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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휴게소]-2015_02월_01주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5. 2. 1. 16:22

[댓글휴게소]-2015_02월_01주

http://story007.tistory.com/1025
10gfl--2015-02월_댓글보전.txt




◈Mun Tokyun 2015/02/08/일/11:13


♥ 잡담 ♥상식과의 갈등 


매번 아침에 일어날 때 
little 님이 제기한 반론과 lab 님의 답변을 놓고 
검증작업을 하게 된다. 


little 님과 lab 님의 입장은 
일반 상식의 입장과 불교의 입장을 서로 대변하는 내용 같아서 
자주 검토해보게 된다. 

그래서 일어나는 순간 
오늘도 어제 본 모습과 비슷한 모습을 또 보는구나. 
이렇게 느끼고 
다시 little님 생각처럼 
실재도 이처럼 비슷한 모양이고,
따라서 현실은 실답다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lab님 주장처럼
이것이 실답지 않다는 것이 옳은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깐 검증을 해보게 된다. 

과거에 무수하게 본 모습을 또 보게 된다는 
일종의 기시감을 느끼지만, 
그러나 과거에 무엇인가를 보았다는 생각도 사실은 
현재 지금의 생각아닌가. 


그런 가운데 
불의 정체를 각기 하나의 감각기관만 가진 5인의 sam이 실험하는 과정에서 
손만 가진 sam 이 뜨거운 그 무엇으로 대하는 불을 
눈만 가진 sam 은 무언가 붉게 타오르는 모습으로 대한다는 내용을 놓고 
이 둘의 관계를 살피면 서로 얻은 내용이 아주 엉뚱한 것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우리 쪽 사정이지만,
그러나 정작 실재와의 관계에서는 엉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러나 이 실재란 결코 어떤 단서도 제공해주지는 않기에 
궁금증이 시원하게 풀리지는 않는다. 


doctr  님이 보고 있다는 설무구칭경의 내용을 보면 



무구칭 거사가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고 나온다. 

...

그러자 무구칭이 다시 말했습니다. 


‘일체 만법의 성품과 모양은 다 허깨비 같은 것입니다. 

일체 유정과 모든 언설의 성품과 모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모든 지혜 있는 사람이 

문자에 대해 집착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언설이 

모두 성품과 모양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 문자 아닌 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이 해탈의 모습이 바로 일체 만법입니다.’ 

....

fr  설무구칭경 k0121sf--☞이 음식을 먹어도 좋습니다.
참고 fr http://story007.tistory.com/1025#001


lab 님은 한편 


현실이 꿈이나 환영과 같다고 할 때, 
꿈 밖에서 꿈을 관하는 입장이 있고 
꿈 안에서 꿈을 관하는 입장이 있다는 취지로 글을 올린 것으로 안다. 

여기에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무구칭 거사가 

‘일체 만법의 성품과 모양은 다 허깨비 같은 것입니다. 
...
이 문자 아닌 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등으로 마치 꿈 밖에서 꿈을 관하는 입장처럼 
즉 진여 실재의 입장에서 현실을 관하는 입장으로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입장도 
그것을 관하고 분별하는 것이므로 
이 자체도 하나의 분별이고 말이 아닌가. 

즉, 현실에 대해
현실 밖에서 즉 진여 실재의 입장에서 
이것을 관하는 입장을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도 결국 그것이 분별되고 언어로 우리에게 제시된 것인 이상, 
그 자체가 하나의 분별이고 말이다. 

그래서 완전히 분별을 떠난 실재 진여에서 
무엇을 관찰해 내용을 제시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로 생각되지 않는다. 

과연 분별을 떠난 실재 진여 안에서
그렇게 다시 현실을 관하고 분별을 세우고 제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이런 의문을 가져본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하면, 

실재 자체의 내용은 직접 얻지 못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실재를 떠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우리가 얻는 그 모든 내용도 역시 실재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 실재 자체는 아니지만, 
실재와 관계하여 우리의 감관을 통해 마음을 통해 
얻어낸 그 무엇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현실은 실재 자체는 아니지만,
그러나 실재와 매우 밀접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그것이 또 우리가 대하고 얻는 현실내용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현실을 실답다고 하던 실답지 않다고 하던, 
완전히 무시할 도리는 없는 것이라고 본다. 




다만 경전에서는 이런 이론적 문제외에도 

주어진 현실 속에서 삶을 잘 살아가는 팁 같은 것도 함께  
취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다수가 집착하여 행하는 바를 중지하고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집착없이 행하면 
길게 보아 좋다는 그런 생활의 팁이다. 

lab 님이 그간 자주 같은 내용을 반복한 
탓에 그런 생활의 팁을 얻게 된다고도 본다. 




lab 님이 본인이 여환삼매를 통해 파리로 잘 변신하지만, 
그러나 파리로 변신한 다음에 사람으로 재변신하는데 
자주 실패한다고 말하는데 

lab님이 본인에게 약간의 최면 장치를 걸어 놓은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책상 위에 지금껏 보이지 않던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같은 작은 유리조각이 갑자기 보인다던지, 
이상한 커피 그릇이 놓여 있다던지, 
이런 경우 잠깐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바라보다가 

순간 의식이 몽롱해지고 
그 뒤로 파리가 되어 날아다니는 느낌을 받다가, 

한참 지난 후에는 
무아의 입장에서 
굳이 사람의 형체를 고집할 이유는 없는데도 
왠지 사람으로 다시 변하지 못해
안타까와 해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받게 된다. 


그리고 최면이 풀릴 즈음 
무언가 그간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잘 참아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듯한 내용을 속삭이는
느낌이 들고, 
...
다음을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생각해보면 인생이 꿈과 같다는 것도 
사정이 비슷하다고 본다. 

매 순간 감각하는 현실 내용들은 생생하지만,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그 생생한 내용을 
다시 떠올려 재생할 수는 없다. 

결국 죽게 될 때 '아 그 동안 좋은 한 편의 꿈을 잘 꾸었다'라고 
생각하면서 삶을 마치게 된다면 
그나마 다행인 삶이라고 본다. 

그러나 또 그것뿐이라면 조금 섭섭하지 않는가. 


정말 좋은 삶이었다면 
최소한 다음 꿈도 또 다음 꿈도 
그렇게 좋은 꿈을 꿀 수 있는 어떤 
공짜 영화관람 티겟이라도 하나 얻고 마쳐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다 해도 역시 섭섭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결국 보디사뜨와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여기에는 풀리지 않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이 세상의 모습이 자신의 마음안에 맺힌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근본정신이 자신이 보는 자신의 육체의 소멸과 관계없이 
계속 유지되고 내용을 담아 가게 되는가.
그리고 그렇게 되는 원리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결국 믿음의 문제로 귀착된다. 

여하튼 그렇게 계속 삶이 이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좋다고 볼 수 없는데, 
그런 가능성도 있다고 하니, 
역시 보디사뜨와의 권유와 유혹을 일단 검토는 해보아야 할 일이라고 본다. 





Grand Corps Malade, Calogero - L'Ombre Et La Lumière

>>>

https://www.youtube.com/watch?v=LocpGdw4m8w

>>>




노래의 의미는 모르는데 
lab 님이 올려 놓은 것을 들으니 
분명 '아후쿵텡풍텡테'의 메세지를 담고 있는 곡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노래 속에 보디사뜨와 라는 말이 들린다. 

확인해보니, 
pour disparaître 라는 부분이 그렇게 들리는 것 같다. 

또 노래 안에서 글을 그만 쓰자는 취지의 말이 나오는데 
보디사뜨와의 사명도
결국 세속 세계의 번뇌에서 떠나야 한다 사라져야 한다.
이런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매번 이런 식으로 구글번역기를 통해 시감상을 하니 
좀 답답한 느낌이 든다. 

서로 이러지 말고 
제발 시간내서 불어를 기초부터 한 번 배워 봅시다. 

보디사뜨와가 무언가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뛰어 다니는 
다른 버전으로 올려 놓는다. 

가사는 http://story007.tistory.com/#004 


lab 님이 최근에 살짝 소규모 사업 방안을 제시했는데 
지금 그것을 적극 검토 중이다.

매주 공휴일마다 행상을 하는 사업인데 
상당히 건설적인 아이디어로 보인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검토 중인데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최면에 걸려든 것인지 
먼저 검토작업을 해봐야겠다. 

위 노래와는 별도로 어떤 노래를 듣던 중 
당신도 좋고 모두가 다 좋고
심지어 부처님도 기뻐하시는 좋은 일 아닌가. 
그런 가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그런 부분에서 최면에 걸려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과거에 올린 글에서
혐의가 가는 노래를 찾아 냈다. 
물론 lab님이 pass한 노래다. 

최면 해석작업을 위하여 재감상 분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

elephant collective mon amour

>>>

https://www.youtube.com/watch?v=JNNcIXRKTH8

>>>


가사는 http://story007.tistory.com/1023#005





문서정보

 


◈Mun Tokyun 2015/02/08/일/01:51


♥ 잡담 ♥싼 것이 비지떡 

어떤 물건을 사용할 때 값은 싼데 
사용 중 실망을 많이 느낄 때 
싼 것이 비지떡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비지떡이란 것이 무엇인가 잘 모른다. 
사전을 보니 비지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넣고 반죽하여 둥글넓적하게 부친 떡으로 
보잘것없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건강에는 좋을 것 같은 느낌을 받기는 한다. 

lab님의 권유에 의해서 
자그마한 수공업을 계획 중인데 
재료를 테스트해보니, 
가격이 싼 재료는
작업과정에서 정신 건강을 많이 번거롭게 만들고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가격이 너무 비싼 것은 그 자체로 정신 건강을 해롭게 한다. 

고민이다. 







문서정보

 



◎005, 

◈Lab value 불기2559/02/07/토/12:28


♥ 잡담 ♥울고싶은 아이 때리기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사정상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떤 계기가 되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거나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매우 반갑게 여기게 된다. 

doctr 님이 본인에게 그런 경우라고 본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그 다른 사람의 사정 때문에 
오히려 상대를 도와주는 것이 역효과를 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청소년기에 있는 인턴연구원과 같은 경우 
대부분 다른 이의 이야기를 잔소리로 생각하게 되고 
잔소리가 심해지면 오히려 그 잔소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행해 나가는 
역효과가 일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전혀 어떤 정보나 자료를 주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러나 막상 정보나 자료를 제공하면,
그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니 
도움을 주고자 하는 제 3 자로서는
매우 난처하고 어려운 입장이 되기 쉽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청소년인 상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신도 또한 그런 것이다. 
자신도 자신이 충분히 잘 알아서 할 수 있는 내용을 놓고 
다른 이가 자신을 도와주려고 나서면 
오히려 기분을 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누군가 자리를 양보하면 
내가 벌써 이렇게 늙었는가 하고 생각하며 
오히려 불쾌하게 여기거나 슬퍼하는 경우도 그런 사례의 하나이다. 
남이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했는데도
자신은 오히려 그 반대의 내용을 자신은 받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복잡한 경우에는 
그냥 그 상태로 맡겨 놓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 오히려 더 좋게 될 수 있다고도 본다. 

오래전 카메라 액정이 고장나서 수리를 하러 갔다가 
고치지 못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상태로 오래 방치해 두었는데 
어제 졸업식장에서 그 사진기로 사진을 찍으면서 확인해보니 
액정이 다시 정상상태로 되어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자연 수리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문제를 그대로 방치해 두어도 
언젠가는 다시 좋게 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일체중생이 언젠가는 다 성불하게 된다.
이런 명제도 그런 내용과 일부 관련되는 내용이라고 본다. 






그러나, 원래 삶의 방향에 대해 원칙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무엇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지도를 놓고 최종적으로 가야할 목표점을 
A 라고 할 때 
그러나 누군가 그 목표점을 잘못 알고 
다른 B 를 목표점으로 잡고 나아가면 
그렇게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그것은 A 에 도착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잘못되고 헛된 무의미한 노력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하게 된다. 

그래서 가능한한 그런 노력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하늘을 향해 나아가려는 이가 
방향을 잘못 잡아 
바다쪽으로 땅을 깊게 파 나가면 
그렇게 파 나가면 나간만큼 힘은 힘대로 들고 
하늘에서는 멀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어떤 상태를 최종목표점으로 잡고 
방향을 찾아나가야 하는가가 중요한 내용이라고 보게 된다. 

현실에서 유대인이 거둔 성과는 놀랍다. 
노벨상을 비롯해서 세계 유명대학의 교수 비율
경제분야나 금융계나 법조계, 영화 미디어 산업, 의료 분야 등등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또 이것이 세속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바라고 추구하는 내용들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현실이 앞의 비유와 
사실은 사정이 같다는 점이다. 

그래서 1 차적으로 문제점이 있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 문제는 결국 다음이다.
이들 각각이 집착하는 내용을 놓고 볼 때
그것이 비록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정작 다른 내용들이 갖는 가치와 비교하여 보면
그렇게까지 가치가 아주 높지는 않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에 집착하여 이보다 훨씬 높고 많은 가치를 희생시켜 나가는
문제가 현실에 많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런 문제점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가치가 다른 것들을 함께 놓고
그 가운데 하나를 얻고 
대신 하나를 희생하는 문제를 제출하면 
이들이 당장 자신의 눈에 모두 명확하게 보이면 
사람들은 이를 놓고 큰 실수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 사이에 조금 시차가 발생하면 
그것이 단순한 현실 안에서의 일이라도 
잘못된 판단을 많이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재산을 얻게 되지만, 
그로 인해 대신 목숨을 잃거나 위험하게 된다면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하고 직접 물으면 
그래도 대부분은 목숨 쪽을 선택하게 된다. 

재산에 집착하다가 
목숨을 잃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대부분 
쉽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내용들이 원인과 결과관계로 얽혀 
조금 시간차가 있게 되면 
이 관계를 서로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을 행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고사나 역사 내용을 보다 보면 
이런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나온다. 




그런 사례로 생각나는 사례를 몇가지 들어 본다면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도주공이라고 불리우는 범려라는 이는 
굴원을 도운 재상으로 유명한데 
그의 아들이 다른 나라에서 잘못을 범하여 
죽음에 처하게 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이 아들을 구출하기 위해 범려의 아들 가운데 장남이
나서게 되는데, 
이 장남은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재물에 대해 인색함이 강하였다고 한다. 

결국 동생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돈을 아끼려다 
판단을 잘못하여
구출에 협조를 해주었던 이에게 주었던 재물을 다시 찾으려 노력하다가
그로부터 분노를 사게 되고, 
이로 인해 결국 장남이 구하려던 동생은 구출되지 못하고
잡혀 죽임을 당하게 된다. 

만일 그 장남이 이런 사정과 그 인과관계를 다 잘 파악하였다면 
그런 경우에도 그렇게 했으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장남은 당시 
돈에 눈이 가리워서 장님이 된 상태에서
사실 더 중요한 내용을 보지 못한 것이다. 


한편, 맹상군과 그를 돕던 식객으로서 풍환이라는 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풍환은 어느날 맹상군의 부탁을 받고 
맹상군의 영지였던 설땅에 가서
그곳에 사는 이들이 갚지 못하는 
채무를 모두 탕감해 주는 약간은 어처구니 없는 행위를 한다. 

이에 대해 맹상군은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그러나 풍환은 맹상군에게 부족한 은혜와 의리를 
돈으로 산 일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후 맹상군이 정치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3 천명에 달하는 식객이 모두 다 떠나가지만, 
이 풍환은 그를 배신하지 않고 
과거에 자신이 그렇게 채무를 탕감시켜 맹상군이 은혜를 베풀어 놓았던 땅으로
그가 피신하게 함으로써 
그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이런 맹상군과 풍환에 얽힌 이야기는 
꾀 많은 토끼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하여
피신할 굴을 세 개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한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사자성구와도 관련되는 내용이다. 

이런 여러 이야기 속에는 다 일정한 교훈이 들어 있다. 
무엇인가를 얻고 무엇인가를 희생하는 과정에 
모두 가치 비교의 문제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무엇을 희생하고 무엇을 얻는 것이 좋은가 하는 
문제가 인과관계와 관련하여 복잡하고 어려운 
삶의 문제를 제출하는 것이다. 

역사는 현실에서 이런 사정을 이어서 한 내용으로 보여주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자신이 당면한 내용들이 
그렇게 연결되어 잘 보이지는 않는 법이다. 
그렇게 관계를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비로서 그 인과관계를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런 현실속의 인과관계를 넘어 
이제 생명을 다른 형태로 바꾸어 가며
무한한 겁에 걸쳐 벌어지는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리 현실에서 지혜가 깊더라도 
역시 또 다시 장님의 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에 대해 가르침을 베푸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게 되기 쉽다. 
그래서 사실 지혜에 있어서도
대충 얕고 짧은 지혜보다는
아주 깊고 깊은 지혜가 필요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올바른 목표점으로
방향이 전환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그런 형태로 나아가면 나아갈 수록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짧게 보면 여전히 그것은 문제는 문제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입장을 달리하여 이 모든 내용을 아주 길게 보면
또 그것은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는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륵보살님이 성불하시는 데 56억년이 남아 있고 
이 기간에 걸쳐 이 세계의 생명들이 다 함께 제도되는 데 필요한 
여건이 마련되게 된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어떻게 되고 안 되고를 놓고 따지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접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매우 장기적인 기간에 걸쳐 살피면, 
비록 단기간 입장에서는 대단히 무의미하고 
안 좋은 내용이라고 보지만, 
오히려 그것이 최종 목표점에 빨리 
이끌어 가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경우도 
찾아 볼 수도 있다. 

그런 예로는, 앙굴마라의 사례를 생각할 수 있다. 
그가 잘못된 믿음으로 살인을 범한 것은 
물론 문제이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그런 잘못으로 인해 부처님에 의해 
빨리 아라한이 되게 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무한한 시간을 놓고 생각한다면, 
모든 생명은 끝내는 어느 순간 방향을 전화하여
올바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되기 마련이라고 보면, 
일체 생명은 결국 모두 끝내 성불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또 그렇게 성불을 이루면 
과거의 잘못은 또 그와 반대의 형태로 
나중에 모두 좋게 사용될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아주 최장기적인 입장에서 2 차적으로 말한다면 
당장 문제되는 내용들도 끝내는 모두 좋게 변화할 내용들로써 
그 상태 그대로 조금 방치한다 해도 
크게 관계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씩 시각 차이는 있다고 본다. 

행복론이 현실 입장에 치우쳐 편집될수록 
원래 최종목표점과의 관계도 
멀어지게 되는 사정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문제도 결국 앞의 사정처럼 
정말 어떤 방안이 결과적으로
가장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할 바가 있다고 본다. 

현실에서는 사실 
최종적인 목표점을 잘못 생각하기 쉽고 
또 최종적인 목표점을 올바로 잡아도 
곧바로 그 상태에 이르는 방안을 찾아내기 곤란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단 최종적인 목표점을 올바로 설정한 가운데 
당장 직접 그에 이르기는 곤란하지만, 
그러나 현실에서 그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가장 최선이 되는 방편을 늘 찾고 실현하려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는 
해탈, 니르바나, 깨달음 등의 상태를
최종 목표점으로 설정하고, 

현실에서는 그에 가깝게 다가설 여러 방안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런 입장에서 행복론의 편집 방향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에 대해 
또 다른 입장을 생각할 수 있다. 

본래 최종목표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한다면 
현실에서 그런 차별적인 내용을 놓고 
문제삼고 따지는 것 일체가 다 의미가 없고 
부질없는 것이라는 입장을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이 doctr 님이 소개한 
설무구칭경 내용과 관련되는 내용이라고 본다.
이에 관한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다.  

○ [pt op tr] fr http://story007.tistory.com/1025#001


이런 유마힐(무구칭) 거사 보살의 입장은 
결국 진여 실재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렇다 저렇다 시시비비를 일으키고 논의하는 것 일체가 
다 의미없다. 이런 입장과 관련이 된다고 본다. 

[유마힐소설경 그림]
원본 FR 선암사성보박물관 소장 판본 http://www.seonammuseum.com/Album/AlbView.asp?StrLanguage=kor&PNo=3&AlbTbl=tblJeonjeok&sValue=#point


앞 경전 내용에 나오는 내용은 
수행자나 일반인이 공통적으로 문제로 보는 여러가지 내용
즉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
또는 각종 악행 등을 나열하면서 

현실에서 본래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는 것이며 
그런 것들이 본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임을 
수행자는 관할 수 있어야 함을 
제시하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입장에 대해서
이해를 잘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쉬는 시간에 잠깐 드라마를 보고 왔는데 
드라마에서 한 검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세상사람들은 비리가 있으면 힘으로 막으려고 하거나
돈으로 막으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은 한 걸음 더 나아가...어떻게 어떻게 해서
이를 어쩌구 저쩌구 하겠다
이런 취지의 대사를 심각하게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유마힐 무구칭 거사는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이 현실에서 문제상황으로 분명히 보는 
여러가지 비리나 악과 고통 등의 문제를 
원천적으로 그런 것은 본래 없는 것이라고
말과 이론을 통해 밝히며
제거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한편 경전에서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유마힐 거사는 
미륵보살을 비롯하여
기타 부처님 제자들 대부분을 비판하고 논파한 전례로 인해 
상대가 문병을 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게 만든 거사로 나온다. 


결국 최종적으로 문수보살이 문병을 나서게 되는데, 
이는 유마힐 거사가 제시하는 상태가 
불교 여러 가르침 가운데
문수보살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비로소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상태이며,
또 문수보살이나 유마힐 거사 정도에서 적절히 취할 수 있는 
방편이나 가르침이 된다는 사정도 
시사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원래 불교의 최종적 목표점이
어느 내용에 가까운가를 놓고 생각한다면, 
위 경전에서 제시되는 내용처럼
사실은 모든 분별을 떠나고 선과 악도 다 떠난 
그런 입장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최종적인 지점에 가까운 것이므로 
초보 수행자는 취하기 어렵고 

경전에서 보이는 것처럼 
불퇴전위 보살이나, 일생보처 보살과 같은 경우도 
사실은 이 내용을 그대로 취해 현실에서 곧바로 
행하기 힘든 내용이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들 내용은 중생제도를 위해 성불을 포기하는 
자비 이찬띠까(=성불할 수 없는이)로서 
수많은 세월동안 중생제도 행을 해온 
유마힐 거사나 문수보살과 같은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은 이런 분들이 취하는 방편이나 내용이
잘못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현실적으로 초보수행자가  
그런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현실에서 실천해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실은 수행 안에서도 
다양한 차별과 단계를 나열해볼 수 있다. 


보통 일반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고통 상태를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환술사가 만들어낸 환술과 같다는 등의 
여러 비유를 하는데 
수행에 있어서 여러 입장의 미세한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보기로 한다. 

다음 내용은 한 최면술사가 쇼무대에서 보이는 최면 공연이다. 
전에도 소개한 내용인데 
최면술사가 최면으로 개를 하나 있다고 만들고 
다시 개가 죽게 하고 
또 다시 개를 살려낸다. 
그 때마다 최면에 걸린 이는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참고자료] http://www.youtube.com/watch?v=9Mdz_GKZ0X4 

Hypnotist Marc Savard makes every volunteer on stage CRY!

관련내용 - http://buddhism007.tistory.com/664 ☞여기서 현실이 환영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08psfl--불교공부_단상_20141022.txt ☞여기서 현실이 환영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고 이런 환술사가 환술(최면)에 걸때, 
최면에 걸린 이들이
무언가를 있다거나 없다거나 또는 생겨났다거나 사라졌다고 생각하게 되는 상황이
사실은 우리가 놓인 현실의 상황과 같다고 말하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가 대하는 현실이
그런 실답지 않은 꿈과 같고 환영이나 환술과 같다는 그 의미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자기자신과 자신의 것, 기타 집착을 갖는 여러가지 것을 놓고 
그것이 파괴되고 사라지는 문제와 고통의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실재에는 그런 내용이 본래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현실의 내용을 하나 놓고 
바로 이런 서로 다른 두 측면에서 이를 대하고 
달리 이해하게 되는 입장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최면걸린 상태를 하나 놓고, 
최면 걸린 이들이 최면 상태에서 보고 이해하며 해석하는 내용과 

처음부터 최면에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보며 이해하고 해석하는 내용이 있게 되는 것과 사정이 같다. 

우선 최면 걸린 입장에서는
자신이 최면 속에서 
개를 보게 되고 그 개가 죽었다 살아나는 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런 개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고 
원래부터 없던 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일 자체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처럼 
사람들이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보게 되는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것
또는 생사, 생멸현상, 그리고 고통들의 내용을 같이 놓고서도, 

이들이 현실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 그런 내용이 있다고 여기고 
또 그런 내용이 나타났다가 또 멸해 없어지기도 한다고 보면서
이런 현실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입장이 하나 있을 수 있다. 


또 그와는 달리 
이런 내용은 그 실재나, 감각현실과 그에 대한 관념 판단의 내용의 관계 등을 놓고 이해할 때 
본래 그런 내용은 그 안에서 얻을 수 없고
따라서 그런 내용은 이들에서는 얻을 수 없다고 보는 입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측면이 모두 함께
제시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이런 두 다른 입장이 
불교에서 제시하는 여러 수행목표와도 관련이 된다. 






이를 통해 가장 단순한 수행목표와 방안부터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이 나열해 볼 수 있다. 

1.  우선 현실 속에서 나쁘다고 보는 내용은 없애고 
좋다고 보는 내용을 얻어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이를 통해 비록 일시적이지만, 만족을 얻고 머무르게 된다.
- 일반적 상식적 입장의 삶의 목표


2. 현실 속의 좋고 나쁨이 모두 꿈과 같은 내용이어서 이것을 모두 멸해 
완전한 니르바나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우선 자기자신만 그런 상태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스스로의 인과 관찰을 통해 이런 상태에 이르는 수행을 한다.
- 아라한 연각의 수행 목표 

3,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중생도
고통을 완전히 멸하고 니르바나 해탈 깨달음에 이르게 할 것을 목표로 수행한다.
- 보살의 수행 목표 

이렇게 기본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뒤의 보살의 수행 방안에서는 조금 더 여러 단계를 나누어 볼 수 있는데 

31-이 가운데에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중생을 제도하는 데 있어서 
벗어나야 할 고통이나 제도해야 할 중생이
실제로 있다고 보는 입장도 생각할 수 있다.


32- 그런데 사실은 생사 즉 열반의 깨달음의 상태에서는
현실에서 있다고 보는 생사나 고통과 같은 내용은  
현실에 본래 있는 것이 아님을 관하게 된다. 

이것이 사실은 앞의 최면 상황에서 
처음부터 최면걸리지 않은 관객이
최면걸린 이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관하고 이해하는 입장과 같은 것이다. 

즉, 최면걸린 이들은 그 최면상태에서
최면술사의 최면에 의해
마치 개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처럼 생각하지만, 
관객들은 본래부터 그런 사실 자체가
일체 없었음을 알고 관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와 같이,
현실 속의 사람들은 
자신이나 자신의 것, 다른 이, 생명, 목숨, 생사, 생멸, 고통, 악과 같은
여러 문제가 무한히 있다고 보는 것이지만, 
수행자는 현실이 본래는 그렇지 않음을 깨닫고 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자신이나 다른 이들이 모두 이런 깨달음과 관찰을 통해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고
이를 통해 그런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날 것을
기본적인 목표로 제시하게 된다. 

다만 현실의 각종 고통의 상황에서 
오직 이런 방안만으로 
자신이나 다른 생명이나 그 고통을 벗어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임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여하튼 이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수행 방안인 것만은 분명하다. 




33- 그러나
물론 앞과 같은 현실 사정으로 인해 
다른 생명이 쉽게 그런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반복해 받게 된다. 

그렇다고 또 그런 상태에서 
자신이나 다른 중생들이 
원칙적이고 직접적인 기본 방안만을 통해 
직접 고통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게 하는 것 역시 곤란하다. 

그래서 이런 사정과 상태에서 그들을 제도해내기 위하여 
수행자는 상대의 망상분별 집착의 상태에 들어가
그 망상분별 상태에서 
우선 수행자는 복덕을 얻고 
지혜를 얻는 방안을 취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각종 선교방편을 통해 
최종적으로 다른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게 하고 
제도하는 방편을 취해 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런 방안이
사실은 보살 수행자가 취하게 되는
가장 표준적인 수행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계-정-혜 3학,
그리고 보시-정계-안인-정진-정려-반야-방편-원-력-지의 10 바라밀다 
자비희사 사무량심 등의 수행이 모두 이런 내용과 관련된다. 




34- 그런데 수행자가 수행과정에서 
복덕과 지혜를 닦는 수행에 대해 
잘못 뒤바꿔 생각하여 

수행자가 수행을 하는 것은 
이처럼 기존의 망상분별 상태에서 복덕이나 지혜라고 본 내용을 
구하고 얻는 것 자체가 목표라고 생각하며 
얻을 것이 있음(유소득)을 방편으로 수행에 임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수행자가 빠지기 쉬운 잘못이다. 




35- 그러나 원래 실재 진여의 입장에서 이 모든 상황을 본다면 
어떻다고 말해야 하는가. 

그것은 최면에 걸리지 않은 관객이 
최면걸린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보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과 
사정이 비슷하다. 


그래서 수행자가 원래 망상분별 안에서 수행을 통해 
얻는 복덕이나 지혜를 구하는 일은 

사실 최면술사가 행한 최면 (즉 망상분별 집착)을 바탕으로
그 안에서 중요하다고 보는 일 
예를 들어 개를 다시 살려내는 일과 같은 일에서 
기쁨을 얻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수행자는 그렇게 망상분별에 바탕하여 
복덕과 지혜에 집착하여 그런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닌 것이고 

중생제도와 깨달음 니르바나를 얻고
또 얻게 하는 데에 최종 목적을 두고
그에 초점을 두고 수행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행자가 수행을 하는 것은 
기존의 망상분별 상태에서 복덕이나 지혜라고 본 내용을 
구하고 얻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하여 
얻을 것이 있음(유소득)을 방편으로 수행에 임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는 달리, 
얻을 것이 없음(무소득)을 방편으로
망상분별과 집착을 떠나 이런
표준적인 수행방안에 임하고
이를 원만히 성취하는 것이다. 




36- 한편, 최면 걸린 상황(현실)에서 
무엇이 선하다 악하다 좋다 나쁘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기타 등등으로 
온갖 망상분별을 하고 집착을 일으켜 갖지만, 

수행자는 결국 실재 진여를 현실과 함께 관통하는 지혜를 닦아, 
그 일체가 다 희론이고 
무구칭 거사가 경전에서 밝히는 것과 같이 
‘일체 만법의 성품과 모양은 다 허깨비 같은 것입니다.' 라는 
관을 하게 된다 .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 중생제도를 취할 수 있는 방편은 
표준적인 방편에 제한되지 않고
중생제도를 위한 것이라면, 광범위하게 방편을 취할 수 있게 되어 
그 방편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서 현실적 걸림돌이 되는 것은 
다음이다. 

중생제도를 위해 수행자가 어떤 방편을 취할 때
그로 인해 수행자가 고통을 직접 받거나,
또는 그로 인해 간접적으로 고통을 돌려 받게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각 경우에 
망상분별 안에서 받는 이런 고통의 현실에 대해 
그 수행자 스스로가
그것을 평안히 참고 극복해 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의 팔을 부러뜨리거나, 손가락을 자른다면,
이를 통해 상대를 제도할 수 있다고 할 때 
정말 상대의 제도를 위해서
이런 고통을 무방하다고 여기면서
상대를 제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현실에서
그렇게 팔이 부러지거나 손가락이 잘라져 고통을 겪는 순간에도
그 모두가 최면(환술) 속의 일이어서 
그런 것은 본래 얻을 수 없고 공하다는 관을 통해
자신이 이들을 모두 평안히 참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된다. 


수행의 단계가 높을수록 그렇게 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수행의 초보자는
이론은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경우 수행자는
원래 일반인의 전도 망상 분별 상태로 다시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의 단계가 높으면 
설령 자신이 무간 지옥에 갇히어 한량없는 시간 동안 
그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더라도, 
중생제도를 하겠다. 이런 서원을 일으켜 갖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자세로 중생제도를 행하는 상태는 
앞의 상태보다 훨씬 높은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입장의 수행자는 
초보 수행자가 가장 표준적인 방안을 통해서만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광범위한 방편을 통해 중생제도를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7- 그러나 이제 그처럼 
수행 능력이 뛰어나서 그 극한에 이르면 
역시 그렇게 중생제도를 위해서 취하는 방편은 
또 가장 자비롭고 선한 방편들이 되는 단계를 생각할 수 있다. 

솜씨가 없고 서툰 의사가 힘들게 치료를 하는 것이지, 
정말 훌륭한 의사는 또 치료 가능한 다양한 방안 가운데 
가장 효과가 좋고 쉬운 방안을 통해 치료하게 되는 상태에 
이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4- 그런데 현실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과 견해를 갖는 경우도 있다.

즉, 진여 실재의 입장에서는 
정말, 일체의 선과 악, 고통, 생사, 생멸이 본래 없는 것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중생제도나 수행 자체가 일체 필요없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문이나 견해를 일으키기도 쉽다. 

진여 실재가 본래 그런 여러가지 문제를 얻을 수 없고 
본래 니르바나라는데
왜 그와 달리 현실에서는 이렇다 저렇다 분별하고 
본래 생사가 니르바나라는 식으로 관하고 
또 그에 상응한 깨달음을 구하고 수행을 해나갈 필요가 있는 것인가. 
처음부터 본래 사정이 그러하다고 하므로,
아예 처음부터 이런 노력 자체도 필요없는 것은 혹시 아닐까. 

어떻게 보면 실재 진여의 입장만을 관철하여 
그 입장에서만 모든 현실을 관한다면, 
이런 입장도 취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칫 실재에는 선과 악이 없다는 입장만 생각하면, 
현실에서 다른 생명이 고통을 받던 말던 관계없이 
심지어 다른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다는 목적도 없고, 
깨달음이나 수행을 한다는 목적도 없이 
이제는 아무 것이나 자신 마음대로 
아무렇게 행해도 무방하고 괜찮은 것은 혹시 아닐까 
이런 생각을 일으키기 쉽다. 

왜냐하면 진여 실재의 입장에서는 
그런 선악구분이나 좋고 나쁨 시시비비를 모두 본래 떠나 있고
생사 생멸도 얻을 수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위와 같이 행해도 된다고 
보는가. 
바로 이 부분이 수행자와 비수행자의 경계선이라고 본다. 


원래 수행을 함에 있어 실재 진여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하지만, 
그러나 수행의 목표는 
이렇거나 저렇거나 관계없는 실재 진여의
상태를 확인함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칫 실재 진여의 깨달음을 강조하다보면
이점을 착각하기 쉽다. 

그런데 원래 수행의 목표는 그것이 아니고 
현실을 살아가면서 중생들이 겪는 고통과 악을
제거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점을 상기하면 
위 문제는 사실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즉, 여러가지 수행은 결국 
자신과 중생의 고통의 해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또 그를 위해 실재를 관하는 것이기도 하다. 

수행자는 바로 그런 목적을 갖는 바탕에서  
현실과 실재를 관통하여 관하는 것이고 
그런 입장에서 방향을 취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고,
이렇든 저렇든 실재는 이에 관계없이 여여하고, 
고통의 현실에서도
그 '실재는'  그처럼 그와 관계없이 여여하므로, 
단지 실재가 그렇기에
그 상태 그대로 아무렇지 않다. 
그런 입장은 적어도 아닌 것이다. 

이 점이 주의할 점이라고 본다. 
실재가 그렇다는 것이 어떤 고통과 악에 대한 
면책을 시켜주고 면죄부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수행자는 '실재가 그러하다는 깨달음과 관찰을 통해'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함으로써, 
자신과 중생이 겪는 고통을 벗어나고 
다시 고통의 윤회를 일으키는 업을 중지시키고 
그 전에 행하던 방식과는 반대로 행하여
이 고통을 증가시키는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한편, 현실이 이렇든 저렇든
실재는 그런 고통이 없다는 사실을 '관하는 것'은
그렇게 관함으로써 비로소 실재가 
그렇게 되게 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렇게 관하던 관하지 않던 실재는 관계없이 그렇다. 

그러나 
다만 수행자들이나 중생들이 
그렇게 현실과 실재를 관통하여 관함으로써 
현실에서 갖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떠나고 
또 이를 통해 현실에서 맞이하는 고통의 상황을
제거하고 벗어나게 된다는 점에 
이런 수행자의 수행 노력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이 점만 혼동하지 않으면 
앞의 37 과 4 의 내용 사이에서 혼동을 겪지는 않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4 의 입장은
아무리 진여 실재에 본래 니르바나이고
선악이 없고 고통이 본래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아무렇게 행해도 되고, 
심지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목적도 없이 
다른 중생을 아무렇게 해치고 괴롭혀도 무방하다는 등은 
수행자가 취하는 입장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유마힐 거사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4 의 내용은 아니다. 
그렇지만 처음 초보 수행자가 보거나 취하는 입장도
물론 아닌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론상 37 의
가장 원만한 상태에 이를 때까지 
현실에서 수행과 훈련에 열심히 임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그것은 사실 각 수행 단계나 내용이
이론상으로는 같은 바탕에 있는 것이지만, 
현실에서 수행자가 취할 수 있는 내용에는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행자가 수행을 오늘 시작했다고 
누구나 다 여환삼매를 통해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가.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 톱으로 잘라도 
아무렇지 않고 평안하게 임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표를 통해 자신의 수행상태를 스스로 
점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마힐 거사처럼 
방 안에 수많은 중생을 초대하여 다 앉힐 능력이 있는가. 
다른 불국토 부처님에게서 밥을 빌어 올 능력이 있는가. 
이런 것도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


앗. mun 님이 된다고요? 


mun 님이



한때 자신도 쉽게 된다고 주장하며 
파리로 변신한 다음 
매번 인간으로 재변신해 나타나는데 실패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당. 

이런 부분에서도 
pass, stop, turn, go가 자유자재하게 되어야 하는데용
변신만 가능하고 재환원 재변신 원상복구 이런 것이 
곤란하면 역시 곤란하다고 봅니당. 





한편, 
doctr 님이


본인이 필요없이 식사초대에 응해 
식비 부담을 가중시켰다고 기술하는데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원래 졸업은 인턴연구원만 한 것이므로, 
인턴연구원이 먹기를 원하는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에 
인턴연구원만 들어가 먹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식당 밖에서 피켓을 들고 
열심히 먹어라, 이렇게 응원하고 있으면 
전제 식사비도 줄고, 
또 나머지 사람들은 사실 먹는 것보다 
다이어트에 힘써야 할 입장이므로 
건강 증진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 그렇게 되면 현실적으로 
얼마나 인턴연구원이
이상하고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가. 

그래서 상대의 축하를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던 않던 
같이 식당에 들어가 앉아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분위기를 맞추어주어야 할 필요가 
불가피하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식당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식사량에 관계없이 
식비를 부담하는 뷔폐식당인 경우 
자신의 원래 상황은 
단지 상대와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뷔폐식당에 들어왔고
자신은 많이 먹지 않고 다이어트에 신경을 써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비용을 지불하고 적게 먹으면 손해가 된다는 뷔폐식당의 
상황논리에 의해
자신의 목적과 상황을 망각하고 
그 안에서 온갖 음식을 다 맛보려고 나서는 것도 
문제는 문제라고 본다. 

그러나 대부분 이렇게 되기 쉬운 것이다. 

수행자가 복덕을 쌓는 보시-정계-안인-정진 등의 수행을 하고 
지혜 자량을 얻는 정려-반야 수행을 하고 
자비희사를 닦고 
기타 각종 삼매 다라니 신통을 수행한다고 할 때 

자칫 잘못하면 본 목적을 상실하고 
망상 분별 상태 안에서 
좋다고 보는 이들 내용에 탐착을 일으킨 가운데 
이들 수행덕목을 닦아 나가려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쉽다. 

그것이 원래 
상대를 축하하고 분위기를 맞추어 주려고 
뷔폐식당에 상대와 같이 따라 들어갔다가 
원래 자신의 상황과 취지를 망각하고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과대 섭취를 하고 마는 
경우처럼,
중생을 제도하려고 중생의 망상분별에 들어갔다가,
자신이 그 망상분별 속의 복덕에
탐착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과 doctr 님이 뷔폐식당에 들어간 가운데 
과연 누가 그런 형태로 식사를 하였겠는가. 

사실은 본인이다. ^_^

왜냐하면 늘 현실에 충실한 가운데 몸과 마음을 다 하여 
상대의 뜻에 맞추어 주려 노력하다 보니까...
본의아니게. 




>>>

https://www.youtube.com/watch?v=v3o5i9jPvQc

>>>

Herbert Léonard - Quand Tu M'aimes



문서정보

 





◈Doctr Gong 2015/02/07/토/09:13


♥ 잡담 ♥교육의 중요성 

한국의 교육열이 높아서 유대인과 많이 비교된다고 한다. 
그런데 차이점이 있다고 본다. 
우선 평균 iq 는 한국인이 유대인보다 월등히 높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성과가 각 방면에서 월등히 높다. 

여기에는 많은 원인이 작용한다고 보지만, 
한국인의 경우, 주로 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해 좋다고 보는 청사진을 준비해 놓고 
여기에 자녀를 끼워 맞추려는 방향으로 교육열이 높다면, 
유대인의 경우, 부모는 그런 의식을 갖지 않고, 부모는 
자녀의 능력과 소질을 잘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여기에 도움을 주어 그것을 개발시키려는 방향으로 교육열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가 막상 자녀들이 성인이 된 이후 
나머지 평생의 시간동안 스스로 노력해서 무언가를 추구해 나가야 할 시점부터 
사실상 큰 차이를 나타내는 원인이 된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 차이로
한국의 경우 자녀가 대학진학 이후 성과가 거의 보잘것 없게 되고 
유대인의 경우 그 이후부터
실질적인 성과가 쏟아져 나오게 되는 차이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어제도 숙왕화님이 학교 졸업생들이
외고나 과학고 기타 특성화고교에 많이 진학한 결과를 보고,
묘길상 인턴연구원을 장차 인기가 많은 특성화고교에 
진학시키려고 유도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여기에도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인턴연구원이 평소 무엇을 잘 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를 파악하여 여기에서부터 그 출발점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일단 게임이다. 
물론 게임 자체가 답은 아닐 수 있지만, 
인턴연구원이 스스로 늦게 까지 하고 또 아침 일찍부터 스스로 알아서
찾아 하는 활동이 게임이므로 일단 
여기에서 부터 출발해서
무엇이 답인가를 찾아나가려고 해야 한다고 본다. 



lab 님은

유대인이 전세계적으로 각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낸다고 하더라도 
재주는 곰이 피우고 돈은 사육사가 번다고 할 때 
유대인은 그런 사육사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므로, 
깊은 지혜를 통해 볼 때 올바른 삶의 모델은
오늘날 유대인이 각 분야에서 하는 역할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사실 세속에서 사람들이 바라고 추구하는 대부분 좋은 직장이나 
지위는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학자라면 노벨상을 타고 싶어하는가 싶어하지 않는가. 
학자라면 하버드 대학의 교수가 되고 싶어하는가 싶어하지 않는가.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감독이 되고 싶어하는가 하지 않는가.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가 하지 않는가.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질 때 
대부분 하고 싶어하지만 잘 안 되는 부분에서 
유대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을 놓고 재주가 많아서 오히려 가치가 적은 곳에 
가치가 많은 것을 희생시키면서 스스로 사역을 당하고
다른 이도 사역을 하게 하는 상태라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좀 지나친 해석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아마 lab님의 입장에서는
유대인들이 사업을 하고 지위를 차지하고 활동할 때 
그런 사업이나 활동을 보살의 입장에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처럼 보살의 입장에서 행하지 않으면 
결국 지혜를 발휘하고 나아가면 갈수록 
스스로 고통을 더 깊고 길게 만드는 결과만 되는 것이라고 제시한다. 

유대인은 사실 2 차 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가기 전에 
수없이 많은 탈출 가능성이 있었다고 제시한다. 

유대인의 박해가 시작되기 전에 탈출했어야 했고 
게토에 붙잡혀 들어가기 전에 탈출했어야 했고  
게토에서 열차에 옮겨 타기 전에 탈출했어야 했고  
수용소에 도착하기 전에 탈출했어야 했고  
...이런 식이다. 

그런데 사실은 매 단계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어디에서부터 그것을 벗어나야 하는가.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 자신을 이끌고 나아가려는 
그 단계에서부터 자신이 스스로 이것을 풀고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앞에 든 비유처럼 최종적으로 
고통의 수용소에 끌려가게 되는 것은 
사정이 마찬가지라는 비관적인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제 숙왕화님이 
아발로 인턴연구원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식사를 대접할 때, 
lab 님과 같은 경우는 이미 비만 상태이므로,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자신이 손해이기도 하므로, 
다른 사람들이 식사할 동안
인턴연구원을 응원하면서
밖에서 그냥 있었으면
참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가. 
사정이 비슷하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면, 
앞으로는 그렇게 벗어나 탈출해야 한다고 본다. 
 
본인이 요즘 


유마힐 거사가 출현하는 설무구칭경을 보고 있다. 


그런데 
수행자가 음식을 먹어도 되는 조건으로 제시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여 
여러가지로 생각 중이다. 

◎001, 
...

존자 선현이여, 

그대가 부처님을 보지도 않고 

법을 듣지도 않으며 

승가를 섬기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저 외도(外道)의 여섯 스승인 만가섭파(滿迦葉波:프라나 카샤파)ㆍ

말살갈리구사리자(末薩羯璃瞿舍離子:마칼리 고살라)ㆍ상폐다자(想吠多子:산자야 벨라티풋타)ㆍ

무승발(無勝髮:파쿠다 카짜야나)ㆍ알봉가연나(褐犎迦衍那:아자타 케사캄발리)ㆍ

이계친자(離繫親子:니간타 나마풋타) 등을 그대의 스승으로 삼아 

그들을 의지해 출가해서 

그 여섯 스승이 떨어진 곳에 존자 역시 떨어질 수 있다면, 


이 음식을 먹어도 좋습니다. 


존자 선현이여, 

모든 온갖 잘못된 소견의 길에 빠져 있으면서도 양극단이나 중도의 길을 발견하지 않는다면, 

8난처[無暇]에 묶여 있으면서도 유리한 조건[有暇]을 구하지 않는다면, 

온갖 오염된 욕망과 어울리면서도 청정함을 성취하지 않는다면, 

모든 중생이 얻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지혜[無諍:아라나]를 존자 역시 얻지만 

그것을 청정한 복전이라 이름붙이지 않는다면, 


그대에게 음식을 보시한 사람들이 

여전히 3악도(惡道)에 떨어진다면, 

존자를 온갖 마군과 함께 손잡고 

모든 번뇌를 반려로 삼는다고 여긴다면, 


일체 번뇌의 자성이 

곧 존자의 자성이라면, 

모든 중생에 대해 

원망하고 해치는 감정을 갖는다면, 

모든 부처님을 경멸한다면,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비방한다면, 

승가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으로 궁극의 열반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이 음식을 먹어도 좋습니다.’  

...
fr 설무구칭경 k0121sf-- ☞이 음식을 먹어도 좋습니다


lab 님의 경우는


어떤 경우에 
돈없이도 숙왕화 님의 식사를 먹어도 좋았다고 보는 것인가. 

답. 숙왕화님이나 인턴연구원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때 ~


예를 들어 인턴연구원들에게
붕어팡 팔아 생계를 해결하는 기술 하나 익히면 그후엔
생계에 대한 근심을 버리고
그러나 붕어팡 장사에 매진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대책없이 
온 생명을 향해 나아가라는 식으로
대책없는 인생 지도를 하지 않을 때, 

또는 인턴연구원들에게 
자신이 가진 재주는 빨리 남에게 넘겨주고
서로 하려고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는 빨리 일을 넘겨주고 
오히려 인기가 없고 사람들이 잘 하지 않지만 자신이 필요한 분야를 찾아
일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식으로
인생지도를 하지 않을 때 
그런 때 식사를 얻어 먹어도 좋은 것이라고 본다. 

lab 님이 그간 올린 노래들을 들어보니까, 
lab 님이 이상적인 삶의 모델로 보는 형태나
방편적 수행을
그대로 잘 실천하는 이는 기본적으로
매우 드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행복론 편집방향은
이런 점에서 조금 균형을 맞추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점차 최종적으로 
수행자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

https://www.youtube.com/watch?v=v3o5i9jPvQc

 >>>

Herbert Léonard - Quand Tu M'aimes






◎002, 

○ [pt op tr]  Herbert Léonard - Quand Tu M'aimes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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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59/02/06/금/23:40


♥ 잡담 ♥묘한 인연 

오늘 아발로 인턴연구원의 졸업식이 있어서 참석하려 나섰다.


그런데 대학원 때 친구를 길에서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알고 보니 처조카 졸업식 때문에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한편 핸드폰을 보고 길을 걸어가는 묘길상 인턴연구원에게
숙왕화 님이 넘어진다며 주의를 준다. 

나도 며칠전 TV에서 겨울철 낙상 사고가 빈발해
골반이 다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이 생각나서, 
나도 숙왕화님의 구두를 보면서  
눈이 오는 날에는 아이젠을 구두에 끼고서라도 
조심해서 걸어다녀야 한다고
말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날이 푸근해서 전혀 미끄러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날씨인데 
글쎄 운동장 아주 작은 부분에 눈이 뭉쳐져 있는 부분에 올라가서 
숙왕화님이 그대로 꽈당하고 말았다.

본인도 창피한 지 긴급하게 일어나서 자리를 피해 사라졌는데 
큰 부상은 아니어서 불행 중 다행이다. 

눈이라고는 찾아 보기 힘든 날씨인데
그 눈이 뭉쳐진 부분을 일부로 찾아가서 사고를 당하는 것을 어떻게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왜 그렇게 조심하지 않고 
넘어졌는가 하고 이유를 물으니, 그 이유가 또 
허망하다. 

요즘 묘길상 인턴연구원 게임하는 것을
숙왕화님이 중단시키면 
인턴연구원이 자꾸, 조금만,,,조금만 더...
이런 말을 반복한다.
이런 말 하는 것을 반복해서 듣게 되어서 

최근에 인턴연구원을 성은 조씨 이름은 금만 이라고 지어 
부르고 있었는데 
운동장에서 사람 많은 곳에서 혼자 멀리 떨어져 가는 인턴연구원을 부른다고 
큰 소리로 조금만아.. 조금만아..이렇게 조금 빨리 불르며 따라 갔는데, 

숙왕화 님이 이 말을 듣고
왜 인턴연구원을 그렇게 부르면서 따라가는지 이해가 안 되고, 
굉장히 기분이 나쁘고 당황하여 
그만 눈 위로 막 올라가 나아가려다가 그렇게
갑자기 넘어졌다고 한다 .

이상한 일이다.
왜 그것이 그런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인가. 


아발로 인턴연구원이 
여러개 상을 받게 되었다고 자랑을 해서 
우리들이 참석해서 지켜보았는데 
아쉽게도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좀 늦게 도착하여 뒤에 서서 보니 어떻게 식이 
진행되는 지를 잘 알 수가 없다. 

학생들 졸업식 복장도 무슨 
대학생 졸업식 복장 같은 것을 차려 입었는데 
학생들 수가 많은데 
교장선생님이 일일히 한 학생마다 
악수를 하며 
졸업장을 나누어 주는 모습이 매우 정겹다. 

외국 중고등학교 졸업식 풍경 비슷해 보인다. 







여하튼 졸업식 전반을 통해 보면 
학교 분위기가 과거
우리가 학교 다니던 분위기와는 조금 달리 매우 부드럽고 
사제간의 관계도 훨씬 더 밝고 원만한 느낌을 받게 된다. 

여하튼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기간 동안 
학교에서 상처를 받는 일이 적으면 적을수록 
학창 시절의 추억은 남은 삶 동안
오래동안 정겨운 기억으로 남을 수 있으리라 본다. 

숙왕화님이 한 턱낸다고 해서 
따라가서 식사를 했는데 
난 알아서 채식만 하는데도
상당히 부담스런 가격이 나온다. 


모른 척하고 열심히 먹고 
축하!! 




생각해보니, 난 이상하게도 졸업식마다 
참가를 제대로 못한 느낌이 든다. 
내게는 늘 진행만 있을 뿐 
마침이란 없기 때문이당... ^_^


본인이 졸업식을 핑계로 
숙왕화님으로부터 무조건 얻어만 먹은 것 같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게
중요한 선물을 했다고 본다. 

처음 인턴연구원의
졸업식에 참가하자고 말을 들을 때, 
마음 속에서 이들 졸업생 모두가 다 함께 
대지혜를 얻게 되기를 축원하였던 것이다.  

물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 방법은 나도 궁금하였다.

세상은 사실은 간단하다.
지혜가 열리면 길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혜가 가장 소중하다고 보지만, 
그러나 어떻게 지혜를 얻게 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다. 

또 한편 지혜에는 걱정되는 점도 많다. 
만일 지혜를 갖고도 이렇게 되면, 저렇게 되면 하는 
걱정이 늘 뒤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천수경에 나오는 
나모대비관세음 원아..로 시작하는 많은 
서원의 내용을 나열하게 되는 것이다. 

나모대비관세음 원아속득일체지 
나모대비관세음 원아조득지혜안 
나모대비관세음 원아속도일체중
나모대비관세음 원아조득선방편 
나모대비관세음 원아속승반야선...

결국 이렇게 각 개인의 소원이 구성되어야
비로소 그 소원의 실현을 위한 대지혜가 필요하고
또 그런 상태에서 대지혜를 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대지혜가 필요한데
그 대지혜를 얻게 하는 방안은 
아마 관세음보살이 갖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런데 오늘 난 그 현실적 방안을 하나 
알게 되었다.

묘길상 인턴연구원을 또 다른 애칭으로 '조 금만'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숙왕화님이 듣고 놀라서 갑자기 눈에 미끄러지는 일이 일어났는데 
바로 그 말처럼 사람들이 행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숙왕화님은 조금만..이런 핑계나 말을 듣기 싫어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놓고
자꾸 조금만 더 하고 싶어하고
조금만 더 하고 싶어하며 실제로 조금 더 하고
또 조금 더 하는 그런 자세가

그 방면에 대해 남보다 조금 더 잘 하게 만드는
비결이 된다고 본다.

물론 이 방안은 부작용도 갖는다. 

Jacku Zokumman 박사가 옆에 있으면 
사람들이 지치게 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다. 

다만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서 지혜를 얻는 데 있어서 
무슨 신비한 방안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바로 이 조금만 더 라는 방안을
자신의 분야에 적용하면, 
매우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본다. 

doctr 님이나 little 님은 한결같이 
인턴연구원이 다니는 학교가 
일류학군의 학교가 아니고 
인턴연구원이 새로 진학하게 되는 학교도 역시 그렇기에 
이곳에서는 비록 공부를 아주 잘 한다해도 
다른 일류학교들의 하위 수준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지적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인턴연구원이
그다지 좋은 학교에 진학하지 못해서 
안타까운 심정을 표하는데, 
그러나 숙왕화님과 인턴연구원은
대단히 만족한 표정이다. 



세상사람들은 사실 진로나 학업과 관련하여
대부분 다 같은 걱정과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좋은 학과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그리고 풍요롭게 행복하게...잘 살아가는 방안 
이런 것에 집중이 되어 있다. 

그런 점과 관련하여 
또 역시 대지혜가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비슷한 관점으로 
돌아 오는 길에 
묘길상 인턴연구원에게 
돈에 묶여서 살아가는 방안과  
풀려서 살아가는 방안에 대해 
특별히 강연을 했다. 

왜냐하면 이 묘길상 인턴연구원의 상태는 
누나인 아발로 인턴연구원보다
조금 더 상태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 주었다. 
떡볶이 장사던, 구두닦이던, 껌 장수던 
무엇이던지 하나 선택해 생계를 해결할 방편을 
취하라. 

그렇게 생계를 해결할 방편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제 그 생계에 매달리지 말고, 
꿈을 온 생명을 향해 넓고 크게 갖고 
임하라. 

그렇게 하면 돈에 묶이지 않고 풀려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그것만 보고 뛰어들면 
평생 돈에 묶여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게 된다. 

카리브해의 사탕수수 농장의 노예로 전생에 
지낸 경험이 있는 
지금의 '조 금만 (쉬고 합시다)' 인턴연구원에게는 
매우 절실한 충고라고 보고 전해 주었는데 
신호등 앞에서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안타깝다. 이 인턴연구원도 
역시 '조금만 더'을 반복해 외치다가
결국 또 노예로 붙잡히고 마는가. 


>>>

Calogero - Grand Corps Malade - L'ombre Et La Lumière

>>>

https://www.youtube.com/watch?v=Rl-OfZj58k4

>>>

○ [pt op tr]  Calogero - Grand Corps Malade - L'ombre Et La Lumière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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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테이블 

◈Doctr Gong 2015/02/06/금/00:07


♥ 잡담 ♥뜻대로 되지 않는 삶 

복권을 사보면 당첨되기를 기대하지만,
당첨되는 것보다 
당첨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음을 알게 된다. 

살면서 기대하는 일들이 뜻처럼 
잘 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자신도 그렇지만, 자신이 신경을 기울이는 
다른 가족들의 상황도 사정이 같다. 

이렇게 가지를 쳐 걱정을 하다보면 
번뇌가 무한히 증가되어 나아간다. 

그런데 lab 님은

세상의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대응방안과 달리 
늘 반대의 극단적인 방안을 방안으로서 제시한다. 

행복론에서, 따로 깊게 취급해야 할 방안으로 보인다. 
비록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그 처방에 대해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에서 그 방안을 따라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될 뿐이다. 

모든 번뇌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출가를 해서 수행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나 출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런데 그 출가를 달리 행할 수 있다는 내용이 
경전에 나온다. 


...

무구칭은 여러 청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이제 이 훌륭히 설한 법의 비나야(毗奈耶:律] 속에서 함께 출가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선 세상에 나오기 어렵고,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불행을 벗어나기 어렵고, 

행운의 복덕을 갖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자 여러 청년들이 말했습니다. 


‘대거사여, 

부처님께서는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무구칭이 말했습니다. 


‘그대들 청년들이여, 

다만 무상정등각의 마음을 일으켜 

올바른 행을 부지런히 닦는 것이 바로 출가이며, 

구족계를 받아 비구가 되는 것이다.’ 


fr 설무구칭경 k0121sf-- ☞올바른 행을 부지런히 닦는 것이 바로 출가




>>>

https://www.youtube.com/watch?v=hnWJ0sysb84 

>>>

 POUR UNE BIGUINE AVEC TOI ❤ MARC LAVOINE ❤

>>>






○ [pt op tr]   POUR UNE BIGUINE AVEC TOI ❤ MARC LAVOINE ❤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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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59/02/05/목/19:42


♥ 잡담 ♥건강 관련 상식 

지나친 운동은 오히려 건강에 안 좋다는 기사를 보았다. 

전혀 운동을 안 하는 것도 역시 안 좋다. 

다음은 개인 생각이다. 

전혀 운동을 안 하다가 
갑자기 지나친 운동을 하면?

=> 그날 또는 그 이튿날 사망하기 쉽다. 

지나친 운동을 계속 하다가 
갑자기 운동을 안 하고 지내면

=> 역시 위험하다. 


안 좋은 일을 겹쳐서 계속하기 때문이다. 


>>>

[자료 기사] 일주일에 4시간 이상 조깅하면 사망률 높다...

http://news.donga.com/NewsStand/3/all/20150204/694768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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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4시간 이상 혹은 시속 11km 이상의 속도로 격렬하게 달리면
아예 운동을 하지 않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고...

장시간 힘든 운동을 하면
심장과 동맥에 병을 유발할 수 있는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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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59/02/05/목/14:24


♥ 잡담 ♥내 생애 해야할일 


글을 쓰면 쓸수록 정리가 안 되고 
체계가 엉망이 되는 느낌이 든다. 

little 님이 현실에서 감각되는 내용이 늘 정연하다고 하기에 
여기에 답하다 보니 매번 같은 내용만 반복하는 느낌도 든다. 




감각현실에는 같은 감각 다른 감각을 세울 수 없고 
있다 없다도 세울 수 없다. 

감각현실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실재도 그렇고 
실체에서도 그렇다. 

같다 다르다 있다 없다라는 분별은
어디에서 이뤄지는 일인가 하면 
관념 영역에서 행하는 내용이다. 

그 말로 가리키는 어떤 내용인가가 감각현실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정은 이해하지만, 
감각현실 자체에는 그런 것이 없다는 사실부터 
먼저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런 내용이 잘못이고 그런 것이
감각현실에 있다면 제시하면 된다. 

여하튼 매번 같은 논의에서만 맴돈다는 생각을 하게 되므로, 

현실 수행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된다. 

우선 다라니나 
경전 내용을 잘 외웠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러나 잘 안 외워진다. 

학창시절 정말 머리가 좋다고 생각되는 친구들이 
주변에 참 많았다. 

월등하게 잘 기억하고 
문제를 잘 풀고 그런 친구들이 많은 것이다. 

가끔 TV 동물농장 같은 프로처럼 동물들이 출연하는 
TV 프로를 보면 
매우 똑똑한 동물들을 보게 된다. 

감각현실을 놓고 동물들이 그로부터 
일정한 분별을 사람과 동등한 정도로 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거기엔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동물과 인간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무언가를 외우려고 하면,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책만 덮으면 방금 전에 본 내용이 무엇인지 
몽롱하기 때문이다. 
치매 증상 같기도 하고, 
동물 상태로 퇴화한 느낌을 받게 된다. 


다행히 불교의 가르침에서는 
기본적으로 이런 분별 자체가 망상분별임을 
제시한다. 

현실에서는 일정한 자료, 감각현실을 놓고
분별을 잘 해야 똑똑하다고 인정하는 것이 사실인데, 
그러나 그런 분별이 많을수록 번뇌 망상도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한마디로 문제가 많은 상태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또 경전이나 다라니 등은 암기를 
잘 해야 한다. 

약간 모순적인 내용이 아닌가. 

사실이 그렇다. 

그런데 수행자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본다. 

망상분별이 망상분별임을 깨닫는다는 것은 
그런 깨달음을 갖고 망상분별을 대한다는 것이지, 
경전이나 다라니를 외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옛날에 little 님이 암기 방안에 대해 적으면서 
놀라운 암기능력을 선보인 분 가운데 
이정희 여사란 분을 생각해본다. 

[참고자료 기적의 암산왕! 경악의 마지막 필살기 무대! - 미라클 코리아 9회]
>>>
https://www.youtube.com/watch?v=JuLPYmQHAi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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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스타킹’ 괴물 암산왕 천경단위 15줄 34초만에 암산 성공 
암산왕 이정희씨에 도전하는 어린이 도전자가 나타났다. ...전민석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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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20519211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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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에 나온 이정희 여사는 
암산능력도 대단히 놀라운 상태지만,
암기 능력도 대단히 뛰어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분들과 
본인의 암산이나 암기능력을 비교해보면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생각해보게 된다. 

여하튼 중요한 점은 
경전과 다라니를 공부해서 
열심히 기억해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 수행 과정에서 
넘기 힘든 부분이 
안인 수행이 있다고 본다. 

지극히 억울하고 불합리하고 고통스럽기도 하고 
그런 상황을 만나서 
그에 대한 망상분별 집착을 제거한 상태에서 
그것을 아주 평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안인 수행을 하나 마치면 
수행이 조금 차원이 다른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안인 수행의 성취 이전에 정려 수행이나 반야 수행 
방편, 원, 력, 지 바라밀다의 수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안인 수행이 성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런 수행이 자신과 다른 생명에게 
큰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조금 억울하고 고통을 당하는 상황에 노출되면 
자신부터 그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제가 당연히 발생한다. 

그러나 안인 수행이 성취되면 
적어도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도 의미한다. 


또 그런 안인 수행의 성취가 되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자신이 자신이나 자신의 것으로 보는 모든 것들이 
모두 실답지 않고 
꿈과 같고 환영과 같은 것임을 깨닫고 
이를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자신이나 자신의 것, 
자신의 생명, 신체, 재산, 가족...등등이
지극히 억울하고 불합리하게 침해될 때
이를 평안하게 대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little 님이 제기하는 것처럼 
감각현실에서 자신이나 자신의 것이 
늘 일정하게 익숙하게 반복된다고 하면서 
이에 집착을 갖고 대하면 
안인 수행을 원만히 성취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익숙하게 자신이나 자신의 것으로 대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무너지고 파괴되고 
침해를 받게 될 때 
그는 그 익숙한 것들에 대한 익숙한 반응으로 
분노를 일으키거나, 슬픔에 젖거나, 
고통에 노출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은 매우 익숙하고 반복되는 정연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수행자로서는 실격의 상태가 된 것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하면 대부분의 생명이 걸려드는 
환에 대한 집착에 걸려든 것이다. 

여하튼 안인 수행을 마치고 나면, 
이후 해야 할 수행이 훨씬 더 많아지게 된다고 본다. 

수많은 망상분별 속에 뛰어들어 
가지가지 사업을 해야 할 필요성이 
바로 이후부터 더 많이 제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할 사업이 정말 찾아도 잘 안 보이고 없으면 
비닐봉지로 짚신을 만들어 보는 
가내 수공업이라도 하나 개발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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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5/02/05/목/13:21◈


♥ 잡담 ♥새로운 편집 체계- 북마크의 활용방안  

댓글 테이블 밑에 ◎001,과 같은 북마크 부분을 신설하였다. 
인터넷 페이지에서 ☞ 기호를 사용하면 해당 페이지에서 ☞ 기호 다음의 글자를 검색해 
해당 위치를 찾아가라는 일종의 북마크이다. 
그러나 이를 사용하는 것을 불편해 하게 된다. 

북마크를 달아 주려면 html 편집 모드에 들어가서 A NAME 표기를 붙여주어야 하는데 
일단 12 개의 북마크를 미리 만들어 놓고 
해당 부분을 오려내기 해서 북마크를 사용할 부분에 붙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용빈도가 그리 높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12 개 정도의 북마크를 붙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용방법은 이런 식이다. 
http://story007.tistory.com/1025#003

참고로 북마크를 사용할 부분은 오려내어 붙여 넣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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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r Gong 2015/02/04/수/21:00


♥ 잡담 ♥원금의 2 배가 되려면 

금리가 연 5%일 때 원금이 두 배가 되려면 약 14년 걸린다.
금리가 하락해 연 4%가 되면 18년,
연 3%일 때는 24년 걸린다.
연 2% 금리에서는 36년이,
연 1% 금리에서는 70년이 필요하다.

참고 fr 기사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020315451&nv=3


lab 님은 원금의 두 배가 되면 뭐할려고 그러는가 이렇게 물을 것 같다. 



정말 원금의 두배가 안 되면 하지 못하는 그런 일은 무엇일까
궁금하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원금의 두배가 되아야지만, 
비로소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분명 있을 수 있다.

다만 정말 그것 때문에
원금의 두배를 만들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선 기분이 좋지 않은가. 

담배를 끊고 30 년을 견디면, 이후 매달 63 만원씩 받을 수 있다는 계산도 위 기사는 제시한다. 

A 씨가 하루에 한 갑씩 피우던 담배를 끊고 그 돈을 모아 노후자금으로 쓴다고 가정해보자.
담배 한 갑의 가격인 4500원을 매일 모으면 1년 후 164만2500원이 된다.
이를 60세까지 - 30년간 모으면 - 1억1622만원으로 불어난다고 한다.
수익률 연 5% 가정 시 이 금액으로 30년간 연금을 수령하면 매달 63만원을 받을 수 있다.

...


lab 님은 안타깝지만, 해당사항이 없는 내용이다. 
이미 너무 많은 담배를 폈기 때문에 ... 


담배로 오염된 폐에도 다음의 구절이 적용된다면 좋을텐데, 
아쉽게도 그렇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

무구칭이 다시 말했습니다. 



‘일체 중생의 마음도 본래 청정해서 

일찍이 오염된 적이 없는 것이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파리여, 

만약 사량 분별이 있고 다른 분별도 있다면 

번뇌가 있는 것이며, 

사량 분별이 없고 다른 분별도 없다면 

마음의 본성이 청정한 것입니다. 


만약 전도됨이 있다면 

번뇌가 있는 것이며, 

전도됨이 없다면 

마음의 본성이 청정한 것입니다. 


만약 자아를 취함이 있다면 

번뇌에 물듦이 있는 것이며, 

자아를 취함이 없다면 

마음의 본성이 청정한 것입니다. 


우파리여, 

모든 법의 성품은 

생멸하면서 머무르지 않는 것이

허깨비 같고 환화(幻化)와 같고

번개와 같고 구름과 같습니다. 

일체 만법의 성품은 서로 기다리질 않으며, 

나아가 단 일념(一念)이라도 잠시도 머물지 않습니다. 

모든 법의 성품은 다 허망하게 보이는 것이 

꿈과 같고 불꽃과 같고

건달바성(健達婆城)4)과 같습니다. 


모든 법의 성품은 다 분별심이니, 

분별심이 일으킨 영상(影像)은 

마치 물속에 달이 비친 것과 같고 

거울 속의 영상 같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잘 아는 것을 

계율을 잘 가진다고 하는 것이며, 

이 계율을 잘 지켜나가는 것을 

조복(調伏)을 잘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

fr 설무구칭경 k0121sf-- ☞일찍이 오염된 적이 없는 것 




Jean Ferrat, La paix sur terre

>>>

https://www.youtube.com/watch?v=zdT6c5uiJss





○ [pt op tr]  Jean Ferrat, La paix sur terre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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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59/02/04/수/16:44


♥ 잡담 ♥깨끗한 공중화장실 

방금 본 TV 프로에서 각 가정의 냉장고의 세균 오염도를 측정한 결과를 보니 
대부분의 가정의 냉장고 오염상태가 공공화장실 변기의 오염도 수치의   
10 배 내지는 100 배 이상씩임을 보여준다.
세균 오염도에 있어서는 영하 20 도 이하의 냉동고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참고 MBC 경제매거진 M 스페셜 2015-02-04-수-방영 ]

[참고 기사 '냉장고 안 식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법

http://www.hidoc.co.kr/WellBingLife/WellBingLife01.aspx?Mode=View&ModuleID=301&srno=29004

(기사내용) ...변기보다 냉장고 속에 세균이 많다는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실험 결과 채소 칸에서는 변기보다 10배에서 1만 배 많은 세균이 나왔다
...


며칠전에는 텀블러 보온컵의 오염도가 또 비슷한 수치를 보여주었는데,
이런 내용을 통해 우리는 공공화장실의 변기가 깨끗함을 알 수 있는 것인가. 

변기의 깨끗함은 물로 씻고 잘 건조해주는데 있다고 한다. 
텀블러나 냉장고 선반 등에도 이용을 잘 해야 할 것 같다.  





>>>

Alain Souchon:Le Mystère 

>>>

https://www.youtube.com/watch?v=m9mWA9FmYVo

>>>





○ [pt op tr]  Alain Souchon:Le Mystère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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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59/02/04/수/09:46


♥ 잡담 ♥긴급 취재 

little 님이 올려 놓은 글에 답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것보다 현재 담배를 3일 째 안 피우고 있는 것 같다. 
비결을 묻는 little 님에게 한 마디 한다면, 

그냥 안 피우고 버티는 것 뿐이다. 

이런 상황을 놓고 doctr 님이 지옥 노래를 하나 올려 놓고 간 것 같은데 


사실 지옥은 지극히 청정하다. 

다만 지옥에 도착하는 이의 마음 상태가 
지극히 불건전하고 문제가 많은 상태인 것 뿐이다. 

그러니 지옥에 도착할 때 지옥에서 풀려나는 열쇠는 
늘 자신의 마음 안에 장착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도 지옥같은 상황인데 정말일까?
일단, 정말이라고 본다. 



담배를 사러 갈 마음이 생길 때는 
그 돈으로 대신 할 수 있는 유익한 일을 10 가지 이상 
생각해본다. 
담배 1 갑 살 돈으로 한 번에 10가지를 다 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주의 평화의 증대를 위하여 
담배 1 갑 살돈으로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라고 보게 된다. 


little 님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간단한 답을 한다면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감각현실을 하나 놓고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가, 
이것이 과연 실다운 것인가, 

아니면 이것은 모두 자신의 마음에 맺힌 마음안 내용물들이며,
영화관에서 대하는 화면과 같은 것에 불과한 것인가. 

이렇게 보는가 저렇게 보는가에 따라 
삶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고 본다. 

마치 하나의 그림인데 조금 달리 처리하여 붙여 놓고 
왼쪽과 같이 보는가 오른쪽과 같이 보는가의 차이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그 차이는 더 크다. 

한편, 감각현실과 관념이 세트 메뉴처럼 
늘 같이 다니는 것 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따로 따로인 경우도 대단히 많은 것이다. 
눈을 감고 과거를 생각하거나 
눈을 뜨고 무언가를 바라보면서 멍하니 아무 생각도 않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둘 사이의 관계가 문제되고 
이들 내용은 사실 이들 서로가 각기
실답지 않은 내용들임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감각현실을 그대로 놓고서 
이것이 무엇인가. 이 정체는 무엇인가. 
이것은 실다운 것인가. 

이런 생각을 깊게 하면, 
결국 이에 대해 자신이 행하게 되는 수많은 분별들에서 
이 분별들이 반드시 그런 감각현실과
그렇게 묶여야 할 이유가 없음을 보게 된다. 

이 때 그런 수많은 관념, 분별을 놓고 
이들에 대해 다시 
앞의 감각현실과 같은 형태로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이 관념, 분별들은 다 무엇인가. 
이 정체는 무엇인가. 이것은 과연 실다운 것인가. 

그래서 이런 검토 반성을 통해 
이제 현실에서 얻는 이 모든 감각현실과 관념, 분별을 놓고 
이에 대해 총괄적으로 자신이 다시 하나 덧붙여 가져야 할 내용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이들 감각현실과 관념 분별을 현실에서 얻고 있지만, 
그러나 '이들은 모두 실다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집착을 가질 만한 것들이 아니다' 라는
그런 '분별'이 필요한 것이다. 

망상분별 속에서 이 분별이 하나 더 추가됨으로써 
이제 자신은 비로소
자신의 병적 증세를 스스로 인식 분별하는 환자 상태가 되는 것이다. 

보통 병원에서 자신의 질병 증세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하는 경우엔 
의사나 간호사가 다가와 퇴원이 멀지 않았다고 말해주게 된다. 

보통 중증 환자들은 그런 자각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망상분별 편집 증세에 대한 이런 자각을 바탕으로
치료를 위한 성실한 수행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껏 매우 실답고 진짜의 내용으로 보았던 
감각현실과 관념 분별을 놓고서 
그것들이 하나같이 실다운 내용들이 아님을 관하고
그것을 대할 수 있게 될 때 
또한 비로소 현실에서 수행덕목으로 제시된 내용들도  
오히려 쉽게 행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왜 다른 생명에게 무언가 좋음을 베풀지 못하는가. 
왜 다른 생명에게 나쁨을 주는 일을 중지하지 못하는가. 
왜 자신이 나쁨을 받을 때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보복하지 않고
평안하게 머무르지 못하는가. 
이렇게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그 원인에 대한 답은 결국 다음이다. 

각기 모두
그에 관련된 좋고 나쁨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대하기 
때문이다. 
그 집착을 주는 그 내용들을 하나같이 
모두 실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보는 자신의 모습이나,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진정한 자신이나 자신의 것이 아니고,
모두 환영과 같은 것임에도 

자신은 그것이 모두 진짜인 것으로 여기고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몰두가 길고 길게 좋은 결과를 많이 가져오면
대단히 좋다고 볼 수도 있는데 

사실은 잠시간 좋음을 준 이후
부작용과 독을 가득 가져오게 되고 
이후 이를 통해 자신이
재미없고 고통스런 영화관에 
계속 묶여 다니게 된다는 점이
큰 문제라면 문제다. 

왜 그렇게 되는가 하는 점은 
길고 깊게 이 영화관에서 서로간에 벌어지는 일들의 
모든 관계를 자세하게 관찰할 때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감각현실과 관념 분별을 놓고 이것이 실답지 않음을 관하고 
집착을 버리고 대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히 말하면
위와 같이 고통스런 영화관에 묶여 
자신이 고통을 받는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되는 고통스런 영화를 
매번 진짜처럼 여기며 이리저리 고통을 받고 다니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간단히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편, 늘 이론과 실천은 차이가 있으며 
중요한 것은 실천에 있음을 강조하게 된다. 




little 님이 이렇게 글을 올리면 누가 얼마나 보는가에 
매우 회의적이다. 

보지도 않는 글에 왜 이렇게 여러가지 작업을 하는가. 

부처님이 과연 경전을 읽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라고 
하였는가. 

이런 식으로도 질문을 한다. 

개인적으로 인터넷이 있는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던 당시에 
필요한 여러 노력이 인터넷 환경에서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본다. 

doctr 님도 심심하니까, 이런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고 
본인도 여기에 공감한다. 



>>>

https://www.youtube.com/watch?v=TeaKAB-IxOE

>>>

Elsa - T'en Va Pas (Clip Officiel)
>>>






○ [pt op tr]  Elsa - T'en Va Pas (Clip Officiel)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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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나란히 여러장 배치하기 위한 테스트



1- 테이블을 사용하여 배치함  tr td 명령 - 편집창 - 파일보관함에서 버튼 메뉴이용하여 만듦





2 - 단순 크기 조정후 나열방법 - 그림 주소를 단순 나열 

[ ##_1N | ...  |_##][ ##_1N| ....  |_##]... 방식 - 장점: 일반 편집창에서 바로 사용 가능




샘플 1: 


다음과 같은 방식 사용 
[ ##_1N|cfile29.uf@252B073B54D0E8571DCA02.jpg|width="475" height="354" filename="의상대-수묵화.jpg" filemime="image/jpeg"|_## ][ ##_1N|cfile8.uf@23349F3B54D0E8570F46BC.jpg|width="475" height="354" filename="의상대-수묵화2.jpg" filemime="image/jpeg"|_##  ]






샘플 2 : 




샘플 3: 







   
3- img src 명령 사용







4 - Gallery 명령 사용 - 일반 편집모드- 파일보관함의 버튼바로 실행 



0123456



◈Doctr Gong 2015/02/04/수/00:46


♥ 잡담 ♥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만은 
예술과 조화로운 글을 쓰기 위해서 
약간의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무슨 그림인가 의아할 수 있지만, 
좌선대 바위라고 한다. 















‘일체 만법의 성품과 모양은 다 허깨비 같은 것입니다. 

일체 유정과 모든 언설의 성품과 모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모든 지혜 있는 사람이 문자에 대해 집착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언설이 모두 성품과 모양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 문자 아닌 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이 해탈의 모습이 바로 일체 만법입니다.’ 


fr 설무구칭경 k0121sf-- ☞일체 만법의 성품과 모양은 다 허깨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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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r Gong 2015/02/04/수/00:25


♥ 잡담 ♥

앞으로 전 조금 차별적인 모드로 
글을 써볼까 합니다. 









‘법에는 나[我]가 없으니 나라는 티끌[我垢]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며, 

법에는 정이 없으니 정(情)의 티끌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며, 

법에는 수명이 없으니 생사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며, 

법에는 보특가라(補特伽羅:有情)가 없으니 먼저와 나중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법은 늘 고요하니 모든 모습을 멸했기 때문이며, 

법은 탐욕과 집착을 벗어났으니 반연(攀緣)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며, 

법에는 문자가 없으니 언어가 끊어졌기 때문이며, 

법은 표현할 길이 없으니 일체 사념의 물결을 멀리 벗어났기 때문이며, 

법은 일체 모든 것에 두루 현현하니 허공과 같기 때문이며, 

법은 드러낼 것도 없고[無顯], 

형상도 없고[無形], 


모습도 없는[無相] 것이니 일체의 행하고 움직이는 일을 멀리 벗어났기 때문이며, 

법에는 내 것[我所]이 없으니 내 것이라는 관념을 벗어났기 때문이며, 

법은 요달하고 구별함이 없으니 마음과 의식[心識]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며, 

법에는 비교함이 없으니 상대가 없기 때문이며, 

법은 인(因)에 속하지 않으니 연(緣)에 연루되지 않기 때문이며, 

법은 법계(法界)와 동일하니 일체의 참법계[眞法界]에 평등하게 들어가기 때문이며, 

법은 진여[如]를 따르니 따르는 대상이 없기 때문이며, 

법은 실제의 경계[實際]에 머무니 궁극적으로는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며, 

법에는 흔들림이 없으니 여섯 경계[六境]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며, 

법에는 가고 옴[去來]이 없으니 머무는 바가 없기 때문이며, 

법은 공(空)에 순응하고 무상(無相)을 따르고 무원(無願)에 응하니1)일체의 늘어나고 줄어드는 사념에서 멀리 벗어났기 때문이며, 

법에는 취하고 버림이 없으니 생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며, 

법에는 갈무리하는 근본 의식도 없으니 일체의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범주를 초월했기 때문이며, 

법에는 높고 낮음이 없으니 늘 부동(不動)에 머무르기 때문이며, 

법은 분별에서 나온 어떤 행실도 벗어났으니 모든 쓸데없는 논쟁을 절대적으로 끊었기 때문입니다. 




fr 설무구칭경 k0121sf-- ☞‘법에는 나[我]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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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r Gong 2015/02/03/화/23:52


♥ 잡담 ♥좌선


글과 그림을
이런 식으로 구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봅시다. 




수행자가 지옥에 도착하면 극히 청정함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만, 

https://www.youtube.com/watch?v=G-1L_MX_d40

>>>

Kenza Farah - Quelque part (Official Music Video)
>>




○ [pt op tr] Kenza Farah - Quelque part (Official Music Video)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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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3, 

◈Prince evilstupidmiserable Little 2015/02/02/월/15:16


♥ 잡담 ♥셋트로서 감각현실과 관념 

사람이 저쪽에서 이리로 걸어 올 때 
그러나 그 안에 오고 감이 없다는 명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현실이 실답지 않다는 말에는 여러 차원의 의미가 있다고 제시한다. 

우선 관념엔 그 관념이 가리키는 감각현실이 없다. 
또한 감각현실에도 그 관념의 내용이 없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실재의 내용이 아니다. 
실재의 내용은 얻지 못하고 공하다. 
이들은 진짜라고 할 영원불변한 실체의 내용이 아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면에서 실답지 않음을 제시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은 
매우 정연하게 반복되고 익숙한 내용들이다. 

비록 감각현실에 자신이 생각하는 관념 그 자체를 
찾아내거나 얻어낼 수 없다고 해도 
오고 간다고 생각할 때 
그 관념이나 생각으로 가리키고자 하는 
감각현실이 여하튼 그런 형태로 있다고 해야 하지 않는가. 

그 감각현실을 놓고 그 안에서 그 관념 자체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 관념이 실답지 않다는 근거가 되지만, 
그렇다해도 원래 관념이 가리키고자 한 
무언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그 무언가의 감각현실을 자신이 그런 관념에 
대응시킨 것이므로, 
이 감각현실과 관념은 일종의 하나의 SET 로서 
현실을 이루고 있는 것 아닌가. 



현실의 문제와 고통의 해결을 찾을 때 
추우면 덥게 할 방안을 찾고 
더우면 시원하게 할 방안을 찾고 
배가 고프면 배부를 방안을 찾고 
이렇게 문제가 하나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물론 모든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해주는 방안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대응 방안이 일정한 문제를 갖는다해도 
그것을 시정하는 노력도 
또한 현실 안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현실이 원래 전혀 무의미한 것이라면, 
이런 반대의 노력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일단 이런 의문을 가져 본다. 






문서정보

??? 




댓글 테이블 

◈Lab value 불기2559/02/01/일/16:29


♥ 잡담 ♥지독한 고통과 갈애의 해결방안 

little 님이 


http://story007.tistory.com/1024 ☞♥ 잡담 ♥현실이 계속되어야 할 이유
란 글에서 이디오피아의 가난한 가족의 열악한 상태와
네덜란드의 선진국의 여유있는 상태를 대조시킨 글을 보고 

고통과 갈애에 대한 근본 처방에 대해 
무언가 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생각만 하고 쓰지 못했다. 


원래 불교 가르침에 의하면 
고통과 공포, 번뇌가 가득한 상태는
현실에서 고통으로 보지만,
그러나 그 자체가 본래 니르바나라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런 고통과 공포가
오히려 그런 니르바나를 깨닫고 
얻게할 계기를 제공해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고통의 모습을 놓고 
현실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런 현실 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TV 에서 여러 프로를 보면서 그런 문제를
놓고 생각해보았다. 

KBS 2015 특별기획 바다의 제국 <제2편>에는 
설탕을 얻기 위해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서 1200 만명이나
노예를 끌고 와 가혹한 노동을 시켰던 내용이 나온다. 

오늘날도 도미니카 공화국엔 사탕수수 농장이 남아 있는데
아이티에서 온 노동자는 힘든 일을 하고 있다.  

이들 하나하나가 고통을 당한 현장에 
과연 니르바나가 있는가. 


어제는 또 아시안컵 축구 결승 시합도 있었다. 
한국팀은 55 년간 우승을 못해 이번에만은 우승하고 싶다는 념원을 갖지만, 
후반전 잔여시간에 1 골을 넣어 간신히 무승부를 이루고 
연장전까지 가서 아쉽게 지고 말았다. 

그러나 호주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유치해서 다 이겨 놓은 경기를 아쉽게 지게 되면 
정말 잠이 안 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승부를 놓고 다투는 일에는 이처럼 서로간
희비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우리도 최선을 다하지만, 상대도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임하기에 
우리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 것이다. 




또 어제는 KBS 2TV 추적 프로를 보았다. 
추적, 그것이 알고 싶다 이런 프로를 보다 보면 
보도하는 방송국이나 기자 자신도
그저 의문이 가는 여러 자료만 제시하는 가운데 
명확한 결론적 내용을 제시하지 않아  
시청하는 입장에서는 의문과 답답함만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경우도 그런 내용의 하나인 것 같다. 

군대에 입대한 후 사망사고가 났는데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않아 
가족들이 시신을 인수하지 않는 경우에 관한 보도였다. 


참고 추적 2015-01-31(토) 방영 [1141회]미인수 영현 135, 가족은 왜 군을 믿지 못하나

간추린 내용 

○ [pt op tr] fr http://www.kbs.co.kr/2tv/sisa/chu60/view/vod/2337073_75588.html?dataType=201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런 사고 자체에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만 가질 뿐 
어떤 해결방안을 찾기 힘들다. 

가족들은 
군대내 폭행이나 가혹행위가 원인이 되어 사망사고가 발생한 뒤, 
자살사건으로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심을 갖거나, 
아니면 병사를 자살하게 만든 원인인 
가혹행위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불만을 갖는 등으로, 
군수사기관의 수사결과에 의문을 갖고 
시신을 인수하지 않는 것 같다. 

무엇이 정말 사건의 진실인지 알 도리는 없지만, 
작년 크게 보도된 윤일병과 임병장의 이야기가 여기에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사즉윤병 생즉임병 이란 표현으로 
군대내 폭행 등에 
그대로 참고 받아들이자니
당사자가 죽을 만큼 고통스럽거나 때로는 윤일병처럼 죽게 되고 
그렇다고 자신을 괴롭히는 상대를 보복살해하거나 하면,  
결국 임병장처럼 체포되어 사형수가 될 운명이 되니, 

그래서 군대에 간 병사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 지 알기 힘들다는 
사자성구가 제시되기도 했었다. 


이처럼 어느 삶의 현장을 보아도 
그 안에 담겨진 당사자들의 고통과 
또 그 가족들의 깊은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이를 바라보면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지고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여기에 무슨 좋은 해결책이 있을 것인가. 


계속 이에 대해 생각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우선 little 님이 

고통과 갈애의 삶의 문제에서 
당면하는 목표로 생각하는 상태를 성취해 내는 것을 
그 문제의 해결점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을 
결론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대부분 그것을 답으로 생각하지만, 
최소한 그것은 답이 아닌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이 되는 상태에서는 
그 당면한 고통의 문제가 원하는 상태로 해결이 되던 되지 않던 
모두 해결이 되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그 당면한 고통의 문제가 원하는 상태로 해결이 되던 되지 않던 

모두 해결이 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당면한 고통의 문제를 원하는 상태로 해결하는 것은 
때로는 
더더욱 그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확장시키게 된다고 할 수 있다. 


little 님과 같이 
고통과 갈애의 삶의 현실에서 
당면한 고통과 갈애를 해결하여 성취하는 것은 

전도 망상 분별의 한 상태에서 
다른 전도 망상 분별의 상태로 나아간 것 뿐이고 
근본적으로 전도 망상 분별을 벗어나고 
집착을 제거한 상태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고통과 갈애의 삶의 현실에서 
사전에 그런 고통과 갈애가 완전히 사라지도록 
미리 조치를 취한다 해도, 
그로 인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렇게 되어 그런 고통이 없게 되어도
정작 당사자들은 그런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상태가 그런 점에서 좋은 것인지는 모르고 
또 다른 고통과 갈애에 그대로 노출되고 만다.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하나의 고통의 문제만 해결해서는 
결국 고통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는 방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물질적 환경으로 인한 고통의 예로서, 
가난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이디오피아의 가난한 가족의 예를 들고 
아프리카 노예의 고통을 예로 들지만, 

예를 들어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은 
그런 상태가 아니고 노예 상태도 아니기에 
그래서 모두 행복하고 기쁨에 넘쳐 살고 
아무 고통과 번뇌, 갈애에 노출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little 님이 예를 든
다른 선진국 네덜란드와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네덜란드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디오피아의 가난한 가족이 갖는 수많은 삶의 문제가
아무 것도 없게 되고 
그저 행복하기만 할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단순한 생각이다. 

어떤 문제가 원천적으로 해결되어 제거된 상태라고 해도, 

사람은 또 다른 점으로 고통을 느끼고
또 다른 갈애를 추구하고, 
또 다른 번뇌에 빠져 살아간다.

어느 삶에서도
생노병사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오음성고와 같은 
고통의 기본 구조 자체는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문제로 생각하는 어떤 것을 
성취하고 제거하고 없앤다고 하여 
그것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편 고통과 갈애의 문제를 놓고 
이것을 다 사후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어떤 방안이 있는가. 

어떤 고통이 발생하면, 
그 상태로 되돌아가 다시 그 고통을 없앨 수 있는가. 

또는 어떤 고통이 발생하면 
그 고통을 상쇄할 이익과 즐거움을 대신 주면
그것이 수습되는 것인가. 

또는 어떤 고통이 발생하면 
그 고통을 가한 이를 찾아내, 
그 고통에 버금가는 고통이나 손해를 가하면 
그것이 수습되는 것인가. 

여하튼 한 번 일어난 고통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고 
또 일어난 고통은 고통대로 그것이 잘 수습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주제가 
곧 현실은 꿈과 같다는 진리와 깊게 관련이 되는 것 같다. 

앞에서 질문한 것들은 
물론 이미 발생한 그 과거시점으로 돌아가 
고통을 원상회복할 방안도 없지만, 

사실은 그런 방안들로는 
온전한 사후 수습이 될 수 없다. 

결국 가장 온전한 수습방안은 그런 것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다. 



little 님은 
현실이 매우 정연하고 익숙한 형태로 반복되기 때문에 
그것이 꿈과 같지 않고 매우 실다운 것이라고 보지만, 

그렇게 실답게 보이는 정연하고 익숙한 형태로 반복되는 내용은 
또 다른 고통을 가져오는 형태로 반복되게 된다. 
즉 그대로 방치하면 그 익숙하고 정연한 형태의 내용들은 하나같이 
계속 고통을 증가시키고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비록 현실이 매우 정연하고 익숙한 형태로 반복되어 실다운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그런 모든 생각이나 관념 판단은
결코 그런 내용이 감각현실에는 없고 
또 감각현실은 실재가 아니고 
실재나 이들 현상이나 이들 모든 것에는  
진짜라고 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통해 

이들 모두가 꿈과 같은 내용이라고 관하고 
그래서 현실을 마치 자신이 출연하고 있는
하나의 영화 속 내용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대하며  
집착없이 임하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그 각각에 대해 집착을 벗어남으로써, 
이 고통에서 자신을 분리시킬 계기가 마련된다고 본다. 

그것이 모든 삶의 고통과 갈애 번뇌의 문제에 대한 
사전 예방책이면서 
또 사후 수습책으로 가장 좋은 근본 방안이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지금껏 집착을 갖고 임하던 방식과 반대로 
즉 수행의 방안으로서 
보시-정계-안인-정진-정려-반야-방편-원-력-지의 방안으로 
임함으로써 

자신이 출연하고 있는 영화 속 내용 마저도 
좋은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영화와 같고 꿈과 같은 이 현실이 
왜 하필이면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형태로 
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는 
바로 자신이 그 모두에 집착을 갖고 임하여 
잘못된 방식으로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을 중지하고 
그 반대로 행하는 것이 
그 문제의 해결방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본래 이 모든 현실이 꿈과 같음을 깨달은 상태에서는 
꿈 속에서 좋은 상태를 얻는 것을
최종적 목적으로 삼을 수는 없다. 

단지 다른 생명을 역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이런 모든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현실이 꿈과 같고 영화와 같은 상태임을 깨달은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어 무료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무한히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근본 문제가 해결된 상태에서 
좋게 사용되어야 할 방편들이, 
잘못하면, 다른 생명을 무한히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방편으로 사용될 수 있다. 

화약이나 총, 대포의 기술이 중국에서 서양으로 전해진 후 
그것이 곧 서로를 죽이고,
흑인을 노예로 잡아 부리고 
다른 곳의 원주민을 학살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곧 little 님이 말하는 
매우 정연하고 익숙한 형태로 반복되는 삶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각 생명은 이것을 가장 궁금해 해야 한다고 본다.  
왜 자신이 살고 있는 그런 상태에 태어나, 
그런 세상의 모습을 그런 형태로
익숙하게 보고 대하면서 
그런 형태로 익숙하게 살아가는가. 


한편, 불 보살이 행하는 선교방편의 내용은  
현실에 그 내용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드러나지 않을 뿐이고 
기능하고 작용하고 있다. 
선교방편은 그와 같이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Christophe Maé - Pourquoi C'est Beau...
>>>

http://www.youtube.com/watch?v=ULllMEi_bdc





○ [pt op tr] Christophe Maé - Pourquoi C'est Beau... 가사 





문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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