/691 ☞● 불의 정체의 실험

08pfl--image/불의정체-실험.jpg

● 유식무경(唯識無境[오직 식뿐이고 대상(경)은 없음])과 대상의 의미
08pfl--K0614_T1585_성유식론.txt ☞● 유식무경(唯識無境[오직 식뿐이고 대상(경)은 없음])과 대상의 의미



○ [pt op tr]


>>>



[참조-관련] 성유식론 본문 


○ [pt op tr] 08pfl--K0614_T1585_성유식론.txt ☞내부대상과 식이 모두 허망한 것이 아니라면



>>>

이제 이런 내용을 종전 텍스트 파일에 기재해 사용하였다면, 
여기에 기재하고 어떡하라는 것인가. 

그 다음에 이 내용을 불교 사이트에도 같이 올린다면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이것이 백업과정에서는 어느 파일을 원본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내용은 중복 백업되지 않게 하는가. 

그런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의무적 노래 병기 준수

>>>

Leslie - Tout Sur Mon Père

>>>

https://www.youtube.com/watch?v=v5ZS-sawJKY

>>>





○ [pt op tr]


>>>
인터넷 상의 원본 페이지는 이 페이지로 정했다. 
http://story007.tistory.com/1023 ☞♥ 잡담 ♥텍스트연구와 병행작업 테스트 

[pt] 복사본은 다음 페이지에 위치한다. 
http://buddhism007.tistory.com/699 ☞♥ 잡담 ♥텍스트연구와 병행작업 테스트 

텍스트 원본은 
08pfl--K0614_T1585_성유식론.txt ☞● 유식무경(唯識無境[오직 식뿐이고 대상(경)은 없음])과 대상의 의미

이제 이런 상태에서 
이 내용을 재 수정하고자 한다. 

수정 내용은 다음이다. 

>>>

유식무경이란 말의 의미에 대해 
다음의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1설, 우리가 얻는 내용 그 모두는 식이며, 그 안에 우리가 대상으로 이해한 정신 밖의 그 무엇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경]
그러나 이 안에 어떤 다른 정신내용의 대상은 역시 존재할 수 있다. 
한편 정신 밖에 그 정신 안의 내용을 얻게 한 실재대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공하다. 그것은 직접 얻을 수 없다. 

또는 다음의 의미라고 볼 수도 있다. 

2설, 우리가 얻는 내용 그 모두는 식이며, 그 안에 우리가 대상으로 이해한 정신 밖의 그 무엇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경]
그리고 이 안에 어떤 다른 정신내용의 대상은 역시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무경]
한편 정신 밖에 그 정신 안의 내용을 얻게 한 실재대상 역시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무경] 


3설, 우리가 얻는 내용 그 모두는 식이며, 그 안에 우리가 대상으로 이해한 정신 밖의 그 무엇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경]
그리고 이 안에 어떤 다른 정신내용의 대상은 물론 '존재한다' 
한편 정신 밖에 그 정신 안의 내용을 얻게 한 실재대상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무경]


한편 유식무경의 의미에 대해 
주장될  가능성은 적지만, 

이론상 다음과 같은 의미라고 주장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4설, 우리가 얻는 내용 그 모두는 식이며, 그 안에 우리가 대상으로 이해한 정신 밖의 그 무엇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경]
그리고 이 안에 어떤 다른 정신내용의 대상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무경]

한편 정신 밖에 그 정신 안의 내용을 얻게 한 실재대상은 물론 '존재한다'.  


이 가운데 유식무경이란 표현이 
원래 나타내고자 한 본래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

이상과 같은 내용을 다시 위 글 상자에 추가해 넣는다고 하자. 

이 변경 사항은 어디에 다시 반영해야 하는가. 
일단 이 작업이 번거롭게 느껴진다. 




문서정보
[pt] to http://buddhism007.tistory.com/699

Ω♠문서정보♠Ω

™[작성자]™ Prajna Citta

◑[작성일]◐ 2015/01/18/일/20:35

♨[수정내역]♨

▩[ 디스크 ]▩ [DISK] ○ 실상론 08pfl--K0614_T1585_성유식론.txt ♠● 유식무경(唯識無境[오직 식뿐이고 대상(경)은 없음])과 대상의 의미

ж[ 웹 ]ж [web] http://story007.tistory.com/1023 ♠● 유식무경(唯識無境[오직 식뿐이고 대상(경)은 없음])과 대상의 의미

⇔[ 관련문서]⇔

{!-- 관련 문서 링크--}

인터넷상의 목록 http://buddhism007.tistory.com/604

디스크상의 목록 ●불교 08fl--budr/budr-catalog.htm

Ш[ 관련 문서 인용 부분 ]Ш

[pt] http://buddhism007.tistory.com/699 ☞♥ 잡담 ♥텍스트연구와 병행작업 테스트

ㅹ[ 코멘트 등 정리 내역]ㅹ



 


댓글의 댓글

◈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5/01/19/월/00:05


♥ 잡담 ♥인터넷 원본의 위치 

prajna 님의 글에 대해 어떤 다른 의견을 원할 때는 


이곳을 일단 인터넷 본의 원본이 위치하는 장소로 사용하는 것이
편하다고 봅니다. 

각 범주마다 각기 짧은 조각글을 위치하는 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데 
어떤 이가 그곳을 다 돌아다니면서 
글을 검토하기가 힘이 듭니다. 

안 올리기도 하고 올리기도 하는데 
그 내용을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 샘플로 제가 prjna 님의 내용과 
관련된 내용을 제시하기를 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prjna 님의 글 다음에 다음과 같이 
내용을 덧붙일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
원래 서양철학상에 
우리가 대상으로 보는 것이 사실은 정신적인 것이다라고 
밝힌 분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대표적으로 버클리의 Esse is percipi 라는 명제가 그에 해당합니다. 

참고 

○ 인식의 대상 및 내용의 문제 [네이버 지식백과] 인식의 대상 및 내용의 문제 (철학의 주요개념, 2004,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pt op tr] fr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95953&cid=41978&categoryId=41986 


그래서 이것이 불교 유식론의 유식무경설과 혼동을 일으킬 여지가 있습니다. 

lab 님이 그간 제시한 내용과 함께 


이 내용을 제가 이해하기로는 
서양의 버클리의 관념론은 불교 유식론과 극히 일부에서만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 
즉 눈을 뜨면 사과로 보이는 그런 모습이 
사실은 자신이 감각한 내용으로서 정신적 내용이라는 부분입니다. 

그 뒤에서부터는 버클리와 불교의 유식설은 다른 내용이라고 봅니다. 

버클리는 여전히 그것을 대상으로 놓고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므로 
정신적인 것을 대상으로 우리가 그런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그런 대상이 정신적인 것으로 신적인 내용과 관련을 갖는 것이다. 
이렇게 내용을 전개해 나가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유식설의 유식무경설은 
우선 대상으로 보던 것이 정신적인 것이다. 
->
그러니 그렇게 대상으로 보던 것을 대상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대상은 우리가 얻은 내용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보고 유식무경이라고 제시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정말 실재대상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1 우리가 얻는 그 모습이나 관념과 일치하는 것이다. 
2 우리가 얻는 그 모습이나 관념과 '비례하는 유사한' 그런 것이다.
3 그런 것은 없다. 
4 그것은 추리되지만, 그 내용을 직접 얻을 수 없다. 
라는 설로 나뉘어진다고 봅니다. 

이는 처음에 상식적으로 판단하는 내용 즉, 
5 우리가 얻는 그 모습이 곧 우리 외부의 대상이다. 
이런 입장과 함께 다양한 학설의 대립을 나타낸다고 봅니다. 

1 이 유부 
2 가 경량부
3 이 유식학파 
4 가 중관학파의 견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런 일반적 이해에 의하면 

유식무경설에서 유식무경의 의미는 
외부의 실재대상은 없는 것이다-라는 의미로 무경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prajna 님이 제시한 유식무경의 의미에 관한 논의를
살피면,

그런 의미가 아닌 것으로 파악하게 됩니다.

유식무경에서 무경의 의미는
우리가 얻어낸 내용 일체에서 ( 그것은 모두 식 뿐이며 = 유식) 
우리의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과 같은 내용은 없는 것이다. (= 무경 )
그것은 우리가 얻어낸 내용에서의 분별이기에 무라고 단정할 수 있다.
이런 의미로 파악됩니다.

그러나 정작 외부의 실재대상은 
그것이 있고 없음의 판단을 떠난 영역이므로 
무라고 단정할 수도 없고 
전혀 아무것도 없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 공하다. 

이런 내용이고 
또 한편으로 우리가 얻어낸 내용 안에 
예를 들어 관념 판단을 진행하는 대상으로서 
감각현실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부대상이다. 
이런 내부대상은 물론 있는 것이다 
이런 입장을 기술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prajna 님은 1,2,3,4 의 경우로 
그 의미해석이 가능한 경우를 나열했으나 
첫번째 나열해 놓은 내용이 
아마 prajna 님이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여하튼 이런 입장이 버클리의 관념론과는 
아주 일부만 유사한 점이라고 생각되며 

더 나아가 현상론의 입장도 
이와 같은 입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봅니다. 

>>>

한편, 
우리가 인식한 내용이 옳은 것인가의 문제에서는 
그 내용을 준 대상과 그 내용이 일치해야 하는데 
정작 그 대상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므로 

옳다 그르다를 판정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는 것은 
서양철학이나 불교의 입장이나 
공통점이 있다고 봅니다. 

그 내용을 얻지 못하는데 누군가 얻었다고 하는 것은 
그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는 가운데 
단순히 사변적으로만 즉 생각과 주장으로서만 제시될 뿐이기에 
이 논의는 계속 공허하게 되기 쉽습니다. 


물론 불교의 입장은 그래서 종국적으로 
현실에서 행하는 관념 판단은 모두 망상분별이다 
이렇게 제시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이런 입장은 당연히 현실의 
일반적 상식적 입장이 아니고
상식적인 믿음과도 크게 위배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미 lab님이 제시한 바와 같이 이런 
문제는 
감각현실을 대상으로 하여 관념을 얻을 때에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사과의 모습(감각현실)을 대하여 
자신이 사과라는 관념을 얻었다고 할 때 

자신이 얻은 사과라는 관념은 
분명 그 감각현실의 일부분(사과모습부분)을 향한 것이고
또 그 감각현실의 일부분(사과모습부분)으로부터 얻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사과모습부분에는 
자신이 파악한 그 사과의 관념이 없다고 합니다. 

또 자신이 눈을 감고도 확인할 수 있는 
그 사과의 관념에는 
역시 그 관념이 가리킨 그 감각현실의 일부분(사과모습부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감각현실과 관념의 관계는 

물론 일치설에 의하면 당연히 틀린 내용이라고 해야 하는데 
그러나 상식적인 입장에서는 
그것을 도무지 틀리다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 일치하지 않지만, 전혀 동떨어진 엉뚱한 내용은 
아니지 않은가. 
무슨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 입장에서 옳다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여하튼 
역시 서로 옳다 그르다라는 판단을
단정적으로 행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결국, 옳다라고 하려면 
그 둘이 서로 일치하지는 않지만, 
무엇인가가 유사성이 있다고 해야 할 지, 
여하튼 일정한 관계성이 있는 것이고 

또 그런 관계성으로 인해 
그 관념은 그 감각현실의 일부분에 대해서는 
옳은 관념이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상식적인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확정하지 못하면 
이후 관념에서 행하는 모든 판단이나, 
논리적 전개는 모두 그 근거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과연
관념적 판단이나 논리적 판단을 통한 결론 등이 
그렇게 완전히 감각현실에 대해서
그 진리성을 상실하는 것인가하면 
그러나 상식적으로 그렇지는 않다고 보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상식적인 입장에서 
만일 논리적 판단이 감각현실에 적용되게 하려면
그래서, 우선 1차적으로 
논리나 논리체계 또는 관념 등이
감각현실에 적용되게 하기 위한 일정한 근거를 통해 
교두보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논의를 
처음 tok 님이 오래 전에 전개한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에 대한 관념 판단 논리 등의 교두보를
가설할 근거를 찾아 볼 때 

tok님의 입장은
그런 관념이나 판단은 감각현실과의 관계에서 
기본적으로 옳지 않다. (=망상분별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현실에서는
그런 관념이나 판단을
곧 감각현실의 내용이라고
그것을 옳다고 믿고 
그렇게 판단하고 또 이에 근거하여 행위해나가게 되는데  

그렇게 행하게 되는 심리적인 근거는
관념 영역안에 따로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최면걸린 이가 
최면 걸린 상태에서 
계속 양파를 놓고 사과라고 생각하고 
사과로 대하고 생활하면서 
불편을 느끼지 않고 문제를 느끼지 않을 때 
그 한계에서 
그런 판단이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문제 없는 것이다. 

그 근거는 따라서 관념 안에서의 근거이고 
감각현실에서 그 근거를 구하는 것은 사실은 아니다. 
...


이런 이상한 주장을 전개해나가다가 
이후 약간 추가 내용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lab 님도 추가로 관념 영역내 근거를 놓고 
이것과 감각현실의 관계성에 대해 
일부 논의를 더 전개한 것으로 압니다. 



결국 감각현실과 관념의 관계는 아주 무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서로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비유하면 베개에 눌려 잠을 자며 꿈을 꿀 때 

코끼리에 눌리는 꿈을 꾸는 것과 같다. 

베개가 없었다면 코끼리에 눌리는 꿈은 꾸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성으로
베개와 꿈 속의 코끼리는 관계가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꿈 속의 코끼리는 현실의 베개와 일치하는 내용은 아니다. 
그럼에도 꿈 속에서는
코끼리가 자신을 누르고 걸어다닌다고 판단한다. 

이런 관계와 유사하다. 

기본적으로 감각현실과 관념의 관계에 대해 
이런 애매모호한 입장을 바탕으로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것을 곧 감각현실이라고 믿는데에는 
관념 영역안에서 그렇게 판단해나가게 되는 
일정한 관념의 역할이 따로 있는 것이다. 

즉 지금 생각하는 어떤 내용인데도 
그것이 (사실은 직접 확인할 수는 없는) 
과거의 인식내용과 동일한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는데, 
이런 심리기제와 같은 측면이다. 
...
이런 식의 주장을 전개한 것으로 압니다. 
 
>>>

샘플로 보이기 위함인데 
너무 많은 논의를 하면 안 된다고 보고 
여기에서 중단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어떤 이가 이런 내용을 prajna 님의 견해에 덧붙이고 싶을 때 




이 공간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prajna 님도 이 공간을 인터넷 본의 원본이 위치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면 다른 견해를 함께 참조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물론 또 다른 체계로 불교 관련 논의만을 모아 놓고자 할 때는 
[pt] 본으로 복사본을 그 페이지에 위치해 놓으면 됩니다. 

이제 이런 글들은 이 페이지상에서 텍스트로 백업 보관하게 됩니다. 

각 내용을 키워드 검색할 때 
일반적인 경우는 이 텍스트 본만으로 검색하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prajna 님은 
경전 텍스트 파일을 통해서 작업할 것이므로
이 텍스트와 함께
검색을 추가로 하면 된다고 봅니다. 

그러면 중복되는 내용이 여기저기에서 반복 검색되어 나오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prajna 님은 prajna 님의 원본 텍스트 파일에 
보관되는 내용 외의 내용만 
백업되도록 
글 상자를 잘 활용하시면 되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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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59/01/19/월/02:01


♥ 잡담 ♥prajna 님의 유식무경과 대상의 논의에 대한 보충 논의 

little 님이 tok 님의 논의내용을 소개하였는데 


자세한 사정을 기술하지 않으면 
논리의 감각현실에 대한 교두보 건설문제가 
무슨 내용인가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본다. 

그 전에 왜 tok 님이 직접 기술하지 않는가.
여기에는 약간의 사정이 있다. 
tok 님이 분별 자체가 일체 망상분별이고
논리에 대한 논의가 일체 희론이고 희론체계인 것을 깨달은 이후
분별 망상 세계에 진입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_^

그러나 때가 되면 희론을 희론으로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고, 
실재의 실성을 밝히는 수단으로서 '실성(?) 논리'를 사용하기 위해 
논리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주시리라 믿는다. 


일단 tok 님의 입장을 대변하여 기술하고자 하는데 
그 사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

우선 논리나 논리식 논리체계는 
관념 영역안에서는 자체적으로 완비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관념영역에서 관념이 약속을 함으로써 
그것을 기초로 그 이후 내용이 건설되기 때문이다. 

그 약속이 반드시 모두 같은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게임을 프로그래밍해서 
그 게임에서는 그 게임규칙이 유효하게 되는 것과 
사정이 비슷하다고 본다. 

문제는 이 논리가 여기에 갇히지 않고 
그 내용을 감각현실에 적용하고자 할 때 
문제가 약간 발생하게 된다. 

물론 약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아주 중대한 이론적 흠결이 있는 것이다. 
이를 무시한다면 tok님이 말한 것처럼 
그것이 현실 생활에 문제가 없는 한도 내에서
무시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논리가 불완전한 것이 된다. 
그래서 이 두 영역간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교두보 건설이 문제되는 것이다. 

간단히 다음 사정만 밝혀서 
과연 어떤 문제가 여기에 있는가를 밝히기로 한다. 
>>>

우리가 실험을 할 때 
한 번은 양파를 놓고 실험을 하고 
다음에는 사과를 놓고 실험을 한 다음 
그 결과를 양배추에 대한 내용이라고 기술하여 보고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당연히 엉터리다. 

비유로 든 내용이지만, 
감각현실과 관념의 관계를 밝히는 과정에는 
바로 위 문제가 곧바로 제기된다. 

그래서 자신이 문제삼는 
어떤 감각현실과 관념의 관계가 
과연 무슨 근거로 그것이 옳거나 정당한 관념이라고 주장할 것인가를 
밝힐 때 
가장 먼저 문제삼아야 할 것이 
문제삼는 감각현실이나 
관념의 동일성 판단 문제가 된다. 

바로 앞에 기술한 사정 때문이다. 

한번은 A 라는 감각현실을 놓고 살피고 
다른 한 번은 B 라는 감각현실을 놓고 이를 살피면, 
그것은 당연히 엉터리 논의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살피는 감각현실이 
우선 하나의 동일한 감각현실인가 아닌가 부터 
판단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부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tok 님의 입장이다. 

우리는 약간은 상식과 어긋나는 이런 주장이 
왜 제시되는가를 검토해야 한다. 

우리는 분명 계속 눈을 떠서
사과의 모습을 보면서 
그 감각현실의 일부분(사과의 모습)에 대해 
자신이 갖는 어떤 관념(사과, 사물, 식물, 광물, 존재, 물체, 색, 음식, 과일.....)을 일으켜 갖는다고 
생각하고 
그 관념의 하나를 놓고 
이 감각현실과의 관계를 살펴 
그것이 옳은가,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그런 관념을 그로부터 갖는 것이 정당한가, 타당한가 등등을 
문제삼고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은 
계속 하나의 동일한 감각현실의 일부분(사과의 모습)을 
실험대상으로 고정시킬 수 있는 것처럼 
쉽게 생각하는 것이다 .

그러나 엄밀한 실험과 진리 판단을 위해서 
또는 그 실험자가 최면에 빠진 상태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등의 
검증을 위해서 

매 감각시 감각하는 그 내용이 
앞 뒤로 과연 동일한 것을 놓고 
이 문제를 검토하는 것인가를 따진다고 하자. 

여기서부터 그것이 문제되는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앞 순간의 감각과 뒤순간의 감각 사이에서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 순간의 감각 안에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또 그것은 감각만 그런 것도 아니다. 

관념도 사정이 엇비슷한 것이다. 

그럼에도 관찰자는 
자신이 계속해서 동일한 감각현실을 대상으로 삼아 
이 관찰이나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 믿어 의심하지 않을 근거를 제시할 수 없음에도 
그렇게 믿는 근거가 무엇인가. 

TOK 님이 논의의 주제로 삼은 것은 
바로 이점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것은 감각현실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감각현실 보다는 
관념 영역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것을 살피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눈을 계속 뜨고 사과만 바라볼 때는 
앞 순간의 사과모습과 
뒷 순간의 사과모습이 다른지 같은지 잘 몰라도 
자신은 계속 하나의 동일한 사과모습을 얻는다고 
사실 상식적으로 믿는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그러한지 문제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잠시 눈을 감아보자. 
바로 앞 순간에 얻었던 사과의 모습(감각현실)을 
그 순간에 재생해 낼 수 있는가. 

일단 재생을 해야 
그 다음에 비교를 해 볼 것이 아닌가. 

약간은 괘변적인 주장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논의가 제기되는 사정은 
역시 가장 앞에 설명한 사정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한 기초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과거 순간의 감각현실을 재생하지 못함에도 
그런데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각 주체는 앞 순간과 뒷 순간에 걸쳐 
계속 자신은 동일한 감각현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그것은 결국 감각현실에서 그런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고 
관념 영역에서 그 사정을 찾아야 한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관념 영역도 사정은 이와 엇비슷한 것이다. 

대략 소개한 내용은 
아주 엄밀하게 관념과 감각현실의 상호관계를 살필 때 
문제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엄밀해야 한다. 

나노 초 사이에 변화하는 현상에 대하여 연구를 한다면, 
나노 초 사이에 두 내용의 변화에도 예민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한 희론을 위한 희론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관념 판단이나 논리적 주장이 
사실은 그 근거를
감각현실과의 관계에서 전혀 확보하지 못한 가운데 
전개되는 
관념 영역 안에서 건설된 
희론체계임을 밝히는데 사용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자세히 더 살피자면 조금 더 복잡해지는데 
여하튼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자신이 일정한 감각현실과 관념을 얻을 때 
그 감각현실로부터 그런 관념을 얻어 가져야만 하는 
어떤 뚜렷한 근거가 무엇에 있다고 보는가,  
그 정확한 근거와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를 
스스로 반성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본다. 

어떤 이는 설명할 수 없지만, 직관적으로 
그냥 바로 안다고 답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는 다음 의문을 놓고 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경우 당신이 전혀 엉터리라고 보는 
완전한 망상적 관념을 하나 놓고 
그것은 그렇지 않은데 
당신이 갖는 관념은 그것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기에 그런 것인가를 찾아 보아야 한다. 

사과를 놓고 어떤 이가 이것은 당나귀라고 
망상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 역시 당신처럼 그 내용은 직관적이고 설명없이
바로 알 수 있는 문제라고 주장하는데, 
당신이 그것은 아니고(=망상이고) 사과라는 관념이 옳다고 하는 것이라면 
이 둘에서 어떤 차이가 있기에 그런 것인가를 
찾아 보자는 의미다. 


분명 사과의 모습을 보면서 사과의 관념을 갖고 있고 
그렇게 두 내용을 다 함께 얻는 순간에는 
그 사과라는 관념의 내용이 
사과의 모습이라는 감각현실에서 
무언가 그 근거가 충분하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 정확한 내용이 무엇인가. 
이것을 다시 묻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 답을 하겠다고 나서는 순간부터 
그 문제의 사정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고 본다. 

그 상태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과연 관념 아닌 그 어떤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다시 이 문제를 살펴 보아야 한다고 본다. 

LITTLE 님이 내 주장이라고 소개한 부분은 
LITTLE 님이 이해한 나의 견해이다. 

여기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한다. 

LITTLE 님이 유부, 경량부, 유식학파, 중관학파의 견해라고 
밝혔는데 
이렇게 밝히려면 더 많은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이는 단지 가능한 학설 가운데 
이런 설, 저런 설, 
1설, 2 설, 3 설, 4 설....등이 있다고 제시하는 것과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는 측면을 말한다. 

LITTLE 님의 소개가 크게 틀린 것은 아닌데 
그러나 LITTLE 님처럼 소개하고 논의를 전개하려면 
추가적으로 
많은 유부의 주장을 검토해야 하고 
그 각 논사들의 주장이 과연 
LITTLE 님이 제시한 내용과 일치하는가부터 
제시해주어야 한다. 

적어도 문제가 되면 그 관계를 밝혀 주어야 한다. 

그래서 논의가 확대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에서 PRAJNA 님이 제시한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대체 세친이 예를 들어 구사론에서 경이라는 표현한 단어의 의미가
유식삼십론송의 이러이러한 단어의 의미와 같은 의미인가, 아닌가  
이런 문제가 제기되면 
이것을 명확히 밝히는 데 대단히 어려움에 빠져들게 된다. 
또 그 두 책의 저자로 알려진 세친은 과연 동일인인가

이런 각 문제가 제기되면 난감한 상황에 빠져 들어간다. 

현실에 세친이 있어서 
이것을 직접 묻는다해도 역시 어렵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으면
더욱 이 문제는 미궁에 빠져 들어간다. 

한마디로 각 언어가 나타내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확정하는 문제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 자체가 또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

특히 정신 안의 내용을 언어로 표시할 때는 
서로 그 내용을 외부에 꺼내 보일 수 없기에 
그 어려움이 증가한다. 

도대체 방안이 없는데 어떻게 서로 이것을 밝힐 것인가. 
그야말로 입씨름이고 말뿐이고 희론을 위한 희론의 무한 전개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단어로 알 수 없는 내용을 
표현하는 가운데 논의가 혼미해지는 것이다. 

PRAJNA 님이
대상, 대상, 대상이라고 자꾸 말하는데 

각기 서로 다른 의미를 나타내면서도 
이를 서로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계속 사용하면
서로 논의가 혼미해질 것이라는 의미로 
그 사정을 먼저 밝힌 것으로 안다. 

언어에 그 언어가 나타낼 내용을
미리 확정시키고 고정시킬 수 있는 어떤 힘이 자체적으로 있다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본래 그렇지 않기에 그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유식무경에서 무경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렇게 단순히 주제를 제시했지만, 
도대체 무엇인가는 알쏭달쏭해지고
논의는 혼미해지는 것이다. 

주석도 달려 있지만
정말 문제가 될 때는 
이들은 다 약간은 허무해지는 것이다.
사정이 다 같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저 곳으로 보내고
저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보내고 
무한히 보내고 보내도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최종적으로 어떤 당사자를 찾아내
그를 직접 오늘날 같이 만나서
이 논의를 같이 전개해도 
사정이 달라질 이유는 별로 없는 것이다. 

이상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자신을 놓고 반성 검토해보아도 
사정이 같다. 
오늘의 생각이 과연 어제의 생각과 같은가. 

오늘 생각하는 내용은 과연 하루 전의 어떤 생각과 
얼마만큼 같고 다른가. 
이것부터 스스로 잘 확인할 수 있는가

이것부터 검토해보아야 할 일이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어떻게 되는가. 

사실은 희론이지만, 이 희론을 통해 
일체 관념 분별 언어 진술이 다 희론임을 깨달을 때 
그렇게 그런 내용을 깨닫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희론이 그 범위에서 쓸모가 있었다.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고 본다. 

오늘 수고하신 PRAJNA 님과 LITTLE 님에게 노래를 ~선사 



>>>

Jenifer - L'Amour & Moi

>>>

https://www.youtube.com/watch?v=ixMY1jiiLSs

>>>






○ [pt op tr] Jenifer - L'Amour & Moi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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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59/01/19/월/03:11


♥ 잡담 ♥MUN님의 안인수행 현장검증 사진 

MUN님이 자신이 부상을 당하여 
현기증을 느껴 쓰러지고 장시간 그렇게 
화장실에 누워서 안인 수행을 했다고 보고를 했는데 
앞의 논의의 연장선에서 그것이 과연 사실인가. 

사실 그런 것을 논의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양치질을 하려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전에 보지 못한 이상한 흔적을 하나 발견했다. 

청소가 안 되어 지저분하지만, 
일단 현장 검증 사진으로 하나 찍어 두었다. 



아마 MUN 님이 머리로 저런 파손을 일으킨 것 같은데 
손해 배상과 원상복구를 청구할 때 
사용할 자료이다. 
본인의 자백진술도 있었는데 
- 참고 -  http://story007.tistory.com/1022 ☞♥ 잡담 ♥안인수행론

물론 자신은 고의 과실이 없다라고 주장하겠지만, 
불법 재판정에서는 그것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반복 진술한 바 있다. 
무지가 가장 큰 죄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_^

문제는 이렇게 명확하게 증거를 제시해도 
앞의 내용에 의하면 
조금 이상한 결론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일찍이 MUN 님과 함께 논의한 
2 + 2 = 4 다 라는 판단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의 논쟁이다.

매번 같은 논의를 복사해 붙이기가 힘들다.

감각현실로 얻는 2 라는 숫자의 모습이 당신이 갖는 2의 관념과 어떤 관계인가 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 2 더하기 2 는 4 가 아니라는 주장

○ [pt op tr] FR fr 08gfl--불교공부_단상_2558_1218.txt ☞2 더하기 2 는 4 가 아니라는 주장


이런 논의가 무슨 수사기관의 증거 채택과정에도 
반영될 것 같지만,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것을 기대하고 이런 논의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MUN 님은 
그 때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같은지 다른지 어떻게 아는가 하고 
내게 항변해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MUN 님으로 보는 것이 MUN 님이기 때문이다. 
이런 희론이 재미있는가를 떠나서 
무엇이 진리이고 진실인가를 문제삼을 때는 
조금은 진지해져야 한다. 

왜 그런데 이것들이 다 문제되는가. 


MUN 님과의 논쟁을 위해서 
일단 노래를 하나 선사해야 하는데 
매번 노래 붙이는 것도 힘이 들기는 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글만 계속되면 더 힘들지 않겠는가. 



 >>>

 Raphaël - Et dans 150 ans

 >>>

https://www.youtube.com/watch?v=HrNMiZ8LnRA

>>>



○ [pt op tr]   Raphaël - Et dans 150 ans 가사 




문서정보

 







◈Lab value 불기2559/01/18/일/12:44


♥ 잡담 ♥전도몽상과 보드히


little 님이 늘 스스로 우문인 듯한 의문을 제기하고 
그 안에 현답인 듯한 내용을 질문 속에 포함시키는 모습을 본다. 

게임과 치트키의 문제를 놓고 생각해보면, 
그렇다. 

묘길상 인턴연구원이 레고 블록 쌓기 비슷한 게임을 시작한 후 
지치지 않고 그 게임을 오래 반복해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자신은 게임 중독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지만, 
그것이 게임 중독이 아니면 무엇이 게임 중독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처음엔 난 레고블록 쌓기 처럼 하나하나 땅을 파서 재료를 
찾아 모으고 이것을 조합하여 새 재료를 구하고 
그래서 무언가를 만드는 게임인가 생각했는데 
좀 자세히 보니 여기에도 이상한 치트키가 제공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왜 그 게임이 그렇게 재미있는가를 묻고 
그 게임에서 목표가 무엇인가를 물어 보았다. 

일단 재미있다는 것이고 
목표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만들기만 하면 단순한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부수는 것도 있고 어딘가에 갇혀서 탈출하는 것도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소프트웨어의 대부격인 마이크로소프트란 회사가 
그 게임을 거금을 주고 구입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그 최초개발자는 그 대금으로 현실에서 정말 환상적인 집을 
구매하고 살아간다는 소식도 듣게 된다. 

소프트웨어에서의 가상 내용이 
어떤 이에게는 현실이 되어 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일부 연구인은 보시 수행론의 논의가 종결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처럼 각 사람과 각 생명의 소원의 내용이 
다 제각각이니, 
이를 통해 모든 생명에게 좋음을 주고 
그것을 방편으로 구극적으로 가장 좋고 좋고 좋은 상태를 
얻게 하여 중생을 제도하려는 목표를 갖고 임하는 수행자는 
이 문제를 결코 간단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사실 게임을 놓고 생각하면 
치트키는 마치 무언가 속임수를 써 정당하지 않게 
게임에 임하는 방안인 것 같은데 
그러나 게임 자체가 속임수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치트키는 그 게임을 빨리 돌파해내는 
올바른 방안이라고 보게도 된다. 

어떤 게임이 치트키도 없고 
그 자체도 몹시 힘들다면, 
그 게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그것은 실패한 게임이다. 
그런데도 굳이 그 게임을 붙잡고 시간을 
보내야 할 이유가 있기는 한 것인가?

원래 게임이 만들어지는 본 바탕이 
허구적인 것이다. 
그 게임의 성공이 현실에서 그 내용을 그대로 
적용하여 만들어 내는 어떤 실다운 모습도 하나 찾아 볼 수 없다면 
그것은 정말 오로지 시간낭비에 불과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이 
게임의 아이템을 얻기 위해 
마치 현실에서 성실한 노동을 하듯 임하여 
게임을 하고 그렇게 얻은 아이템을 
정말 현실의 상품인 것처럼 
거금을 주고 사고 팔고 한다면, 

여기에는 과감히 수많은 치트키를 제공해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왜냐하면, 게임은 게임이지, 
게임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배워야 할 내용은 
아이템을 성실하게 노력하여 많이 얻자 
이런 것은 결코 아니고 
이를 통하여 
현실에서 참되고 실다우면서도 보람있는 일을 즐겁게 잘 할 수 있도록 
게임에서 어떤 의미없는 일을 왜 재미있고 즐겁게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임하게 되는가하는 원리를 찾아내 
자신의 현실의 일에 이를 적용하여 
임하는 것이라고 본다. 


노래를 놓고 생각하면 각 개인마다 
노래를 듣고 음미하는 배경과 취향이 다 다르다는 점도 있고, 

음색 하나만 놓고 보아도 
아름다운 미성을 좋아하는 이도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탁하고 거친 소리를 더 좋아하는 이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원래는 지극히 아름다운 미성의 소유자였는데 
그러나 본인은 그것에 만족을 못 느끼고 
오히려 각고의 노력을 거쳐 
탁성을 만들어 내고 
그 탁성으로 노래를 불러 
대중의 인기를 얻은 한 가수가 생각난다. 

마치 음악에서 모짜르트와 베에토벤의 자세를 함께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시에서 이백과 두보의 다른 자세를 함께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남들이 취미와 유희로 생각하는 것을 반대로 고통과 인내의 과정으로 생각하고 
임하는 이들의 모습을 하나에서 함께 갖추고 있는 것 같은 
묘한 생각이 든다. 

시는 본래 정상적인 관념 체계에서는 
약간은 비정상적인 망상체계로 이해하게 된다. 
왜 시인은 멀쩡한 꽃을 보면서 이 꽃에서 시집간 누님의 얼굴을 떠올리는가. 
그런 시각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행하는 관념 분별 판단을 
모두 전도된 망상 분별이라고 보는 불교 수행자는 
궁극적으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망상분별과 희론의 수단인 말을 떠나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또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시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이름하여 선시라고 불리워지는 것도 그렇고 
부처님도 자신의 가르침을 게송이나 시의 형태로 
짧게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여하튼 이 모두가 다 시인데 
시인의 시와 
부처님의 게송과 선사의 선시는 다 조금씩 그 성격이 다르다. 

하나는 망상 분별 속에서 또 다른 망상분별로 나아가는 것이고 
하나는 그 망상 분별 속에서 망상분별을 벗어나는 방향인 것이다. 

되도록 한국 노래를 올려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은 
글 쓰는 본인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한국 노래를 들으면서 
언어가 갖는 망상분별에 곧바로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그것이 망상분별이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망상분별을 진행해 나간다는 점일 것이다. 

본인도 그 의미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노래를 선호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망상분별을 일으켜도 
일단 본인이나 다른 이나 모두 그것이 
망상분별 속의 일임을 조금은 이해하고 
그것을 대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일단 미성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오히려 그 미성을 버리고 탁성을 얻기 위해 
강변에 앉아 하염없이 수행 정진하여 
그 탁성을 얻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 가수의 노래를 한 번 
들어보기로 한다. 

자연스럽고 즐겁고 유쾌하고 또 남에게도 그런 즐거움과 유쾌함을 주는 
활동만을 예술이라고 이해하는 입장도 있지만, 

반대로 인위적으로 꾸미고 노력하고 
자신도 지극히 고통스럽고 
또 남에게도 그 고통스런 내용을 지극히 공감할 수 있게 
전달하는 활동도 예술일 수 있다. 

그래서 한 예술가가 이 문제를 놓고 
좋고 나쁨 즐거움과 고통 그런 주제와 관련하여 
지극히 복잡한 심정으로 대하고 
이를 종합시켜 놓은 결과물을 이해해보기 위해서다. 

임재범 너를 위해
>>>
http://www.youtube.com/watch?v=I6sd5vAxkkg 
>>>



○ [pt op tr] 임재범 너를 위해- 가사 


이 음악의 표지를 보면서 
왜 이 음악가는 음악 CD 표지에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느끼기 보다는  
대부분 추하게 생각하는 파리를 놓았는가 하는 의문도 갖게 된다. 

그리고 한때 부처님 당대 최고 미인으로 널리 알려진 암발리와 암파리를 혼동하면서 
무엇이 진정한 좋음이고 아름다움이며 가치이고 선인가를 놓고 
연구하며 여환삼매를 수행하던 mun 님도 함께 연상되어 
떠오르게도 된다. 

생명들의 취향이 다 제각각 다르기에 
이런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현실이던 게임이던 
서로의 내용을 계속 주장하면
서로가 충돌하여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어떤 것도 절대로 뚫어내는 창과 
어떤 것도 절대로 막아내는 방패를 
함께 팔아대는 장삿꾼이 갖는 문제라고 보고 
이를 모순이라고 표현한다. 

이미 보시수행론에서 
남에게 베풀 아무 재물도 없는 상태에서도 
다른 이에게 좋음을 베풀 수 있는 방안으로 
무재칠시를 살피고 
그 가운데 
안시와 관련하여 눈빛의 문제와 
화안열색시와 관련하여 부드러운 표정의 문제를 보았는데 

이와 관련하여 어떤 것이 가장 강한 눈빛인가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사람들은 호랑이를 만나서도 절대 호랑이에 
눌리지 않고 제압할 수 있는 강한 눈빛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사자나 호랑이를 마치 말처럼 대하여 
이를 타고 다니는 보살로서는 
문수보살이 있다. 
이 문수보살이 중생을 상대할 때 보이는 눈빛은 어떤 눈빛일까 
그런 궁금증을 일으키게 된다. 


사람들은 제각기 의식하지 못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의 눈에서는 빛이 나온다. 
이 눈에 티끌이 들어 있으면 
자신은 매번 잘못된 전도된 모습을 얻어 갖는데도 
본인은 그것을 알아내지 못하게 된다. 

전도망상의 상태에서 
자신이 전도 망상속에서 
자신이 갖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번뇌 객진에 의해 굴절시켜 
뒤바꿔진 모습과 관념을 얻고 살면서도 

자신은 그것이 그렇다고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전도 망상이 정상적이고 
표준적인 내용이라고 집착하고 고집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가장 강한 무기인가 
또 무엇이 그 가장 강한 무기를 막아내는 방패인가의 
문제에서도 잘못된 해답을 찾아 구하고 
그것이 올바른 견해라고 고집한다. 

무엇이 가장 강한 것인가하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가장 강한 창, 총, 대포, 미사일 등등을 나열하기 쉽지만, 
부처님은 자비를 든다. 

이른바 자비무적이다. 

그러면 가장 강한 무기를 다 막아내는 가장 강한 
방패는 또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가장 강한 방패, 성곽, 스텔스 기능 등등을 나열하기 쉽지만 
부처님은 바로 안인을 드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자비와 안인을 서로 상대시키면 
이제 어느 쪽이 이기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원래 모순이라고 생각한 것은 
모든 것을 다 뚫는 가장 강한 창과 
모든 것을 다 막는 방패를 놓고서 
어느 쪽이 그에 기대되는 기능을 완전히 충족하게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을 놓고 
생각하게 된 문제이지만, 

자비와 안인이 부딪히면 
도대체 어느 쪽이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인가 하는 퀴즈에서는 
어떤 결론을 얻게 되는가. 

여기에서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이가 나타나지 
않는 것 아닌가. 

사람들이 정의를 실현하는 방안이라고 
제시하는 내용은 
사실은 자체 모순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리하여 이를 이름붙이기를 필요악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에 
자체모순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고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보기에 
그렇게 표현하게 된 것이다. 
필요악이라고 본 내용은 그래서 악이지만, 선이 된다는 논리다. 

이것이 전도망상을 바탕으로 출발된 
내용인 것은 
모든 관념 분별 판단이 망상분별이라는 입장에서는 
별로 특별한 내용도 아니다. 

일반 사회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은 
그 내용 전제조건이 모두 다 함께 
갖추어져야 비로소 그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규범 가운데 형사문제를 놓고 
악을 다룬다면,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내용이어야 하고 
위법성 조각사유가 없이 위법성을 갖추어야 하고 
고의 과실이나 책임능력 비난가능성 등의 책임성도 갖추어야 하고 
소송요건과 
형벌요건도 갖추어야 한다는 식으로 
각 요건을 나열하게 된다. 

그래서 비로소 그런 범죄자를 체포하고 
교도소에 가두어야 
형벌을 주고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부처님은 
대부분 면책사유의 하나로 드는 
무지나 과실을 
사실상 가장 큰 죄의 발생 원인이라고 드시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을 놓고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통의 상태에 빠져들게 만드는 
원인은 
이 무지와 어리석음 잘못된 견해의 고집 등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본 번뇌의 핵심은 
무명 어리석음이고 
삼계 육도의 고통의 윤회의 출발점도 
바로 이 무명 어리석음으로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망상분별과 
탐욕 번뇌 어리석음의 번뇌에 집착하여 
고통과 두려움을 받는 것이면 
그곳이 어느 곳이던 
그가 심한 형벌을 받고 있는 
그만의 감옥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망상, 번뇌를 증가시키고 
고통과 두려움을 주고 받고 있는 곳이면 
그곳이 곧 그들의 지옥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전도망상이 시작되었고 
그런 고통의 감옥에 갇혀 수많은 생명들이 
그 속에서 벗어나오지 못하는가 하는 퀴즈도 
바로 이런 부분에서 
그 탈출키와 치트키를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치트키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치트키가 아니다.  
진실의 열쇠인 것이다. 

그래서 외관상 지옥과 같은 상태더라도 
그에 대해 망상분별을 제거하고 
집착을 버린 가운데 임하면 
그곳은 바로 수행자가 안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또 그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지극히 극히 청정한 상태에 있는 
니르바나의 상태이고 
극락의 상태이기도 한 것이다. 

오십보 백보 도긴 개긴 이런 말이 있다.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입장을 취하면 0.0000000...1 의 극미와 
999999...... 의 극대는 
결국 서로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해도 전혀 없는 것과 
있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작은 하나를 대할 때 
무엇을 하는가는 그것이 비록 그 하나라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 그것이 쌓이면 결국 도긴개긴의 원리를 
계속 적용하여 
초발심은 정각의 상태와 차별이 없다고 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혀 초발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과
초발심은 차이가 있기도 한 것이다. 
이것이 본래 일체가 다 공한 바탕에서 
나타나는 구구절절한 차별의 사유이기도 하다. 




한 때 
나모사다타소가다야 라는 다라니를 놓고 
그것이 모든 생명이 다 싹 속았다 라고 음미하면서 외우기도 하였는데 
이는 암기를 위해 동원한 
일종의 시감상이지만, 
여기에서도 그런 취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생명이 전도 망상 분별 속에서 
사실은 속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벗어나려면 
이에 대한 근본적 자각 깨달음 
보드히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얻을 바는 본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바탕에서도 
얻는 것과 얻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마치 영화관에서 영화를 
영화라고 알고 감상하는 이와 
영화가 영화라는 사실을 모르고 
마치 뉴스 보도나 현실인 것으로 생각하고 대하는 이의 
차이와 같다. 

이것은 비유인데 
그 비유는 사실은 
현실과 현실의 뉴스보도가 
다 그런 성격을 갖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처님이 현실이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고 
아지랑이 같고 물에 비추인 달과 같고 등등으로 
비유하는 것도 
같은 사정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중생의 안타까운 사정을 관하고 
자비의 마음으로 대하고 
안인의 마음을 갖추고 
이 중생의 전도 망상 세계로 들어가
구제하고 제도해내라고 수행자를 가르치신 것이기도 하다. 

그 첫번째 중요항목이 바로 보시이고 
보시바라밀다를 원만히 성취하려면 
또 각 중생의 복잡하고 구체적인 소원의 내용을 
공감하는 바탕에서 그 소원을 
원만히 잘 성취시켜주어 
이를 통해 구극적으로 가장 좋고 좋고 좋은 상태로 
이끌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망상 분별 속에서서는 
치트키처럼 보이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것은 치트키가 아니고 
진실의 열쇠인 것이기도 하다. 

노래 감상을 하고 쉬기로 ~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는 것은 
사실은 지극히 고통스럽게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그 모든 것을 놓고 
이것이 모두 실답지 않은 것이고 

그래서 이 모든 극단적인 
비극과 고통을 주는 생노병사의 현실 내용을  
다 망상분별 속에서 행하는 
유희와 시와 같은 내용으로 생각하여 
이것을 초월해 뛰어 넘는 것이라고 하나의 방안이라고 본다.

그렇지 못하고 그것을 정말 고통과 비극이라고 보면 
이후 그는 오히려 그에 묶이고 집착하게 되고 
그로 인해 고통 속에 빠지게 된다. 

수렁에 빠진 이를 구하려다 
자신도 함께 수렁에 빠지는 이와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은 
칡 덩굴을 찾아낼 때까지 노래부르면서 돌아다니고  
그렇게 칡 덩굴을 찾아내 그것을 잘라와 
수렁에 빠진 상대에게 던져주는 것이 
최선일 수 있는 것이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의 
구절의 비밀에는 
조견오온개공을 통해 

현실의 그 모든 번뇌와 고통을 일으키는 그 내용들이 
하나같이 실답지 않은 것이어서 
망상분별을 일으키고 집착을 일으켜 가질 내용이 
못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 대해 망상분별과 집착을 버린다는 것이 들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도일체고액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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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aU_TQcyGk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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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o - Dernière Da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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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문서정보

 



◈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5/01/18/일/09:46


♥ 잡담 ♥변태수행론 

세상을 살다보면 가끔 자신과 취향이 전혀 반대인 그런 경우를 
보게도 된다. 

대부분 혐오하거나 꺼려하는 일이나, 사람, 동물, 기타 대상을 
오히려 좋아하는 그런 경우,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라는 의미로 
변태라고 표현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통을 받기를 싫어하는데, 
그러나 어떤 경우는 고통을 일부로 찾아 다니며,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는 자극도 고통이라 여기지 않고 
쾌감을 주는 자극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를 피학증 매조키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반대의 경우는 새디즘이라고 하는데 이는 
소설가 마르키 드 사드에 의해 이름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소설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거짓말을 
순전히 꾸며 만들어 내는 이처럼 여겨지지만, 
그러나 그 거짓말의 요소들은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고 
바탕하고 있는 것처럼도 생각된다. 

어떤 것에 결정적인 좋고 나쁨의 값이 본래 없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짜장면 하나를 놓고 생각해도 
이 짜장면이 배가 고픈 어떤 때는 지극한 좋음을 주지만, 
아무리 맛이 있어도 2 그릇을 연속 먹고 난 이후부터는 
고통을 주기도 한다. 

mun 님이 안인 수행론을 기술해 놓았는데 
혹시 mun 님이 자신이 고통을 당했다고 생각한 것도 
이런 현상에 속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도대체 무엇을 놓고 자신이 고통을 받았다고 한 것인가. 
고통의 정체 확인 문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무언가 감각을 받기는 받았을 터인데  
시나리오를 검토하다보니, 
그것을 마치 가리왕이나 문수보살이 자신에게 주는 것인양 
각색을 하여 대하고 있다. 

그럴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 상황에서 아리따운 아가씨가 그런 고통을 준다고 
혹시 생각하면, 어떤 상태가 될까. 

어느 부분에서인가 평안하게 임했다고 하는 내용을 보는데 
이것은 안인수행에 있어 반칙을 범한 것은 혹시 아닌가. 

고통이란, 못 견뎌서 지극히 힘들고 도무지 참을 수 없어 욕이 나오는 그런 것이 
혹시 아닐까 생각하는데 
평안함과 고통은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로 생각된다. 

매일 구타와 기합을 받고 지내는 문화 속에서 지내는 
이들 가운데는 
어느날 매일 받던 구타와 기합이 없는 경우에는 
불안감에 빠지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매일 받던 구타와 기합을 받는 것이 
이후 무상한 평안함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도 조금 이상한 것이다. 

혹시 안인수행을 한다고 해서 각종 고통을 채집하여 
수집하는 것을 취미로 삼아 삶을 보내기 시작하면 
이것은 또 다른 변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무엇이 정말 고통인가 즐거움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오락가락 증세를 일으키게 된다고 본다. 

조교 생활을 한 어떤 분의 심리 고백을 들어 보면 
자신이 그런 성향이 있는 줄 몰랐는데 
어느날 조교 완장을 차고 대원들을 통솔하다 보니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신이 지시하면 대원들이 꼼작 못하고 따르고 
조금 지나친 지시를 하면 
대원들이 자신에게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보면서 
절대권력자가 느끼는 쾌감과 전율을 속으로 
느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느낌이 지나쳤는지 
곧바로 다른 보직으로 옮겨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종교시설을 지키는 보직을 받았는데 
그러나 오히려 평안함을 느껴야 할 그곳에서는 
오히려 심심해서 고통을 많이 느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도 그것이 지나쳤는지 얼마후 처음 원상태로 복귀되었다고 하는데 
그 계기는 어떤 아주머니가 그곳을 방문하고 
아이를 잠시 돌봐주기를 자신에게 부탁했는데 
자신은 그 요구가 전혀 가당치 않은 요구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그 이후 곧바로 보직이 이동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이런 이야기를 통하여 인간의 심리란 
잘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결론을 얻는다고 한다. 

본인은 모든 문제 상황을 사람들이 호소할 때 
그 문제의 해결을 해준다고 나서면서  
그보다 더한 여러 상태를 오히려 여러가지로 심하게 만들어 놓고 
원 상태가 좋았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다시 원상태로 되돌려 주는  
거북도사가 여기에도 개입되었다고 
이해해보게 된다. 

삼국유사에는 한 여인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조신이라는 스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 스님의 해결되지 않는 집착과 번민이  
한 순간의 꿈을 통해 해결되게 하고 이후 
그 스님이 수행에 전념하도록  
관세음보살이 도와주셨다고 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거북도사와 같은 해결방안은 
아니었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mun 님이 안인수행을 마치고 
이후부터는 초선이란 여인을 찾아 나서겠다고 하는데 
잘 안 찾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쉽게 찾아지면, 그 초선이란 여인이 주는 지극한 즐거움의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하겠는가. 


왜 이병때 갖는 마음이 병장 때 유지되지 않는가. 
왜 며느리 때 갖는 마음이 시어머니가 되어서는 유지되지 않는가. 
왜 화장실 들어가기 직전의 마음이 화장실에 들어간 후에 유지되지 않는가. 
이런 등등의 문제와 비슷하다고 본다. 


사회 관계에서는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지내는 관계를 
바람직하다고 보는데 
고통의 문제를 놓고 보면 새디스트와 매조키스트의 관계는 
외부에서 보는 변태적 혐오감만 제외한다면 
그 당사자들간에서는 오히려 바람직한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안인수행의 참된 의미는 
매조키스트가 고통을 대하는 것처럼 
고통을 오히려 좋아하고 찾고 구하면서 대하는 상태는 적어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lab 님이 제시하는 여러 수행은 
사실상 표준적인 일반적인 행위 반응을 토대로 생각하면 
이미 그 자체가 하나의 극단적인 변태 행위를 나열해 놓고 
수행이라고 명칭을 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형태와 너무 극단적으로 
다른 유형을 그 내용들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lab 님의 수행론이 오히려 올바른 것이라면 
그러면 변태로 보는 현상들이 오히려 정상인 것은 혹시 아닐까. 

이들에 대해 오락가락 혼미 증세를 일단 정리하지 않으면 
정상과 비정상, 표준과 변태, 즐거움과 고통, 유희와 수행 
이런 온갖 관념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일반적인 정상의 범위에서도 
약간은 변태적인 성향을 찾아 볼 수 있다고 본다. 

대부분 무언가 좋은 것을 찾지만, 
그러나 그렇게 구하는 것이 곧바로 쉽게 얻어지면, 
오히려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경향이 하나 있다. 

마치 게임과 같다. 
게임이 너무 쉽게 목표상태가 달성되게 되면, 
그 게임에 대해 흥미를 잃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인기가 있는 게임은 
무언가 원하는 것이 될 듯 될 듯하면서 
잘 되지 않고 
그래서 약간은 애를 먹이고 힘든 그런 것을 
사람들은 오히려 좋아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금지하지 않으면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가 
금지하면 오히려 그것에 고도의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도 갖는다고 한다. 

이것을 역이용하여 공연히 ~ 하지마를 외치는 
경우도 있는데 

특히 이 반어적 표현이 오히려 자극을 주고 
반어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곧바로 관심을 잃어 버리는 현상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녀간 데이트 과정에서 
상대가 너무 좋아 처음에 모든 것을 
상대가 원하는대로 다 허락해줬더니 
곧바로 버림을 받았는데 
이 문제를 어떡하면 좋은가 하고 
하소연하는 경우도 만나게 된다. 

그런 경우의 상담 내용은 다음이다. 
아이를 잘 키우십시오,

물론 ~하지마가 유효한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적절한 경우에서 
그렇다고 본다. 

어떤 게임이 도무지 처음부터 
전혀 해결할 수 없는 상태로 제시되면 
거의 대부분 이를 게임으로 여기지 
않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복잡한 관계 때문에 
오로지 직설적인 표현만이 바람직함을 외치다가 
심한 고통을 받으신 분도 있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직설적인 것만을 사람들이 단순하게 
좋아하는 것이라면, 
왜 모든 게임은 그렇게 복잡하게 
구성이 되어 있겠는가. 

각종 게임에 
각종 어려운 문제를 곧바로 쉽게 해결해버리는 
치트키가 제공되지만, 
오히려 게이머를 불사신 또는 수퍼맨 정도로 쉽게 만들어 주는 
이 치트키 때문에 
오히려 게임에 집중을 못하고 
재미를 못 느낀다는 경우도 있기도 하다. 
치트키를 사용하면 되는데도 굳이 사용하지 않고 
게임에 임해보지만, 
몰입이 잘 안되는 것이다. 

상처가 나면 상처가 아물 때쯤 
간지러움을 느끼게 되는데 
그 때마다 그것을 자꾸 긁어서 
상처가 완치가 안 되고 
계속 그 상태를 반복해 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약간은 이상한 심리라고 본다. 

무언가 알면서도 사람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의 문제가 있기는 있는 것 같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오히려 오래 오래 애틋하게 기억하고 
옆에서 늘 사랑을 진실되게 성실하게 베풀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전혀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고 무시하는 경향은 
변태인가 정상인가. 

여하튼 모든 삶의 문제에 
최고의 레시피를 제공하고 
모든 것이 다 평안함에 이르고 게속 그 상태에 머무르면 
모든 문제가 없고 좋을 것 같지만, 

그런 상태에서는 오히려 무언가 
약간의 무료함이 있다고 본다. 

삶에 번뇌와 고통의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인데 
일단 다른 이의 번뇌와 고통에 공감을 하면서 
그 번뇌와 고통을 해결해주려 임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일부 연구인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망상 상태로 전제하고 
모든 심각한 문제를 단순한 시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여 접근하는 경우가 있다. 

그 당사자들도 정말 그렇게 편하게 
시로 그 문제를 서로 대하고 바라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러나 현실의 구체적 당사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다른 이들의 지극한 고통에 공감을 못하고 접근하는 
그런 변태는 체포되어  
철저한 응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보게 된다. 




팔다리가 없는 닉브이치치란 사람이 
어느날 TV 에 나와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할 때부터 
이 이상한 변태 증상을 이해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닉브이치치는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낳아 기르고 있는데... 

사지가 멀쩡한 이들 가운데에는 
여전히 주변 여성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필요하다면 외과수술을 받아서라도  
조금 관심을 끌 상태로 변신을 하는 것이 
오히려 삶 자체에는 더 도움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남 이야기하듯 하지만, 
당사자들은 절박하다. 

오락가락한 세상인데 
세상이 오락가락인가 
사람이 오락가락인가. 
둘 다인가. 

취향이 제각기 다른 이 문제는 
단순하게 보면, 
한국사회에서는 나훈나를 좋아하는가 남진을 좋아하는가의 문제도 되고 
송대관을 좋아하는가 태진아를 좋아하는가의 문제도 되고 
과메기를 좋아하는가 홍어를 좋아하는가의 문제도 되고  
살찐 체형을 좋아하는가 날씬한 체형을 좋아하는가의 문제도 되고 
고도의 위험성이 있는 익스트림 스포츠나 번지점프 바이킹 롤러코스터 등을  
공포와 고통과 혐오의 감정으로 대하는가 
아니면 지극한 상쾌함과 희열을 주는 유희로 대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이 각 경우마다 
이들 다 싫다는 경우도 있고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 무방하고 괜찮다는 
또 다른 변태취향도 있다. 

여하튼 이것이 각각에게 잘 조화롭게 
되어야 할 터인데 
각 경우마다 뒤바꿔지면 
사실 그것이 곧 지옥의 상태인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옥이던 또는 어떤 이에게는 하늘의 상태이던 
여하튼 사회는 그 각 방면의 최고수들을 
일단 존중한다는 점만은 인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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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BANG - LIES (거짓말)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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